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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韓流)로 인한 외국인(外國人)들의 가출(家出)

한류[韓流]로 인한 외국인[外國人]들의 가출[家出] 문 혜 은 공공디자인저널 큐레이터 ​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 열풍이 뜨겁다고 합니다. ​ 젊은이들이 명문대학에 합격했어도 진학을 포기하고 무작정 짐을 싸서 한국으로 온다고 합니다.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에서 취직하여 한국에서 살고자 한다고 합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던 이유로 외국대학에 한국어 학과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21살의 이탈리아 여성에게 왜 한국을 좋아하는지를 인터뷰 했습니다. Italy Imane 21세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문혜은. 한국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 Imane. 그 느낌 아세요? 눈을 감고 지구본 위에 올린 손가락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기분을?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한국을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2015년 여름이었는데 한국이 저에게 새로운 곳은 아니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대장금이라는 한국드라마를 보았던 것을 기억했거든요. ​ 그 순간부터 저는 한국이 어떠한 곳인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지? 그들의 가치관과 믿음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나라가 저에게 줄 수 있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 배워 나갔습니다. ​ 그 마지막 질문은 조금 어려웠어요. 그렇지만 저는 찾았죠, 한국이 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제가 한국에 줄 수 있는 것보다 많다는 것을요!... ​ 문혜은. 한국엔 언제 처음 와 보셨나요? ​ Imane. 한국으로의 첫 방문은 2019년 2월이었어요! 제 배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었죠! 고층 건물들과 차분한 사찰[절]들의 조화! 사람들의 친절함과 전통 떡의 달콤함! 그리고 그들의 깊은 문화와 의미 있는 언어가 저에게 시작이었죠 이것은 저의 이야기이고 저는 아직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 그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겠죠, 제 친구들처럼요. 몇몇 사람들은 한류의 한국드라마와 케이팝에 의해 본의 아니게 한국을 알게 된 경우도 있죠. 그중 BTS를 빼놓을 수 없죠. 한국 문화와 한국의 새로운 시대를 연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한국 그룹 중 하나이니깐요. 다른 친구들은 춤을 배우거나 인턴십을 위해 한국에 왔어요. 다른 이들은 새로운 삶과 직업을 찾기 위해서 왔죠. Italy Imane 21세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하지만 우리는 그저 한국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여행자들일 뿐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한국에 오는 거의 모든 방문객들이 한국에 대해 배우고 있거나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들 다른 이유를 가지고 말이죠. 저 같은 경우에는 이유가 간단했습니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그 사람과 말을 나누지 못하겠습니까? 제가 느끼는 것과 저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저를 표현하기 위해, 그것이 제가 시작한 이유입니다. 음악에 대해서 저는 한국어가 노래로 부르기 가장 좋은 언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사를 전부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리듬과 목소리와 어우러진 그 안의 감정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저에게 이탈리안 가수와 한국 가수의 차이점을 물으신다면 저는 정확한 답변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모든 가수들은 같은 나라에서 왔든 아니든 그 가수만의 고유한 특별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와 한국 드라마의 차이라면 거의 모든 한국 드라마들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가장 이슈가 되는 사회문제들에 이야기하기도 하죠. 빈부격차, 계급에 의한 차이, 가정 혹은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 같은 것들이 있겠네요. ​ 이탈리아 영화들은 보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여기 있으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기억 중 하나는 제가 처음으로 SFW(Seoul Fashion W)에 간 것이었죠. 저는 한국의 패션이 유니크하고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적인 스타일과 전통적인 스타일의 조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요. ​ 문혜은. 한국에서 지내면서 느낀 점 드라마에서 보았던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 대한... ​ Imane. 서울의 길거리들은 마치 살아있는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위를 걷는 사람들에게 자신들만의 스 타일을 뽐낼 수 있게 해주고 그들이 자기를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제가 한국인과 결혼하고 싶냐고요? 사랑은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으로부터 얻고 싶은 것이 뭐냐고요? 저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삶이 쉬운 면도 있죠. 저는 한국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합당한 권리를 안겨줄 수 있는 멋진 나라가 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다채로운’ 이라고 생각합니다.

강화군 교동도 대룡시장

강화군 교동도 대룡시장 60~70년대, 쇠락한 ‘추억’을 소환하다 ​ 기획취재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낡고 옛스런 시장 골목, 영화세트 방불케하는 가게·상점들 ​ 실향민 정착지서 비롯, ‘빈티지’한 매력으로 ‘관광명소’ 부상 ​ 주말이면 관광객 쇄도, “유명해지자 젠트리피케이션 엄습”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허름한 여닫이 유리문의 동네 이발관, 지나는 사람들은 굳이 들어가려 하진 않는다. 대신에 유리창 너머로 힘들게 까치발을 하여 이발소 안을 ‘구경’할 뿐이다. ​ “영업을 하긴 하나~ 앗! 사람이 있긴 있네~” ​ 그랬다. 이발소는 영화세트가 아니었다. 멀쩡하게 영업 중인 이발소 안에선 칠순을 넘겼음직한 백발의 이발사가 나른한 오후의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작 이발하러 들어가는 사람은 없지만, 그 옛날 구수한 동네 이발관을 구경하려는 외지인들로 그 앞은 장사진을 이룬다. 교동도 대룡시장 한 가운데 ‘교동 이발관’ 역시 이 섬을 찾는 사람들이 애써 발췌하려는 옛 이야기 중 하나다. ​ 교동면소재지가 있는 대룡리에 있는 대룡시장은 교동도의 ‘번화가’이자 중심지다. 애초 6.25 당시 바다를 격하고 마주보는 황해도 연백군 피난민들이 자리잡은 곳이다. 그들은 당장 먹고살 방도가 없다보니, 전쟁통에 주저앉은 자리에서 그냥 좌판을 벌이고, 노점상을 이어갔다. ​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 이곳은 21세기의 스마트한 풍경에 식상한 사람들의 카타르시스가 녹아든 곳으로 변했다. 대룡시장은 흐르는 세월따라 업그레이드되지도 않았고, 첨단으로 치닫는 시대에 맞춰 변주하지도 않았다. 그냥 전쟁 직후 주저앉은 그 모습 그대로다. ​ 구불구불하고 초라한 골목, 낡고 병든 것 같은 60년대식 슬레이트 지붕, 덕지덕지 때가 묻고 칠이 벗겨진 담벼락, 어설프고 유치해 보이는 간판, 연식이 오래된 구멍가게들… 그야말로 누렇게 빛바랜 흑백사진과도 같다. ​ 첨단과 세련됨에 멀미하는 요즘 사람들에겐 그래서 대룡시장은 또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른바 ‘빈티지’한 향수를 즐길 만한 곳으로 떠올랐다. 이미 여러 차례 언론매체에 소개되면서, 이젠 수도권에서 손꼽히는 관광지가 되었다.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공공디자인저널>이 이곳을 찾던 날도 그러했다. 겨울철이어서 찬바람이 맴도는 휑한 골목길을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반경 100미터 남짓 방사형 시장 골목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 ‘단밤, 군밤, 새우젓’… 그냥 내키는대로 메뉴를 써붙인 듯한 가게 앞에는 자못 줄이 길었다. 합판 매대 위, 한 봉지 5천원짜리 군밤은 날개돋힌 듯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특별히 맛이 있어가 아니라, 그 때 그 시절의 고소한 추억을 맛보는 표정들이었다. ​ 그 뒤켠으로 뚫린 허름한 뒷골목, 붓글씨로 쓴 것 같은 흰색 바탕의 배너간판이 눈을 끈다. ‘전막걸리’, ‘빈대떡’, ‘옹심 이 팥죽’, ‘제비집 빈대떡’… 간판과 메뉴 모두 화장끼 없는 맨얼굴처럼, 정겹고 소박하다. MSG와는 거리가 먼 옛 주막 거리의 진솔했던 먹거리를 연상케하는 그런 곳이다. ​ 이곳엔 유독 담벼락을 길쪽으로 뚫어내고 만든 상점들이 많다. 대부분 수 십 년은 되었음직한 낡은 농가주택의 귀퉁이를 오려낸 곳들이다. 어설프지만 제딴엔 멋을 낸답시고 ‘유리 글라스’로 전면을 치장하거나 핑크빛 차양을 내두르기도 했다.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그 중엔 어색하게 ‘모던’함을 강조한 액세서리 가게도 있다. 가게 앞을 장식한 물건들은 제법 오가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만했다. 4천원 짜리 열쇠고리에 시선을 주는 사람들도 많았고, 조금은 조악해보이는 장신구를 만지작거리는 행인들도 꽤 있었다. 허나 낡디낡은 슬레이트 지붕이나 사과 궤짝 매대는 역시 70년대풍의 쇠락한 아우라를 감추진 못했다. ​ 교동 대룡시장의 콘텐츠는 뭐니뭐니해도 ‘데자뷰’의 발자취다. 