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이미지
SNS 이미지
SNS 이미지
SNS 이미지
SNS 이미지
SNS 이미지
배너 이미지
배너 이미지
배너 이미지
배너 이미지
For beautiful and classy life.

시계바늘 거꾸로... 역발상의 스토리가 담긴 명소 춘천 육림고개

시계바늘 거꾸로… 역발상의 스토리가 담긴 명소 춘천 육림고개​ ​ 허름한 70~80년대풍 건물과 간판, 첨단의 젊음과 아이디어의 조화 수많은 관광객들 운집, 각자의 취향에 맞는 타임머신 즐겨 ​ 기획취재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춘천 육림고개는 낡음과 새로움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 낡음 속에서 ‘낡게된 의미’를 발굴해낸 부조화스런 조화로 채색된 곳이다. ​ 후미진 고갯길이 도심의 핫플레이스로 거듭난 도시재생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만한 지점이다. ​ 2020년 새해 벽두, 오래된 골목의 부활이라고 할 이곳의 겨울은 봄나들이처럼 계절답지 않은 흥겨움으로 가득하다. ​ 육림고개는 춘천의 번화가 명동에서 멀지 않은 언덕빼기 동네다. 약 300여 미터의 오르막과 내리막 비탈길이 이어지며, 양쪽으로 허름한 70~80년대풍의 가게들이 오순도순 늘어서있다. ​ 주름진 얼굴의 짙은 화장이 그렇듯, 억지로 꾸며진 흔적은 없다. 그저 방심한 듯, 수 십년 세월의 두께를 그냥 내밀고 있을 뿐이다. 그게 매력이다. 그 때문에 수많은 21세기 사람들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이곳을 찾아 각자의 취향에 맞게 타임머신을 즐기곤 한다. ​ 언뜻 보잘 것 없어보이지만, 본래 육림고개는 70~80년대 춘천 제일의 번화가였다. 명동에 그 자리를 내어주기까지 이곳은 각종 생활용품과 즐길 것 볼만한 것들이 흥청대던 곳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오면서 외곽에 신도시가 생기고, 인근 명동을 중심으로 좀더 있어보이는 모던풍의 상권이 발달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 더욱이 대형 마트들이 춘천에도 비집고 들어오면서 육림고개상권은 쓰러지고 말 운명이었다. 주민들도 대거 빠져나가면서 도심 속 스산한 빈민촌으로 추락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이치란 새옹지마 아니던가. ​ 육림고개는 춘천의 번화가 명동에서 멀지 않은 언덕빼기 동네다. 약 300여 미터의 오르막과 내리막 비탈길이 이어지며, 양쪽으로 허름한 70~80년대풍의 가게들이 오순도순 늘어서있다. ​ 주름진 얼굴의 짙은 화장이 그렇듯, 억지로 꾸며진 흔적은 없다. 그저 방심한 듯, 수 십년 세월의 두께를 그냥 내밀고 있을 뿐이다. 그게 매력이다. 그 때문에 수많은 21세기 사람들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이곳을 찾아 각자의 취향에 맞게 타임머신을 즐기곤 한다. ​ 을씨년스럽던 이곳엔 2015년을 전후한 시기, 다시 봄바람이 스미기 시작했다. 옛것을 보고파하는 세태를 활용해 춘천시가 이곳에 ‘막걸리촌 특화거리’를 만든 것이다. ​ ‘막걸리’가 풍기는 감격시대의 애잔함을 도시재생의 키워드로 이용한 것이라고 할까. 그 와중에 ‘서민주막’, ‘모친주막’ 등이 문을 열면서 사람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고, 나중엔 ‘청년 창업’을 기치로 내걸며 젊은이들을 유인하기 시작했다. ​ 젊은 창업가들이 대거 발길을 들여놓으면서 이곳 언덕빼기 빈촌은 달라졌다. 시대를 거꾸로 돌려세운, 역발상의 스토리가 담긴 명소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 개성과 위트, 발칙한 도발이 번뜩이는 상점들이 늘어섰고, 산뜻한 젊음과 아이디어, 설익은 희망과 벤처정신, 그리고 오래된 골목, 낡은 건물의 처마와 70년대풍 촌스런 간판이 마구 뒤섞이며, 그들만의 텍스트가 넘쳐나는 곳으로 변신한 것이다. ​ 그런 특별한 변화가 점차 외부로 알려지면서 춘천은 물론, 수도권 등 외지에서도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지금 와선 아예 명동을 뺨치는 춘천의 대표적인 아이콘 행세를 하고 있다. 그게 2020년 버전의 육림고개다.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곳 가파른 고갯마루 초입엔 육림영화전시관, 육림다방 따위가 먼저 방문객을 반긴다. 그 곁엔 DJ룸, 뮤직박스 등등이 영화 소품처럼 늘어서있다. 맞은 편엔 작은 그림을 사거나, 원데이클래스에서 그림을 배울 수 있는 달고나 잡화점, 앙증맞은 꽃가게, 다양한 스콘과 수제 스프레드를 선보이는 점빵, 케이크점, 캔들샵 등 젊은 감성의 가게들이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언덕길을 채우고 있다.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강냉이 튀깁니다’ 시골장터 풍경이나 다름없는 60년대식 기름집과 강냉이집이 퇴락한 슬라브 지붕을 머리에 올린채 아직도 살아있다. 그리곤 어설프지만 정성스레 써붙인 유리가라스(글래스) 글귀가 새삼스럽다. ‘결명자, 우엉, 뚱딴지, 둥글레, 여주…’ ​ 나이가 육림고개 희로애락의 세월과 얼추 비슷해 보이는 일미기름집. 헐벗은 듯 낡디낡은 벽체나 문설주 앞엔 너절한 물품이 내동댕이라도 쳐진 듯, 그야말로 너절하게 널려있다. ​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그 옛날 신작로변 시골구멍가게의 데자뷰라고 할까. 그 곁의 ‘올챙이국수’집은 그런 희미한 흑백의 기억을 새삼스레 소환하고 있다.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개고기와 ‘(사)인문학정원’의 기묘한 동거? 일미기름집 옆, 퇴락한 건물 간판의 ‘보신탕’ 간판이 인문학의 고품격과 아무렇게나 섞인 것도 육림고개 다운 풍경이다. 굳이 꾸미지 않은 산다는 것의 본능에 충실한 모습 그대로다. 수 십 년을 거스른, 금방 허물어질 것 같은 건물 외벽 앞엔 21세기의 세련된 자동차들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다. ​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그 두 갈래가 갈라지는 비탈길 첫머리에 ‘오늘도 달콤-마쿠아롱’을 내건, 다쿠아즈가 있고, 약간 시선을 돌리면 세련된 외관의 ‘노이’ 공방이 눈에 잡힌다. 독일풍의 건물인가 싶지만, 아니다. 그 옛날 곡물 창고나 방앗간인 듯한 건물에 기발한 디자인을 입혀 ‘소품’ 가게로 돌변케 한 것이다. ​ 육림고개 ‘중앙통’은 바닥이 주름살처럼 갈라진 시멘트길이다. 그 좌우의 점포들은 또 한 번 세월의 간극을 곱씹게 한다. ‘경양식 1988’엔 어설프게 포크 나이프질하던 촌스런 기억이 담겨있고, 그 곁엔 꽤 세련된 악세사리 가게도 있다. 내리막을 조금 더 따라가면 ‘조선커피-로스팅 하우스’가 ‘조선’스런 풍경으로 서있다.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가게 풍경과는 달리 간판 문구는 위풍당당하다. ‘Since 1977’-. ​ 고갯길 사이사이엔 좁디좁은 골목길이 실핏줄처럼 엿보인다. 대부분은 성인 한 사람이 겨우 어깨를 펴고 지나갈 만한 좁고 구불구불한 낡은 골목길이다. 가파른 골목길 계단 층층은 때로 광고판으로 변한다. 한계단 한계단마다 흰색 페인트로 대충 휘갈긴 문구들로 가득하다. ‘육림미용실’, ‘철든식탁’, ‘육림객잔’…. ​ 모두 골목 안에 알박기처럼 박혀있는 조그만 가게들이다. 애초 춘천시가 만든 ‘막걸리촌 특화거리’의 원조집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육림포차, 서민주막 등이 그렇다. 서민주막 10여 미터 처마는 형형색색의 막걸리병을 주렁주렁 이고있다. 실외 장식치곤 꽤 기발하다싶다. 그 곁엔 다시 ‘새마을운동’ 시절의 동신고무신, 메밀전집, 서민슈퍼가 나란히 문을 열고 있다. 맞은 편엔 ‘경상도 미용실’이 보인다. ‘헤어살롱’은커녕 동네 미장원보다 초라해보이는 모양새다. 주인장딴엔 간판 유리문이나 벽체 페인트칠한 모양이 깔끔을 떨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수더분한 외관이 차라리 정겹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춘천시는 매년 한 차례씩 육림고개에 입주할 청년 창업자들을 공모한다. 정식 명칭은 ‘청년몰 조성사업’이다. 이들 청년상인들에게 대해선 창업에 관한 기본교육과 컨설팅을 거쳐, 임차료, 홍보 마케팅 등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 “이는 지역사회를 활성화하는 사업으로서, 육림고개 상점내, 빈 점포 등 유휴공간에 청년상인 점포를 입점시켜 쇼핑·문화·체험 등 창의적 테마를 융합한 공간”이라는게 춘천시의 설명이다. ​ 청년몰을 조성함으로써 젊은층을 새로운 고객으로 유입하고, 육림고개 상점가에 활력을 제고한다는 목표다. 그렇게 보면 춘천시의 도시재생 전략이 나름대로 성공한 편이다. ​ 육림고개를 찬찬히 둘러보자면 대략 한 시간 남짓이면 족하다. 물론 아이쇼핑 수준이 그렇다는 얘기다. 주마간산식의 투어 끝에 되돌아온 고갯길. 그 초입엔 해가 바뀌었음에도 ‘2019육림데이’ 현수막이 나그네를 배웅한다. ​ 그 아래 옷가게에선 1만원, 5천원 떨이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선사하고 있다. 얼마나 쓸만하고, 입을 만한 옷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핑크색 노을로 물든 육림고개 언저리는 그렇게 슬로우비디오로 하루가 저물어간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

