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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뉴타운 재개발 3구역

기획취재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한남뉴타운 재개발 3구역 한남대교 북단에 또 하나의 ‘강남’ 출현… ​ 주민들 삶의 여건 개선? …‘재개발 수익과 지대 극대화’에 무게 ​ 서울시 시공사 과열 경쟁에 입찰 무효, ‘내년 봄 다시 재입찰’ ​ 재개발 앞두고 세입자들 내쫓겨, ‘재개발식 도시재생’ 지적도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글쎄요... 아마 조합 측에서 재입찰하면 내년 봄쯤에나 (시공사가)결정되지 않을까요. 정확한 시기는 몰라요. 아마 조합원들에겐 날짜가 전해졌을 거예요.”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 근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귀찮다는 듯 “우리도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며 퉁명스레 말을 꺼냈다. ​ 이곳 한남뉴타운 재개발 3구역(이하 ‘한남 3구역’)은 시공사의 부당 행위와 서울시의 입찰 무효화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최근 언론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이 업소에도 이미 몇몇 언론사 취재진이 다녀갔다. 그 때문에 이곳 관계자는 “(찾아오는 기자들에게) 똑같은 소리 반복하는 것도 지쳤다”며 달갑잖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다음 입찰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아마 서울 최고의 인기 지역이 될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 그의 책상 뒤 벽면엔 ‘한남뉴타운 청사진’ 그림이 뒤덮고 있다. ​ 한남 3구역 재개발은 서울 시내에서 오랜만에 등장한 초대형 재개발지역이다. ​ 용산구 한남동 686번지 일대 약 39만㎡ 부지에 총 5,800여 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순천향대병원을 거쳐 이태원에 이르는 대사관로와, 이슬람서울 중앙성원~보광초등학교~도깨비시장~경의중앙선 한남역을 잇는 구간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 순천향병원 맞은편 외국 대사관들을 지나 조금만 주택가로 들어서면 마치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후미진 비탈길 골목이 이어진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세대주택들은 대부분 1970년대 초반 지어진 곳들이다. 남산 자락과 한강이 만나는 경사 지대에 동네가 들어서다 보니 가파른 언덕과 계단이 많다. ​ 낡은 벽돌 담장과 시멘트 블록, 칠이 벗겨지거나 녹이 슨 대문 등 한 눈에 봐도 퇴락한 듯한 느낌이다. 이 지역은 현재 알려지기론 사업비 7조 원, 공사비만 2조 원 가량에 달해 서울 시내 최대 규모의 재개발 사업으로 꼽힌다. 한남뉴타운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먼저 시공사 선정에 들어갔다. ​ 워낙에 규모가 크다 보니 애초 건설사들의 컨소시엄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단독 시공을 원하는 바람에 건설사들 간에 시공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현대건설, 대림산업, GS건설 등 이른바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는 건설사들이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조합원들을 상대로 혁신설계니, 이주비 혜택이니 하며 선심을 사기에 바빴다. ​ 현대건설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라 집주인이 재개발로 인해 내보내야 하는 세입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이주비를 이주비 5억 원 이상 무이자로 주겠다고 나섰다. 대림산업은 법규상 짓게 되어 있는 임대주택 중 800여 채를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놓았고, GS건설이 분양가 7,200만 원 이상을 보장한다고 했다. ​ 이는 법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도정법 132조에는 ‘(조합원에게) 재산상 이익 제공 의사를 표시하거나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서울시와 국토부는 입찰에 참가한 현대건설과 GS건설, 대림산업이 20건 이상 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 GS건설과 대림산업은 설계와 관련해서도 법을 어겼다. 도정법은 애초 사업비의 10% 안에서만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들 건설사들은 그 범위를 뛰어넘는 ‘혁신설계’안을 제시, 조합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서울시가 정한 ‘공공 지원 시공자 선정 기준’을 어긴 것이다. ​ 이에 서울시는 지난 달 과열경쟁과 함께 집 값 안정화 정책에 반한다는 이유로 입찰을 무효화하고, 검찰 수사까지 의뢰를 했다. 