먹거리부터가 그렇다. 외지인들이 유독 붐비는 곳들이 대부분 그런 곳들이다. 골목이 삼거리로 갈라지는 어귀의 ‘황금꽈배기’집도 그렇고, 뜨끈한 오뎅 국물 김이 서린 가게도 그 중 하나다. ‘영심이 커피상점’ 간판을 내건 곳에선 커피와 함께 추억의 ‘뽑기’과자도 등장한다. ​ 그 옆 가게에 내걸린 ‘황해도 연백 모찌떡’ 걸개는 남다른 사연을 전한다. 초로의 가게 주인은 “부모님이 연백 출신 피난민”이라고 했다. 옛날 찐빵, 콩떡, 식혜, 옥수수 등도 팔고 있어, 역시 호기심 어린 관광객들 이 꽤 많이 찾는다. ‘한가네 뻥 강정’은 그 시절, 명절이면 북적이던 강정집의 설렘을 재연하고 있다. 붉은 색의 차양을 마치 캐노피처럼 드리운게 생뚱맞다 싶기도 하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인천광역시와 강화군은 지난 2017년부터 이곳 대룡리 일대를 ‘추억이 있는 골목길’로 꾸미기로 하고, ‘대룡시장 골목길 조성사업’과 재정비사업을 펼쳐왔다. 이를 통해 골목 안길을 포장하고 마을게이트와 시장게이트, 포토존을 설치했다. ​ 또 인근의 교동초등학교 담장을 재정비하고, 우시장 터를 조성하는 등 관광지 조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런 일련의 사업의 키워드는 역시 ‘추억’과 ‘실향민’이다. “한국전쟁 당시 교동도에 머물렀던 실향민들은 물론, 현대의 도시인들이 옛 추억을 찾아 대룡시장을 다시 찾음으로써 민통선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게 강화군의 기대다. ​ 그러나 빛에 가려진 그늘은 있게 마련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대룡시장과 교동도에도 어김없이 찾아들었다.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지고,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땅값과 임대료가 덩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 본래 이 지역은 옛 실향민들의 관습처럼 1년에 한번 임대료를 지불하는 ‘연세(年歲)’였다. 외딴 섬 귀퉁이 장터 골목이던 시절 그랬듯이 연 30~50만원이면 족했다. 그러나 관광명소가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연세 30만원이 월세 30만이 되고, 연 360만으로 불어난 것이다. 게다가 토박이 주민뿐 아니라, 외지인들이 스며 들어와선 상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군밤을 팔던 60대의 A씨는 “관광객들이 구경만 하고, 물건을 사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면서 “그나마 외지인들이 많아지면서 본토 사람들은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군데군데 ‘임대문의’를 써붙인 곳이 적잖게 눈에 띈다. 아예 아무런 설명도 없이 폐허로 내버려진 가게와 건물도 꽤 있다. ​ 그렇다고 주민들은 딱히 대안도 없다. 60~70년대를 소환한 스토리텔링이 그야말로 잊혀진 추억이 되지않게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곧 잊혀지고, 다시 외딴 섬으로 남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 육포, 쥐치구이 따위를 팔던 B씨는 “빨리 겨울이 지나고, 주말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수 밖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 표정이 후미진 시장 뒷골목의 스산함과 닮았다.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 귀국전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서의 현대성(現代性)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귀국전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서의 현대성(現代性) ​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은 1월 18일(토)부터 3월 15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을 개최합니다. 이번 <추사귀국전>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학예(學藝)의 특질인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現代性)’을 주제로,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 영남대박물관, 김종영미술관, 수원광교박물관, 이천시립월전 미술관, 선문대박물관, 일암관, 청관재, 일중문화재단, 개인 등 30여 곳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이 전시를 통해 현판, 대련, 두루마리, 서첩, 병풍 등 추사의 일생에 걸친 대표작은 물론, 추사의 글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서화미술 작가의 작품 120여 점을 볼 수 있습니다. ​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은 과천시, 예산군, 제주 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와 공동으로 2020년 1월 18일(토)부터 3월 15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에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이하 <추사귀국전>) 전시를 개최한다. ​ 이 전시는 2019년 6월 18일부터 8월 23일까지 개최된 동명(同名)의 전시를 한국에서 다시 개최하는 것이며, 예술의전당에서 전시를 마치면 제주, 예산, 과천에서 1년 동안 순회 개최된다. ​ 이 전시는 <같고도 다른(사이불사 似與不似) : 치바이스와 대화(대화제백석 對話齊白石)>(2018.12.05 ~ 2019.2.17 /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 이은 두 번째 한(韓)·중(中) 국가예술교류 프로젝트다. ​ 지난 중국 전시에서는 30여만 명이 관람하는 등 중국 대중과 학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파장은 국내 공공기관의 호응으로 이어져 지난해 9월 예술의전당, 과천시(김종천 시장), 예산군(황선봉군수),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고길림 본부장)는 ‘글로벌 추사 콘텐츠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 <추사귀국전>은 그 양해각서에 따른 첫 번째 결실이라 할 수 있다. ​ 2020년도 한해를 서울-제주-예산-과천으로 전국순회하는 <추사귀국전> ​ 이번 <추사귀국전>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학예(學藝)의 특질인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現代性)’을 주제로,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 영남대박물관, 김종영미술관, 수원광교박물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선문대박물관, 일암관, 청관재, 일중문화재단, 개인 등 30여 곳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다. ​ 이 전시를 통해 현판, 대련, 두루마리, 서첩, 병풍 등 추사의 일생에 걸친 대표작은 물론, 추사의 글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서화미술 작가의 작품 120여 점을 볼 수 있다. ​ <추사귀국전>을 개최하는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은 ​ “21세기 중국에서 확인된 19세기 동아시아 세계인(世界人) 추사 선생의 학예성과를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대중들이 새롭게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는 다짐을 밝혔다. ​ 한편 2월 13일(목)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추사국제학술포럼이 예술의전당 주관으로 개최된다. 이 행사에서는 이동국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큐레이터가 모더레이터로 나선 가운데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실장의 기조 강연을 시작으로 중국 측에서는 예신(叶欣), 푸치앙(傅强), 우구오바오(吴国宝)가 발표를 할 예정이다. 한국 측에서는 이완우, 허홍범, 정병규가 추사학예의 세계성과 현대성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 추사학예의 세계성과 현대성을 확인한 지난 중국 전시 ​ 그간 우리는 추사를 한국 안에서만 최고라고 해왔다. 이번 전시를 기획해나가는 과정에서 솔직히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사를 중국에서 알아줄까’하고 걱정을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기우였다. 한국보다 중국에서 100여 년의 간극을 일시에 허물며 추사가 살아 돌아와서 중국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 매일 5천여 명을 헤아리는 관람객들이 추사를 만났다. 문화예술계 지도자와 전문연구자, 서법가, 정치지도자와 관료는 물론 일반관람객 모두가 추사를 더 정확하고 진지하게 감상하고 토론하였다. 이런 광경은 좀처럼 한국의 서예 박물관 전시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 또 한국에서 추사학예를 ‘기괴고졸(奇怪古拙)’한 조형 미학을 특징으로 평가하였다. 하지만 괴(怪)의 본질인 현대성(現代性)을 간파해내기보다 추사체(秋史體)의 성취를 모화주의(慕華主意)의 산물이나 개인의 천재성이 강조된 나머지 신화처럼 여기기도 했다. 진위논쟁에 빠져 정작 추사체(秋史體)의 미학(美學)을 세계사적인 관점과 현대적인 미로 연결시켜 바라보지 못하였다. ​ <추사중국전>에서 추사의 <계산무진谿山無盡>을 본 우웨이산吳爲山 중국국가미술관장은 “글씨를 넘어서서 그림이다. 허실(虛實)의 미학을 극대화하면서 심미적으로나 조형적으로 현대적이고 추상적이다.” 라고 평가했다. ​ ‘아시아 문명과의 대화’ 일환으로 열린 <추사중국전>국제학술포럼에서 중국국가미술관 장칭[張晴] 부관장은 “추사는 글씨의 성인(서성, 書聖)이다. 이번 전시가 실증하듯 ‘경전(經典)’을 남김으로써 역사에 기여하고 있다. 왜 이제야 우리는 서성(書聖) 추사를 알게 되었는가.” 라고 만시지탄(晩時之歎)을 하였다. ​ 북방민족인 김정희는 성인(聖人)이다. 경전(經典) 창출을 통해 서법역사(書法歷史) 발전에 심대한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서법(書法)의 모국(母國)이라하는 중국으로부터 추사체(秋史體)가 비롯되었지만 추사는 당시 서법을 혁신(革新)하였다. 하지만 추사의 한계도 분명한데, 갑골문 금문의 연구실천은 오늘날 우리작가들의 몫이다. 