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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韓流)로 인한 외국인(外國人)들의 가출-2

한류[韓流]로 인한 외국인[外國人]들의 가출-2 문 혜 은 공공디자인저널 큐레이터 ​ 한류 열풍이 비상하고 있습니다. ​ 동남 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남미 아랍권 국가 등에서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정과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 한국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 한국 가수와 드라마, 영화에 빠져 한국어 언어를 배우고 이를 취업으로 연결하여 코리안 드림을 꿈꾸기도 합니다. ​ 얼마전 영화 ‘기생충’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한국영화의 위상을 드러낸 작품이며 한국이 궁금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극히 한국 정서를 표현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에게도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독일 출신의 18세 셀리나[Selina]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큐레이터 문혜은 세계는 지금 한국을 주목하고 있고 한국을 알기 위해서 외국인들의 가출은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 독일 출신의 18세 셀리나[Selina]는 한국이 좋아서 무작정 짐을 싸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영화 기생충에 대한 사랑을 수차례나 드러내며 인터뷰에 응했던 그녀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 문혜은. 왜 한국에 오게 되었나요? ​ 셀리나[Selina]. 고등학교 때 연기수업을 하면서 외국 연기 스타일을 배우고 익숙해지고 싶었어요. 그중 한국영화는 나에게 가장 매력적이었고, 한국 영화를 통해 나는 한국 문화가 궁금해지고 한국으로 오기로 결심했어요. ​ 영화 기생충은 정말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해요! ​ 재미를 주면서 반전과 스릴, 스토리가 아주 논리적이었어요. 빈부 차이의 설정을 큰 집과 지하주택 가난의 상징을 냄새로 표현한 점도 디테일한 설정이었다고 생각해요. ​ 한국 영화는 강한 스토리 전개가 있어요. 예상치 못한 전개와 결말은 영화 첫 장면과 상당히 연관되어 있어 짜임새가 있는 것 같아요. ​ 장면 하나하나가 사건의 복선을 알려주는 중요한 구성이며 영상은 보고 있는 사람이 영화 속 주인공으로 혼돈될 만큼 공감과 현실감 있게 준비되어 있어요. ​ 주인공의 결핍이 뚜렷하고 그 결핍이 해결되어지는 과정이 참으로 흥미로운 것 같아요. 한국 드라마 역시 흥미로운 스토리가 많았어요. 쉽게 말하면 자극적이면서 다양한 코드를 보여주고 시청자가 주인공을 괴롭힌 상대를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상태로 한순간에 만들어 버려요. ​ 예를 들면 출생의 비밀로 인한 아픈 성장기,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복잡한 남녀관계, 재벌과 일반인의 사랑 등 파격적인 설정이 지루함없이 저를 사로잡았어요. ​ 세계지도에서 봤을 때 찾기도 힘든 나라가 이처럼 훌륭한 영화와 드라마를 탄생시킬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요. 한국영화와 드라마는 슬픔과 고통 아픔의 무거운 감정들을 잘 설명하고 있었어요. 분명히 특별함이 있어요. ​ 그리고 저는 영화뿐 아니라 한국음악도 아주 좋아해요. ​ 몇 몇의 가수가 좋은게 아니라 모든 가수와 노래가 좋아요. 잘 설명할 수는 없는데 리듬이 좋고 목소리가 아름답고 한이 있는 감정.. 하면 이해가 쉬운가요? 분단의 아픔 뭐 그런 정서에서 출현 되었을까요? ​ ‘후훗...’ 제 생각이에요. ​ 한국 가수들은 옷을 정말 세련되고 유니크하게 입는 것 같아요. 늘 화려하고 독특한 의상을 입고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활기차게 느껴지고 저도 같이 노래와 춤을 따라서 하게 되는 힘이 있어요. 슈퍼주니어, BTS의 춤은 거의 다 외울정도에요. 이들은 헤어스타일도 매우 다양해요. 모양도 수십가지, 색깔도 수십가지, 팔찌반지 악세사리도 가수와 잘 맞게 그리고 시대적으로 어울리게 선택하는 것 같아요. ​ 한국은 가수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세련된 패션을 하고 있었어요. 옷가게도 많구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되었을 때는 제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했어요. 제 패션이 너무 소박 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느낌 때문에... ​ 문혜은. 한국이 좋아서 머물고 있다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 셀리나[Selina]. 그저 좋아서 이곳에 오게 되었지만 저에게는 꿈이 있어요. 바로 배우가 되는 것이에요. ​ 한국영화를 통해 마음이 더 간절해진건 사실이에요. 성격이 외향적이지는 않아서 두렵기는 하지만 제가 알게 된 한국인들은 매우 친절했어요. ​ 그들을 통해 정보를 얻고 배우가 되는 길을 찾고, 준비하기 위해 현재는 어린이들 영어 과외를 하는 중이에요. 한국어를 빨리 완벽하게 익히고 싶어서 어린이 언어를 통해 듣고 따라하고 배우면서 하고 있어요. 아직은 의사소통이 부자연스럽고 힘들지만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독일 출신의 18세 셀리나[Selina]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큐레이터 문혜은 문혜은. 한국에서 가 본 곳중 기억에 남는 곳은? ​ 셀리나[Selina]. 바로 말할 수 있어요! 롯데월드와 코엑스몰이에요. 그 곳에 갔을 때 저는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경이로웠어요. 모든게... 장소자체도 위압감을 느낄 만큼 컸고 뭔가 펼쳐져 있으며 꽉 차 있는 마치 소우주 같은... 다양한 볼거리와 탈것들 그리고 주변 디자인은 제 눈을 사로 잡았어요. ​ 이런 즐거움이 가득한 나라,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장소가 많은 나라에도 과연 사회문제나 청소년 갈등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뭔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고 신나는 그 분위기가 좋아요. ​ 남자 친구가 생기면 또 갈거에요. ​ 문혜은. 한국이 좋은점? ​ 셀리나[Selina]. 음... 새벽까지 모든 가게가 오픈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정말 신기해요. 음식점, 옷가게, 편의시설 등등. 24시간을 여는 가게도 있었어요. ​ 코엑스몰처럼 대형 복합문화 쇼핑몰도 쉽게 찾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생각해요. 배달문화도 이색적이었어요. 무엇이든지 다 만들어서 어디든지 가져다 주는 서비스를 보고 감탄했어요. 한국은 매우 열정적인 나라 같아요. ​ 아직까지 한국에서 크게 불편을 느껴 본적이 없어요. 교통도 편리해서 지하철로 어디든 갈 수 있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안전이 정말 최고인거 같아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범죄에 이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 외국인이라고 택시요금을 더 받는다거나 밤늦게 돌아다녀도 치안이 잘되어 있어요. 음식도 저에게는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에요. 김치전, 떡볶이, 닭갈비를 저는 좋아해요. 매운 이 음식들이 왜 자꾸 생각나는지 모르겠어요. 한국문화와 역사 한국인의 가치관을 음식을 통해서도 저는 조금 이해할 수 있었어요. ​ 정열적이고 부지런한 국민성. 그렇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세계적인 전자 브랜드가 생겨나고 한류 때문에 매일 밤 짐을 싸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는게 아닐까요? 문혜은. 한국에게 바라는 점은? ​ 셀리나[Selina]. 외국인인 제 입장에서 말하자면, 한국어를 보다 빨리 배우고 싶은데 어학원 강의료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에요. ​ 한국에 와서 어학원에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서 조금은 슬퍼요. 저렴한 어학코스가 생겨서 외국인들이 멋진 나라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언어교환이라는 사설 프로그램이 많은데 그곳도 비용을 지불해야 해요. 그런 형식의 언어 습득의 제공이 봉사나 지자체에서 지원되기를 바래요. ​ 그리고 외국인들이 일자리를 찾는 것이 매우 힘들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외국인들에게 기회와 권리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 다양한 점이 많은 나라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모습이 많지는 않았어요. 일자리가 쉽게 주어지면 아마 외국인들은 한국사람과 결혼을 하고 이곳에서 계속 머물기를 희망할거에요. ​ 저 또한 그렇게 하고 싶어요. 문화를 교류하면 더 멋진 문화가 만들어질거 같은데...