결국 한남3구역 지역주택조합은 이사회를 열고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권고를 받아들여 시공사를 재입찰하기로 결정했다. ​ 조합측은 문제가 되었던 건설사들의 기존 입 찰제안서 위반사항을 수정할 것인지, 아니면 서울시 방침대로 전면 재입찰을 할 것인지 고민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아예 재입찰을 하기로 하고, 그 시점을 내년 5월로 정했다. ​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상식적으로는 한남3구역 시공사를 선정하기 위해 재입찰을 진행할 경우 기존 입찰에 참여했던 현대건설, GS건설, 대림산업뿐 아니라 새로운 건설사도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얘기다. 이들 3사는 지난 수년 동안 이 지역에 대한 설계, 제안 등을 만들고 조합원들과도 깊숙하게 교감해왔다. ​ 이들이 입찰에 불참한다면 모를까, 이미 탄탄한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는 3사를 제치고 새로운 건설사가 선정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부동산업계의 견해다. 이 지역의 또 다른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기존 3사가 재입찰에 참여하면 다른 건설사들은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 정작 건설사 입장에서 보면 한남3구역의 수익성은 그리 기대할만한 것이 못 된다. 대지 가운데 건물의 면적, 즉 건폐율도 42%에 이르러, 서울 일반 신축 아파트의 2배 수준이다. 건물을 좀 더 촘촘하게 지을 수 없게 한 것이다. 또 한강변 고도제한으로 인해 초고층으로 짓기도 어렵다. 또 조합원 물량도 전체의 80%에 달하고, 그나마 분양가상한 제 적용을 받는다. 이곳 공인중개사 A씨는 “한 마디로 사업성이 낮다”면서 “그러나 건설사들에게 그런 점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했다. ​ 건설사들에겐 이 지역이 장차 더 큰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이번 한남3구역은 앞으로 한남뉴타운 사업을 추가로 수주하고, 강 건너 압구정 재건축사업을 따내기 위한 전초전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 지역은 강남 못지 않은 부동산 시장의 ‘블루칩’으로 꼽힌다. ‘한남동=부촌’이라는 막연한 인식까지 더해져서 최고의 노른자위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 그래선지 재개발을 앞두고 집값, 땅값도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치솟고 있다. 남산을 등지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어서 특히 그렇다. 일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대지 지분 33m²(10평)도 채 안 되는, 수십년 낡은 빌라가 평당 1억 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무효화 되긴 했지만, 시공사 입찰 마감 후에는 호가가 그 보다 수 천 만원 올랐다”고도 한다. 비슷한 면적의 허름한 다세대 주택 역시 매매가가 8억 원을 웃돈다. ​ 재개발 계획이 본격화되면서 곤혹스러운 건 세입자들이다. 도정법상 세입자들을 내보내기 위해선 집주인이 이주비(주거 이전비)를 제공해야 한다. 많게는 한 세대당 1천만~3천만 원에 달한다. 전에는 조합측이 부담했으나, 10년 전 도정법이 개정되면서 집주인의 몫으로 바뀌었다. 그렇다 보니 최근엔 “전세금 올릴 필요도 없으니, 그냥 나가 달 라”는 집주인들이 많다. ​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주거이전비를 아끼기 위해 세입자를 내쫓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설립되면서부터 이 지역 부동산 업소들 간엔 “집주인에게 주거이전비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임대차 계약서가 나돌기 시작했다. ​ 한남3구역은 기존 뉴타운사업의 무분별한 개발 방식을 개선코자 한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취지와 맥을 같이 한다. 애초 도시재생은 그 지역 역량을 강화하고, 새로운 기능을 도입·창출하며,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서울시는 도시재생을 통해 주민들을 축출하지 않고도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그림을 그려 보이고 있다. ​ 이에 비해 재개발은 그중 노후화된 주거환경 개선과 재정비에 초점을 둔다. 그런 점에서 한남3구역은 ‘개발’이 갖는 또 하나의 빛과 그림자를 고스란히 내면화하고 있는 현장이다. 최고의 한강조망권, ‘부촌’을 낀 저개발지역이라는 프리미엄, 그리고 고도의 지대(地代) 추구 가능성과 부동산 잉여가치를 내포한 지역이어서 더욱 그렇다. ​ 현대건설과 GS건설, 대림건설 등이 이들 지역을 최고의 전략요충지로 보고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현지의 또 다른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제 시공사가 확정되고, 개발이 이뤄지면 이곳 한강 북쪽의 새로운 ‘강남’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어쩌면 향후 서울 부동산 시장의 지형도를 전망할 만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 그런 점에서 한남3구역은 2020년형 재개발 모형으로 꼽힐 만하다. 다만 뉴타운 정책을 수정한 서울형 도시재생사업과는 거리가 먼 ‘재개발식 도시재생’으로 기억될 것이란 지적도 뒤따른다.