우구오바오 吳國寶 중국미술관 소장작품부 서법분야전문 학예사/서예가 <추사중국전>의 가장 큰 성과는 중국 관람객과 대화함으로써 ‘추사는 세계이고 현대’라는 생각을 실증하였다는 점이다. 이와 상응하여 이번 <추사귀국전>은 오늘날 한국 관람객들이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추사 서예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자 한다. 19세기 동아시아의 급변하는 시공간의 지평에서 추사 글씨의 세계성과 현대적 미를 이번 전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 19세기 동아시아 서(書)의 패러다임을 뒤바꾼 추사체(秋史體) ​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 ​ 청나라 금석고증학이 19세기 발흥하여 동아시아 서(書)의 역사학은 첩학(帖學)에서 비학(碑學)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러한 때 추사와 청나라 문인인 옹방강, 완원의 한·중간의 교류는 학문과 예술의 일치를 뜻하는 학예일치(學藝一致)와 비학(碑學)와 첩학(帖學)의 융합을 뜻하는 비첩혼융(帖混融)의 결정체인 ‘추사체(秋史體)’를 창출할 수 있게 하였다. ​ 이런 추사체의 조형미학과 정신경계를 요약하면 기괴고졸(奇怪古拙)과 유희(遊戱)다. 하지만 추사 생존 당대에도 추사체의 괴의 미학에 대해서 비난과 조롱이 비등하였다. 추사는 이에 대해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라고 응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기교가 좋고 나쁨(공졸, 工拙)을 또 따지지 마라[非以書爲也. 工拙又不計也.]”라고 하고 있다. ​ 이러한 추사의 학예성취에 대해서 《청조문화(淸朝文化) 동전연구(東傳硏究)》 저자인 후지스카 치카시(藤塚鄰, 1879~1948)는 “(이처럼) 청조문화(淸朝文化)에 정통하고 새롭게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을 조선에 수립 선포한 위대한 공적을 이룬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고금독보(古今獨步)라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한다. ​ ‘반역적’ 성격과 큐비즘 성격이 있는 고금독보적(古今獨步的) 추사체(秋史體) ​ 전 중국서법가협회 주석이자 현존 중국최고의 서법가로 추앙받는 션펑(沈鵬, 1931~현재)은 “변혁의 중심에 있었던 김정희의 서법(書法) 작품은 강렬한 반역적(反逆的) 성격이 있다. ​ 특히 비(碑)가 첩(帖)으로 들어가는 모종의 ‘불협과 부조화(不協調)’의 성격 때문에 일반인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김정희의 서법에서 조선민족의 강렬한 독립과 자주(自主)와 자강(自强)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고 말했다. ​ 20세기 한국현대 서화미술의 토대인 추사체 ​ 이런 맥락에서 김종영의 추상조각, 윤형근의 획면추상, 손재형, 김충현의 비첩혼융(碑帖混融)은 추사체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선구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가 그간 20세기 한국의 문예를 식민지, 서구화라는 관점에서 전통과 현대가 단절되었다는 기존 시각을 탈피하는 것이다. ​ 다른 한편으로 이번 <추사귀국전>은 추사의 전통적·한국적 미학이 중국이라는 다른 공간과, 또 현대라는 다른 시대와 대화함으로써, 동아시아와 현대를 아우르는 공유자산의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 ‘학예일치’ ‘해동통유’ ‘유희삼매’ 3가지 키워드로 조명하는 추사의 ‘괴(怪)’의 미학 ​ 이번 전시는 ‘괴(怪)의 미학을 키워드로 ‘추사체’의 성격 전모를 ▲연행(燕行)과 학예일치(學藝一致) ▲해동통유(海東通儒)와 선다일미(禪茶一味) ▲유희삼매(遊戱三昧)와 추사서의 현대성 등 총 3부로 구성하였다. ​ <연행과 학예일치>에서는 해석 1) 옹방강, 완원으로부터 실사구시(實事求是) 관점의 경학(經學)과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을 수용하여 고예(古隷)로부터 역사와 서법이 녹아든 추사체를 완성해내는 것, 해석 2) 추사가 옹방강, 완원을 만나 실사구시(實事求是) 관점에서 해석한 경학(經學)과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을 수용하고, 고예(古隷)로부터 역사와 서법이 녹아든 추사체를 완성해내는 것을 보여준다. ​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실사구시잠(實事求是箴)>, <복초재시집(復初齋詩集)>, <소영은(小靈隱)>, <상량·상견(商量·想見)>, <문복도(捫腹圖)> 등 추사와 청조 문인과의 교유관계 핵심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임군거효렴경명(臨君擧孝廉鏡銘)>, <예학명임(瘞鶴銘臨)>, <배잠기공비제발(裵岑紀功碑 鉤勒本 題跋)>, <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鏡)> 등 추사체(秋史體)의 궁극인 고예(古隷)를 재해석한 작품과 <양한금석기>, <해동금석원>, <해동금석영기> 등 조·청(朝淸) 문인들의 금석학 연구 자료들을 통해서 서(書)가 학문의 전제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살펴본다. ​ <해동통유와 선다일미>에서는 제주 유배라는 극한의 실존에 서 유마거사(維摩居士)를 자처하면서 유불선(儒佛仙)을 아우르는 통유(通儒)이면서,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와 만나 선(禪)과 차(茶)를 하나로 승화시키는 추사의 정신세계를 보는 것이 관건이다. ​ <문자반야(文字般若)>, <칠불설게 도득문지(七佛說偈 都得聞之) 등게송(偈頌) 모음, <직심도량(直心道場)>, <영모암편배제지발(永慕庵扁背題識跋)>, <명선(茗禪)>,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 그리고 <부기심란(不欺心蘭)>, <향조암란(香祖庵蘭)>, <추사 소치 합작시화 ‘산수국’> 등을 전시하는데, 이들은 통유(通儒)와 서화일체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걸작들이다. ​ <유희삼매와 추사서의 현대성>에서는 비첩혼융(碑帖混融)의 ‘추사체’가 발산하는 불계공졸(不計工拙)과 천진(天眞)의 정수를 볼 수 있다. <계산무진(谿山無盡)>, <도덕신선(道德神僊)>, <순로향(蓴鱸鄕)>, <사서루(賜書樓)>, <판전(板殿)>, <완당집고첩(阮堂執古帖)>, <무쌍·채필(無雙·彩筆)>, <인고·폐거(人苦·弊去)> 등의 작품을 통해 추사체의 유희삼매 경지를 만나볼 수 있다. ​ 이와 동시에 김종영 윤형근 손재형 김충현 등 20세기 한국의 현대서화미술 대표작가들이 추사서를 통해 자신의 예술을 여하히 성취해냈는가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계산무진(谿山無盡)>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165.5x62.5cm 간송미술관 소장 <도덕신선(道德神僊)>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32.2×117.4cm 개인 소장 <판전(板殿)> 김정희金正喜(1786~1856) 1856 종이에 탁본 22.8×85.0cm 개인 소장 <유희삼매(游戏三昧)> 등 「완당집고첩(阮堂执告帖)」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18.0×414.0cm 김종영미술관 소장 칠불설게 도득문지’ 등 선시문 모음 ‘七佛说偈 都得闻之’等 禅诗文集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33.9×22.8cm 개인 소장 <향조암란(香祖庵蘭) 「난묵합벽첩(蘭墨合壁帖)」>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26.7×16.8cm 개인 소장 <무쌍·채필(無雙彩筆)>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각 128.5x32.0cm 일암관 소장 <명선(茗禅)>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115.2x57.8cm 간송미술관 소장 <문복도扪腹图> 정조경程祖庆(1785~1855) 1853 비단에 수묵 94.5×26.2cm 개인 소장 <임군거효렴경명(臨君擧孝廉鏡銘)>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86.0x46.0cm 개인 소장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옹방강翁方纲(1733~1818) 1817 종이에 먹 23.6×304.0cm 개인 소장 추사국제 학술포럼 ​ 시간 : 2020년 2월 13일(목) 13:00-18:00 장소 :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챔프홀 ​ 학술포럼 주최 예술의전당, 과천시, 예산군,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 书法博物馆首席学艺士李东拲 학술포럼 모더레이터: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큐레이터 이동국 ​ 한국 발표자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실장 이완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서예사) 허홍범 과천시 추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정병규 글와사대표, 북디자이너 ​ 중국 발표자 예 신 중국국가화원서법전각원 해외서법연구소 부소장 叶 欣 中国国家画院书法篆刻院海外书法研究所副所长 푸치앙 중국국가미술관 소장작품부 학예사/서법학박사/서예가 傅 强 中国美术馆藏品征集部书法家 우구오바오 중국국가미술관 소장작품부 학예사/서법학박사/서예가 吴国宝 中国美术馆藏品征集部书法家 ​ <추사귀국전> 전시구성 [제1부] 연행(燕行)과 학예일치(學藝一致) ​ 여기서는 추사가 북학(北學)의 핵심인 청대(淸代)의 경학(經學)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을 조선에 도입하여 역사(歷史)와 서법(書法) 두 방면으로 어떻게 연구/실천해서 학예일치(學藝一致)의 경지로 완성해내는지를 대표작품으로 보여준다. ​ 추사는 24세 연행(燕行)때 청조 학예계 거장인 78세 옹방강과 47세 완원으로 부터 ‘경술문장(經術文章) 해동제일(海東第一)’로 격찬을 받으며 두 분을 평생 스승으로 모신다. 그 후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모토로 편지지도와 문집(文集)· 금석문(金石文)학습을 통해 경학(經學)과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 서법(書法)을 연마하여 학예일치(學藝一致)의 경지를 일생에 걸쳐 구축하였다. ​ 추사의 경학은 “마융(馬融)과 정현(鄭玄, 한 대의 훈고학)을 두루 망라하고, 정자(程子) 주자(朱子, 송대 성리학)를 등지지 말라[博綜馬鄭, 勿畔程朱]”가 말해주듯 옹방강의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의 입장에 서있다. 