전시일시: 2020년 02월 06일~ 4월 23일 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과 (주)씨씨오씨(대표 강욱)은 2020년 2월 06일(목)부터 4월 23일(목)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9년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자 76명의 작품 300여점 등 어른들을 위한 일러스트 원화 작품들과 그림책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1967년부터 시작하여 2019년 53회째를 맞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전시로 매년 세계 80여 개국에서 3천여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이 전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최고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을 통해 최종 70여 명의 작가들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하고 작품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선정된 작품들의 전시는 실험적이고 감각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 일러스트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전시로도 유명하다. ​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등용문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볼로냐아동도서전BCBF’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권위 있는 전문가들에게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재능을 평가받을 수 있는 장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아동도서를 넘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컨텐츠로 성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세계 각지의 젊고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성공과 성장의 발판을 제공하고 있으며, 명실 공히 세계 최고의 일러스트 전시로 인정받고 있다. ​ 알탄Altan, 무나리Munari, 이노첸티Innocenti, 퀀틴 블레이크Quentin Blake, 루자티Luzzati, 숀탠Shaun Tan 까지 오랜 시간 수많은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엄격한 심사를 통해서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는 이야기와 문화, 비전을 공유하는 특별한 장소가 되고 있다. 지금도 미래를 이어갈 수많은 차세대 아티스트들이 이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CHITOSE_CHITOSE ⓒ Noemi_Vola 다양한 볼거리를 만족시키는 풍성한 전시 컨텐츠 ​ 1) 메인전시: 올해의 작가 76명의 일러스트 원화 300여점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의 최종 선정 작가 76명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의 전시 ​ 2) Vendi Vernić 특별전: 2018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우승자<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SM재단과 함께 심사를 통해 매년 1명에게 최고상 2018 International Award for Illustration–BC BF/Fundación SM을 수여하는데 선정된 작가에게는 상금과 출판 그리고 다음해 특별전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8>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작가는 벤디 베르니치Vendi Vernić(Croatia)으로 그녀의 책과 원화작품을 만날 수 있는 특별전시도 만나볼 수 있다. ​ ⓒ Jan_Bajtlik 3) Masha Titova 특별전: <볼로냐아동도서전2019> 비주얼 아이덴티티 선정작가 ​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는 매년 신진 일러스트 작가 한 명을 선정해 볼로냐아동도서전(BCBF)의 아이덴티티 이미지를 제작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이미지들은 BCBF의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전시장 인테리어와 포스터 등 홍보물을 위한 메인 이미지를 창작하게 되는데 그 원화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 4) 어린이책의 노벨상 ‘라가치상’ ​ ‘어린이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볼로냐아동도서전의 ‘라가치상’. 2019년 수상도서 16권을 전시한다. 창작성, 교육적 가치, 예술적인 디자인을 기준으로 픽션, 논픽션, 뉴호라이즌, 오페라 프리마 등 4개 분야 별로 대상 1권과 우수상(mention) 2~3권을 선정해 수여한다. ⓒ MARIKA_MAIJALA 5) 보림출판사, 책을 품은 벽 ​ 보림출판사는 그림책 전문 출판사로 2017년 ‘볼로냐아동도서전 BCBF_최고의 출판사상’을 수상했다. 도서 편집 혁신분야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출판사들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한국 출판사로는 최초의 수상이라 그 의미가 더 특별하다. 1976년 창업 이래 40여 년간 새로운 그림책을 만들어 오고 있는 보림출판사의 세계적인 그림책들을 직접 만나보자. ⓒ Liuna_Virardi ​ 6) 작은 볼로냐를 만나다! ​ ‘빨간 도시’, ‘뚱보들의 도시’, ‘현자들의 도시’, ‘포르티코의 도시’, ‘부자 도시’ 등 볼로냐처럼 많은 별명을 가진 도시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매력을 지닌 도시라는 의미인데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에서는 전시와 더불어 젊은 층을 위해 전시장 속에서 숨은 그림을 찾듯 다양한 요소를 찾는 미션도 함께 진행된다. ⓒ Olga Shtonda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세계를 만나다. ​ 이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이번 전시는 많은 젊은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모두가 만나고 싶은 전시로 자리 잡았다. 2019년 4월 볼로냐 전시를 시작으로 일본의 5개 도시와 한국의 서울을 거쳐 중국까지 월드투어로 전시될 예정이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한 예이기도 하다. ​ ⓒ Antoine_Corbineau 과거 이 전시가 한국에서 개최된 이력은 있으나, 이 처럼 수십 년을 내다보는 월드투어에 정식으로 포함되 서울에서 전시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2020년 2월 6일부터 4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위 전시를 통해, 세계 권위있는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2019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76명의 순수하고 창의적인 작품들을 만나보시기 바란다. ​ ⓒ KIM_SEULKEE(김슬기)