핫플레이스 - 서울 익선동

기획취재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핫플레이스-서울 익선동 100년 전 풍경, 21세기 액자 속 ‘환생' ​ 서울 종로 한복판 익선동,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주목 옛 한옥마을, 오래된 한옥 재활용 ‘빈티지’한 매력 발산 청년창업가, 예술인 몰려, 카페·공방·맛집·소품점·의상실 등 ​ 서울시, ‘건축자산 가치 공유와 시민 공감대 마련’ 심포지엄 ‘젠트리피케이션’ 최소화, 공공디자인의 축 ‘건축자산’ 재평가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서울 종로 한복판에 조선조 풍의 모습이 21세기형 액자 속에서 환생한 동네가 있다. ‘익선동 한옥마을’이다. 이곳은 오래되고 낡은 공간에 디지털 시대의 재기발랄한 숨결을 불어 넣은 듯, 이른바 ‘빈티지’한 매력이 한껏 빛을 발하는 곳이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익선동 한옥마을은 대부분 100년 전 지어졌다. 일찌감치 한옥의 매력으로 주목받은 북촌과 달리 낙후된 채로 방치됐다. 그러던 어느 날 공방과 카페, 옷가게 등 청년창업가들이 모여들면서 불현듯 옛것과 초현대식 기호가 공존하는 핫플레이스로 격상되었다.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로 나와 곧장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익선동 한옥마을이 나온다. 이곳 골목은 건장한 성인 남성 두 명이 나란히 서면 가득 찰 정도로 비좁다. 골목 양옆으론 한옥을 개조해 ‘예스러움의 미학’을 뽐내는 맛집과 카페, 소품점들이 이마를 나란히 하며 얼굴을 내민다. ​ 익선동 입구에 있는 오래된 여관은 호텔풍 카페로 다시 태어났다. 카페, 베이커리, 갤러리, 바로 이루어진 복합문화공간으로 인기를 끈다. 또 다른 가게들은 대부분 한옥의 틀을 그대로 살렸다. 허름했던 한옥 문간방은 비디오 가게로 치장되었다. 세월의 손때 묻히며 초라했던 판자 대문은, 낡은 그대로 스마트한 양문 도어로 거듭났다. ​ 공방이나 카페, 의상실 등은 담장을 허문 곳이 많다. 허문 자국과 공간은 그대로 멋들어진 창문이 되었다. 허름한 한옥 안마당은 스마트한 매장으로 변신했다. 구수한 옛 이야기가 서린 툇마루는 세련된 응접실이 되었다. 자취생이나 어느 병약한 문학도의 기약 없는 꿈이 맴돌았을 문간방은 캐노피 달린 테라스가 되었다. 카페, 무비홀, 영화감상실, 의상실, 맛집 등등이 모두 그런 식이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모던걸, 모던보이의 데자뷔를 즐길만한, 개화기로의 타임슬립도 빼놓을 수 없다. 추억의 ‘만홧가게’도 그때 그 시절의 그런 음영을 소환한다. 유리도어로 바꾼 옛 대문 간엔 다양한 장르의 만화책을 과시하듯, 이마에 ‘만홧가게’ 간판이 앙증맞게 걸려있다. 더욱 아득한 타임머신의 진미를 선보이는 곳도 있다. 포토존까지 갖춘 의상 대여솝이 그런 곳들이다. 이곳에선 개화기 의상을 빌려주기도 해 익선동의 묘미를 한층 더해준다. 익선동은 그처럼 특별한 볼거리와 느낄 거리를 안겨주는 도심 속 이색지대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애초 익선동 일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 최초의 부동산 개발자’ 로 통하는 독립 운동가 정세권 씨가 조성했다.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종로통에 일본식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았다. 친일파에게서 익선동 건물과 땅을 사들인 그는 골목골목에 도시형 한옥을 지었다. ​ 1900년대 초 ‘신식’으로 개발된 이 동네는 소박한 서민의 삶과 화려한 화류계의 삶이 공존했다. 당시 익선동은 ‘요정 골목’으로 유명했다. ​ 지금은 이비스호텔이 들어섰지만 ‘국내 1호 관광요정’ 오진암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인 1950년대 3대 요정(삼청 각·오진암·대원각)으로 이름을 떨쳤다. 종로통을 휘어잡았다던 김두한에 이어 제3공화국 실세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드나들던 단골집이기도 했다. ​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때의 ‘단물’이 빠진 듯, 익선동은 점점 비어가기 시작해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몇 해 전 비싼 자릿세에 홍대 등에서 쫓겨온 예술가와 청년창업자들이 익선동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0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한옥 보전 등을 이유로 개발계획을 부결한 후 3~4년 익선동 골목에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대거 모여들면서 지금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 그러나 익선동의 전성기 역시 언제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요즘 땅값이 다시 오르고 있는 익선동은 매물이 거의 없을 정도다. 맛집 상권이 유명세를 타면서 임대료도 올랐다. 건물주들은 날로 임대료를 올리고, 인심도 각박해지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망령이 이곳에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 이대로라면 임대료가 끝없이 치솟고, 세입자들이 밀려나고, 그 자리를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이 메울 것이다. 