금석고증학자로서 추사는 청조 학예방법론을 우리 역사현장에 적용시켜 일생동안 조선화에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 31세(1816)에 <북한산진흥왕순수비>조사를 시작으로 <경주무장비(慶州藏寺碑)>발굴은 물론「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錄)」과 『해동비고(海東碑攷)』저술하였고, 67세(1852) 북청(北靑) 유배(流配)시에는「석노시(石砮詩)」「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竟)」을 제작하였다. 또 이런 성과는 중국에서 유희해의 <해동금석존고>과 <해동금석원>, 옹수곤의 <해동금석영기>와 같은 조선 금석고증학 열풍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 추사는 왕법(王法)에 정통성을 둔 기존 서사(書史)를 뒤집은 완원의 <남북서파론(南北書派論)>과 <북비남첩론(北碑南帖論)>을 지남으로 왕법(王法)은 물론 그 이전으로 돌아가 서(書)의 근원인 북비와 한예를 하나로 녹여내면서 독자적인 비첩혼융의 추사체(秋史體)를 창출해내고 있다. ​ 얼마나 한예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한예(漢隸) 한 글자는 해서와 행서 열 글자와 맞먹는다.漢隸一字, 可抵楷行十字.”고 할 정도다. 특히 “예서(隷書)는 바로 서법의 조가(祖家)이고, 한예(漢隷)의 묘는 오로지 졸(拙)한 곳에 있음[隷書是書法祖家。漢隷之妙。專在拙處]”을 간파하고, 한예 중에서도 서한(西漢)시대 정(鼎) 감(鑑) 로(爐) 등(鐙)의 글자로 거슬러 올라가 추사체(秋史體)를 창출해내고 있다. ​ 요컨대 이러한 추사와 옹방강 완원의 일생에 걸친 학연과 묵연의 성과로 인해 한중교유 역사상 19세기는 가장 찬란한 황금기로 자리매김 되었다. ​ 주요작품은 <심중니·이명도(尋仲尼·以明道)> <추사·담계필담서(秋史·覃溪筆談書)>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박종마정 물반정주(博綜馬鄭 勿畔程朱)> <실사구시잠(實事求是箴)> <복초재시집(復初斋詩集)> <소영은(小靈隱)> <죽재·화서(竹斋·花屿)> <상량·상견(商量·想見)> <완원‘남북서파론’(阮元‘南北書派論)> <임군거효렴경명(臨君擧孝廉鏡銘)> <임원수원년경명(臨元壽元年鏡銘)> <예학명임(瘞鶴銘臨)> <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鏡)> <배잠기공비제발(裵岑紀功碑 鉤勒本 題跋)> <유득공시의도(柳得恭詩意圖)> <문복도> <송자하선생입연시(送紫霞先生入燕詩)> 등이다. ​ [제2부] 해동통유(海東通儒)와 선다일미(禪茶一味) ​ 정통 유학자(儒學者)인 추사는 유교(儒敎)는 물론 불교(佛敎)와 도교(道敎)를 아우르는 통유(通儒)로서 학문과 사상을 서예술(書藝術) 하나에 모두 녹여내고 있다. 특히 제주 유배 시기의 처절한 실존을 소동파(蘇東坡)를 사숙하여 학예(學藝)로 극복해내면서 해동통유(海東通儒)의 면모를 완성해내고 있다. ​ 추사는 55세(1840.6.22)때 동지겸사은부사(冬至兼謝恩副使)로 임명(任命)되었으나 윤상도옥사(尹尙度獄事)가 재론(再論)되면서 이미 망자가 된 부친 김노경이 탄핵(彈劾)되고, 자신은 제주도(濟州道)에 유배(流配)되었다. 제주유배시절 추사는 소동파가 그랬듯이 유마거사(維摩居士) 병거사를 자처하면서 자제소조(自題小照)에 “담계(覃溪)는‘고경(古經)을 즐긴다’라 일렀고, 운대(雲臺)는 ‘남이 일렀다 해서 저 역시 이르지를 않는다’라 하였으니, 두 분의 말씀이 나의 평생을 다한 것이다. ​ 어찌하여 해천(海天)의 입립자가 원우(元祐)의 죄인과 같은 고. 覃溪云嗜古經。芸臺云不肯人云亦云。兩公之言。盡吾平生。胡爲乎海天一笠。忽似元祐罪人”라고 할 정도다. 또 ‘문자반야(文字般若)’를 비첩혼융(碑帖混融)으로 실천해내면서 추사체(秋史體)를 왕성하게 실험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초의선사(艸衣禪師)와 유(儒)불(佛)을 넘나드는 교유를 통해 다선일미(茶禪一味)와 전다삼매(煎茶三昧)의 경지를 구축하였다. ​ 주요전시작품은 <문자반야(文字般若)> <무량수각(无量壽閣)> <‘칠불설게 도덕문지(七佛說偈 都得聞之)’등 게송(偈頌) 모음> <직심도량(直心道場)> <제해붕대사영(題海鵬大師影)> <관음경·팔중송(觀音經·八重頌)> <영모암편배제지발(永慕庵扁背題識跋)> <명선(茗禪)>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 <일로향각(一爐香閣)> <전다삼매(煎茶三昧)> <합병신천지(合丙辛天地) 우향각(芋香閣)> <부기심란(不欺心蘭)> <향조암란(香祖庵蘭)> <추사 소치 합작 시화‘산수국’> 등이다. ​ [제3부] 유희삼매(遊戱三昧)와 추사서의 현대성(現代性) ​ 추사는 해배 이후 강상생활·북청유배·과천시기에 비첩혼융의 굴신지의屈伸之義의 필획(筆劃)이 창출해내는‘괴(怪)’의 미학을 골자로 하는 추사체(秋史體)를 자유자재로 구사해내고 있다. 심지어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졸(工拙)을 또 따지지 마라[非以書爲也. 工拙又不計也.]”라고 하고 있다. ​ 추사체의 비난과 조롱에 대해서마저도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不怪。亦無以爲書耳]”고 응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추사체(秋史體)의‘괴(怪)’의 미학경계는 방정(方正)의 끝이자 기괴(奇怪)의 궁극지점이다. “구서(歐書)도 역시 괴목(怪目)을 면치 못했으니 구와 더불어 함께 돌아간다면 다시 사람의 말을 두려워할 게 있으리까. ​ 절차고(折釵股)·탁벽흔(坼壁痕) 같은 것은 다 괴의 지극이며 안서(顔書) 역시 괴이하니 왜 옛날의 괴는 이와 같이 많기도 한지요. 歐書亦未免怪目。與歐同歸。復何恤於人耶。如折釵股圻壁痕。皆怪之至。顔書亦怪。何古之怪。如是多乎哉。라고 추사는 말한다. ​ 추사체(秋史體)는 왕법(王法) 중심의 첩학(帖學)과 그 이전의 비학(碑學)이 시기별 혼융(混融)궤적을 그리며 다음과 같이 완성·창출되고 있다. ​ Ⅰ. 시체습용기(時體習用期)[24세 연행(燕行) 전후] Ⅱ. 옹방강/팔분예(八分隸)학습기(學習期)[3,40대] Ⅲ. 구양순(歐陽詢)/고예(古隸)재해석기(再解析期)[50세 전후] Ⅳ. 비첩혼융기(碑帖混融期)[55~63세 제주 유배(流配)] Ⅴ. 추사체(秋史體)완성기(完成期)[63~71세 해배(解配)이후] ​ 주요전시 작품은 <계산무진(谿山無盡)> <도덕신선(道德神僊)> <순로향(蓴鱸鄕)> <사서루(賜書樓)> <판전(板殿)> <완당집고첩(阮堂執古帖)> <칠언시사구 행서팔곡병(七言詩四句 行書八曲屛)> <청관산옥만음(靑冠山屋漫吟)> <무쌍·채필(無雙·彩筆)> <인고·폐거(人苦·弊去)> <왕사정 제중삼영(王士禎 齋中三詠)> 등이다. ​ 위의 작품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천진(天眞)이자 유희삼매(遊戱三昧)의 정신경계에 노니는 것이 추사체(秋史體)이다. 일체의 구속(拘束)에서 벗어난 대자유(大自由) 절대자유(絶對自由)의 경지인 것이다. 예술의 기원이 인간의 유희본능(遊戱本能)이라고 할 때 예술의 본령인 시서화(詩書畵)를 일체(一體)로, 융복합(融複合)으로 하나 되게 ‘유희삼매(遊戱三昧)’로 살아간 추사는 문자영상(文字映像)시대 인공지능(人工知能,AI)시대 오늘날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다. ​ 이런 맥락에서 김종영 윤형근 손재형 김충현 등 20세기 한국의 현대서화미술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서예는 물론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추사서의 조형과 미학 전통이 현대와 호흡하며 한국예술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도원에 핀 꽃 - 왕열

도원에 핀 꽃 Flower in Utopia ​ 전시일시: 2020년 2월 8일~ 2월 16일 전시장소: 한전아트센타[서울시 서초구 서초동1355] 1층 1,2전시실 ​ 왕열 ​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학 박사 개인전 62회 (중국,일본,독일,스위스,미국,프랑스 등)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한국미술작가대상 (한국미술작가대상 운영위원회) 단체전 520여회 ​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미술은행, 성남아트센터, 성곡미술관,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워커힐 미술관, 갤러리 상, 한국해외홍보처 한국은행, 동양그룹, 경기도 박물관, 한국종합예술학교 단국대학교, 카톨릭대학교, 채석강 유스호스텔, 호텔프리마, 천안시청, 천안세무서, 한남더힐 커뮤니센터 ​ 이미지 왕열 봄날의 명상,캠바스에 아크릴,90.9x72.7cm ,2019 작가 왕열은 <겨울나기> 연작과 같은 초기의 작업에서부터 최근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새’를 중심적인 소재로 등장시킨다. 이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새들은 복잡한 인간사(人間事)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의인화된 존재라고 한다. 그로인해 작품은 ‘새’들을 통해 우리네 삶의 다양한 형태를 거울처럼 들여다보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유토피아’로 일컬으며 작품에서 중층적인 장소로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 주지하였듯이 그의 근작들은 꾸준히 <유토피아>를 주제로 나타내는데 그 의미에 대한 이해는 어원을 통해 극명히 드러난다. ​ 이처럼 작품은 우리의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희노애락의 에피소드를 ‘새’를 통해 제시하였다. 그리고 고뇌와 즐거움이 교차하는 모습 속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통해 초월적 의미의 유토피아를 일깨운다. 실상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힐링(healing)’의 문화가 열풍이다. 너도나도 마음의 안식과 유토피아를 갈구하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작가는 진정한 전통적 태도를 기반으로 현대적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 이미지 왕열 116.5x91.0cm 2019 그것으로 작품은 평범한 현실 속에서 마음의 자유를 찾을 수 있는 휴식의 공간 자체로 기능하며, 동양미학 특유의 상승적 의미들을 되새기도록 만들고 있다. ​ 그리고 여기에서 왕열의 작품들은 소소한 이야기, 화면의 구성, 표현, 기교 등 모든 관점에서 전통화단의 고유한 가치를 현시대적으로 풀어내려는 고민이 도원에 핀 꽃을 통하여 얼마나 깊이 있게 응축되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

탐방취재 - 김민수 작가의 문화예술공간 몬딱을 찾아서 II