이이남 LEE LEE NAM 뉴미디어 아티스트 - 2편

살아있는 그림(les peintures vivantes) ​ 광주 토박이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그의 작품은 여타의 미디어 아티스트 작품과 달리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 와이? 왜 그의 미디어 아트가 대중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일까? 왜냐하면 그는 대중의 코드와 동양·서양의 코드를 읽어내는 ‘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미디어아트는 현실과 가상인 두 현실이 공존한다. ​ "그러나 나는 시뮬라크르(가상) 작품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고자 한다." ​ 왜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는가? 에 대한 물음은 ‘진리의 사유’에 대한 지평을 열었다. ​ 진리를 깨우칠 때 우리는 두려움·욕망·불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 “내가 발견한 진리는 예술작품으로 변형된다. ​ 나의 작품은 감성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서 내게 다가온 숭고함을 구현하고 있다." 류병학(미술평론가) 이미지 다시 태어나는 빛 - 2019 (Reborn Light - 2019) 12min 30sec Beam Project 2019 ​ 이이남 2019 세계수영선수권 대회 개회식 피날레 미디어 아트 감독 ISEA 국제전자예술심포지움 개막식 미디어 감독 ​ 개인전 (52회) 2019 ‘다시 태어나는 빛 – 뿌리들의 일어섬’ IESA대학, 파리, 프랑스 ‘이이남, 빛의 조우’ 서울식물원, 서울, 한국 ​ 주요전시 2019 ‘Flim & Arts’, 뿌리들의 일어섬 전, 스타시네마, 테이트 모던, 런던. Artificial Intelligence ‘Hyper-Intelligence’ Mr. Media Lab 콜라보전 서울, 한국 ​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의 이미지 장치’ 전, 국립현대 미술관, 한국 ​ 작품소장처 ​토마 파운데이션(미국), 지브라스트라트 미술관(벨기에), UN본부(미국), UN사무국(미국), 아시아 미술관(샌프란시스코), 수닝예술관(중국), 예일대학교(미국),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워싱턴), 후진타오 영부인(중국),국립중앙도서관(서울,한국), 인천국제공항(인천,한국), 리움미술관(서울, 한국), 한미미술관(서울,한국), 컬렉션 솔로(마드리드,스페인), 아랍에미리트 전 자이드 대통령 영부인(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 여기서 말하는 대중의 코드와 동양/서양의 코드란 대중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동〮서양의 명화를 차용한다는 것에 국한 되기보다 그 동〮서양의 명화에 대한 현실인식을 관통한 탁월한 분석력을 뜻한다. 필자는 이 점에 대해서 구체적인 작품을 사례로 들어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필자가 그의 일명 ‘디지털-명화’를 언급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디지털-명화가 태동하게 된 초기 작업을 살펴보아야만 할 것 같다. ​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은 광주 조선대와 동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그는 졸업 후 조각 작품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과 전국조각가협회 특별상도 받았다. 그런 조각가 이이남을 미디어 아티스트로 전이시킨 ‘사건’은 무엇일까? ​ 그가 1997년 순천대 애니메이션 학과에서 미술해부학 강의를 맡았을 때, 학생들이 찰흙으로 스톱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는 것을 보고 ‘움직이는 조각’에 삘이 꽂힌다. 그는 곧 17인치짜리 작은 모니터를 구입해, 그의 전공인 조각을 살려 클레이스톱 애니메이션, 즉 ‘움직이는 조각’ 영상을 만든다. ​ 1998년 제작된 이이남의 클레이아트 애니메이션 <4학년>은 플라스틱에 담겨있던 찰흙 덩어리로 당시 순천대 애니메이션학과 4학년 학생들을 모델로 삼아 제작된 작업이다. 찰흙 덩어리로 만들어진 남학생은 다시 찰흙 덩어리로 돌아가 곧 여학생으로 변신한다. 물론 이이남은 찰흙 덩어리로 학생들 이외에 다양한 동물들(개, 고양이, 호랑이)도 만들었다. ​ 특히 호랑이가 자신의 꼬리를 잘라 먹는 장면을 보면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찰흙 스톱 애니메이션은 이이남의 작업에 큰 변화를 주었다. 이를테면 이이남은 찰흙 스톱 애니메이션을 통해(이전의 ‘무거운’ 조각에서 해방되어) ‘가볍게’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 여기서 말하는 ‘가벼움’은 우리 상식을 뒤집는 ‘유머감각’을 뜻한다. 그 ‘가벼움’은 그의 디지털-명화에서 대중적 호응을 얻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1990년대 말 다양한 클레이아트 애니메이션을 작업했던 이이남은 2000년대 접어들면서 그래픽 애니메이션 작업에 몰두한다. ​ 그는 2002년 SK텔레콤 애니메이션 공모전에 <자살>을 출품하여 대상을 받는다. <자살>은 선비와 물고기의 자살법을 그린 것인데, 선비가 돌에 매달려 물속으로 들어가는 반면, 물고기는 풍선에 매달려 하늘로 올라간다. 너무나도 참을 수 없는 자살의 가벼움이 아닌가? <선악과>는 사과를 사이에 두고 하와와 뱀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던 ‘선악과’와 달리 이이남의<선악과>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하와는 사과가 아닌 뱀을 잡아 먹으면서 관객에게 윙크하기 때문이다. <복수>는 나무를 자르는 남자에 대한 나무의 복수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나무를 자르던 남자가 나무의 그늘에서 누워 잠잔다. 그런데 나무는 자신의 그림자를 이용하여 나무를 자른 남자에게 복수한다. ​ 은 사격표지판에 대한 엉뚱한 발상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총알에 맞은 표지판들은 모두 울상이다. 그런데 총알을 맞지 않은 표지판은 낄낄거린다. 왜냐하면 그 웃는 표지판은 날라오는 총알들을 모두 피했기 때문이다. 총알을 피할 수 없는 표지판이 총알을 피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발상은 이후 ‘그림의 떡’으로 알려진 명화를 움직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하게 한다. 이미지 박연폭포(Parkyeon Waterfall) 5 x LED TV 2017 이이남은 2004년에 오브제에 모니터를 접목시킨 다양한 작품을 제작한다. <밥 먹고 잠자라>는 옛 교실 의자 위에 놓인 도시락의 뚫린 구멍으로 하늘의 구름이 떠가는 영상이 나오는 작품이다. <호주머니 속 풍경>은 옷걸이에 걸린 자킷 호주머니 속에 모니터를 장착해 마치 호주머니 속에 동전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그리고 <생명으로부터>는 고목에 모니터를 장착해 초록 꽃잎들이 흐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브제와 모니터의 접목 작업은 2005년까지 이어진다. 이이남의 <아이 러브 골프>는 골프장 영상과 (홀컵의 위치를 알려주는) 실제 깃발로 접목된 일종의 영상설치작업이다. ​ 전시장 벽면에 골프를 치고 있는 골프장 영상이 투사된다. 그리고 그 골프장 영상 앞에 실제 깃발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라이트로 인해 그 깃발의 그림자가 영상에 겹쳐진다. 따라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마치 그 그림자-깃발을 향해 스윙하는 것으로 착각을 일으킨다. ​ 이이남은 2005년 <실상과 허상>시리즈 작품을 제작한다. 이이남은 ‘에스파냐의 카라바조’로 불리는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an)의 <정물화(Bodegon)>(1636)에서 가운데 화병 2개 대신에 장미꽃과 유리잔을 교체시켜 놓았다. ​ 그런데 유리잔을 보면 영상이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그 영상은 어느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이미지 박연폭포(Parkyeon Waterfall) 5 x LED TV 2017 ​ 그렇다면 이이남의 <실상과 허상>을 보고 있는 관객은 유리잔 속에 담겨있는 관객과 다르지 않단 말인가? 그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관객은 작품 앞에서 단 5초도 서있지 않는다. 관객들은 전시장의 작품을 마치 지나가면서 보듯이 지나친다. ​ 그렇다면 이이남의 <실상과 허상>은 마치 금욕적인 수르바란의 정물화처럼 관객에게 조용히 자신을 성찰하라고 속삭이는 것은 아닐까? ​ 전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이이남은 ​ “제 작품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때 가슴이 쓰립니다” ​ 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알 수 없는 작품 앞에서 시간을 할애할 이유도 없는 셈이다. 우리가 축구경기를 즐기려면 최소한 축구 룰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관객이 미술 작품을 즐기고자 한다면 미술의 룰(미술사의 문맥)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일까? ​ 미술사학자 다니엘 아라스가 “관객이 한 그림 앞에 최소한 5분만 서있었으면 좋겠다” ​ 고 원했다. 그러나 관객은 작품 앞에서 5분은 고사하고 5초도 서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이남은 관객이 자신의 작품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니엘 아라스가 기대한 5분 동안 서있도록 하기위해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지나가는 관객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이이남은 관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 위해 우리들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디지털 기술에 주목한다. ​ 이이남의 ‘명화는 살아있다!’ ​ 이이남은 2004년 이이남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명화의 재매개(remediation) 작품을 제작한다. <김홍도, 신-묵죽도>가 그것이다. 김홍도의 <묵죽도>는 왼쪽 대각선 방향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를 그린 것이다. 김홍도는 대나무 줄기를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쳤다. 조선시대 대부분 ‘묵죽도’가 오른쪽으로 쳤다는 점을 참조한다면, 김홍도의 <묵죽도>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조민환은 어디선가 김정희의 난초 화법을 빌려 대나무를 오른쪽으로 치는 것보다 왼쪽으로 치는 것이 몇 배 어려운 기술이라고 말하면서 왼쪽으로 순식간에 처내려간 김홍도의 <묵죽도>를 놀라운 기교를 과시한 것으로 보았다. ​ 따라서 단원에게 대나무는 흔히 말하는 ‘군자’의 상징으로서의 고결한 대나무가 아니라 필치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소재일 뿐이라고 간주된다. 그런데 대나무 줄기의 필치를 보면 밑에서 위로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의 농담은 줄기 하단보다 상단이 진하다. 그렇다면 대나무는 바람에 대응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 자, 이제 이이남의 <신-묵죽도>를 보자. 오잉? 이이남의 <신-묵죽도> 대나무는 마치 ‘절개’를 비웃듯 가볍게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신기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당연히 움직일 수 없다고 확신한 그림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객을 더 놀라게 하는 것은 흔들리는 대나무 위로 눈이 내리는 것이다. 눈은 대나무 위에 서서히 쌓인다. 그리고 대나무 위의 쌓인 눈은 차츰 녹아 원래의 모습으로 컴백하는 것이 아닌가? ​ 이이남의 <신-묵죽도>는 김홍도의 <묵죽도>를 디지털 아트로 재매개한 것이다. 여기서 재매개는 기존 미디어(회화)를 디지털로 미디어화 시킨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이이남의 디지털 아트는 회화(명화)를 디지털로 재구현(Refashion)시킨 것이라고 말이다. 마치 절개를 지키듯 움직이지 않는 김홍도의 <묵죽도>는 디지털을 통해 마치 절개를 버린 듯 바람에 흔들린다. 이이남의 <신-묵죽도>를 보는 관객은 사색에 잠기기는커녕 오히려 놀란다. ​ 그렇다! 관객은 이이남의 <신-묵죽도> 앞에서 4분을 즐긴다. ​ 이이남의 재매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6년이다. 이이남의 대표작들 중 하나인 <8폭 병풍>도 2006년에 제작된다. 잔잔한 가야금 소리와 함께 소치 허련의 <홍매도>의 텍스트(제발)이 바람에 날리듯 의제 허백련의 <묵죽도> 화폭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나비를 전문적으로 그렸다고 하여 ‘남나비’로 불렸던 남계우의 <화접도>에 그려진 나비가 갑자기 날개 짓을 하더니 의제의 <산수화> 화폭으로 사뿐사뿐 날아간다. 도대체 ‘그림의 떡’인 나비가 어떻게 날개 짓을 하면서 날아다닐 수 있단 말인가? 왜냐하면 8폭 병풍의 화폭이 화선지가 아니라 LCD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기 스위치를 켜면 병풍에서 가야금 소리가 나오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꽃잎과 나뭇가지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일반 관객은 21세기 미디어 병풍 앞에서 신기한 표정으로 런닝타임 5분 30초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즐긴다. ​ 이미지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Gogh-The Starry Night, Arles 75 inch LED TV 2019)_17min ​ 하지만 박물관이 모든 유물들을 예술작품으로 전이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점에 앙드레 말로는 주목한다. 박물관은 박물관의 물리적 한계(크기) 때문이 아니라 건축물과 한 몸인 벽화나 모자이크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박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유물들은 박물관으로 운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 각국에 있는 모든 박물관을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세계 각지에 있는 모든 작품을 볼 수 없다. ​ 이미지 다시 태어나는 빛-2019 (Reborn Light-2019) 12min 30sec Beam Project 2019 앙드레 말로 왈, ​ “오늘날 대학생은 대부분 컬러 사진 복제품인 훌륭한 작품들을 가질 수 있다. 