그 결과는 익선동 전성기의 종말이다. 다시 예전의 쇠락한 신세가 될 게 뻔하다. 그게 싫다면 건물주와 주민들, 그리고 정책 당국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 건축가가 들려주는 ‘익선동’에 대한 이야기… 서울시, ‘건축자산 가치 공유와 시민 공감대 마련’ 심포지엄 ‘젠트리피케이션’ 최소화, 공공디자인의 축 ‘건축자산’ 재평가 ​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도시 공간자산 내지 공공디자인의 축으로서 건축자산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심포지엄이 지난 12월 6일 열렸다. ​ 이날 서울시는 서울역사박물관(1층 야주개홀)에서 ‘건축자산 가치 발굴 및 지역재생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는 특히 서울 익선동과 을지 커피한약방, 공간자산 운영, 건축자산 활용사례 등을 주제로 한 것이다. ​ 최근의 익선동 등의 사례에서 보듯, 오래된 장소와 공간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건축물의 원형 또는 일부를 활용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변화시켜 도시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도시 명소화가 날로 주목을 받고 있다. ​ 이미 서울의 북촌, 서촌, 익선동, 성수동 등에서도 한옥 등 근·현대 건축물과 옛 골목길 등을 살린 지역재생과 문화 복합공간으로 조성되어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날 발제자와 참석자들은 “한옥 등 건축자산이 밀집한 오래된 도시와 지역 재생에서는 시민, 지역주민과의 공감대가 중요하며 경제적 가치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재생정책 추진이 바람직하다.” 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 이를 위해 오래된 건축물과 장소의 가치를 살려 명소화와 재생을 이루어 낸 건축주, 건축가, 지역활동가가 공간자산 재생과 활용사례가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 이 자리에선 특히 ‘건축자산의 가치 재인식과 활용’이라는 주제로 ‘익선동 사례로 본 건축자산의 가치와 활용’(김선아 에스에이케이 건축사무소 소장)이 부각되었다. 또 ‘을지커피한약방 등 오래된 건축물의 보전활용’(커피한약방 강윤석 대표), ‘지역 중심 공동체의 공간자산 운영사례’(협동조합 Tium 정혜영 대표와 임완주 활동가), ‘서촌창고, 한옥 스테이등 건축자산을 플랫폼으로 활용한 지역 활성화 사례’(지랩 노경록 대표) 등이 소개되었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김기호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한옥 등 건축자산의 보전 활용 정책과 연구에 참여해 온 우동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윤인석 성균관대학교 교수, 이영아 대구대학교 교수, 정유승 서울주택도시공사 도시재생본부장, 이기배 서울시 한옥건축자산과장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 한편 서울시는 지난 8월 건축자산에 대한 조사·관리·활용을 위한 실천과 제와 전략을 담은 시 최초의 종합계획인 ‘건축자산 진흥 시행계획’을 공고했으며 2022년까지 실천과제별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중이다. ​ 이에 따르면 한옥은 물론 근·현대 건축물 등 오래된 건축물이 일방적인 규제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자산화의 기회라는 인식 전환의 계기와 함께 규제보다는 ‘적극적 활용을 지원’ 방식으로 추진한다. ​ 시민에게는 자발적 의사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옵션을 제공함으로써 역사·문화 보전이 일방적 규제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아닌 ‘자산화’의 기회라는 인식 전환과 동시에, 건축자산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재생을 이끄는 자산이자 거점 역할을 하도록 최대한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 서울시는 “최근 도시재생정책의 패러다임이 오래된 장소와 공간의 가치 재인식과 재생거점으로 활용 전환되고 있는 만큼, 서울 전역으로 건축자산 지원정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툴루즈 로트렉 展