김민수 작가의 문화예술공간 몬딱을 찾아서 시즌-2 문화예술 콘텐츠를 만들다. ​ 공공디자인저널편집부 정희정 편집인 ​ 지난호의 시즌-1 감귤창고를 개조하여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김민수 작가의 시즌-2를 찾아간다. ​ 도시재생 뉴딜사업 어촌뉴딜 농산어촌지역개발사업등 관[官] 주도의 정책과 행정의 제도권 밖에서 결과를 이루어낸 민간전문가! ​ 김민수 작가와 문화예술공간 몬딱! ​ 문화예술공간 몬딱과 김민수 작가! ​ 그의 제주살이 행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지향하는 다양한 사업의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휴먼 웨어[HnW]의 전과정을 아우르는 실천적 선례이다! 이미지 문화예술공간 몬딱 서귀포 안덕면 감산리 210-4 번지의 폐감귤창고는 ‘문화예술공간 몬딱’의 이름을 가지고 재탄생되었다. ​ 70평의 넓은 공간은 갤러리, 피아노가 있는 소무대, 강의시설인 빔 프로젝트, 컴퓨터가 연결 된 대형 TV 등을 갖춘 다양한 복합문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 2019년 시즌2에서는 몬딱의 실내외 공간이 더욱 좋아졌다. 던&에드워드 페인트 회사의 후원으로 몬딱 외관과 실내가 감귤 창고의 감귤색인 노랑색으로 페인트 마감이 잘 되었다. 아울러 욕심을 부려 함께 채광이 잘 들어 올 수 있는 대형 유리문도 별도로 제작하였다. 또한 옛날 경운기트럭, 폐목선을 창고에 디스플레이하고, 실내에서 단체 강의가 가능한 테이블을 만들었다. ​ 이미지 문화예술공간 몬딱 다음은 이 공간을 활용 할 수 있는 문화예술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스마트폰 사진작가로서 많이 알려져 있고, ‘스마트폰 사진 잘 찍는 법’ 강의도 하고 있다. ​ 2018년 첫 번째로 내가 이주해 온 감산마을 이장, 부녀회장을 통하여 재능나눔으로 스마트폰사진 강좌를 열고, 팝아트, 커피 전문가와 함께 문화예술 강의를 함께 진행하였다. 그렇게 열린 강좌는 감귤농가인 감산리 마을에 색다른 문화예술체험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소통의 공간이 되어 갔다. ​ 그리고 주변에 다양한 재주를 가진 문화예술가들을 섭외했다. 바리스타, 스노클링, 목공, 작곡가, 가수, 팝아티스트, 서양화, 한국화, 공예가 등이 모였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문화예술 아트클래스를 만들어 서로의 재능을 나누기로 했다. 이미지 문화예술공간 몬딱 소 무대공간에서는 작은 음악회, 성악클래스, 각종공연, 한식요리가의 요리강좌 등을 열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갔다. 서귀포 서남부 지역은 서귀포시와 지역적으로 거리가 멀어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낮아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 그러나 시작했을 때의 의욕과는 달리 지속적인 강좌가 힘들어졌다. 상대적으로 작은 수강료는 강의를 하는 작가들에게 고충이었고,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넓고 높은 창고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이 공간의 냉온방 시설 설치는 전업작가인 나로서는 아직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이다. ​ 뜨거운 여름, 추운 겨울이면 강좌는 중단되고, 가을이면 1년마다 하는 나의 개인전 준비로 시간이 부족하여 강좌의 지속이 더욱 어려워졌다. 역시 한 개인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공간은 힘에 벅참을 느꼈다. 이미지 문화예술공간 몬딱 2018년 7월에는 ‘문화예술공간 몬딱’에서 만난 다양한 전문 재능인, 지역주민,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몬딱나누미 재능나눔 봉사단’을 발족하였다. 몬딱나누미의 슬로건은 ‘즐거울 락(樂), 도울 비(毘), 함께 공(共)’이다. ​ 럭비공처럼 통통 튀며 즐겁게 재능을 나누고 서로 도와 가며 함께 제주를 살아가자는 취지에서 만들었으며, 매월 1~2회 제주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하였다. ​ 어르신들 장수사진도 찍고, 마을 요양원 공연 봉사, 요리봉사, 보수정비 봉사 등 우리가 가진 다양한 재능을 나누고 있다. 또한 매년 몬딱나누미 단체전을 기획 전시하여 수익금은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하며, 2020년 1월 현재 약 40여 명의 재능나눔 봉사회원이 함께 하고 있다. 이미지 문화예술공간 몬딱 현재는 ‘동희동행’이라는 프로젝트로 집에서 사용 안하는 동전을 한 컵씩 모아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하는 나눔 봉사를 진행 중이다.

찬란한 문명의 빛 - 이집트<Egypt>문명을 통해 본 공공디자인 - 1편 소통

청운대학교 교수 정 희 정 디자인학 박사 Canon EOS 5D Mark II 1ㅣ30 F2.8 고대 이집트인들은 소통하고 기록하기위해 상형문자를 만들었습니다. ​ 그들이 소통하려고 했던 방법은 언어이기 전에 형상을 담은 그림문자였습니다. ​ 이집트의 상형문은 여러 부호를 한 줄로 늘어놓은 모양이며 글꼴의 형성 초기 단계부터 이미 그리기의 수준을 넘어서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상형문은 모양 자체를 넘어 새로운 공간 개념을 찾아내려는 인간의 시도였습니다. ​ 올해는 눈 구경하기가 어려운 겨울입니다. 그래도 겨울답게 영하를 오르내리고 있는 추운 날씨 속에 방학을 맞아 어디론가 기행을 나서고 싶은 마음을 다잡으며 데스크에 앉아 원고정리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 날씨가 춥다 보니 문득 더운 나라가 그립던 차, 과거의 기행 중 덥기로 악명 높았던 이집트를 떠올리며 10년 전의 이집트기행문을 펼쳐봅니다. 중동으로 향하는 저가 항공의 플라이두바이(Flydubai) FZ183편에 우리 일행은 8월의 무더운 여름날 22시 55분 두바이에서 이집트의 룩소르로 향하는 여름밤 비행기에 올랐다. 새벽 2시 무렵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도착 예정이다. ​ 공항 활주로에 내려 트랩을 걸어 내려오며 푹푹 찌는 더운 바람에 실려 퀴퀴하고 텁텁한 이집트만의 이국적인 냄새가 고고한 역사의 도시를 실감케 한다. Canon EOS 5D Mark II 1ㅣ50 F2.8 필자는 앙크수나문(Anck-Su-Namum)과 세티 1세의 총애를 받던 승정원 이모탭(Imhotep)의 금지된 사랑, 그리고 미이라와의 사투를 그렸던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영화 ‘미이라’를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 또한 프랑스 출신 이집트학 학자인 크리스티앙 자크(Christian Jacq)의 장편소설 ‘람세스’를 읽고 깊이 감동받았으며, 영국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여러 곳의 전시회에서 마주했던 이집트의 유물전의 잔상들이 남아있습니다. ​ 이로 인해 필자의 기억을 따라 그렸던 이집트는 세월이 켜켜이 쌓인만큼 퀴퀴한 냄새를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힘든 기행을 어떻게 다녔는지 신기하기도 합니다. ​ 이집트 기행을 다녀온 후 이듬해인 2011년 이집트는 반정부시위가 열리고 이후 유혈사태에 이르게 되어 여행금지국이 되었던 적이 있었고, 몇 년 후에는 우리가 이용했던 플라이두바이(FZ/Flyduvai)항공이 러시아 남부지역 로스토프나도우공항(ROV/Rostov-on-Don Airport)에서 비와 강한 바람이 부는 악천후 속에서 착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Canon EOS 5D Mark II 1ㅣ400 F7.1 룩소르 [Luxor]는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660여 km 떨어진 나일강(江)변에 위치하며 룩소르신전과 카르낙신전 왕가의 계곡이 있습니다. 룩소르신전은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건립하고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증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Canon EOS 5D Mark II 1ㅣ250 F8 현재 남아있는 고대 이집트의 신전 가운데 최대 규모인 카르나크 신전은 룩소르 신전과 매우 가까운 3km 지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2000년부터 건립을 시작하여 역대 왕에 의해 증개축이 되풀이되어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전은 신왕국 시대부터 1,500년 뒤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걸쳐 건립된 10개의 탑문 제19왕조의 창시자 람세스 1세로부터 3대에 걸쳐 건설된 대열주실 제18왕조의 투트모세 1세와 오벨리스크 람세스 3세 신전 등이 있습니다. 특히 높이 약 23m의 석주 134개가 늘어선 대열주실은 너비 약 100m, 안쪽 깊이 53m로서 안쪽의 하트셰프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와 함께 고대 이집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Canon EOS 5D Mark II 1ㅣ320 F9 기행문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2010년 8월 21일 섭씨 50도의 이집트를 찾았다. ​ 500리터 생수 두 병을 뒷주머니에 구겨 넣고 얇은 스카프로 얼굴을 돌돌 말아 가린 후 카메라 두 대를 어깨에 올리고 버스에서 내리면 마치 헤어드라이기의 뜨거운 바람이 내 얼굴을 향하고 있는 듯 뜨겁고 따가운 열기가 숨통을 죄어온다. ​ 말이야 찬란한 문명의 빛 이집트와 그리스를 통해 본 공공디자인기행이었지만 이러다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 로컬가이드는 우리 일행에게 2~3일 전에는 52도까지 올랐는데 지금은 그나마 시원해져서 다행이라고 격려합니다. ​ 숨막히는 더위의 이집트, 찬란했던 이집트문명과 파라오의 영광이 고스란히 간직된 유물에서 공공디자인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문명의 오딧세이로 명명되는 이집트기행의 첫번째 키워드로 소통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Canon EOS 5D Mark II 1ㅣ40 F3.2 소통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소통의 수단은 목소리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말[Speaking]의 역사는 점차 체계적인 틀을 갖춘 언어[Language]로 발전하게 됩니다. ​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적이라는 의미는 단순히 집단을 이루어 사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은 떼를 지어 사는 개미나 짐승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함께 모여 있어야 각각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는 하나의 생존 법칙에 의해 모여 사는 것입니다. ​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리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닙니다. 