그는 또 사진 복제품을 통해 인류의 많은 그림들, 오래된 고대의 예술들, 먼 옛날 콜럼버스 발견 이전의 인도와 중국의 조각 작품들, 일부 비잔틴 미술품, 로마의 벽화들, 원시적이고 대중적인 예술들을 만날 수 있다.” ​ 앙드레 말로는 사진 복제품을 통해 세계 각지에 있는 모든 작품을 볼 수 있음을 간파한다. 따라서 그에게 도록은 일종의 ‘벽 없는 박물관(Museum without Walls)’이되는 셈이다. 앙드레 말로는 ‘벽 없는 미술관’을 ‘상상의 박물관’으로 명명했다. 왜냐하면 상상의 박물관은 죽은 유물에 생명력(상상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숀 레비 감독의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을 영화로 재매개한 것이 아닌가? ​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이이남의 디지털-명화는 명화 복제품을 통해 명화를 디지털 아트로 재매개 한 것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이남의 디지털-명화는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을 디지털 아트로 재매개한 것이 아닌가? 숀 레비 감독의 <박물관이 살아있다!>와 마찬가지로 이이남의 디지털-명화 역시 디지털 기술로 상상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 이이남의 디지털-명화는 ‘명화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이이남의 탁월한 분석력은 동양과 서양의 명화 선정에도 나타난다. 이이남의 <모네와 소치의 대화>가 그것이다. ​ 이이남은 모네의 <해돋이, 인상>과 소치의 <추경산수화>를 옆으로 나란히 배치해 놓았다. 모네의 <해돋이, 인상>에서 해와 배가 소치의 <추경산수화>로 서서히 흘러가고, 소치의 <추경산수화> 전경에 있는 배와 섬이 모네의 <해돋이, 인상>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 모네의 <해돋이, 인상>해가 소치의 <추경산수화> 산 뒤로 은폐되자 모두 밤으로 바뀐다. 밤이되자 건물들에 불빛이 밝혀진다. 흥미롭게도 소치의 <추경산수화> 전경에 있는 섬의 집에도 불빛이 밝혀진다. 소치의 <추경산수화>에 쓰여진 텍스트(화제)가 마치 바람에 날리듯 모네의 <해돋이, 인상>으로 날라간다. ​ 이이남은 <모네와 소치의 대화>는 서로 다른 공간·시간에 제작된 모네와 소치의 그림들을 마치 서로 선물을 주고받듯이 디지털로 ‘이동’시켜 자연스럽게 교감한다. 마르셀 뒤샹 이후 급진적인 작품을 하고자 하는 작가라면 ‘빌려쓰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이남은 명화를 일종의 ‘레디-메이드’로 사용한다. 물론 그는 명화를 그대로 제시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명화를 그대로 제시한 것으로 만족했다면, 그는 뒤샹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명화를 ‘되돌려-먹이기’ 한다, 어떻게?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가 그것이다. ​ 차도살인지계? 유하는「武歷 18년에서 20년 사이―무림일기1」 밑에 ‘차도살인지계’를 “남의 칼로 적을 침”이라고 언급해 놓았다. 그렇다면 이이남의 <신-금강전도>는 이이남 자신의 손이 아니라 ‘남의 손을 빌려 상대방을 치는 작품’이란 말인가? 남의 손을 빌린다? ‘남의 손 빌려쓰기’의 최초 사례는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될 것이다. ​ 하지만 뒤샹의 <샘>은 남의 손을 빌려 제작한 작품이지만 ‘적’을 치는 작품은 아니다. ‘적’을 치는 작품? 혹 그것인 기존 작품에 똥침을 놓는 작품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그것을 ‘패러디(parody)’로 부른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패러디는 미술작품에서부터 시나 문학, 그리고 음악이나 영화 또한 광고에 이르기까지 주로 명작을 모방(인용 혹은 차용)하여 그것을 풍자 또는 조롱하는 작품으로 이해하곤 한다. ​ -중략- ​ 이이남이 차용한 명화들은 대부분 자연을 그린 그림들이다. 왜일까? 왜 그는 자연을 그린 명화를 즐겨 차용한 것일까? ​ 그는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대학시절까지 집안의 농사일을 도왔다. 물론 그는 당시 “농삿일이 죽도록 싫었다”고 한다. 그는 “왜 시골에서 태어나서 이런 고생을 할까”를 입에 달고 살았단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의 “시골 경험이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 그는 특히 의제 허백련의 그림을 적잖이 차용했는데, 허백련 그림에 그려진 풍경이 이이남의 어린 시절 고향의 풍경이다. 따라서 그는 자연을 그린 그림들을 자연스럽게 즐겨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들이 온화하고 서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 혹자는 이이남의 작품들을 보고 ‘착하고’ ‘예쁘고’ ‘범생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비아냥에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는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는 대중에게 ‘아트’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무거움’을 ‘어깨’에 짊어지게 하기보다 오히려 웃음(가벼움)을 선사하는 ‘행복전도사’를 자처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가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닐까? ​ 그런 점에서 이이남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디지털 팝 아티스트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디지털 팝 아티스트인 이이남은 좀 더 대중에게 가깝게 접근하기 위해 새로운 ‘유통문화’를 만들고 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저렴한 가격으로 작품을 구입해서 벌 수 있는 유통구조 말이다. ​ 앙드레 말로는 “상상의 미술관이 자신의 변모를 계속 추구한다”고 진술했다. 백남준은 미술관을 방문했던 관객들이 TV 앞에 모여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차렸다. 그는 1984년 서울과 뉴욕, 파리, 베를린의 TV를 통해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을 방영했다. 그는 미래의 미술관을 대중매체로 보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백남준은 그것을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 제2의 백남준으로 불리는 이이남은 서두에서 중얼거렸듯이 스마트 TV뿐만 아니라 모바일과 아이패드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물론 당신은 이이남의 디지털-명화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여 소장할 수도 있다. 아이폰 어플에 있는 10작품은 단 1.99달러에 구입할 수 있고, 아이패드 어플에서는 12점의 작품을 3.99달러에 소장할 수 있다. 만약 아날로그 아트가 희소성을 지향했다면, 디지털 아트는 대중성 확보가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이미지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Gogh-The Starry Night, Arles 75 inch LED TV 2019)_17min 현대미술연구소 김옥렬 대표 Kim, Ok-real 빛의 재탄생, ‘세례 받는 TV’ ​ 이이남의 전시의 주제는 <빛이 되다 Becomes Light>이다. 이번 전시<빛이 되다> 중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빛의 재생 Reborn Light’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작가가 시도하고자 하는 ‘빛’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가 레일 위를 달리는 것에 비유한다. 그리고 그러한 불안을 해소하고 허상에 갇혀 방황하는 인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본다. ​ 그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의 사유방식은 ‘세례 받는 TV’로 인간의 은유 혹은 환유를 보여준다. 작가는 그것은 TV모니터가 물속으로 들어가 잠기는 것을 죽음으로 다시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을 부활로 설정하고 있다. ​ 작가의 이러한 시도에는 ‘TV는 인간을 닮았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 또한 작가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의 구분처럼, TV를 콘텐츠와 프레임의 관계로도 해석한다. 이처럼 작가는 그간에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자연과 도시, 진품성과 복제성 등 미디어 콘텐츠가 가진 기술로 시〮공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리고 이번 전시작은 날개짓을 하는 비둘기의 영상이 담긴 모니터를 물속으로 잠기게 하고, 다시 그것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설치물을 통해 ‘세례 받는 TV’를 탄생시켰다. ​ 그렇다면 세례 받기 전과 세례를 받고 난 TV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 ​ 이점은 애초의 의도를 떠나서 소통의 과정과 결과에서 다양한 시각의 차이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 ‘죽음을 넘어 빛’이 되는 TV에 대한 은유는 그 자신의 표현에서처럼, ‘인간의 나약함과 사회적 시스템에서 받게 되는 불안, 그러한 불안에 직면하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일 것이다. ​ 그것은 마치 견고한 시스템 속에서 억압을 뚫어내고자 하는 잠재된 욕망처럼, 무의식에 내재된 충동 역시 사회적 효용성을 떠나 규칙의 위반을 통해 희열을 추구한다. 이러한 추구는 라캉(J. Lacan)이 말한 일종의 과잉욕망이 죽음을 향한 욕망이듯 충동 역시 현실너머의 실재와 관련되고 있음이다. ​ ‘세례 받는 TV’는 금지된 욕망과 충동의 대리만족, 그것의 전략인 승화(sublimation)의 허구성으로 살아 있으나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새로운 탄생을 위해 물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맞이한다. ‘TV모니터’가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죽음으로 상징하는 이유다. 이를테면 부활에는 죽음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기의 힘에 전적으로 몸을 맡긴 TV는 죽음을 향해 담담하게 마주하며 하강한다. 이는 상흔(trauma)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용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 순간이야 말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고통과 직면하는 역설의 순간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 저항과 전복이 내제된 라캉의 ‘희열’(Jouissance)에는 결핍의 충족을 위해 전복을 시도하는 과잉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만족 보다는 고통을 수반한다는 과잉욕망은 충동에 사로잡혀 금기를 넘어선다. 그 너머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 죽음과의 대면을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해 주어진 체계 안에서 안주할 수 있는 대체물에 상상이 투영된다. ​ 이렇게 볼 때, 인간의 모습이 투영된 TV, 어쩌면 인간 그 자체인 TV는 오늘날 순종과 포기를 통해 소외와 박탈을 경험해야만 하는 상실감을 화려한 ‘빛’으로 삶을 담아내는 것이리라. 삶을 둘러싸고 있는 허상들, 그 속에서 우리는 그 어떤 선택을 하던지 간에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이동하는 과정, 그 과정이 왜곡과 변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이 기도 하다. ​ 이러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작가가 인식하고 있는 ‘빛’의 의미는 마치 거울 없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타인 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앞서 얘기한 ‘빛’의 의미란, 타인 속에서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나, 그것이 바로 ‘세례 받는 TV’에 투영된 생명의 빛일 것이다. 이렇게 ‘빛’의 부활은 죽음을 넘어야 비로소 빛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김옥렬 Kim, Ok-real

가슴뛰는 삶을 선물합니다! - 강범구 유레카 NLP 저자