Henri de Toulouse-Lautrec ​툴루즈 로트렉 展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 후기인상주의 화가이자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전시회가 2020년 1월 14일부터 5월 3일까지(96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 이번 툴루즈 로트렉 전은 국내에서 선보이는 로트렉 의 첫번째 단독전으로, 그리스 아테네에 위치한 헤라클레이 돈 미술관(Heraklei don Museum)이 소장하고 있는 15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며, 전시작품 모두가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툴루즈 로트렉은 19세기 후 반,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와 밤 문화의 상징 물랭 루즈 등을 무대로 파리 보헤미안의 라이프 스타일을 날카롭게 그려낸 프랑스 화가이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포스터, 석판화, 드로잉, 스케치, 일러스트 및 수채화들과 로트렉의 사진 및 영상, 이 시대의 생활용품 등은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을 19세기말 생동감 넘치는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과 물랭 루즈로 안내해 줄 것이다. ​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 중, ‹제인 아브릴 Jane Avril, 1893›, ‹아리스티드 브뤼앙 Aristide Bruant in his Cabaret, 1893› 등 포스터 작품들과 ‹배에서 만난 여인 The Passanger from Cabin 54, 1895› 등 석판화 작품들, 연필과 펜으로 그린 스케치 작품들, ‹르 리르(Le Rire)›, ‹라 레뷰 블랑슈(La Revue Blanche in 1895)› 등 잡지에 게재된 그래픽과 풍자 일러스트 등은 화가 툴루즈 로트렉을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19세기 말 파리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 La Belle Épo que)의 상징들이기도 하다. ​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로트렉의 미술작품 뿐만 아니라 로트렉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과 미디어아트, 당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그의 일러스트 등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으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회이다. 이번 전시회는 2007년부터 그리스와 미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순회 전시 중이며, 이번 서울 전시회는 14번째 전시이다. ​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툴루즈 로트렉은 19세기 후 반,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와 밤 문화의 상징 물랭 루즈 등을 무대로 파리 보헤미안의 라이프 스타일을 날카롭게 그려낸 프랑스 화가이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포스터, 석판화, 드로잉, 스케치, 일러스트 및 수채화들과 로트렉의 사진 및 영상, 이 시대의 생활용품 등은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을 19세기말 생동감 넘치는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과 물랭 루즈로 안내해 줄 것이다. ​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 중, ‹제인 아브릴 Jane Avril, 1893›, ‹아리스티드 브뤼앙 Aristide Bruant in his Cabaret, 1893› 등 포스터 작품들과 ‹배에서 만난 여인 The Passanger from Cabin 54, 1895› 등 석판화 작품들, 연필과 펜으로 그린 스케치 작품들, ‹르 리르(Le Rire)›, ‹라 레뷰 블랑슈(La Revue Blanche in 1895)› 등 잡지에 게재된 그래픽과 풍자 일러스트 등은 화가 툴루즈 로트렉을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19세기 말 파리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 La Belle Épo que)의 상징들이기도 하다. ​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로트렉의 미술작품 뿐만 아니라 로트렉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과 미디어아트, 당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그의 일러스트 등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으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회이다. 이번 전시회는 2007년부터 그리스와 미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순회 전시 중이며, 이번 서울 전시회는 14번째 전시이다. 툴루즈 로트렉은 그가 주로 활동했던 프랑스 파리나 19세기말의 시대를 넘어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다. 37년의 짧은 생애동안 5,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로트렉은 몽마르트의 작은 거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이기도 하다. I don't belong to any school. I work in my corner. I admire Degas. ​ 나는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는 내 멋대로 그림을 그릴 뿐이다. 