그 속에는 지성과 감성이 공존하고 다양한 사유를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 이와 같은 인간의 능력은 공동체라는 틀 안에서의 소통을 통해서만 길러지는데 우리가 즐겨보는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사랑과 배신의 감정, 다양한 책을 통해 접하는 지식과 성찰 등이 모두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정이라는 소집단에서 생활을 시작합니다. 가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경험하면서 자아가 생성되고 이후 인간은 성장함에 따라 개인 간의 소통을 넘어 집단생활에서도 소통의 힘을 발휘하게 되며 실제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고라(광장)에서 다양한 토론을 거쳐 의사를 결정했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의회라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고,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 그러나 사람의 말은 수많은 사람에게 똑같이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을 전승하기에도 시간적 육체적 어려움이 따랐고 그래서 문자[Text]가 탄생하였다고 합니다. 인간은 파피루스나 한지에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면서 소통을 기록하게 되는데 문자는 인간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후대에 전하게 되며 또한 보다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 Canon EOS 5D Mark II ㅣ1/250 F-5.6 이집트인들도 소통을 위한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을 것이며 그러한 결과들을 우리는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갑골문과 상형문은 그 발생지가 심상치 않다는 점외에도 닮은 점이 많아 지금도 둘의 연관성에 대한 호기심의 질문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적어도 4,000여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 그중에서도 가장 발전된 지식과 정보를 다루었던 사람들은 경제와 정치의 영향력 측면에서 리더 그룹에 속했는데 그들이 소통하려고 했던 방법은 언어이기 전에 형상을 담은 그림문자였습니다. 이집트의 상형문은 여러 부호를 한 줄로 늘어놓은 모양이며 글꼴의 형성 초기 단계부터 이미 그리기의 수준을 넘어서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상형문은 모양 자체를 넘어 새로운 공간 개념을 찾아내려는 인간의 시도였습니다. ‘성스러운 문자’상형문은 모양과 동시에 발음을 나타내기 위한 표음부호로도 사용되었고 이후 자연스럽게 표음문자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갑골문은 인간이 가진 ‘직관’의 존재를 인식했다는 점, 상형문은 인간이 가진 ‘논리적 사고’의 존재를 인식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 이렇게 보면 결국 ‘직관’과 ‘논리’로 나뉘는 동서양의 문화적 특성이 글꼴을 놓고 고민하던 원시 시대부터 서로 다른 싹으로 자라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이후 수천 년을 이어 내려가게 된 문자의 틀이 이미 잡혀있던 셈입니다. 동서양의 한자가 덩어리로서의 그림 글꼴이라는 것과 알파벳이 풀어쓴 표음부호라는 서로 다른 문자의 정체성은 이렇게 초기 단계에서부터 드러났습니다. Canon EOS 5D F-5 1/100s 기원전 8,000년 경, 이른바 ‘신석기 혁명’으로 문화를 건설하기 시작한 인류는 기원전 3,000년 경 도시를 건설하고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문명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기원전 2,000년 경이 지나 지중해와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기원전 1,100년 경, 에게 문명의 몰락 이후 도시가 파괴되고 문자가 사라졌던 ‘암흑시대’를 지나, 그리스인들이 알파벳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800년 경의 일입니다. 알파벳은 처음부터 그리스인의 창작물은 아니었고 동부 지중해 연안에 있던 페니키아 문자에서 발전된 것이라고 합니다. ​ 지중해 동부 지역에 비블로스, 시돈, 티루스 등의 도시국가를 만들고 지중해를 무대로 활발한 교역 활동을 펼쳤던 페니키아인들은 상인이었을 뿐 아니라 선진 문명을 서양에 전달하는 문명의 전달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활동으로 페니키아 문자가 자연스럽게 그리스로 전해졌고, 이후 모음이 없이 자음만 있던 문자를 그리스인들이 변형하였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모음을 표기하기 위해 아랍어 문자의 일부 자음인 A(알파), E(엡실론), O(오미크론), Y(윕실론)을 빌려왔으며, I(이요타) 등은 기존의 문자를 변형해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어 알파벳 24개 (자음17개, 모음 7개)가 완성되었습니다. ​ 알파벳의 사용으로 지식의 대중화가 가능해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사물이나 추상적인 관념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문자는 성직자나 귀족 등 소수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한자를 알려면 적어도 1,000자, 메소포타미아의 서기들은 600자 이상의 설형문자를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문자학자들은 알파벳의 발명이야말로 지식의 대중화를 가져온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합니다. 알파벳을 통해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가능해졌고, 다양한 소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 Canon EOS 5D F-6.3 1/160s - 2010년 8월 이집트 룩소르에서 편집인 신왕국 시대의 제18대 왕조에서 제20왕조까지의 왕들의 묘소로 만든 왕가의 계곡과 룩소르신전을 돌아본 후 우리 일행은 초경량 항공기인 MS356편을 이용해 17시 50분 룩소르를 출발하여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를 향한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디테크 게엠베하 <르노 마스터 캠퍼 밴>

최상의 편안함을 선사하는 디테크 게엠베하 르노 마스터 캠퍼 밴 ​ 자료 디테크 게엠베하(DTECH) 편안함과 이동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다. 1998년부터 유럽 상용밴 시장 1위를 꾸준하게 지켜온 100년 이상의 르노 상용차 노하우의 결정체입니다. 디테크 게엠베하의 르노마스터 캠퍼밴은 모든 여행자의 든든한 동반자입니다. ​ 시선을 사로잡는 유러피안 스타일의 세련된 외관디자인, 여유로운 실내공간과 고급 편의사양은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 독일의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유러피안 디자인이 만나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르노 마스터 캠퍼밴의 경쟁자는 다른 캠핑카가 아닙니다. 고객의 집, 펜션과 같은 더욱 편안한 경쟁자들과 견줘도 모자람 없는 훌륭한 여행의 동반자입니다. ​ 캠퍼밴은 실용적인 부분을 고려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고급 소재를 사용한 어닝은 따사로운 햇살과 여유로운 그늘을 동시에 즐길 수 있게 해줍니다. 외관에서 가장 큰 포인트가 되는 18인치 알로이휠은 캠퍼밴의 오너에게 시각적인 즐거움 뿐만아니라 향상된 주행감각을 제공합니다. ​ 고객의 요구는 저희의 나침반입니다. 관리하기 쉬운 화이트 컬러를 베이스로 제작되었지만 클라이언트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는 모든 컬러와 그래픽 디자인에 대응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가진 모든 기술과 열정을 고객에게 전달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마스터 캠퍼밴은 독일의 뛰어난 기술력으로 언제 어디서나 오너를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열정적인 장인들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 자료 디테크 게엠베하(DTECH) 진정성 있는 배려와 섬세함으로 전해지는 큰 감동 완벽을 더하는 노력으로 즐거움을 전달합니다. 최상급 소재와 디자인을 적용한 디테크 게엠베하의 “Camper van”은 다양한 친환경 소재를 적용해 제작하며 발생할 수 있는 오염에도 철저하게 대비합니다. 자료 디테크 게엠베하(DTECH) 월드 클래스 전륜구동은 동력효율과 쾌적한 실내 공간을 위한 탁월한 기술입니다. 섬세하게 조율된 맥퍼슨 스트럿은 차체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조율 할 뿐만아니라 실내로 유입되는 진동과 소음을 적절히 차단합니다. 쇼퍼드리븐 성향에 가장 적합한 전륜구동을 선택한 마스터 V.I.P 리무진의 승차감은 월드클래스라 자부합니다. ​ 2.3 dCi 디젤 트윈터보 엔진은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 (Renault Nissan Aliance)의 핵심 기술력이 집중된 결정체 입니다. 최적화된 출력과 연비는 운전자에게 만족감을 주며 이와 함께 설계된 6단 수동변속기는 운영비용에 대한 부담감을 현저하게 줄여줍니다. ​ 자료 디테크 게엠베하(DTECH) 강력한 주행성능을 조율하는 기술을 통해 뛰어난 노면 접지력으로 눈길 등 미끄러운 도로에서도 정확하고 안정적인 주행을 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오토 스탑 앤 스타트 (Auto Stop & Start)는 차량 정차시 자동으로 엔진을 정지시키고, 기어를 넣으면 다시 엔진이 작동되는 시스템으로 연료소모를 줄여줍니다. ​ 현대인의 생활영역인 도심 생활패턴에 맞춘 오토 스탑 앤 스타트 기능을 통해 훨씬 쉬운 운전을 도와줍니다. 자료 디테크 게엠베하(DTECH) 1. 어라운드 뷰 시스템(AVS) 2. 차선이탈경보 시스템(LDW) 3. 경사로 밀림방지 장치(HSA) 앞선 기술력은 다양한 bespoke옵션으로 나타납니다. 고객이 원하는 어떤 컬러와 그래픽 디자인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마스터 캠퍼밴의 카탈로그에는 일반적인 자동차의 컬러차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고객의 열정과 상상력이 저희를 가슴뛰게 만듭니다. 사진 디테크 게엠베하(DTECH) 사진 디테크 게엠베하(DTECH) 친환경 패브릭과 섬세한 장인정신으로 실내 공간을 재창조 했습니다. 세계 최정상급의 실내공간과 거주성을 만들 기 위해 경량화, 친환경 기술을 아낌없이 적용했습니다. 다목적 테이블과 시트를 사용해 자유로운 공간활용이 가능합니다. ​ IOT기술은 마스터 캠퍼밴을 스마트하게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차량의 다양한 정보들을 디스플레이로 볼 수 있으며 SNS를 통해 캠핑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여행의 든든한 동반자이자 집에서 느낄 수 있는 익숙함을 디테크 게엠베하 르노 캠퍼 밴에서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파주 무대공연종합아트센터