가슴뛰는 삶을 선물합니다! 강범구 유레카NLP저자 ​ 슈팅스타교육 컨설팅 부대표 고려대 평생교육원 유머비즈니스학과 전임강사 연세대 미래교육원 유머스피치학과 전임강사 ​ ​ 문 혜 은 공공디자인 저널 큐레이터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독일의 문학자 한스 카롯사는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인도의 용수 보살은 중론에서 ‘이 세상 아무리 사소한 사물일지라도 인연으로 일어나고 인연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인생은 만남과 인연을 통해서 삶이 변화, 발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누구를 만난 후 인생이 바뀌었나요? 이달에 만나본 강범구 작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뛰는 삶을 선물하는 인생 최고의 인연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혜은. 작가님을 알게 되면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고 들었어요. ​ 강범구. 저를 만나면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 참 감사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를 만나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진정한 능력! 잠재의식을 만나게 되면서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저는 다만 자신의 잠재의식을 만나게 해주는 가이드 역할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2011년 NLP1)라는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잠재의식을 알게 되었고 학문과 함께 나 자신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 연구를 하면 할수록 놀라운 일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누구나 쉽고 빠르게 자신의 삶에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벌, 인맥, 돈 정말 강사로 발돋움하기에 아무것도 없었던 저의 삶에 건강, 인간관계, 돈 등 필요했던 것들이 삶으로 편안하게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 사람들은 방송을 통해 혹은 책을 통해 플라시보, 피그말리온 효과 등과 같은 이론을 접했고 적용 방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 대부분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강연을 하고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십니다. 아는데 잘 안돼요.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요? 안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상담을 통해 그리고 나의 삶을 통해 잠재의식은 선악을 판단하거나 가르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즉! 잠재의식은 우리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근심 걱정을 하고 있다면 잠재의식은 근심 걱정거리를 계속해서 늘려줄 것이고, 원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 역시도 잠재의식은 이룰 수 있는 방법이나 환경을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 한 가지 체험해 보실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이 방법은 실제 제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인데 지금 잠시 눈을 감고 주변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갑자기 컴퓨터 펜 돌아가는 소리, 사람 목소리, 시계 소리 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안 들리던 것이 들린 것일까요? 우리의 잠재의식이 필터링하던 것들이 들리는 것일까요? ​ 인지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보 필요한 정보라고 할지라도 우리들의 삶에 들어오지 못하거나 들어와도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잠재의식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활성화시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에 대한 정보들이 나를 찾아오게 하거나 내가 알아볼 수 있게 하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정말 행복하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은 진짜 나를 찾는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해봅니다. ​ 문혜은. 그러면 잠재의식에 대해 쉽게 설명을 부탁드리면... ​ 강범구. 잠재의식은 한마디로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능력입니다. 생각으로 이미지를 그리면 잠재의식은 그것들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합니다. ​ 2+2=? 5+5=? 15+15=? ​ 위의 산수 문제 답이 나왔나요? ​ 풀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무의식중에 4. 10. 30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우리의 잠재의식은 이미지가 들어오면 그 어떠한 문제라도 답을 찾아냅니다. ​ 저의 잠재의식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어 나누어 볼까 합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하던 상사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술자리에서 그 상사의 말장난에 속이 상했고 그 뒤로는 그 사람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때 NLP 스킬 중 하위 감각 양식이라는 것을 응용하여 적용했습니다. ​ 그 사람 얼굴에 상상으로 낙서를 하기 시작했죠. 머리는 양쪽 옆은 남겨두고 대머리로 하고 코밑에는 오서방 점을 크게 붙이고 머리카락처럼 긴 털을 그 점 가운데 자라게 하고 말할 때 앞니가 하나 없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계속 웃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람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고 마음이 이전같이 화가 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내가 내 생각의 주인으로 힘을 가지면 변화되는 저를 발견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뒤로 다시 사이를 회복하고 지금도 만나면 기분 좋은 선후배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떤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느냐에 따라 내 삶은 100%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빨간색 사과, 회색 코끼리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보라색 사과, 파란색 코끼리는요? 참 신기하게도 본적도 없는 보라색 사과와 파란색 코끼리가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 네! 내가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언어로 가능하다는 것 ​ 잠재의식은 사람의 언어에 반응하며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에 반응하여 내 삶에 반영합니다. ​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문혜은. 잠재의식을 바꾸는 게 제일 중요한 것처럼 느껴져요. 잠재의식을 변화시키는 테크닉이 있을까요? ​ 강범구. 하위감각양식과 리프레이밍 이 2가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 하위감각양식 사람 얼굴에 낙서를 해보고(시각), 듣고 싶은 소리를 재생해보고(청각), 느낌을 기억해보고(촉각), 향기를 느껴보고(후각), 맛을 상상해보는(미각) 것 불편한 상황을 그대로 삶에 받아들여 계속 끌어안고 있지 말고 내가 원하는 것으로 하나하나 변화시켜보는 것입니다. 5감을 모두 포함할 필요는 없습니다. ​ 상황마다 하나나 두 개 정도씩 인지 컨트롤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환경에 반응하는 내가 아닌 내가 나의 잠재의식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 리프레이밍 리프레이밍 말 그대로 프레임을 다시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화부터 내거나 좌절해버리기보다는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라고 이야기함으로서 원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식당을 하는 사장님이 있는데 매일 뜨내기손님들만 들어오고 혼자 오는 고객이 많다고 했습니다. 장사도 잘 안되는데 꼭 계란말이, 오도독뼈 등 반만 줄 수는 없느냐는 손님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 매번 돌려보내거나 하나를 통으로 팔고 포장해 드린다고 했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으셨던 사장님에게 하위 감각 양식을 통해 원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도록 도와드렸더니 뜨내기 손님 말고 단골이 많은 모습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손님들과 같이 한잔 할 수도 있고 그러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불편한(진상) 고객들이 오면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라고 이야기하며 원하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앵커링(일종의 최면)을 걸어 드렸습니다. 그렇게 한 3개월 즈음 지난 어느 날 연락을 통해 기분 좋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 계속 좋은 마음으로 일할 수 있어서 변화는 없지만 계속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던 중 반만 시키는 손님들이 많아 그냥 메뉴에 반만 팔 수 있다고 적어놓고 팔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팔기 시작하니 손님들이 부담 없이 혼자 와서 편하게 먹고 어느 날부터인가 말도 걸기 시작해서 단골처럼 자주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손님들과 같이 술도 한 잔씩 하면서 너무나 놀라운 삶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 문혜은. 어떠한 계기로 잠재의식을 연구하였나요? ​ 강범구. 저는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 운동선수 출신에 공부랑은 담을 너무 높게 쌓아놓고 살던 삶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CRPS(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라는 불치병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 너무 아파서 병원조차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온 힘을 다해 병원을 찾았고, 검사 결과는 운동선수 출신 혹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발생된다는 CRPS를 진단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수술할 보험도 돈도 없는 참담한 상황 그때 NLP를 배워놓았던 터라 적용을 시작했고 결과는 2주일 만에 호전이 되어 다시 병원을 찾으니 멀쩡하다는 것. ​ 참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부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아보고 나를 들여다보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꿈은 이루어져 갔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안되던 것들이 힘들이지 않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 그래서 나는 그날의 불치병 진단을 내린 의사분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 잘 살고 싶었던 나에게 잠재의식이 만들어준 환경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은 어려운 일? 불편한 일? 이 생기면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하면서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배울 것은 무엇인지 변화해야 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생각하면 또 원하는 것들이 나에게 오고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 문혜은. 이와 관련하여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 강범구. 조셉머피 잠재의식의 힘 ​ 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이 조셉머피입니다. ​ 목사님이셨던 조셉머피 선생님은 성경을 통해 잠재의식의 힘을 알아냈고 그것을 접목하여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사람입니다. NLP 1) 신경언어프로그래밍(Neuro-linguistic Programming)의 약자. 정보처리학자 리처드 밴들러와 언어학자 존 그린더가 창시한 NLP는 1970년대 말에 큰 호응을 얻었다. 밴들러와 그린더는 인간이 자신의 뇌에 언어로써 자신을 프로그램화한다고 주장했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실제 사례를 읽고 따라 해서 강사로서 큰 소득이 생겼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 졸다가 1만 5천 달러를 번 남자의 이야기로 수년 전에 내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레이 햄머스트롬 이라는 사람에 관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 것을 우송해 주었습니다. 햄머스트롬 씨는 피츠버그의 제철소에 일하는 압연공이었습니다. ​ 그 제철소는 최근에 새로 제련된 강봉을 냉각상에 보내는 것을 제어하는 기계를 설치했습니다. 설치자들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이 기계는 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기사들은 여러 날 동안 그것을 수리하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 햄머스트롬 씨는 이 문제를 심사숙고하다가 잘 작동할 수 있는 새 디자인을 고안해 내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 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누워서 잠깐 졸았습니다. 잠들기 전에 그 스위치 문제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낮잠을 자는 동안 그는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완전한 스위치를 디자인 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꿈속에서 본 디자인에 따라 새로운 스위치를 설계했습니다. ​ 백일몽을 꾼 덕분에 햄머스트롬은 1만 5천 달러의 수표를 받았는데, 이것은 그 회사가 여태까지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사원에게 지불한 최고액의 보상이었습니다. ​ 잠재의식의 힘에 대한 사례가 가득한 이 책에서 이런 글을 읽고 강사로서 어떻게 하면 더욱 의미 있고 소득도 올릴 수 있을까를 1주 정도 매일 저녁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 그때 졸음을 참아가며 메모를 하고 있었는데 졸고 일어나니 강사라는 글과 엔터테인먼트 글자가 선명하게 눈으로 보였고 국내 최초로 강사 엔터테인먼트를 개인사업으로 시작하여 2년간 저의 소득은 1억 7천만 원이었습니다. ​ 지금도 이 책을 들고 다니며 읽고 또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성경 마가복음 11장 24절 마가복음의 이 구절을 다시 읽으면서 시제의 구별에 주의하세요. 기도하고 구하는 believe 와 받은 receive 라는 동사는 현재 시제이지만 되리라 shall have는 미래 시제입니다. ​ 여기서 사도 마가는 이 문장의 문법상 사소한 시제의 차이로 대단히 중요한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소망이 이미 성취되고 충족되어 있으며, 벌써 실현되어 있다고 믿고 진심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 소망은 반드시 장래에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

찬란한 문명의 빛 - 이집트<Egypt>문명을 통해 본 공공디자인 - 3편 영생불멸의 꿈!