[로컬에서 온 편지] 지방에서 돈 벌고 싶은 당신에게

[로컬에서 온 편지] 지방에서 돈 벌고 싶은 당신에게 ​ 박 명 호 공장공장 대표(목포) 사진 공장공장 - 지방에서 왔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서울만 있나’ 싶을 정도로 인구는 물론 모든 자원이 수도권에 쏠려있는 요즘, 다시 지역이 화두다. 복잡해지는 사회문제를 풀 수 있는 새로운 사회혁신 전략지가 ‘지역’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 구체적인 삶의 문제가 존재하는 곳, 로컬은 희망의 근거지가 될 수 있을까? 로컬에서 활동하며 로컬에서 작은 희망을 찾아가는 이들에게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사진 공장공장 - 단체사진 서울을 떠나 지방(전라남도 목포)에서 살면서 스타트업을 만들고 운영한 지 3년이 지났다. 서울을 떠나 조금 더 여유를 찾고 돈을 서울과 비슷하거나 더 벌고 싶었다. 기회가 되면 엑싯(투자 회수)도 하고 싶었다. 지방에서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고 역량만 있으면 돈과 무관하게 일을 하는 지역은 의미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믿었다. ​ 전라남도 목포에서 지내는 3년 사이 우울증과 함께 지하철만 보면 가슴이 뛰고 한강만 보면 끌어당기는 것 같은 마음은 사라지고 여유를 찾았다. 아쉽게도 돈은 갈 길이 멀다. ​ 시작하고 거의 반년을 받지 못 하던 월급을 다시 반년 간 월 30만 원을 받았고 다시 월 70만 원 받다가 이제는 생활은 가능하게 받고 있다. 2명으로 시작해서 고향이 전라남도 목포가 아닌 친구들로만 10명을 더 정규직으로 채용해서 일을 함께 하고 있다. 한 번도 월급이 밀린 적은 없다. 그렇게 지방 소도시 전라남도 목포에서 지내는 사이, 지방에서 기회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늘었다. ​ ▲강릉 ▲속초 ▲양양 ▲원주 ▲평창 ▲춘천 ▲울릉 ▲진주 ▲창원▲통영 ▲거제 ▲군산 ▲순창 ▲전주 ▲부여 ▲음성 ▲순천 ▲여수▲남해 ▲제주 등 거의 소도시 대부분에 지역성을 갖추면서도 역량도 갖춘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다. ​ 다만 아직까지 지방 소도시에서 기억할만큼 또렷하게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목표에서 동시에 두각을 낸 스타트업을 거의 보지 못 했다. ​ 지방에 자리잡은 개인 또는 기업 일부는 스스로를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의외로 스스로 스타트업으로 부르는 곳은 많지 않다. 그런 이유에선지 아직까지는 투자를 받는 것도, 사회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것도 서울과 그 주위 수도권이 여전히 무대다. 서울과 수도권 밖을 벗어나면 돈에서 멀어지고 관심에서도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아도 매일 알게 된다. 사진 공장공장 - 섬 인문학 여행 엽서 '인구 50% 집중된 서울(수도권) 공화국은 사회적 문제' ​ 김대중 전 대통령 고향은 신안 하의도, 바둑 기사 이세돌 9단 고향은 신안 비금도이고 삼성은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개업한 게 시초였다. 20년 전 골목마다 북적이던 시절 “어깨를 부딪쳐야 지나갈 수 있었다.” 같은 무용담들은 이곳 목포를 포함해 이제 지방 소도시 어디를 가나 들을 수 있는 추억이 됐다. ​ 그 추억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나이를 꽤 먹은 각 지방 기반 기업들도 많고 그 규모가 작지만은 않다. 그런데 과연 최근 몇 년 사이에 제대로 지방을 기반으로 태어나고 성장해서 주목 받은 스타트업이 몇 개나 될까. 쏘카(제주)를 포함하는 손에 꼽을만큼이다. ​ 왜 20년 전에는 그렇게 많은 지방 기반 기업이 생겨나고 성장해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는데, 최근에는 그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을까. 그 이유는 어쩌면 서울이 아니면 안 되고, 서울이면 무엇이든 되는 ‘서울 만능 주의’가 만들어낸 ‘서울 공화국’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 인재는 서울로 끌어 당기고 비어버린 빈집과 늙어버린 도시는 책임지지 않고 서울에서 보낸 여행자들이나 장사꾼들만 받아서 나날이 껍데기만 남는 게 현재 지방 소도시들 현실이다. 서울에 집도 사무실도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살지도 않는 곳이 더 성장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처럼 전국적으로 빈집은 10년 사이 3배가 늘었고, 전국 229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39%가 소멸 위험 에 처했다. 그럼에도 나날이 인구는 서울에 집중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인구 증가폭은 역대 최저인데 반면 수도권 인구는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섰다. ​ 사진 공장공장 - 괜찮아마을 주민 단체 사진 '지방에서 제대로 돈 벌 수 있어야' ​ 지방에서 사람들이 떠난 이유는 단순하다. 더 나은 일자리, 더 좋은 교육을 찾아서 떠났다. 좋은 일자리는 서울에는 있고 지방에는 드물다. 지방에 공장, 농장은 있어도 소셜 스타트업들이 자리잡은 성수동이나 IT 스타트업들이 자리잡은 판교, 테헤란로 같은 곳은 드물다. ​ 지방 정부는 산업단지 조성과 케이블카, 흔들다리 같은 관광 기반 조성에는 열을 올리면서 지식 기반 산업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쫓기 때문이다. ​ 지방에서 ‘제대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는 건 단지 높은 임금으로 대변되는 건 아니다. 20대에서 30대 실력 있는 예비 취업자들이 원하는 일자리에서 원하는 경제 활동을 지방에서 할 수 있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일만 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큰 규모로모여서 살면 하나의 생태계가 된다. ​ 그것이 곧 도시이며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되는 게 지방에서 가능하지 않으리란 법 없다. 어느 단 하나의 지방이라도 약 1,000명 내외 스타트업 종사자가 동시간대에 모여 살면서 활동할 때 그 지역은 변화하고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믿는다. ​ 현재 ‘괜찮아마을’은 실험주의자를 양성해서 괜찮아마을을 조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그 규모의 경제 목표를 세울 때도 1,000명을 기준으로 했다. ​ ‘지방에서는 돈 벌면 안 되는 걸까?’ ​ 지방에서 돈을 버는 건 죄가 아니다. 전라남도 목포에서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지방에서는 돈을 벌 수 없다.”거나 “돈을 덜 벌어도 괜찮다.”로 쉽게 평가하는 걸 목격했다. ​ 이런 인식을 일부분 이해하지만 도리어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될 때마다 보다 적극적으로 ‘괜찮아마을’을 통해 돈을 벌 것이고, 서울을 포함해 해외에 진출해도 손색이 없는 비즈니스를 키워내고 싶다고 말한다. ​ 지방에서 자리를 잡고 제대로 성장하고 다시 확장을 할 수 있어야 더 많은 지방 소도시에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스타트업들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생각도 계획도 목표 어디에도 주체성은 없고 어딘가를 따라하기만 하는 정체를 모를 지방 정부들이 70년대 방식, 80년대 디자인, 90년대 커뮤니케이션으로 개발만을 거듭해 지방을 망치는 걸 2000년대식 사고방식으로 ‘어쩔 수 없다’면서 지켜만 볼 수는 없다. ​ 사진 공장공장 - 괜찮아마을 주민사진 지방에서 제대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늘고 그 사람들이 의식 있고 주도적으로 변화를 만들 때, 지방이 무너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전라남도 목포에서 ‘괜찮아마을’ 이름으로 조금씩 관심을 얻고 다른 지방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발견한 이상한 부분은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서울에서 홍보, 여행, 커뮤니티, IT 관련 일을 할 때는 누구를 만나도 당연하게 얼마나 투자해서 어떤 수익을 얻고 기회가 되면 엑싯(투자 회수)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 지방에서 제대로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또렷하게 벌면서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스타트업이 지방에서 나타나야 한다. 사회적 가치나 지방에서 일을 하는 자체만으로 도전 정신을 높게 평가하는 게 아니라 ‘숫자’로 더 평가 받는 스타트업을 지방이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 지방 정부는 스스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욕심을 버리고 더 나은 지방 기반 스타트업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자원을 내어 놓고 아낌 없는 관심과 투자를 보내야 ‘소멸 위험’에 대해 그 누구보다 선도적으로 대응하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지방으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도록, 그들이 돈을 지방에서 벌도록 해야 한다. ​ 지방에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은 아직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당신, 아직 지방이 가진 기회를 발굴하고 제대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드문 지금, 지금이 곧기회이니 움직여라. 단, 지방에서 돈을 벌고 싶은 당신은, 서울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당신이어야 한다. 지방 사람들 생계를 뒤흔들고 기회를 빼앗는 게 아니라, 스스로 기회를 발굴하고 개척해서 어차피 할 일 제대로 하자. 지방에서 돈을 벌고 이 외롭고 혼란한 시기에 지방춘추전국시대를 함께 열자. *본 기사는 박명호 공장공장 대표(목포)가 이로운넷에 게재한 [로컬에서 온 편지] 10. 지방에서 돈 벌고 싶은 당신에게의 내용입니다. ​