하지만 나는 에드가 드가를 존경한다.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툴루즈 로트렉의 삶과 작품 세계 1864. 11. 24 ~ 1901. 9. 9 ​ 벨 에포크 La belle époque (1871 ~ 1914) ​ 1871년, 보불전쟁(Franco-Preussen War)이 끝나고 프랑스에는 모처럼의 평화와 풍요가 찾아온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대로 불리는 ‘벨 에포크’가 활짝 열리는 순간이었다. 파리에는 산업과 예술과 문화가 번창했다. 파리의 상징 에펠탑(Eiffel Tower)이 세워지고, 최초의 파리 지하철이 개통됐다. 무엇보다 벨 에포크를 대표하는 예술 분야는 미술이었다. ​ 피카소, 샤갈, 모딜리아니, 칸딘스키 등 유럽 각국의 화가들이 파리로 모여들었고, 예술 표현이 굉장히 자유로워졌다. 다양한 서양미술 사조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탄생했고, 활짝 꽃을 피웠다. 그들 중에서도 인상주의 화가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다. ​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에드가 드가, 폴 세잔, 반 고흐, 폴 고갱, 오귀스트 로댕 등 서양미술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화가들이 모두 이 시기에 활동한 작가들이다 ​ 20세기 그래픽 아트, 포스터의 탄생 ​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이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건, 18세가 되던 1882년 파리로 이주하면서부터다. 아카데미 화가인 레옹 보나(Leon Bonnat)의 화실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학문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 그러나, 얼마후 보나가 화실을 닫자, 역시 아카데미 화가인 페르낭 코르몽(Fernand Cormon)의 화실로 옮겼다. 이곳에 몇 년간 적을 두고 미술공부에 전념했지만, 로트렉은 에드가 드가나 화실에서 사귄 친구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세계를 동경했고, 진정으로 그들을 스승으로 생각했다. ​ 1884년, 로트렉은 몽마르트(Montmartre) 언덕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몽마르트는 1880년경에 이르러 보헤미아니즘(Bohemianism),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의 중심지로 부상한 지역이다. 로트렉은 이곳을 근거지 삼아 화랑과 미술관을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토론하고, 작업실과 모델을 함께 쓰는 등 세기말 파리의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즐겼다. ​ 이 시기 로트렉은 나비(Nabi)파 화가인 피에르 보나르나 에두아르 뷔야르, 후기인상주의 화가인 반 고흐 등과 자주 어울렸지만, 어떤 예술 유파에도 휩쓸리지 않았다. 그는 이론이나 운동보다 천부적인 감각과 재능으로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근본적으로 로트렉은 야외의 자연 빛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인상주의와는 달리, 실내의 인공 조명을 선호했다. 이런 로트렉의 화풍은 물랭 루즈의 실내 조명 아래서 그린 모델들의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 1889년, 몽마르트에 댄스홀 물랭 루즈(Moulin Rouge)가 오픈했다. 물랭 루즈는 열자 마자 바로 파리의 명소가 되었고, 유명 인사들이 드나드는 최고의 사교장이었다. 물랭 루즈의 개업은 로트렉의 작품세계가 큰 변혁을 맞는 계기가 된다. 로트렉에게 이 물랭 루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자 아뜰리에였고 그곳에서 펼쳐진 공연들과 사람들은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 로트렉은 지정석을 두고 매일 밤 이 물랭 루즈를 드나들면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그림에 담았다. 로트렉에게 그림은 매일매일의 삶을 기록하는 일기장과도 같았다. 로트렉은 사람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눈과 빠른 손놀림으로 그가 만난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 1891년 가을, 로트렉이 제작한 포스터 ‘물랭 루즈, 라 굴뤼(Moulin Rouge, La Goulue)’는 로트렉을 일약 파리의 유명인사로 만들어 준 작품이었다. ​ 로트렉은 지금까지의 18세기적 포스터를 개념이 전혀 다른 대담한 표현과 기법으로 20세기적 그래픽으로 바꿔 놓았다. 