서경대학교 교수 정 희 정 디자인학 박사 파피루스에 그린 이집트의 역사 파피루스에 그린 이집트의 역사 죽은 뒤 또다시 죽지 않으려는 염원! 죽음을 정복하고자 애썼던 이집트인들! 고대 이집트인들의 모든 삶은 내세적인 종교에 깊게 뿌리 박혀있었습니다. 죽음을 전환점으로 다시 한번 영생을 누린다는 초 낙관적 견해는 사후의 삶 역시 지금 삶의 연장선이라는 영혼 불멸의 내세관을 보여줍니다. 파피루스에 그린 이집트의 역사 Canon EOS 5D Mark II F10 1/400s 기행문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낡고 비좁은 도시의 골목과 골목의 초입마다 궁핍한 좌판을 깔고 앉은 상인들 사이를 헤집고 마차는 덜컹거리며 움직였다. Canon EOS 5D Mark II F9 1/320s 파피루스에 새겨진 이집트 고대문자[HIEROGLYPHIC ALPHABET] 마부는 마치 스티븐 서머즈 감독의 영화 미이라의 주인공인 승정원 이모탭[Imhotep]을 꼭 빼닮았다. ​ 송글송글 맺혀 흐르는 땀방울과 텁텁한 땀 냄새가 카이로의 구시가지와 잘 어울렸다. ​ ​ 목적지에 도착될 무렵 마부의 등을 두드려 약간의 달러를 건냈다! ​ 그는 여러 차례 고개를 돌려 뭐라고 말을 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 흙먼지가 일어 히잡처럼 스카프로 얼굴을 둘둘 말고 선글라스를 착용했는데도 입안이 서걱거렸다. (좌)Canon EOS 5D Mark II F4 1/60s I (우)Canon EOS 5D Mark II F4 1/160s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 카이로의 시가지는 과거 이집트문명의 영광과 영화는 찾아볼 수 없고 낡은 도시는 관리되는 듯 관리되지 않은 듯 슬럼화된 거리를 늙은 말과 늙은 마부가 느릿느릿 길을 가로지른다! Canon EOS 5D Mark II F5.6 1/400s ​ 거리를 맨발로 내 달리는 아이들은 우리 일행들을 따라다니며 원 달러! 원 달러!를 외쳤다. ​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한동안 귀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 과거의 찬란하고 유구한 문화자원을 통한 관광자원의 수입에 의존하며 오랜 식민지 생활로 만연된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여 살아가길 기대해 본다. ​ 저자의 기행문중에서 -중략- * 그렇게 다녀온 이집트 기행 수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이집트는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라고 명명되며 유혈사태로까지 이어지는 반정부시위가 일어났다. ​ Canon EOS 5D Mark II F6.3 1/200s 이집트를 찾는 방문객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죽은 자들을 위해 세워진 유적들로 피라미드와 장례 의식용 사원들이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인들이 주로 영생을 얻기 위해 일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 죽음을 정복하고자 애썼던 이집트인들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웠고 깊은 무덤을 팠으며 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막고 살아있을 때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게 하려고 미이라를 만들고 일정한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 제5왕조와 제6왕조, 제1중간기에 세워진 피라미드 내부에 관이 놓였던 방에는 ‘피라미드 텍스트’ 라고 불리는 긴 주문이 새겨져 있는데 장례를 주도한 사제들이 집대성한 이 글은 가장 오래된 종교적 장례용 주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 글은 왕이 죽은 뒤 내세에 대한 개념을 구체적으로 전해 주고 있으며 왕은 죽은 뒤 주극성(主極星)들 중 하나와 일체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피라미드로 들어가는 입구는 북쪽을 향해 나있으며 왕은 하늘을 지나가는 여행길에 태양신 라(Ra)와 합류하게 되며 죽음의 신 오시리스(Osiris)와 동화된다고 합니다. ​ 기록에 의하면 사후의 주된 의식이었던 ‘입 벌리기’에 대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는데 망자가 입을 열어 다시 의식을 얻고 살아나기를 호소하며 기도문들을 암송하는 것이었습니다. ​ 무덤에 함께 부장하는 부적의 힘을 빌어 죽은 왕은 내세에서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기 위해 연꽃 매 메뚜기 등 스스로 원하는 모습을 취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마술적인 주문을 외움으로써 왕에게 적대적인 존재를 막아주거나 최후의 안식처인 무덤 또는 내세에서 왕을 공격할 수도 있는 뱀 전갈 악어들로부터 왕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합니다. Canon EOS 5D Mark II F8 1/320s 제1중간기에 오면 피라미드 텍스트의 일부는 왕족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용되는데 주문들에 곁들여 제물과 도구들을 그린 다채로운 색의 삽화가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 내세로 여행하는 동안 죽은 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식기 모형들도 마련되는데, 이것들은 내구력 있는 돌이나 나무로 조각되었습니다. ​ 죽은 이가 배고픔이나 목마름 때문에 또다시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하려고 했습니다. ​ 이집트는 건조하고 온난한 날씨로 간단하고 개방적인 의복을 즐겨 입었기 때문에 피부가 많이 노출되어 자연스럽게 몸에 걸치는 장신구가 정교하고 화려하게 발달했다고 합니다. 장신구는 그들의 종교 감정과 풍부한 보석 자원에 바탕을 두고 더욱 발달했습니다. ​ 투탕카멘의 유품에서 수많은 장신구가 발견되었으며 이들은 독수리 태양 풍뎅이 연꽃 파피루스 등을 조형화한 것입니다. 장신구에 사용된 금은 청동 마노 에메랄드 자수정 터키석 석류석 유리 등의 독특한 색채는 다른 시대나 국가에서는 보기 힘든 예술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장신구는 단순한 흰색 린넨(linen/아마(亞麻)의 실로 짠 얇은 직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옷에 색을 더 함으로써 이집트인의 삶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죽음을 둘러싼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장신구가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집트는 자국뿐만 아니라 남쪽 국경선 근처의 나라들(고대의 주요한 금산출지)까지 섭렵하여 왕의 미라를 장엄하게 꾸몄습니다. ​ 사자(死者)는 화려하게 치장되었고 생전의 모습처럼 의복을 갖추었으며 관(棺)에도 금을 입히거나 금선을 둘렀고, 가난한 자라 해도 간단한 목걸이 정도는 치장하여 매장했다고 하니 수 세기 동안 엄청난 양의 부장품이 무덤 속에 묻힌 것입니다. ​ 고대 이집트인들의 모든 삶은 내세적인 종교에 깊게 뿌리 박혀있었습니다. 죽음을 전환점으로 다시 한번 영생을 누린다는 초 낙관적 견해는 사후의 삶 역시 지금 삶의 연장선이라는 영혼 불멸 내세관을 보여줍니다. ​ 현세와 죽음 뒤의 세계가 분리되지 않는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사후를 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Canon EOS 5D Mark II F5 1/100s 이집트에서는 왕이 죽으면 ‘죽은 후 영생으로 가는 길’에 접어든다고 믿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강에 이르고 강의 건너편이 영생의 장소입니다. ​ ​ 사자의 서란 죽은 사람이 내세에서 위험을 극복하여 영생을 살도록 하기 위해 기도문과 마술적 주문을 적어 놓은 것으로 주로 두루마리로 말린 긴 파피루스에 화려한 삽화와 함께 적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죽은 사람의 무덤 안에 이 사자의 서를 넣어 둠으로써 죽은 자는 지하세계에서 닥치게 될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되며 신의 보호를 받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 장례 의식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 자신이 큰 소리로 암송해야 하는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1842년 독일의 이집트학자 리하르트 랩시우스[Richard Lepsius]에 의해 처음으로 [사자의 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고대 이집트의 예술품에 그려진 여자들은 종종 남편보다 아주 작게 표현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열등했다는 의미는 아니며 실제로 고대 이집트 여성은 왕족이든 평민이든 독자적인 재산을 소유하고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누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집트 여인은 계층을 막론하고 모두 다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하였는데 서민들은 유리 계통의 반짝거리는 재료로 만들어진 장신구를 사용했고 부유층에서는 금과 은 색깔이 아름다운 돌들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Canon EOS 5D Mark II F5 1/160s ​ 군청색의 라피스 라줄리, 파란 터키석, 붉은 카넬리안, 보라색 자수정 등이 주로 사용되어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이루었는데, 이들 준보석들은 주로 멀리 누비아, 시리아, 소아시아 등지에서 수입되었는데 보석은 순순히 장식의 목적뿐 아니라 상징물로도 많이 사용되어 남자들도 일상에서 착용하였으며 계급의 징표이며 군사적 업적의 과시물이 되기도 하고 주술적 힘이 담긴 수호물로서 착용하기도 했습니다. ​ 이런 보석들은 죽은 뒤에 그대로 미이라와 함께 부장되어 죽은 사람이 내세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장례 때에는 사후의 세계에서 편안하기를 비는 장례용 보석을 만들어 함께 부장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 죽은 뒤 또다시 죽지 않으려는 염원과 죽음을 정복하고자 애썼던 이집트인들의 영생불멸의 꿈을 살필 수 있습니다.