이달의 예술가 - 국립국악관현악단 문형희

이미지 국립국악관현악단 이달의 예술가 국립국악관현악단 문형희 ​ 공공디자인저널 문혜은 큐레이터 우리가 오랫동안 개념화하고 진리라고 믿고 있는 삶의 방식에서 탈피하는 것, 그 삶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며 새로운 예술의 삶을 찾아가는 이 시대의 예술가 문형희를 만났다. 이미지 국립국악관현악단 지난해 3월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던 양방언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인투 더 라이트(Into the Light)에서 국립국악관 현악단은 아리랑 로드-디아스포라를 선보였다. ​ 디아스포라는 정치·종교적 이유로 삶의 터전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던 공동체 집단을 뜻한다. ​ 재일동포 2세로 역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산 양방언은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아리랑’을 소재로 총 7악장을 써내려갔다. 이날 공연은 국악관현악 교향곡으로 이들을 위로하는 여정과 동시에 국악관현악단의 멋진 사운드와 역동적인 연주로 2000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 큰 감동과 여운을 선사했다. ​ 특히 5악장 ‘잃어버린 아리랑’, ‘연어아리랑’, ‘빠뜨라크아리랑’을 새로 작곡된 아리랑을 선보였는데 이날 예술감독 업무대행 겸 악장인 문형희는 남성 독창부분을 노래했다. ​ 문형희 악장의 담백하면서도 전문가 뺨치는 노래 실력은 그날 온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뿐이랴. 문형희는 현재 뛰어난 기량을 갖춘 대금연주자이며 국립국악관현악단 및 유수의 관현악단을 지휘한 지휘자이며,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의 스펙트럼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자신의 예술가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었으며 그 결과 그는 고정되어진 틀에서의 예술적 행위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 수용,열린 마음,문형희의 성향에는 나고 자란 집안의 분위기가 큰 영향을 끼쳤다. 풍금을 치길 즐기시던 아버지. 노래를 좋아하시는 어머니 피아노,기타,하모니카를 불면서 지냈던 두 누나와 형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던 문형희는 성인이 되면 완성된 음악으로 더 잘 그려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 그의 음악적 꿈과 갈증은, 지금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해소되었고, 지금의 국악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대금을 전공한 문형희는 스승이자 영혼의 지도자이신 이생강 선생님을 만나 산조를 배웠다. 그는 현재 이생강 선생님의 대금산조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다. ​ 과감한 시도와 개방성, 서양음악과 국악의 협업에 주저함이 없던 이생강의 여러 시도는 그 시절의 문형희의 생각과 맞닿는 부분이 있었다. 그 자체에 큰 영감을 받은 문형희는 다양한 음악을 수용하는 마음과 태도로 공부하였다. ​ 이후 중앙대학교에 진학한 문형희는 박범훈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음악적 영역을 더 넓혀갈 수 있었다. 그 이전의 국악관현악은 그에게 있어 관심을 끌만큼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박범훈의 중앙국악관현악단은 그렇지 않았다. ​ 박범훈은 서양적 작곡기법과 화성을 전통음악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는 능력을 보였고 국악관현악을 통해 훌륭한 사운드로 완성해보였다. 그 당시 저는 국악관현악으로도 서양오케스트라처럼 저렇게 멋지게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박범훈의 중앙국악관현악단의 과감한 시도와 개방성이 저에겐 큰 영감이 됐습니다.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박범훈의 시도와 개방성은 문형희에게 또 다른 가능성과 용기를 깨닫게 해주었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문형희는 지금의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이미지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의 저는 대금연주자로서 수많은 연주 경험과 다채로운 실력향상의 기회를 가지게 됐습니다. 당대 제일가는 최고의 명인들과 공연하는 기회도 많았고, 명인들과의 인연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연과 경험을 통해 저는 국악인으로서 우리 음악의 폭을 넓히고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국악관현악단은 활발한 시도와 개방성으로 국악계에 대표적 장르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발전의 또 다른 이면에는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가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 대표적으로 다양한 레퍼토리의 부재와 음악적 사운드를 만들고 끌고 갈 수 있는 지휘자의 역량과 역할, 오랫동안 고정화된 관현악단의 구조적인 시스템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점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 그중 국악창작곡의 레퍼토리에 있어서 2000년대 중반까지의 국악관현악은 박범훈, 이상규, 백대웅 등 1세대 작곡가들의 시대였다면 이후의 관현악은 ‘창작과 실험’의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새로운 젊은 작곡자들의 출연과 동시에 서양음악을 전공한 작곡자들이 국악관현악이라는 장르에 합세하며 국악관현악 레퍼토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했다. ​ 이렇듯이 국악관현악곡은 다양한 변화를 통해 발전한 반면 그 곡을 만들어내고 연주하는 지휘자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부재한 상태였다.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연주자 활동을 하던 문형희는 지휘자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학원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 2008년엔 한강필하모닉 정기연주회를 지휘했다. 프로그램은 베토벤 ‘에그먼트 서곡’ 서양 오케스트라를 위한 미키 미노루의 가야금 협주곡 ‘소나무’ 베토벤교향곡 4번으로 구성했다. 국악 전공자가 서양클래식 레퍼토리로 지휘를 한다는 건 그 시절 굉장히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미지 국립국악관현악단 국악관현악단을 지휘하는 서양 지휘자들은 많은데 왜 국악을 전공한 국악지휘자는 서양음악을 할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을 깨고 싶었어요. 다소 엉뚱한 발상에서 시작한 문형희의 생각은 그대로 현실로 이어졌고 지금도 국악을 전공한 지휘자가 전곡을 서 레퍼토리로 지휘한 연주회는 흔치 않다. ​ 황병기 예술감독이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이끌던 시절, 문형희는 단체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서양음악 지휘뿐만 아니라 유수 국악관현악단을 지휘한 문형희는 지휘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양한 지휘자가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그의 노력이 지금의 국악관현악단의 음악적 발전으로 연결되었으리라. ​ 지휘자의 꿈을 꾸었던 그는 지휘자로서 다양한 경험과 활동과 동시에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수석연주자와 악장을 역임하면서 대금연주자로서의 본연의 역할 또한 꾸준히 지켜나갔다. ​ 2016년 문형희 대금연주회 ‘서으로 가는길’은 그 해에 이데일리 대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듯 문형희는 여러 분야에서 자기의 음악적 역량을 다양하게 소화해내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저는 지금도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집중해야 할 일을 찾고나면 그 일이 이 사회에 특히 우리 음악에 어떤 공익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순간순간 변하는 이 시대에 우리 음악도 변화에 맞춰 과감하게 변화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음악도 실은 과거의 창작 음악이었고 변화와 수용을 통해 하나의 전통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변화에 적극적이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가 생각하는 것 앞뒤 안 가리고 일단 해봅니다. 질보다 양이 많아야 질 좋은 하나라도 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미지 국립국악관현악단 세상 모든 것이 다 예측 가능하다고 떠드는 사람들은 헛똑똑이가 많다. 그만큼 세상은 복잡계 속에서 그 질서\를 유지하며 변화해 나간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들뢰즈(Gilles Deleuze)는 노마디즘(nomadism)의 삶을 권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개념화하고 진리라고 믿고 있는 제한된 가치와 삶의 방식에서 탈피하고 그 삶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바꿔나가는 유목민의 살아가는 삶, 그는 지금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예술가들은 이 시대의흐름에 맡기며 예술적 삶을 찾아 새로운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 우리가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우리를 만드는 것처럼 지금도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삶의 흐름에 순응하며 자기의 예술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예술가들의 모습을 문형희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