파주 무대공연종합아트센터 (주)디엔비건축사사무소 D&B ARCHITECTURE DESIGN GROUP 이미지 (주)디엔비건축사사무소 회사명 ​ ㈜디엔비건축사사무소 D&B architecture design group 대표자: 조도연 Cho Do Yeun 설계팀원명: 강연우, 김민수, 권민성, 박인수, 송준석, 이준구, 안지현, 이봉근, 안혜인, 정동명, 박현수 회사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 30길 47 한방빌딩 4F 회사 연락처: 전화 02.564.4675 팩스 02.564.4678 ​ 설계개요 ​ 대지위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31번지 외 1필지 대지면적: 50,000.00㎡ 건축면적: 11,576.79㎡ 연면적: 13,646.94㎡ 건폐율: 23.15% 용적률: 127.29% 규모: 지상2층 구조: 철골+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로이복층유리, 콘크리트 디자인블럭 발주처: 문화체육관광부 ​ 도시의 풍경 북측에는 전시체험을 중심으로 보관실, 제작실을 배치하여 하역에서부터 무대용품의 보관, 제작, 분해에 이르는 통합시스템을 구축하고, 보관실은 장래 증축을 고려하여 충분한 여유공간을 계획하였다. ​ 남측에는 편의 및 교육시설을 수공간과 함께 계획하여, 자연을 받아들이고 사람과 함께하는 열린 도시풍경을 연출하였다. ​ 비움과 채움 파주문화도시가 갖는 비움과 채움으로 자연의 풍경을 담아, 사람들이 모여 머무를 수 있는 무대 공연 종합 아트센터를 제안하였다. ​ 도시와 주변 건물을 향해 채워진 매스는, 기능적이고 체계적인 하역 시스템과 시설별로 연계되어,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건물 사이의 비워진 공간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 폭의 수채화로 파노라마 창에 담아내어 사계절의 변화하는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힐링공간으로 만들었다. ​ 무대공연의 성격과 개념 설정 및 과제해결을 위한 배치계획 과업의 범위와 내용, 관련계획 및 법령 등의 적용방안 이미지 (주)디엔비건축사사무소 무대공연의 대한 문헌 및 논문연구를 통한 물품의 보관 및 하역 시스템의 공간적 체계화 무대용품 보관시스템의 체계적 건축화 이미지 (주)디엔비건축사사무소 전시공간을 중심으로한 방문객의 편리한 관람 및 내·외부공간이 연계된 쾌적한 편의시설 계획 ​무대용품 보관시스템의 체계적 건축화 대지레벨을 활용한 전문가/물품영역과 일반 방문객영역의 층별 조닝계획 대지 지형의 레벨차를 활용한 배치계획 이미지 (주)디엔비건축사사무소 내·외부공간의 유기적 연계를 통한 이야기가 있는 외부공간계획 대지 지형의 레벨차를 활용한 배치계획 이미지 (주)디엔비건축사사무소 비움과 채움을 통하여 도시와 자연의 풍경이 있는 무대공연 종합아트센터 계획 기능별 시설별 분리로 새로운 도시적 풍경 형성 이미지 (주)디엔비건축사사무소 파주의 기후 및 친환경 분석을 통하여 자연친화적인 외부환경조성계획 기능별 시설별 분리로 새로운 도시적 풍경 형성 이미지 (주)디엔비건축사사무소 Panorama Stage "보관에서부터 제작, 전시의 기능에 따라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각각의 켜와 매스는 파주의 도시적 풍경인 비움과 채움의 연장이 되며, 이러한 파노라마 스테이지에서 사람들은 다채로운 행위와 자연의 풍경을 경험할 것이다."

좌절과 포기를 모르던 다산의 삶

새해를 맞았습니다. 소한도 지났으니 대한만 보내면 입춘이 옵니다. 새로운 각오로 불끈 용기를 내야겠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모두의 삶은 괴롭고 고달프며 힘들다고만 합니다. 정치야 말이 아니지만 경제도 어렵기만 합니다. 어떤 지역의 아파트값은 내릴 줄을 모르고 집 없는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은 멀어지기만 합니다. 누구를 만나도 살기에 편하다, 지낼 만하다, 이런 정도면 큰 불편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려운 세상이 지금에만 그럴까요. 인류가 삶을 시작한 이래로 언제 이만하면 살만하다, 이렇게 좋은 세상이 언제 있었겠는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던가요. 동양으로 보면 요순시대 아니고 언제 ‘선치(善治)’가 있었습니까. 그래서 다산이 남긴 글에도 “백세토록 잘하는 정치는 없었다(百世無善治)”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좋은 세상은 오기가 어렵고, 오더라도 좋은 세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없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런 나쁜 세상만 계속되었기 때문에 세상이 싫다고 입산해버리는 스님들이 나왔고, 가지기를 원하고 누리기를 원해서는 안 된다는 노장사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해(苦海)’, 바로 생로병사의 네 가지 고통은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이, 인간의 삶에는 의당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참으로 고해라고 여겨 포기하고 좌절해버리는 인간의 삶은 향상될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요즘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한국이라는데, 그만큼 좌절하고 포기해버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좌절의 끝이 바로 자살이기 때문입니다. 다산의 삶을 거울로 삼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 다산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도 많다. 그처럼 뛰어난 재주, 그만한 능력, 그처럼 높은 학식과 깊은 사상을 지녔으면서도 다산은 얼마나 억울한 삶을 보냈고, 얼마나 기막힌 세월을 살았던가. 그래도 그는 끝끝내 좌절하지 않았고 실의에 빠지거나 낙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힘들고 고단한 귀양살이에도 언제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인격을 닦는데 온갖 정성을 다 바쳤다. 낮을 짧다 여기고 밤을 지새우며 공부에 생을 걸었던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벼슬길을 차단당하고 온갖 수모와 고난을 무릅쓰고 ‘이제야 겨를을 얻었다(今得暇矣)’라고 생각하며 얻어낸 겨를을 ‘혼연스럽게 스스로 기뻐하였다 (遂欣然自慶)’라고 표현할 정도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용기를 발휘했었다. (『다산정약용 편전』서문) 라는 오래전의 글을 떠올리고 싶었습니다. 칠흑처럼 어둡고 괴롭던 전제군주제의 세상도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 세상으로 바꿔냈고, 잘못하는 독재자나 어리석은 통치자도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던 것도 우리 국민들의 힘이었습니다. 더디고 느리지만 역사는 발전해가고, 어둠에서도 빛은 발해 지기 마련입니다. 괴롭고 힘들지만 희망을 지녀야 합니다. 다산의 글에 ‘하늘은 새벽이 오려고 하지 않는다(天不更曙)’라고 하고는 끝내는 ‘이천년 긴 밤에 샛별이 뜬다(二千年 長夜曙星)’라고 말하여 공자·맹자 이후 경학의 새로운 연구로 이천년의 긴 밤을 밝은 새벽으로 바꾼다고 했습니다. 다산의 그런 희망을 우리도 지녀야 합니다. 좌절과 포기에서 희망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가는 새해를 맞아야 합니다.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1편-어떤 도시가 좋은 도시일까? 조용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前)광주광역시도시공사 사장 前)한국주거학회장 前)한국도시설계학회 부회장 前)중앙도시계획위원 ​편집인의 박사학위 논문 심사위원이셨던 조용준 교수를 오랜만에 광주광역시의 어느 커피숍에서 만났다. 오랜 시간 사람사는 도시를 위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혼자만 듣고 기억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 본 저널에 컬럼의 연재를 청하였다. 흔쾌히 허락을 받아 그로부터 좋은 도시의 조건들! 좋은 도시의 사례들! 사람냄새를 지운 아파트 공화국! 어떻게 하면 사람냄새나는 도시를 만들 수 있는가 들어보자. 시대를 막론하고 인류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은 도시이다. 도시는 가장 심원하고 지속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자연환경을 새롭게 바꿀 줄 아는 인류의 능력을 입증하는 증거물이다. 또 인류가 하나의 종(種)으로서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들어낸 최고의 세공품이다. -중략- 도시를 창조해온 5천 년에서 7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인류는 무수한 형태의 도시를 만들어냈다. 어느 도시는 처음에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대도시로 발전한 반면, 어느 도시는 처음에는 화려한 영광을 누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허허벌판에 몇 조각의 흔적만이 찬란한 도시였음을 보여 준다. -중략- 도시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도시들을 쇠락으로 이끄는 것일까? -중략- 도시들이 성장하고 쇠락하는 과정에는 모두 역사와 그 역사가 일으킨 변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도시, 역사를바꾸다. 조엘 코트킨저, 윤철희 역, 을유문화사- 좋은 도시의 조건들! ​ 좋은 도시란 다양한 가치관과 삶, 문화의 방식을 갖는 집단과 계층이 섞여 여러 형태의 인간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 중심도시다. 특히 가난한 사람이나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위압감이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면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도시다. ​ 이를 위해서는 쾌적하고 안전하게 걷는 즐거움을 주고, 다양한 만남과 비일상적 이벤트가 일어나는 가로 공간이나 광장 등 공공 공간이 많아야 한다. 