김해 서부문화센터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회사명 ㈜다울건축사사무소 대표: 신동재 ​ 설계개요 ​대지위치: 경상남도 김해시 율하동 1377 (김해율하지구 택지개발지구내) 대지면적: 12,228.70㎡ 건축면적: 6,536.41㎡ 연면적: 18,382.69㎡ 건폐율: 53.45% 용적률: 75.05% 규모: 지하 1층/지상 4층 구조: 철골철근콘크리트구조(SRC) 외부마감: 로티타늄아연판, 펀칭메탈, 노출 콘크리트, 테라코타, 화강석, 투명로이반강 화복층유리투명로이복층유리, 알루미늄루버 발주처: 김해시 주차대수: 총 200대(장애인 주차8대 포함) ​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김해 서부문화센터는 대지 특성을 고려하여, 주변으로부터 수평으로 모여드는 도시적 힘을 다양한 입구와 이를 둘러싸는 매스로 열어주어 중심으로 모은 다음, 마치 상승하는 회오리와 같이 하늘로 전개시키는 강력한 입체적 구성을 구현하였다.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서측의 진입광장과 남측의 진입구에서 유입되어 치유의 숲으로 상징되는 중앙부를 거쳐 동북측의 주거지역으로 통과되는 내부의 길이 보행자의 주요 동선으로, 이 중심동선에서 공연장, 생활체육시설, 도서관, 주차장 등 분리된 각 시설의 출입구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 또한, 평면적 이동으로 그치지 않고, 전면광장에서 2층 필로티 휴게 데크와 3층의 탁 트인 동측 전망을 가지는 옥외카페를 거쳐, 4층 상부의 옥상정원까지 나선형으로 연속적으로 상승하는 여정으로서의 길을 형성한다. ​ 이러한 동선은 건축구성의 뼈대가 되고, 비교적 좁은 대지의 가용 면적을 입체적으로 확장시켜 넓은 외부공간을 가지게 해 줄 뿐 아니라, 전통처마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지붕 하부로 게이트를 형성하여 지역의 랜드마크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한다. ​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가야토기의 고배(술잔)를 모티브로 한 공연장 객석의 Mass는 남측 주도로에서 멀리하여 소음으로부터 보호받게 하였고. 로비로부터 구조적으로 분리함과 동시에, 하부 급기 공조로 원천적으로 소음,진동을 방지하였다. 다목적 홀의 내부는 곡선으로 변형된 목재면의 따뜻한 물성으로 형성되어, 마치 구형의 알(자궁)의 내부처럼 아늑하면서도 충분한 확산, 반사음을 가지도록 면밀한 건축 음향계획이 구현되었고, 관객이 무대로 최대한 접근하여 강력한 친밀감(Intimacy)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 현대 도시에 있어 시민 문화의 성전으로 불리는 공연장과 도서관, 수영장 등 그 복합시설을 김해 문화의 전당(2004) 이후로 다시금 맡아 설계, 완공한 서부문화센터가 지역의 명소로 자리 잡아,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친밀한 공간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배치개념] ​ SPIRAL ROOF : 나선형으로 오르는 내부의 길 ​ 서측 도시에서의 시민들의 접근은 전면광장에서 2층의 휴게데크와 3층의 옥상 휴게공간을 거쳐 지붕까지 오르며, 이러한 동선 구도는 건축구성의 뼈대가 되고 입체적으로 확장되는 넓은 외부공간을 가지도록 해준다.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매스분해도]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단면도]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입면도]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배치도]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평면도]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이미지 (주)다울건축사사무소

유행병이 번질 때 관(官)이 할 일

지금 세계는 대재앙을 맞았습니다. ‘코로나19’라는 신종 유행병이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갑니다.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 대한 걱정도 해야 하지만, 우선 우리나라의 전염병이 더 큰 문제입니다. 환자는 급증하는데, 치료할 시설이나 장비가 부족해, 더욱 크게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정권의 반대 입장에 있는 정파들은 모든 것이 정부의 잘못이라고 몰아붙이면서, 해결책의 제시나 협조는 커녕 오로지 정부의 잘못으로 몰아붙여 정치적 반사이익이나 얻으려는 흑심은 더욱 국민들을 분노하게 해줍니다. 너무나 무섭게 번지고, 또 그 전염 속도나 전염된 숫자가 급증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갑자기 당하는 일이어서, 여기저기에 허점도 드러나고 빈틈에서 잘못이 새어 나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성을 다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해 볼 분야가 많습니다. 200년 전 다산은 그런 무서운 전염병이 크게 유행할 때, 정부나 지방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세심한 내용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특히『목민심서』의「애상(哀喪)」조항,「관질(寬疾)」조항에도 나오지만「진황(賑荒)」편의 「설시(設施)」조항에는 분명하게 말한 내용이 많습니다. "기근(飢饉)이 든 해에는 반드시 전염병이 번지게 되어 있으니, 그 구제하고 치료하는 방법과 거두어 매장하는 일은 마땅히 더욱 마음을 다해야 한다." 라고 전제하여 목민관이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산의 시대와 오늘의 시대는 다릅니다. 기근이 있는 해에만 유행병이 오는 것도 아니고 그때는 의료시설이나 병원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요즘으로 보면 최악의 의료제도와 의약기술의 열악한 상태에서의 조치였습니다. 관에서는 약을 공급하는 일부터 하라고 했습니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의 숫자를 파악하고 명부를 작성해야 하며, 사망자가 나오면 빠짐없이 그 숫자를 파악해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온 집안이 몰사하여 시체를 처리할 사람이 없을 경우는 관에서 직접 처리할 방법을 강구해 주고, 그 마을의 유족한 집안에서 돈을 주고 인부를 사서라도 유감없이 처리하기를 권장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위급한 때에는 목민관이 직접 현장에 나가 순행하면서 물색(物色)을 살피고 사정을 물어서, 혹 몸소 환자의 집에 들러 환자를 위로해 주고, 상가(喪家)에 들려서는 장례 문제를 함께 직접 논의하기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어려운 때일수록 목민관이 자주 민간에 나가서 어진 정사를 힘써 행하면 그 애감(哀感)과 열복(悅服)이 어떠하겠느냐면서, 하루의 수고가 만세의 영광이 될 터이니 그런 일을 달갑게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우매한 사람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찾고, 국무총리가 상주하면서 진두지휘하는 조치는 다산의 뜻과 부합되는 일로 여겨집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심은 대동소이합니다. 환자 숫자나 사망자 숫자는 정확히 파악하여 상부로 보고하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일인데, 그 당시에도 상부의 문책이 두렵고 여론이 두려워 가능한 숫자를 줄이고 숨기려는 작태가 있었다면서 그런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정성을 들이면 어떤 일도 어렵지 않습니다. 방역 체제를 물샐틈없이 마련해 정성을 다하면, 현대의 의학 수준은 못 잡을 전염병이 없습니다. 너무 두려워하거나 공포에만 떨지 말고 전문가들의 말을 잘 듣고 사심 없이 공심으로 대처하다 보면 반드시 전염병은 잡아집니다. 정략적인 주장만 늘어놓거나 방역에 방해되는 말은 삼가고, 국민 모두가 성의껏 대처하면 종식은 되고 맙니다. 다산의 가르침 잊지 말고 정성을 다하는 목민관들이 많이 나오기만 바랄 뿐입니다.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 3편 중세의 도시디자인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3편-중세의 도시디자인 ​ 조 용 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 前)광주광역시도시공사 사장 前)한국주거학회장 前)한국도시설계학회 부회장 前)중앙도시계획위원 사진 루브르 궁전 앞 광장 피라밋지하공간 오스만 시장의 파리 개조 ​ 파리 발전은 세느강에 있는 시테섬에서 시작됐다. 고대 파리는 북쪽의 로마에서 뻗어온 도로(리 드보리)가 시테섬을 지나 강 건너편 남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시테섬은 도심 역할과 함께 남북방향의 대가로(大街路) 발전을 견인했는데, 당시 동서 방향의 대로는 루브르궁까지 밖에 미치지 못했다. 사진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궁전의 힘 ​ 오늘날 파리 발전의 중심점은 루브르궁으로 이 역사는 중세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정방형의 평면을 갖고 있던 루브르궁은 루이 14세 때 약 4배로 확장됐다. 이때 중요시한 것은 동쪽의 파사드 디자인이었다. 파사드는 단순히 루브르궁전의 동쪽을 대표하는 것 이외에도 서쪽으로 추이루리를 지나는 도시 축 의미도 있었다. ​ 18세기가 되면서 루브르궁전 서쪽의 바로 앞에 튈레리 정원과 콩코드 광장이 입지해 도시 축의 시작점이 됐다. 루브르궁전을 중심으로 동쪽 축(대가로) 주변에는 루이13세 광장(보쥬광장) 시청사 바스티유광장이 서쪽 축 주변에는 반돔 광장 빅토와르 광장(루브르 북쪽) 등이 입지했다. ​ 도시발전이 남북방향에서 루브르궁을 거점으로 동서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루브르궁전의 힘은 서쪽 축에 있는 에드와르 개선문을 거쳐서 라데팡스의 그랜드 알슈(신 개선문)에까지 미쳤다. 일찍이 건축의 밀어내는 힘이 도시 개조에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 오스만 시장의 공헌 ​ 파리의 본격적 개조는 귀양지인 런던에서 런던식 도시디자인에 강한 영향을 받은 나폴레옹 3세가 정권을 잡은 후 오스만에게 파리시장을 맡기면서 시작됐다. 오스만은 루브르궁전을 중심으로 동쪽은 니시옹 광장까지 서쪽은 에드와르 광장(개선문)까지를 연결하는 큰 도시 축을 만들어 시각적 조망을 확보했다. ​ 그는 폭이 매우 넓고 일직선인 대가로를 만드는 사업 외에도 ​ 대가로변 건물의 통일된 파사드 형성 시테섬에 관공서 재판소 병원 등 공공시설의 입지 서쪽 브로뉴 숲과 동쪽 반센트 숲 정비 북쪽 뷰트 쇼몽공원과 남쪽 몬스리 공원 확보 조명 수도 하수도 등 도시기반 시설 설치 등을 이뤘다. ​ 이 과정에서 대가로 변에 인접해 있던 3/7 정도의 건물이 파괴됐다. 필자도 지하 하수도를 견학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 이러한 규모의 지하 하수도를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본 건축가 구마겐고는 오스만의 파리 개조에서 강조돼야 할 점은 피규어(건물)가 위치하는 장소의 교묘함이라고 했다. ​ 볼버드(boulevard)라 불리는 대가로의 네트워크를 파리에 순환시키고 피규어가 되어야 할 건물(예를 들면 구 오페라 하우스)을 대가로의 결절점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결절점은 당연히 시각상의 초점이 됐고 피규어는 가로를 걷는 사람들에게 점차 강한 시각적 인상을 부여했다고 했다. ​ 오스만이 피규어와 그라운드(땅, 지형)라는 구조와 도로의 퍼스펙트에 의해서 형성되는 도시의 시각적 구조를 링크시켰다는 것이다. 오스만 시장의 최대 업적 중 하나는 쾌적한 보행자 공간 조성이다. ​ 오스만 시대를 연구하던 발터 벤야민은 파리를 거니는 사람들을 ‘보행자’라고 불렀다. 걷는 장소에 대해서도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것 만으로도 그 장소는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 미테랑 대통령의 공헌 ​ 프랑스 혁명 200년을 기념해 미테랑 대통령은 1989년 오르세미술관, 라빌 레트 과학 공원센터, 그랜드 알슈 등 9개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입안해 실행했다. 9개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큰 화제를 불러온 것이 라데팡스의 그랜드 알슈 국제현상 공모였다. 