찬란한 문명의 빛 - 이집트<Egypt>문명을 통해 본 공공디자인 - 2편 문명[文明]의 시작

서경대학교 교수 정 희 정 디자인학 박사 ​ 카이로[Cairo] 기자지구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Canon EOS 5D Mark II, F/8, 1/500s, ISO-100 이집트는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인류 고대문명의 발상지로 위대한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태양과 피라미드의 나라입니다. 카이로[Cairo]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Canon EOS 5D, F/7.1, 1/400s, ISO-400 이집트 문명은 하늘에 의한 환경적 영향 때문에 탄생과 붕괴를 겪었습니다. 적절한 기후 환경으로 농업생산력이 최고였던 때 문명은 가장 크게 발달했고, 큰 가뭄으로 인해 붕괴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기행문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초경량 항공기 MS356편으로 우리 일행은 룩소르에서 출발해 2시간 10여 분을 비행하여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Cairo]에 도착했다. 호텔에 짐을 내리고 주변의 거리를 돌아보았다. 도시 전체의 건축물들은 마감하지 않은 미완의 건물들로 옥상층은 철골 구조물들이 노출되어있었고 창문을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두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개구부만 확보한 채 중단되어있고 건축물의 마감은 대부분 페인트와 타일 등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이 시도되지 않은 점토벽돌조의 모습 그대로 수천 년을 거슬러 허물어지고 있는 마치 왕가의 계곡에서 보았던 흙더미처럼 보여졌다. ​ 도시의 낡고 관리되지 않은 슬럼화된 모습들! ​ 궁핍한 좌판을 깔고 앉은 시민들! ​ 맨발로 길거리를 다니는 아이들! ​ 과거의 영광은 손대면 부스러질 것 같은 흙더미의 무덤들로 텁텁한 공기와 흙먼지가 입안에 서걱거린다. 호텔에 돌아와 이른 잡을 청했다. 악몽을 꾸었다. 고대 이집트의 의식을 치루는듯한, 주술을 외우며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 두어 차례 가위에 눌려 잠을 설쳤다! 카이로[Cairo] 시내풍경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Canon EOS 5D Mark II, F/5.6, 1/125s, ISO-400 현대 인류의 문명은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원전 5세기부터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도 고대 이집트 문명에 매료되어 이집트 역사를 연구하였고 거기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 이집트 문명을 탐구함으로써 발견해낸 과학 예술 종교 신화 등에 대한 지식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며 이후 유럽의 르네상스 개화에 촉진제가 되기도 하였으며 나폴레옹이 1798년 유럽을 원정함으로써 고대 이집트 문명에 대한 관심의 열풍이 새로이 불기 시작했다고 1997년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장이었던 모하메드 살레[Mohammed Saleh]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이해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 인류의 문명은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원전 5세기부터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도 고대 이집트 문명에 매료되어 이집트 역사를 연구하였고 거기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 이집트 문명을 탐구함으로써 발견해낸 과학 예술 종교 신화 등에 대한 지식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며 이후 유럽의 르네상스 개화에 촉진제가 되기도 하였으며 나폴레옹이 1798년 유럽을 원정함으로써 고대 이집트 문명에 대한 관심의 열풍이 새로이 불기 시작했다고 1997년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장이었던 모하메드 살레[Mohammed Saleh]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이해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 카이로[Cario]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Canon EOS 5D Mark II, F/3.2, 1/60s, ISO-100 카이로[Cairo] 기자지구의 피라미드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Canon EOS 5D Mark II, F/9, 1/320s, ISO-100 ​ 이집트 문명의 어마어마한 유물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터라 우리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죽은 뒤의 내세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 그들이 쓰던 언어와 당시의 사회상 전통과 그들의 예술성 그리고 숭배하던 신들과 종교 등을 우선 알아야 할 것입니다. 카이로[Cairo] 기자지구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Canon EOS 5D Mark II, F/9, 1/500s, ISO-100 이집트 사회구조의 상징으로 피라미드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카이로[Cairo] 기자지구의 피라미드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Canon EOS 5D Mark II, F/10, 1/400s, ISO-100 고고학자 인문학자들은 피라미드의 삼각 형태는 고대이집트의 사회 구조를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 삼각형이 주는 안정감은 이집트의 종교관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여과 없이 받아들여져 약 3,000년에 이르는 고대 이집트의 존재 기간 동안 변동 없이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 피라미드의 삼각 구조물 끝은 물론 사회구조의 정점이라 할 수 있으며 파라오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 파라오의 몸은 죽어도 그 영혼은 신적인 것으로서 젖소 모습의 여신 하토르의 젖을 받아먹음으로써 왕의 신성함은 항상 새롭게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 왕의 가장 큰 임무는 사물들의 고유한 질서를 보존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었으며 이 임무를 위하여 왕은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이기도 했습니다. ​ 또한 파라오는 태초의 카오스를 지배하는 힘을 갖고 있어 인간사회를 넘보는 위협적인 힘을 항시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고 또한 왕은 매의 모습으로 나타나 이 세상을 떠나 신들의 왕국으로 날아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어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연결하는 능력을 갖고 있던 파라오의 힘은 실제적으로 끊임없이 증가한 관리와 군사력에 의해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 죽은 뒤 또다시 죽지 않으려는 염원, 죽음을 정복하고자 애썼던 이야기들은 다음 호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카이로 나일강[Nile River]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Canon EOS 5D, F/8, 1/500s, ISO-160 이집트는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인류 고대문명의 발상지로 위대한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태양과 피라미드의 나라입니다. ​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고대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3,000년경 나일강을 중심으로 탄생하였는데 사막지대인 이집트에서 문명이 형성된 것은 기후환경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카이로 나일강[Nile River]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Canon EOS 5D, F/10, ISO-250 북위 25도의 아열대 지역인 나일 계곡에는 서늘한 계절풍이 불었고, 기후로 인해 내리는 비로 나일강 주변 저지대는 매년 6월부터 10월까지 홍수가 났습니다. ​ 홍수가 끝나면 강 유역의 경작지에는 상류에서 떠내려온 비옥한 흙이 가득 쌓였고, 이곳에 보리와 밀 같은 곡물의 씨앗을 뿌리면 이듬해 2월에 엄청난 수확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 이 같은 농업 발전은 이집트가 강력한 왕권 국가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집트 사람들에게 홍수는 재해가 아닌 하늘이 내려주는 축복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범람 수위에 따라 농작물이 얼마나 잘 자라는가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홍수로 인해 물의 높이가 18m면 ‘배고픔’, 19.5m면 ‘고생’, 21m 면‘행복’, 22.5m가 넘으면 ‘안심’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 그러나 27m가 넘으면 강이 범람해 진흙집까지 쓸어가기 때문에 ‘재앙’이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이 경우는 100년에 한 번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웬만하면 홍수가 크게 날수록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 그러나 기원전 5,000년이 지나 2,000년 경 무렵, 날씨가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온화했던 기후가 찌는 듯한 무더위로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 비가 내리지 않게 되면서 나일강의 범람도 멈추게 되었고, 강폭은 점차 좁아졌으며, 삼림도 모래바람이 거세게 부는 사막과 황야지대로 변해갔습니다. 더운 기후와 강수량의 감소는 농업의 파탄을 초래했고, 농업 생산성의 악화는 왕조의 멸망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얀 돛의 펠루카(felucca 지중해 연안의 삼각 돛을 단 소형 범선)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Canon EOS 5D, F/9, ISO-125 이집트 문명은 하늘에 의한 환경적 영향 때문에 탄생과 붕괴를 겪은 것입니다. 중동의 유프라테스 강가를 중심으로 세워졌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인도의 인더스 문명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적절한 기후 환경으로 농업생산력이 최고였던 때 문명은 가장 크게 발달했고, 큰 가뭄으로 인해 붕괴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다음 호에서는 죽은 뒤 또다시 죽지 않으려는 간절한 염원! 죽음을 정복하고자 애썼던 이야기들과 이집트의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디테크 게엠베하 [선거용 다목적 리무진 DTV20, DTV21]