이 포스터를 계기로 석판화(Lithography)기법을 이용한 걸작 포스터와 판화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로트렉 은 벨 에포크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 ​It is fair to say that without Lautrec, there would be no Andy Warhol. ​ 로트렉이 없었다면 앤디 워홀은 없었을 것이다. - 미국,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천재화가 로트렉의 고독한 생애 ​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이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건, 18세가 되던 1882년 파리로 이주하면서부터다. 아카데미 화가인 레옹 보나(Leon Bonnat)의 화실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학문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 그러나, 얼마후 보나가 화실을 닫자, 역시 아카데미 화가인 페르낭 코르몽(Fernand Cormon)의 화실로 옮겼다. 이곳에 몇 년간 적을 두고 미술공부에 전념했지만, 로트렉은 에드가 드가나 화실에서 사귄 친구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세계를 동경했고, 진정으로 그들을 스승으로 생각했다. ​ 1884년, 로트렉은 몽마르트(Montmartre) 언덕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몽마르트는 1880년경에 이르러 보헤미아니즘(Bohemianism),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의 중심지로 부상한 지역이다. 로트렉은 이곳을 근거지 삼아 화랑과 미술관을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토론하고, 작업실과 모델을 함께 쓰는 등 세기말 파리의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즐겼다. ​ 이 시기 로트렉은 나비(Nabi)파 화가인 피에르 보나르나 에두아르 뷔야르, 후기인상주의 화가인 반 고흐 등과 자주 어울렸지만, 어떤 예술 유파에도 휩쓸리지 않았다. 그는 이론이나 운동보다 천부적인 감각과 재능으로 자기 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 근본적으로 로트렉은 야외의 자연 빛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인상주의와는 달리, 실내의 인공 조명을 선호했다. 이런 로트렉의 화풍은 물랭 루즈의 실내 조명 아래서 그린 모델들의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 아리스티드 브리앙/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 /1893 | Lithography | 138×99cm 제인 아브릴 / Jane Avril / 1893 | Color Lithography | 129×93.5cm 물랭 루즈, 라 굴뤼 / Moulin Rouge, La Goulue / 1891 | Color Lithography | 170×118.7cm 앰배서더 카바레의 아리스티드 브뤼앙 / Ambassadeurs.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 / 1892 | Color Lithography | 138×96 cm Au Pied Du Sinaï(표지) / 1897 | 조르주 클레망소의 책 시나이 산기슭에서 Elles / 1896 | (석판화 연작 中) | Color Lithography Cavalier / 1879 - 1881 | Ink Drawing Le Jockeye / 1899 | Color Lithography | 51.1 x 35.5 ㎝ Polaire (Le Rire 잡지) / 1895 | Color Lithography | 26.2 x 12.2 ㎝ ​

탐방취재 - 김민수 작가의 문화예술공간 몬딱을 찾아서

김민수 작가의 문화예술공간 몬딱을 찾아서 시즌-1 제주 감귤창고가 ‘문화예술공간몬딱’이 되다 ​ 공공디자인저널편집부 정희정 편집인 ​ 귀한 것은 스스로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과연 그럴까? 그랬다! 김민수 그는 제주 흑우의 기운을 늘 믿고 있었다. 흑우의 눈은 그에게 말한다고 한다. ​ 관[官] 주도의 정책과 행정의 제도권 밖에서 결과를 이루어낸 민간전문가! 김민수 작가와 문화예술공간 몬딱! 문화예술공간 몬딱과 김민수 작가! 그의 제주살이 행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지향하는 다양한 사업의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휴먼웨어[HnW]의 전과정을 아우르는 실천적 선례이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제주 감귤창고가 ‘문화예술공간몬딱’이 되다 제주를 찾아온 전업 작가의 꿈 ​ 2016년 12월 1일, 서귀포 이중섭창작스튜디오에 입주 작가 8기(1년)로 선정되어 제주에 왔다. 그동안 작업했던 제주 흑우의 울음소리에 운명적으로 이끌려 온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 그전까지만 해도 제주도는 나에게 여행지이거나 사진 작업 차 잠시 들르는 곳일 뿐이었다. 오래 머무를 수도 없고 이주는 더욱이나 경제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저 잠깐, 남들처럼 동경만 하다 마는 곳이었다. ​ 어느새 작업실 입주 8개월째로 접어들면서 내게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꿈꾸기 시작했다. 제주에 정착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다양한 예술 작업이 가능한 주거 공간이 필요했다. ​ 2017년 11월 31일로 1년간의 입주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이중섭창작스튜디오’를 나와 제주에서 작업과 주거, 둘이 동시에 가능한 공간을 마련과 경제적 현실을 고려해 오래된 감귤 창고를 하나 구해보기로 했다. 