현상 공모 결과 2개 안을 선정, 미테랑 대통령에게 위임해 그랜드 알슈가 선택됐다. ​ 이처럼 파리는 루브르궁전이 밀어내는 강력한 힘을 통해 콩코드 광장- 에드와르 개선문 - 라데팡스가 성립되었는데, 그랜드 알슈의 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일직선 대가로와 함께 에드와르 개선문과 루브르궁전이 한눈에 보인다. ​ 필라델피아의 도시 골격을 만든 에드먼트 베이컨은 이를 ‘확장성장’이라고 말하면서 라데팡스 개발은 상업적 개발의 맹공을 받고 있는 역사 도시에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 구마겐고는 19세기 파리의 도시 프로듀서가 오스만과 나폴레옹 3세였다면, 20세기 프로듀서는 미테랑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 로마 개조나 파리 개조는 도시디자인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의 비전과 실행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 지역적 그라운드와 피규어의 일체적 도시디자인 ​ 중세도시 가운데는 도시 디자인적 공헌 사례가 많은데 기본은 지역적 그라운드와 건축의 일체적 관계의 실현이었다. ​ 지역적 그라운드란 작은 지형은 물론 마을 가로공간 등의 인공적 질서를 의미한다. 시골 지역 휴양도시인 바드를 도시 디자인했던 건축가 존 내쉬의 공헌이 반영된 런던 중심지 리젠트 거리가 대표적인 예다. 리젠트 공원과 세인트 제임스 공원 사이를 연결한 이 거리는 거리와 건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도시디자인, 굴곡진 가로와 조화를 이루는 건물의 배치와 형태, 그리고 시각이 변화되는 굴곡점에 있는 작은 랜드마크적 건물 형태 등은 그의 의도가 반영된 곳이다. ​ 에드먼드 베이컨은 이에 대해 비교적 완만하게 구부러진 이 거리는 광범위한 디자인구조와 세부적인 건물이 분리되지 않고 일체화되었으며, 건물들 스스로가 근원적인 디자인 개념을 전진시키고 유효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서 리젠트가의 굴곡을 허용하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 건축가 크리스토 렌이 테임즈강과 작은 규모의 여왕 주택 사이에 왕립해군 대학을 디자인하면서 여왕 주택이 테임즈강의 시각적 기운을 그대로 느끼게 한 것도 마찬가지다. 또 2개의 광장을 교묘하게 연결한 토티의 광장, 베니스의 산마르코 광장, 피렌치의 시노리아 광장도 그러하다. ​ 그 밖에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직선으로 보이는 포토맥강 변의 링컨기념관과 백악관에서 직선으로 보이는 포토맥강 변의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의 시각적 전개와 함께 두 가지 시선이 교차되는 지점에 설치된 166미터의 워싱턴 기념탑은 베니스와 플로렌스가 연상되는 잘 의도된 도시디자인이다. 이미지 파리의 도시디자인구조 도시적 그라운드와 피규어의 위계적 배치 ​ 중세도시에서의 도시디자인 공헌은 가로나 광장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의 도시적 그라운드에서도 볼 수 있다. ​ 프라하는 볼타강 건너편 높은 지역에 슈테른 베르크 궁전과 몇 개의 성당이 입지해 있고 낮은 지역인 구시가지에는 바츨라프 광장 공화국 광장과 성당들이 자리해 거점 기능을 하고 있다. ​ 부다페스트 역시 도나우강 건너편 언덕에 부다 왕궁이, 강변 낮은 지역에는 성 이슈투반 성당과 에리제 베트 광장, 바찌거리 등이 입지해있다. 비엔나는 도시 중심에 왕궁이 있고, 주변에는 주요 거리와 광장과 공공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이처럼 궁전(영주)이나 성당 등은 모든 지역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나 도시 중앙 등 도시적 그라운드에 입지했고, 그 앞에는 공적 활동이 일어나는 광장과 주요 가로(街路)가 이어져 있었다. ​ 궁전은 위엄을 보일 수 있는 규모와 높이를 갖고 있었고, 성당은 하늘을 향한 뾰족탑 형태로 입지했다. 일반 시민들의 주택은 계급을 표현하는 복장과 같이 동일한 높이와 형태, 색채 등을 하였다. ​ 건축과 도시공간은 일체적이고 시각적인 효과를 만드는 도시공간과 직선 가로 광장은 아름다운 도시의 레이아웃으로 평가받았다. ​ 에드먼드 베이컨의 말처럼 중세도시는 건축 형태는 도시 디자인 구조 속에서 나와야지 다스려서는 안되며, 형태는 창의적 흐름을 방해하거나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중세도시의 비판 ​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일어났던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산업적·기능적 합리성을 위한 분업화가 도시에 적용되면서 도시는 효율성을 절대가치로 하는 기능적 기계적 역할을 요구했다. ​ 특히 1933년 아테네에서 개최된 C.I.A.M 제4차 회의에서 도시의 무질서한 팽창과 환경 악화를 제어하고, 양질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역사 도시와는 다른 기능적 도시관이 필요하다는 선언 이후에 건축과 도시가 일체적으로 결합하는 도시상과 양식적 전개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도시사조는 급격히 붕괴되고 산업적·기능적 합리성을 목표로한 기능주의 사조가 신속하게 세계의 도시들을 지배했다. ​ 당시 도시는 농촌인구의 대량 유입과 함께 공장의 연기나 배수, 주택의 오수가 환경을 크게 악화시켰다. 열악한 환경에 의한 전염병으로 많은 사망자가 생겨나면서 기능주의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 전통 건축이나 지역성, 도시 패턴은 근대의 산업적·기능적 합리성을 저해하기 때문에 새로운 건축이나 도시 사조로 대체해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양식주의 도시는 산업적·기능적 합리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비판을 받았다. ​ 이런 상황 속에서 영국의 에베네저 하워드의 전원 도시계획과 르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이론이 발표되면서 근대 도시 사조는 세계 각국의 뉴타운에 모범답안처럼 장착돼갔다. ​ 특히 빛나는 도시이론은 건축법과 도시계획법에 많이 스며들었다. 이는 건축과 도시공간이 결합하는 일체성 도시의 붕괴와 함께 건축과 도시공간이 분리된 개별성 도시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

특별인터뷰 - 고인석 서울기술연구원장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특별인터뷰 고인석 서울기술연구원장 ​ 대담 정희정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서울의 제반 도시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여 정책대안과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아울러 정부출연기관에서 개발한 원천기술과 민간기업이 개발한 기술의 상용화와 사업화를 위한 플랫폼인 서울기술연구원. ​ 신기술의 도입으로 편리하고 안전한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서울기술연구원의 고 원장을 만나본다. 코로나 감염증의 예방 차원으로 마스크를 착용한 채 고 원장을 만났다. ​ 토목전공으로 31년째 서울시에서 주로 도로 관련 업무에 임했다고 한다. 우면산 산사태를 복원하기도 했던 고 원장은 서울시 도시 고속도로에 ITS[교통정보 시스템]를 처음 도입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 2009년 1월 1일 도로 기획관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던 중 이듬해인 2010년 1월 4일 서울 시내에 28.5cm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던 11년 전의 일을 회상하는 그에게서 당시의 비상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 고 원장은 제설 차량에 GPS를 탑재하여 작업 준비 중인 차량, 대기 중인 차량, 상차와 작업 중인 차량의 현황을 색상 등의 위계를 구축하여 쉽고 빠르게 서울 시내의 전체 작업 차량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동 차량에 마우스를 갖다 대면 작업 현황 및 운전자의 소속과 인적사항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제설상황실의 전자 지도를 구축하기도 했다. ​ 전체 연구원 100여 명 중 15%의 지원인력과 토목·건축·에너지·IT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석·박사로 구성된 연구 인력을 통해 서울시 정책에 직접 반영될 수 있는 실용적이고 목적 지향적 연구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 우수한 아이디어와 원천적인 기술 그리고 대학의 우수한 학자들의 지혜가 융합되는 산학 클러스터의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구원이 되고 싶다는 그는 도시기반시설을 아우르는 스마트시티와 최근에는 코로나-19 마스크 대란을 위한 크라우드소싱 기술공모를 통해 마스크 기능을 대체할 신개념의 마스크 또는 기술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인터뷰를 마칠 무렵 자리를 옮겨 완성단계에 이른 ‘열 수송관 손상 감지기술’모형 앞에서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기술과 기능을 설명하던 고 원장의 모습에서 든든함이 느껴졌다.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정희정. 초대 원장으로서 연구원 설립 2년 차를 향해 가는 소회를 말씀해 달라. ​ 고인석. 초대 원장으로 2018년 10월 10일 부임한지 햇수로 벌써 3년 차를 맞이했다. 부임하는 날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혁신보고회 참석을 시작으로 연구원 기반조성과 국내외 연구기관들과의 열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 4차 산업 시대에서의 도시 문제들은 IoT,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 의해 스마트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시정 전반에 걸쳐서 단편적 이기보다는 융복합적 사고로 부분보다는 전체적인 시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시정의 효율도 높이고 예산도 절감할 수 있다. ​ 이러한 도시를 ‘스마트도시’라 할 수 있겠고 이를 위해 서울기술연구원이 설립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빠른 기간 안에 조직과 인력 등 연구기반조성을 위해 노력해왔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정희정. 서울기술연구원의 역할은 무엇인가? ​ 고인석. 크게 두 가지 역할이 있다. 하나는 서울의 제반 도시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여 정책대안과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부 출연기관에서 개발한 원천기술과 민간기업이 개발한 기술의 상용화와 사업화를 위한 플랫폼으로서 기술의 현장 실증을 지원하고 컨설팅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 이를 위해 연구원의 연구 기반 조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간 우수 연구인력 확충과 국내외 우수 연구기관, 대학과의 교류 및 연구 체계 구축에 많은 노력을 했다. “골방에서 홀로 연구하는 연구 시대는 갔다. 개방과 협력적 연구만이 혁신을 이루어 낼 수 있다.”라는 흐름에 따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국내연구기관 및 해외대학 등과 공동연구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고 국가 R&D 과제에도 여러대학, 연구기관과 함께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 개발된 기술의 상용화와 사업화는 경제발전과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오랜 기간동안 연구 개발된 기술이 상용화와 사업화를 통해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는 것으로 이를 통해 도시의 제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작년 6월부터 365일 24시간 시민들이 기술과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온라인 신기술접수소(www.seoul-tech.com)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 지금까지 신기술접수소 접속자 수는 45,100여 명에 이르고, 제안된 기술과 아이디어는 273건이다. 설치 첫 해인 작년에는 27건의 우수한 기술을 선정해서 테스트 베드를 제공하고 실증 지원을 위한 100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한 바 있는데, 금년에는 그 규모를 120억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기술이 필요한 기업과 기술을 보유한 대학을 연결하는 수요기반의 R&D 지원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 정희정. 