리더를 위한 최적의 선택 디테크 게엠베하 선거용 다목적 리무진 [DTV20, DTV21] ​ 자료 디테크게엠베하 DTV20, DRV21 외장 디자인 "움직이는 선거전략 지휘본부 차량" 4·15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이 다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선거 전용차량을 국내 최초로 제안합니다. 선거 전략 헤드쿼터의 역할로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한 온라인 회의시스템과 업무용 회의공간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또한 도청방지 특수 필름 및 시스템으로 뛰어난 보안 기능을 자랑합니다. ​ 고효율 HEPA필터와 프리미엄 시트로 편안함과 안정성 두가지를 모두 갖춘 시크릿 오피스를 소개합니다. ​ DTV 20, DTV 21은 승객의 편의성과 배려를 먼저 생각합니다. 외부 도청을 원천 차단하는 도청방지 특수 필름과 첨단 음향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선거전략 지휘본부’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합니다. ​ 11인승, 6인승으로 구성된 승객석은 프리미엄 시트와 리무진 시트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승객을 배려하여 전동 시트와 전동 언더 서포터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 자료 디테크게엠베하 DTV20 실내 구성도 자료 디테크게엠베하 DTV20 내부 회의공간 첫번째 모델은, DTV 20입니다. ​ 효율을 중요시하는 선거전략 오피스 리무진으로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한 온라인 회의시스템과 별도의 업무용 회의 공간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 후보자를 위한 편안한 휴식공간과 다양한 편의장비를 갖추었습니다. 실내 공기정화 시스템을 사용해 미세먼지와 바 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제거해 안전한 거주공간을 만듭니다. ​ 도청 방지 필름과 시스템은 완벽한 보안의 필수 요소입니다. DTV20은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시크릿 오피스입니다. ​ 자료 디테크게엠베하 DTV21 실내뷰 두번째 모델은, DTV 21입니다. ​ 후보자의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인간공학을 적용한 인테리어 설계와 항균, 도청방지 등 사소한 부분까지 케어하는 첨단 오피스를 소개합니다. ​ 프리미엄 소재인 나파 가죽을 사용해 부드러운 촉감을 가진 리무진 시트는 후보자의 몸에 꼭 맞게 조정이 되고, 통풍/온열 기능으로 온도까지 조절 가능합니다. 또한 드레스룸 기능으로 언제 어디서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여유까지 제공합니다. 자료 디테크게엠베하 DTV21 구성도 자료 디테크게엠베하 DTV21 센터파티션 (좌: 열림 / 우: 닫힘) 자료 디테크게엠베하 (DTECH) 월드 클래스 전륜구동은 동력효율과 쾌적한 실내 공간을 위한 탁월한 기술입니다. 섬세하게 조율된 맥퍼슨 스트럿은 차체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조율 할 뿐만 아니라 실내로 유입되는 진동과 소음을 적절히 차단합니다. 쇼퍼드리븐 성향에 가장 적합한 전륜구동을 선택한 마스터 V.I.P 리무진의 승차감은 월드클래스라 자부합니다. ​ 2.3 dCi 디젤 트윈터보 엔진은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 (Renault Nissan Aliance)의 핵심 기술력이 집중된 결정체 입니다. 최적화된 출력과 연비는 운전자에게 만족감을 주며 이와 함께 설계된 6단 수동 변속기는 운영비용에 대한 부담감을 현저하게 줄여줍니다. ​ 자료 디테크 게엠베하(DTECH) 강력한 주행성능을 조율하는 기술을 통해 뛰어난 노면 접지력으로 눈길 등 미끄러운 도로에서도 정확하고 안정적인 주행을 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오토 스탑 앤 스타트 (Auto Stop & Start)는 차량 정차시 자동으로 엔진을 정지시키고, 기어를 넣으면 다시 엔진이 작동되는 시스템으로 연료소모를 줄여줍니다. ​ 차량 통합 IOT기술은 운전자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아주 작은 실수도 없애줍니다. 와이드 뷰 사이드 미러는 훨씬 확장된 시야각을 확보하여 사각지대의 범위를 줄여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 어라운드 뷰를 지원하는 IOT시스템은 간편하게 차량 인포시스템에서 접근할 수 있으며 거대한 차체를 컴팩트하고 스마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1. 어라운드 뷰 시스템(AVS) 2. 차선이탈경보 시스템(LDW) 3. 경사로 밀림방지 장치 (HSA) 앞선 기술력은 다양한 bespoke 옵션으로 나타납니다. 고객이 원하는 어떤 컬러와 그래픽 디자인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마스터 V.I.P 리무진의 카탈로그에는 일반적인 자동차의 컬러차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량생산되는 몰개성한 컬러차트로 고객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방해하지 않고 색상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고전번역원 청사

한국고전번역원 청사 (주)건축사사무소 에스파스 이미지 (주)건축사사무소 에스파스 회사명 ㈜건축사사무소 에스파스 대표자: 박성환 설계개요 대지위치: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1로 85 대지면적: 2,975m2 건축면적: 1,414.28m2 연면적: 7,360.03m2 건폐율: 47.54 % 용적률: 191.23 % 규모: 지상6층, 지하1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로이복층유라, 화강석(포천석), 전벽돌 발주처: 한국고전번역원 주차대수: 38대 이미지 (주)건축사사무소 에스파스 우리는 아름다운 주변환경과 고전번역원의 상징성을 고려하여,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서·가·원(書·家·園)의 건축 디자인개념을 통해, 기능적이고도 쾌적하며, 고전번역원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건축물을 구현하고자 한옥의 처마 선의 곡선과 북한산 산세를 형상화하며, 입면의 패턴은 한옥의 돌담을 모티브로 양, 음각의 입체미를 더하고자 계획하였다. ​ 사진 (주)건축사사무소 에스파스 사진 (주)건축사사무소 에스파스 [설계개념] 서가원은 한국고전번역원 본연의 연구의 서재이자 공공에게 열린 도시의 서재이며,북한산과 주변의 자연환경을 품은 전통적인 형태의 고전의 마당을 중심으로 내부와 외부공간 간의 다양한 소통이 이루어지며, 도시에서 자연을 품은 친환경 자연의 정원이 된다. [평면계획] 이미지 (주)건축사사무소 에스파스 무주공간 계획으로 공간적 개방감 극대화 및 원활한 연계성 확보 갈현 근린공원과 하천으로 이어지는 자연축에 대응하는 휴게정원 계획 이미지 (주)건축사사무소 에스파스 중정과 데크에 조성된 휴게공간을 통하여 내부공간으로 자연축의 관입과 용도별 회의실 집중배치를 계획하여 연계성을 증대하였다. 이미지 (주)건축사사무소 에스파스 공용공간 중심으로 업무공간과 개방시설을 분리 계획하여 시설간 간섭을 최소화하고, 수공간을 통한 들어오는 자연채광을 극대화하여 쾌적한 업무환경을 계획하였다. ​ [입면계획] 이미지 (주)건축사사무소 에스파스 한국고전요소를 기반으로 하고 전통건축의 아름다운 형태 및 요소들을 차용하여 현대적으로 구성한 디자인. 중정과 데크에 조성된 휴게공간을 통해 내부공간으로 자연축의 관입계획. [단면계획] 이미지 (주)건축사사무소 에스파스 대지레벨을 활용한 영역분리와 다양한 외부공간을 통한 자연의 유입 계획으로 주변자연과 연계하여 대지내 다양한 녹지공간 조성으로 친환경적인 업무환경을 계획하였다. ​

다산의 생각과 영화 '기생충'