또 아주 오래전 조상들이 그린 그림 속의 도시 모습을 지금도 그대로 만날 수 있는 역사성도 있어야 한다. ​ 특히 긴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삶의 흔적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실개천이나 언덕 등의 자연유산은 물론, 골목길이나 전통주택 등 생활형 유산도 그대로 존재해야 한다. ​ 뿐만 아니라 맥락과 대조, 도시미를 느낄 수 있는 도시경관도 있어야 한다. 이런 도시가 바로 누적적 다양성의 도시이다. 도시 다양성은 도시와의 대면성을 강화시키고, 걷고 싶은 도시가 되게 한다. 그래야만 도시가 경험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고, 이웃사촌이 되는 사람의 도시가 된다. 사진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도시모습 ‘뉴욕 타임즈’가 2017년 ‘꼭 가봐야 할 52개 장소’ 중 하나로 부산을 추천했었다. 부산에서는 도시 여행, 소도시 여행, 골목길 여행, 테마 여행 등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다양성이 있는 도시라야 좋은 도시라는 것이다. ​ 나는 이런 도시를 ‘사람 냄새가 나는 도시’라고 부른다. 도시에 대한 관점에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 사진 음악도시 비엔나. 앞 건물은 베르사유 궁전만을 화려하다는 쉘부른 궁전 좋은 도시의 사례들! ​ 좋은 도시로 꼽히는 곳은 어디일까? ​ 도시 어느 곳에서든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으며 여름이면 필름 페스티발이 열리고,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이 운영되거나 크리스마스 시장이 문을 여는 시청 앞 광장이 살아있는 비엔나, 수많은 역사적 이야기를 도시 곳곳에서 실감할 수 있는 베네치아, 도심의 가로 공간과 광장이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프라하, 줄지어서 관람을 기다리는 거대한 궁전이나 성당 대신 보이는대로 느끼면 되는 자연과 생활 친밀형 자산에서 잔잔한 감흥을 체험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길 잃을 걱정이 없는 작은 도시 체스키 크롬로프나 다카야마는 좋은 도시이다. ​ 대도시이면서도 현대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역사적 건물이 위압감을 주지 않고 골목길을 따라 흐르는 맑은 실개천에서는 물고기들을 볼 수 있고, 한번 빠져들면 절대 질리지 않는 전통이 만든 내면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는 교토나 사람의 공간으로 잘 디자인된 요코하마 역시 좋은 도시다.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도시를 도시답게 하는 건축이 있고, 건축을 건축답게 하는 도시가 있다는 점이다. ​ 특히 위압적 풍경의 도시가 아닌, 세심하게 잘 배려된 도시라는 점도 들 수 있다. 아울러 도시디자인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잘 디자인된 도시공간과 경관 등이 있다는 점도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도시는 거주민들에게는 자부심과 애착심을 갖게 해주고 방문객들에게는 감흥 있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 이들 도시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위대한 행위와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특히 개인적인 관심과 함께, 무엇보다 공동체적인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공동체적이라는 개념은 민주적 참여와 합의의 공동체 의식뿐만 아니라, 지나간 세대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시대적 혹은 역사적 공동체의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 좋은 도시는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음은 위에 언급한 도시들이 잘 말해 준다. 도시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애착이 있어야 가능하다. ​ 사람 냄새를 지운 아파트 공화국! ​ 한국의 도시는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린다. ​ 발레리 줄레조 프랑스 마른-라-벨레 대학교수가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때 군대 막사를 연상시키는 대단위 아파트를 보고 그 거대함에 충격을 받아 쓴 논문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 외국인 눈에는 우리 도시들이 그렇게 보였을 성싶다. ​ 우리 도시는 아파트가 출현한 지 50여 년 만에 ‘아파트 공화국’이 되어버렸다.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자동차가 도시를 지배하고, 사람들은 건물 안으로 내몰려 끼리끼리의 교류가 보편화되면서 전통적 커뮤니티와 문화는 붕괴되었다. 지역 문제에 대한 자율적 처리 능력은 상실되고 이웃사촌도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는데, 이 중심에 아파트가 있다. ​ 특히 유행처럼 이루고 있는 재개발사업은 사람 냄새 나는 단독주택이나 골목길 등의 동네는 물론이고, 언덕이나 하천 등의 자연환경을 파괴한 후 그 자리에 하늘을 가릴 것 같은 위압적인 아파트를 집어넣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담긴 누적된 다양성을 파괴하고 표층적 획일성의 도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 이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재정착이 어려운 사람들은 더 열악한 지역으로 떠나고 아파트는 여전히 소유 형태별, 규모별로 입지하면서 계층문화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서울대 전상인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초고층 아파트 거주는 성공의 징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지상의 고통과 절망을 못 느낀다. 특히 한국의 후진적 주거문화는 아파트 사회로의 행군으로 인해 이 땅의 평범한 시민, 미래 세대로 하여금 좌절하고 주눅들게 한다”고 역설했다. ​ 세계 도시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짧은 기간에 일어난 우리 도시의 변화는 쓰나미 그 자체였는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 대학 교수는 우리나라를 ‘지구상 1호 소멸 국가’로 지목했다. ‘2018 인 구절벽이 온다’의 저자 헤리 텐트는 “한국은 고령화로 인해 가장 타격을 받는 나라가 될 것인데도, 앞으로 닥칠 일을 아직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 인구감소에 대한 많은 경고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도시들은 찰스 몽고메리의 말처럼 ‘내일도 오늘 같으리라’는 현존주의 아래서 아파트 공화국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 일본의 경우 2040년이 되면 지자체의 절반(986개)이 사라지고 전 국토의 61%에서 사람의 흔적이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우리 신도시의 모델이었던 일본 다마 뉴타운은 오래전부터 빈집이 크게 늘고 있다. 영국의 런던 정경대(LSE) 도시연구소장 앤디 프렛 교수 말처럼 기존 도시가 경제성장을 향해 달려왔다면 앞으로의 도시는 불평등과 경쟁을 해소하는 창의 도시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후손들에게 사람 냄새 나는 도시를 물려줄 수 있다. ​ 도시디자인이 사람 냄새 나는 도시를 만든다! ​ 도시디자인은 사람 냄새 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도시와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 등의 다양한 요소들 사이에서 관계 디자인으로의 역할을 하며 공유나 공공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산업사회를 거치는 동안 우리 도시들은 땅의 사적 가치는 단군 이래 최대로 높아졌지만 관계성을 만드는 공공 관점은 줄곧 소홀히 해왔다. ​ 근래 인구감소와 함께 혈연가족 붕괴, 절연 생활, 고독사의 증가 등으로 관계성 강화가 더 크게 요구되고 있다. 개인 행복은 도시 행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이는 이웃사촌, 사회 가족, 사회자본, 공공공간이 만든다(몽고메리, 윤태경 역,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는 점에서 관계성의 강화가 중요한 것이다. ​ 더구나 인구감소가 더 심화되면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와 함께 도시재정 악화로 이어져 도시기반 시설의 관리와 운영 열악, 무거주지역출현, 환경부하증가 등의 문제점이 따르고 그에 따른 대응 비용도 크게 증가 할 것이다. ​ 돈 쓸 곳은 많은데 쓸 돈이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행동반경을 줄이는 집약형 도시구조로의 재편과 함께 이 거점인 도심 및 기성 시가지를 변화된 상황에 대응하는 기능 부여 및 강화가 필요하다. ​ OECD는 2012년 4월 발표한 ‘한국 도시정책 보고서’에서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대중교통 시설의 개선, 고령자 맞춤형 주택공급,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노인복지 서비스제공, 외국인 노동자를 사회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도시디자인 개선과 문화포용 정책의 실현 등이다. ​ 특히 2015년 이후 OECD 중에서 2번째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국가가 되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여러 도시정책을 통해 이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 또 OECD 중에서 7번째로 높은 상대적 빈곤 수준에 대비하는 유연한 도시전략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도시디자인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야 소자녀 고령화 시대에 사람 냄새 나는 도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