작년 성과와 금년도 중점 계획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 고인석. 2018년 설립 이후 작년까지 2개년에 걸쳐 18, 19년 2개년 65건의 연구 과제가 동시에 수행됐다. ​ 연구원 설립 초기 연구 인력이 충원되는 과정에서 조직과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등 애로가 많았음에도 모든 연구원들이 연구에 최선을 다해 주어 원장으로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 금년도에는 노후인프라의 효과적 유지관리, 드론 응용기술, 미세먼지 저감기술, 폐기물 재활용 기술, 지진 안전 등 안전방재기술, 에너지 절감기술 등 61건의 연구 과제가 수행될 계획이고 5~6건의 국가 R&D 과제도 수행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 금년도에도 도시 인프라, 안전방재, 생활환경, 폐기물 재활용, 기후환경, 스마트시티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된 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과제는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권 데이터 사이언스 체계를 구축하는 것과 <서울미래보고서 2030>을 발간하는 것이다. 대도시권 데이터 사이언스 체계는 공적 영역을 포함, 민간 영역까지 필요한 맞춤형 분석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으로 우리 연구원의 빅데이터 기반의 지능화된 연구인프라 구축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연구이다. 또한, 미래 사회와 관련하여 많은 보고서들이 이미 발간된 바 있지만, 서울이라는 도시와 관련된 현장 중심의 미래 보고서는 아직까지 발간되지 않았다. <서울미래보고서 2030>은 서울시의 각종 정책과 시책 사업들에 적용되고 있는 기술들의 실태를 분석할 것이다. ​ 미래 기술들이 도입, 적용될 경우 변화된 서울의 미래에 대한 연구가 금년에 우선적으로 수행될 것이며 그 결과 서 울시의 도시 인프라 관리, 안전방재, 교통, 주택, 환경 등 각 분야에 대한 정책 방향과 목표설정에도 도움이 되고 필 요한 기술연구의 로드맵도 체계적으로 제시될 것이다. ​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도서 형태로 2021년에 발간 예정이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정희정. 신기술접수를 통해 국제적인 기술공모도 활발히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금년도의 계획은? ​ 고인석. 사회적 난제를 해결해 가는데 참여 주체인 시민의 집단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러한 기술공모는 미국 등 기술 선진국에서 많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작년에 지하철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글로벌 챌린지 과제 제안을 신기술접수소를 통해 접수받은 바 있고, 한강 교량에서의 자살자 예방 기술, 터널 등 지하도로에서의 GPS 인식기술 등에 대해서 기술공모를 시행하여 우수기술을 선정하고 실증사업을 검토 중에 있다. ​ 또한, 코로나-19의 전 지구적인 전염확산과 관련한 마스크 공급부족의 원인으로 MB(Melt Blown)필터 공급 부족이 문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단기간에 대량공급이 가능한 MB대체 필터 기술과 신개념의 마스크 기술공모를 각 4월 8일, 5월 8일까지 제안서 접수를 받는 등 일정에 차이를 두고 진행 중에 있다. ​ 정희정. 마지막으로 연구원이 나아갈 방향과 바람이 있다면 ​ 고인석. 무엇보다도 우수한 연구인력의 확보와 연구환경을 갖추어 가는 것이다. ​ 금년에 100명 규모의 연구원이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분야의 연구인력과 연구지원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 초기에 적은 인력으로 연구원의 기반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노고가 매우 컸다. ​ 그렇지만 열정만으로는 우수한 연구원이 될 수 없고 기술연구원으로서 실험장비와 실험시설이 필요하다. 대규모 시설은 기존 연구기관 간 공유와 협력으로 해결될 수 있겠지만 필수 불가결한 시설은 조기에 확충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적, 물적 자원 외에도 협업과 협력의 칸막이 없는 ‘하나의 조직’문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 ​ 또한, 개방의 혁신문화를 만들어 가겠다. 국내 대학 및 연구기관뿐만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 확보 차원에서 해외대학과 연구기관들과의 협력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더불어 해외 우수 과학기술자의 초청과 국내외 외국인 박사 후 연구원 채용기반도 만들어 글로벌한 연구원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

Korea, wonderland? 참 이상한 나라?

Korea, wonderland? 참 이상한 나라?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흔들림 없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COVID-19]를 상대로 맞서고 있는 우리는 모두가 영웅입니다! “불가능이 없는 나라” 대한민국 함께 극복합시다! 코로나 감염증을 극복해 가는 한국인들의 여정을 소개한, “참 이상한 나라”[Korea, wonderland?]가 유튜브에서 감동의 물결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지구촌에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빛 바랜 천으로 만든 마스크 An 83-year-old woman hand-stitched masks made of faded fabrics in the hope of helping those who can’t get masks. 마스크를 못 사는 국민들에게 보탬이 될까 하는 생각으로 An 83-year-old woman hand-stitched masks made of faded fabrics in the hope of helping those who can’t get masks. 한 땀 한 땀 손수 바느질했다는 83세 할머니는 An 83-year-old woman hand-stitched masks made of faded fabrics in the hope of helping those who can’t get masks. 그렇게 만든 20여 개의 마스크를 수줍게 전달하고 사라졌습니다. The woman left more than 20 masks and vanished. 이 이상한 나라 사람들 살아가는 방식이 늘 이렇습니다. This is the way people of Korea are. 어느 날 몹쓸 바이러스가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가 When a virus was spreading from person to person around the world.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게 된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죠. And people were shunning each other in fear of infection, the people of Korea came together. 어려울 때면 공동체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던 They rolled up their sleeves and helped their community in need. 이 나라 사람들은 The people of Korea 이번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They came together again. 시키지 않아도 기부금을 내고 Donations flooded in from all across the country.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자 전국의 의사와 간호사가 몰려들었습니다. Voluntary doctors and nurses flocked to virus-affected areas. 누군가는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했고 Volunteers made and delivered free lunch boxes. 또 누군가는 이들의 임대료를 깎아줬습니다. Landlords lowered rent for struggling business. 따지고 보면 이 나라의 이상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997> The unity of the Korean people has always emerged in times of need. 외환위기로 휘청거리던 시절에는 온 국민이 나랏빚을 갚겠다고 During the Asian financial crisis, all citizens participated in a nationwide gold collection to pay off the debt to the IMF. 집안 깊숙이 숨겨뒀던 금붙이를 죄다 들고 나오기도 했고요. They donated their cherished jewelry and any items made of gold. ​ 2007 태안 기름유출 사고 <2007> Taean Oil Spill 유조선 사고로 바다가 온통 기름에 뒤덮였을 때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천 조각을 가지고 나와 When an oil spill from a tanker blackened a wide stretch of coastline, they came together to do things that others thought were impossible.​ 모든 기름을 닦아낸 말도 안 되는 일을 했던 이상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People of all ages showed up with cloths and cleaned up oil-covered beaches.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20> When the virus hit the nation, the Korean people came together again. 많은 나라가 굳이 감염자를 밝히지 않으려고 할 때도 When other countries refused to reveal their own virus outbreaks, 이 이상한 나라는 묵묵히 검사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Korea got widespread testing up and running. ​ 감염자 수가 늘어가며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지만 When fear gripped the nation with the number of cases soaring,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Korea continued the fight against the virus. 그들은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모든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They provided information transparently and laid out measures to combat the spread of the virus. 사람들은 이상한 나라를 다시 보게 되었고 The world started to see Korea differently. 이상한 나라를 배우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The world saw it as a role model to follow in the fight against the virus. 이상한 나라가 했던 일은 결국 피하지 않고 앞장서서 The world realized that the people of Korea bravely confronted the virus and led the fight against it. 용감하게 바이러스와 싸운 것이라는 걸, 이들이 보인 투명한 시스템과 리더십은 위기에 맞서는 민주사회의 핵심이라는걸 알게 됐기 때문이죠. The world realized that Korea showed a good example of how democracies can face a crisis with transparency and leadership. 오늘도 이상한 나라는 흔들림 없이 바이러스를 상대로 맞서고 있습니다. Even today, Korea is steadfastly fighting the virus. 혹시 여러분이 바이러스와 싸우는 이들을 마주치게 된다면 If you happen to meet any Koreans who are fighting the virus, “함께 극복”이라고 외쳐주세요. Please say them, “Let’s overcome this together!” 이상한 나라는 힘들었지만 의미 있었던 싸움을 웃으며 여러분께 전할 겁니다. Then they will say that what they’ve gone through was really tough, but it was a good lesson for the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