‘미쳤다!’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경천지동의 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기생충’은 한국어로 쓰고 한국 자본으로 만든 토종 한국영화다.”라고 말했듯이 토종 한국 영화가 영화의 상으로는 가장 권위 있는 아카데미상으로 4개 부분을 석권한 쾌거라 나왔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 상의 제도가 생긴 이래 최초의 외국어로 된 영화가 작품상을 받았고, 각본상과 감독상에 국제 영화상까지 받은 대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선 감독과 제작진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해드리면서, 한국인으로 동시대에 살면서 그런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선 ‘기생충’의 어떤 면이 우수해서 그런 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언론에 보도된 내용으로 보면 봉준호 감독의 말에 그 해답이 보입니다. “기생충은 가장 한국적인 것들로 가득 찼는데 오히려 한·미프로덕션이 합작한 ‘옥자’보다 더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는다. 주변에 있는 가장 가까운 것을 들여다봤을 때 전 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또 감독은 말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라는 어떤 감독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자신도 그런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되지 않았느냐는 답변을 했습니다. 세계 언론들의 찬사를 종합해보더라도 ‘기생충’의 수상은 언어의 장벽도 넘었고 국경의 장벽도 넘어 ‘세계의 승리(a win for the world)’라는 극찬을 받기에 이르렀다고 했으니, 시대의 변화에 덕을 보기도 했지만, 내 것, 우리 것, 내 나라 전통과 역사에 대한 지극한 애착에서 빚어진 위대한 승리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200년 다산의 ‘호아(好我)’ 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산이 살아가던 19세기 초, 중화주의에 매몰되어 몰민족의 깊은 수렁에 빠진 민족의 현실을 개탄하던 다산의 우국충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최근 수십 년 이래로 한 가지 괴이한 논리가 있어 우리 문학을 아주 배척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옛 문헌이나 문집에는 눈도 주지 않으니 이거야말로 큰 병통이 아니냐?” 면서 우리 것, 내 것, 우리 역사와 전통을 익숙하게 알아야만 좋은 글을 지을 수 있다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가장 가까운 곳을 들여다봤을 때 전 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를 그때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귀양살이 시절에도 강진의 농촌이나 어촌의 백성들 삶의 모습을 참으로 사실적으로 시로 읊는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래서 또 자신은 조선사람이기 때문에 조선 시를 짓겠노라 하면서, 한글의 어휘를 한자로 차음한 많은 시를 짓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인 한시에서 용인될 수 없는 파격적인 시가 그렇게 해서 저작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에 정확히 부합되는 것이 바로 다산의 생각이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고, 가장 세계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이라는 통상의 주장 또한 다산의 생각이었으며 오늘 세계인들의 생각입니다. 이제 기생충은 우리 국민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꿀 엄청난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내 것은 싫고, 내 것은 천하고, 촌스럽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의 현실, 우리의 전통, 우리 고전, 우리 옛 역사도 추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리라고 믿어봅니다.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 2편 도시디자인 출현과 과정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2편-도시디자인 출현과 과정 ​ 조 용 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 前)광주광역시도시공사 사장 前)한국주거학회장 前)한국도시설계학회 부회장 前)중앙도시계획위원 사진 히드리아누스가 황제묘로 건축한 카스텔 산타안젤로성 도시는 긴 세월을 거치면서 다양한 모습을 가져왔다. 어떤 도시는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도시는 중세의 흔적을 지우고 그 위에 근대 도시를 새롭게 만들기도 했다. 전자는 양식주의로 불리는 유럽의 역사 도시들이고, 후자는 기능주의(국제주의)로 불리는 우리 도시들이다. 이같은 구분은 건축과 도시의 관계에서 비롯되며 도달 지점은 건축의 존재 방식이 된다. 일체성 도시에서 개별성 도시로 중세 도시는 도시의 공공성 확보와 조화가 우선적 가치가 될수 있도록 건축을 규제하는 건축과 도시의 일체적 관계를 중시했고, 근대 도시는 건축의 이익과 자유가 실현되도록 건축과 도시의 분리적 관계를 중요 가치로 삼았다. ​ 일본 건축가 소네 소우이치는 도시에 대한 인식은 건축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하며 3가지 도시 구성 방법을 소개한다. 그는 건축을 같은 유형과 서로 다른 유형으로 구분하고 함께 존재하는 요소의 양상에 따른 형태 인식을 통하거나 건축개체 및 그의 군 단위 기능, 건축개체의 상호관계 인식을 통해 도시 구성방법을 확립한다고 말한다. ​ 그는 첫번째 이론의 사례로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 케빈 린취의 도시구성을 소개한다. 두번째 예로는 C.I.A.M의 기능적 도시구성을, 마지막 예로는 구조주의 구성방법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이 3가지 사례는 각기 형태, 기능, 구조에 주안점을 두고 발전해왔다. ​ 도시는 시간과 공간의 결합물이 분명하지만, 이처럼 건축이나 도시 사조는 건축의 존재방식을 결정하는 건축과 도시의 관계에 의해 구분돼 왔다. ​ ‘일체성 도시 고대, 중세도시’ 고대도시, 아크로폴리스의 공간 구성 ​ 도시를 새로 만들거나 대규모로 개조할 때는 계획적 의도가 작용한다. 고대부터 중세시대까지는 건물의 배치나 조형성을 통해, 근대시대에는 건물의 기능성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이 느껴지도록 해 왔다. 이의 대표적 고대도시가 그리스다. ​ 이 도시는 아크로폴리스, 아고라(광장), 스토아(상점)로 구성돼 있었는데 가장 높은 위치인 산 정상에는 정신적 지주인 파르테논 신전과 에릭테이온 등이 있는 아크로폴리스가 입지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 원경으로 올려다 보이는 낮은 평지에는 정치나 철학을 논하고, 상거래를 하는 생활의 장소 아고라가 스토아 등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데, 위요(둘러쌈)를 만드는 배치는 아주 자유로우면서도 위요감이 느껴지는 의도적 배치였다. ​ 푸른색 선은 순례자의 길, 노란색 선은 헤파이스테이선전에서 스토아쪽의 시선방향 - 출처 (도시다지안+도시언어 조용준외 역 p70) 아고라에 인접한 그리 높지 않은 언덕에는 헤파이스테이온 신전이 큰바위 얼굴처럼 입지해 아고라를 지켜주는 듯했다. 외부에서 오는 순례자들에게는 가장 먼저 보여지게 하는 이정표 역할을 했고 점차 가까워지면 순례자들은 자연스레 경건한 마음을 갖게했다. ​ 헤파이스테이온 신전 앞 계단에 서면 아고라는 물론 순례자들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는데, 시선이 아고라를 넘어 멀리까지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아고라 아래쪽에 긴 스토아를 배치했다. ​ 스토아의 전면은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을 배치해 기둥 사이로 아고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순례자들의 움직임을 인지하도록 했다. 또 아고라가 순례자들에 의해 방해받지 않으면서도, 순례자들이 아고라의 전경을 볼 수 있도록 적절한 공간적 분리를 한 게 특징이다. 순례자들이 아크로폴리스 입구에 오르면 파르테논 신전 등의 전체 건물이 한눈에 보이도록 부채살 모양으로 배치했다. ​ 그리스 폴리스는 BC 600년부터 AD 287년까지 오랜 기간 걸쳐 완성됐는데도 마치 한 시대에 계획되고 형성된 것처럼 도시디자인의 의도가 변질되지 않고 계승됐다는 점이 실로 놀랄만하다. ​ 그리스 건축가 독시아디스는 순례자들이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면서 처음 보게되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건물을 배치했는데 특히 파르테논 신전은 각 부의 비례까지를 명확히 계산해 자리를 정했다고 한다. ​ 필라델피아 도심공간 구조 형성에 큰 공헌을 남긴 에드먼트 베이컨은 아고라에서부터 아크로폴리스까지의 ‘범 아테네 길’은 지구상에서 가장 잘 디자인된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고대도시인 로마는 휴먼스케일을 넘어 위압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배치나 형태가 많았다. 특히 도시 중심 광장 역할을 하며 상거래, 재판, 집회, 축제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포로 로마나는 바실리카, 신전, 열주회랑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주변 건물과도 축선으로 연결돼 극히 위압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 사회활동과 임의활동이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도록 한 아고라와 필요활동이 일어나는 경직된 분위기의 포럼의 차이는 정치적 권력 구조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베로나, 팔마노바 등의 도시국가들도 구성 형태는 다르지만 현대 도시디자인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의도적 공간구성이 많았다. ​ 이미지 로마 중세도시의 도시디자인 ​ 중세도시의 대표적 도시디자인적 사례로는 로마와 파리의 대개조를 들 수 있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 세워진 후 고대와 중세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긴 역사속에서도 훼손되지 않은 언덕에 입지한 기념적 건물이 많은 도시다. ​ 도시입구인 포플라 광장에서 시가지 쪽으로는 바부이노 대로와·휄로체 대로(주요 성당이 입지한 정신적 도로), 홀라마니아 대로(권력의 상징적 도로), 라페다 대로(묘나 신전 등 경건함의 거리)의 3개 대로가 시가지를 향해 부채살 모양으로 뻗어있다. ​ 오벨리스크가 자리한 이 광장은 바로크 도시의 시각적 정점이었다. 판화로 그려진 당시 지도를 보면 초기 로마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정돈되지 않은 거리와 조금은 혼란스러운 외관의 성당들이 입지해 있었다. ​ 이런 로마를 대규모로 개조해 매력있는 도시로 만든 최초 공헌자는 16세기 로마 교황 식스터스 5세였다. 그는 신도들이 편하게 교회를 순례할 수 있도록 7개 언덕에 분산돼 있던 7개 교회를 연결하는 직선도로를 만들고 각 요소에 기념비를 배치했다. ​ 이 무렵에는 별 모양 패턴을 가진 여러 이상도시가 그려지기도 했고 건축과 도시의 르네상스 문을 연 건축가 브루넬리스키에 의해 원근법(투시도법)과 건물 배치의 비례가 건축과 도시디자인에 적용되기도 했다. ​ 르네상스의 도시 비전은 식스터스 5세의 로마 개조보다 앞서는데 광장 등의 공공공간에 공헌이 많았다. 집회, 시장을 위한 광장은 시청사, 교회, 재판소 등의 전면이나 도로 교차점 등 도시공간의 중요 요소에 설치됐다. 광장은 예술적 표현을 위해 조각 분수 등 장식요소가 도입되기도 했다. ​ 사진 로마의 스페인 계단 카밀로 지테는 로마 광장 연구를 통해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벽면, 지표면 넓이, 머리 위에 있는 공간 등 3가지 의 한정적 요소가 잘 조합되어야만 통일감이 생겨난다”고 주장하며 광장 원형을 5가지로 분류하기도 했다. ​ 조각가이자 건축가였던 미켈란젤로는 캐피탈 언덕에서 전면의 가로변은 길고, 후면의 가로변은 더 짧은 역 사다리 모양의 광장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미지 1538년 안토인 라프레라의 판 속의 로마모습 전면에 성베드로 성당이 보이고 그 뒤쪽에 티베르강이 흐르고 있다. -출처(도시디자인+도시언어 조용준외 역 p136) ​ 전면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후면에서는 더 가깝게 보여지게하는 의도적 구성이었는데, 베니스 산마르크 광장도 마찬가지다. 서쪽의 포플라 광장에서 뻗어나온 휄로체 대로와 피아 대문이 만나는 4개의 분수 주변에는 바로크 거장 베르르니가 설계한 작은 교회 등이, 그 주변에는 식스터스 5세가 사망한 곳이자 대통령 관저인 팔쪼 퀴로날레가 있다. ​ 교회들은 오벨리스크나 원주를 세워 지형을 관통한 직선도로가 극적인 시계(視界)를 확보하도록 했다. 오벨리스크는 고대 로마 시대 이집트에서 운반돼 온 것인데, 특히 식스터스 5세는 이중 한 개를 성베드로 성당 앞 거리의 거점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세웠고, 70년이 지나 베르니니가 성베드로 성당의 콜로 아케이드를 설계해 오벨리스크가 광장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 교황 식스터스 5세의 로마개조는 17세기 중반 크리스토퍼렌의 런던개조 계획(1666년), 18세기 샤르르랑팡의 워싱턴계획(1792), 오스만의 파리계획(1853-1869) 등으로 이어졌고 18세기 초 무렵에는 스웨덴, 독일, 스페인 등의 주택 도시에도 적용됐다. ​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

AR, VR 기술로 104년 만에 복원된 '돈의문(敦義門)'

자료 제공 서울시 관광체육국 관광산업과 ​ 1915년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됐던 ‘돈의문(敦義門)’이 디지털 기술로 복원돼 시민에게 104년 만에 돌아왔다. AR(증강현실)·VR(가상현실)로 복원한 ‘돈의문’을 살펴본다. 사진 서울시 관광체육국 관광산업과 일명 ‘서대문’이라 불리는‘돈의문’은 1396년 완성된 후 몇 차례의 중건을 거치다 1915년 일제강점기에 도시계획의 도로확장을 이유로 철거됐다. 조선시대 한양도성 4대문 가운데 서쪽 큰 문으로 작년까지는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 ‘돈의문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는 지난 100여 년간 돈의문의 복원을 가로막았던 교통·난보상 문제 등 현실적인 제약을 극복하고, 4차 산업혁명의 첨단 기술인 AR과 VR로 돈의문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 이미지 서울시 관광체육국 관광산업과 이미지 서울시 관광체육국 관광산업과 2018년 12월 서울시·문화재청·우미건설·제일기획은 ‘문화재 디지털 재현 및 역사문화도시 활성화’ 협약을 맺고, 9개월 간 돈의문 복원 작업을 진행해왔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프로젝트 총괄 기획을 맡은 가운데, 우미건설은 프로젝트 제안과 예산지원에 나섰고 제일기획은 증강현실 복원 작업과 체험관 기획 및 제작 등을 담당했다. ​ 먼저, 자체적으로 개발한 ‘돈의문 AR(돈의문 AR체험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 정동사거리 주변에서 실행하면 과거 돈의문의 웅장한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시간대에 따라 4가지 이상의 그래픽이 구현돼 돈의문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 정동사거리 인도변에 설치된 키오스크는 돈의문의 역사와 복원 과정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함께 돈의문 AR체험 앱 설치 안내 정보를 제공한다. 55인치 크기의 키오스크 화면을 통해서는 AR로 재현된 돈의문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 특히, 2010년 서울시가 발행한 [돈의문 복원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에 돈의문 축조기법과 원위치에 대한 고증, 복원 계획 등이 포함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재청 자문위원인 김왕직 명지대 교수, 단청 전문가 정병국 동국대 교수 등 학계 전문가의 철저한 고증과 시각특수효과 전문기업 등의 참여로 복원 작업의 완성도를 높였다. ​ 사진 서울시 관광체육국 관광산업과 또한, 돈의문 IT재현의 체험을 확장하고 돈의문 박물관 마을 신규 관광객 유입을 활성화하기 위해 돈의문박물관마을 내 3층 규모의 체험관도 운영한다. ​ 돈의문 디오라마(축소모형)와 과거사진 전시 등을 만나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돈의문 가상체험 VR존’을 통해 돈의문 주변을 둘러보고 성곽에 오르는 실감나는 체험도 할 수 있다. ​ 1층에는 돈의문 디오라마(축소 모형)와 과거 사진 등을 전시하는 한편, 돈의문의 역사와 복원과정이 담긴 영상도 상영된다. 체험관 2·3층에는 돈의문을 가상현실로 체험하는 VR존을 운영한다. VR존에는 총 8대 VR기기를 비치했다. ​ 추후에는 돈의문이 세워진 조선시대로 시간 여행이나 한양도성 구간을 VR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도 선보일 예정이다. ​ 주용태 서울시 관광체육국장은 “서울은 2000년 역사를 간직한 역사도시이자 세계적인 현대도시로서 과거의 역사를 현대의 기술로 만나볼 수 있는 이번 복원 작업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며 “돈의문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문화재와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체험자원, 관광자원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