사진 김민수작가/제주흑우 사진 김민수작가/제주흑우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하지만 창고 찾기는 너무나 순진한 꿈이었다. 제주의 많은 창고는 이미 다양하게 개발이 되어 있고, 지난 2~3년간 폭등한 제주의 부동산 가격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가 되어 있었다. 사실 전업 작가를 선언한 지금, 제주에서의 자립도 문제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 우연히 제주 흑우 사진을 찍으면서 운명적으로 제주도에 발붙인 지금, 그동안 먼 날의 목표로 두었던 그림 작업에 매진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일반 주택보다는 넓은 작업 공간이 필요하다. 그림을 그리고, 제주 흑우 갤러리도 겸하면서, 그곳을 많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키워나가기를 소망한다. ​ 제주 지인들이 종종 그랬다. “일부러 찾지 마세요. 귀하게 찾는 것은 언젠가는 스스로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과연 그럴까? 반신반의하며 6개월을 제주도에서 꿈만 그리고 있었다. 난 제주 흑우 사진을 찍으며 제주 흑우의 기운을 늘 믿고 있다. ​ 작업실에 걸려있는 흑우의 눈이 내게 말한다. ‘우보천리(牛步千里), 우직한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가라.’ 흑우의 기운이 미쳤음일까? ​ 어느 날 내가 바라는 그런 창고가 찾아왔다! 서귀포 안덕면 감산마을에서 감귤 창고로 사용하던 것인데,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제법 큰 창고이다. 일주도로와 근접하고 있으나 일대가 움푹이 낮게 자리 잡아 사람들 눈에는 금방 안 들어올 형세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총 대지는 350평에 창고는 70평으로 넓은 실내에다 천장도 높고, 외부 주차 공간도 넉넉하다. ​ 한때 감귤 창고로, 최근에는 건축자재 창고로 사용한 공간에는 잡다한 집기와 자재 따위가 남아 있다. 천장이 높고 내부가 넓어서 환기는 좋겠지만, 겨울 추위는 어떨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꿈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 2019년 12월 '문화예술공간몬딱' ​ 2019년 현재 감귤창고는 지속된 작업 속에 새롭게 업사이클링되어 이제는 문화예술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전업 작가의 개인 작업실이 아닌 모두가 함께하는 문화예술공간을 만들어 가는 게 또 하나의 나의 꿈이다. 하지만 전업 작가인 개인이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공간은 결코 쉽지 않았다. 지금부터 지난 2년간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문화예술공간몬딱’ 이름을 짓다 ​ 이름을 지었다. ‘몬딱’은 제주어로서 표준어 ‘몽땅’이라는 말과 같다. 서서히 제주어에 익숙해지면서 흔하게 듣는 이 단어가 궁금해서 제주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 하지만 표준말인 ‘몽땅’과는 같으면서도 다른 하나의 차이점이 있었다. ‘몽땅’은 대상이나 사물을 가리킬 때 쓰지만 ‘몬딱’은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을 때에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제주어로서 ‘여기 우리 몬딱 모였쪄!’ 이렇게 사용된다. 나는 이 공간이 나의 작업실을 떠나, 모두 함께하자는 의미에서 이 제주어를 바탕으로 ‘문화예술공간몬딱’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잇다_나누다_즐기다’의 슬로건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고, 지식과 재능을 나누고, 문화와 예술을 즐기다 라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자 했다. ​ 창고에 ‘문화예술공간몬딱’ 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이제 이곳을 만들어 가야 한다. 70 평이나 되는 공간의 안팎에 전 임차인들이 남기고 간 쓸모없는 건축자재와 쓰레기 따위가 널브러져 있다. 결코 쉽지 않은 대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문제들이 차츰차츰 해결되기 시작했다. ​ 제주에 홀로 온 나는 사람들과 관계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점차 사람들은 친구가 되고 형님이 되고, 동생이 되면서 전업 작가인 나를 여러모로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 경제적 여유가 없는 나에게 청소를 도와주고, 냉장고를 갖다주고, 사용하지 않는 장작 난로 및 필요한 물품들을 가져다주고, 때로는 중고물품을 구입하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감귤창고를 업사이클링하여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창고 시멘트 바닥은 직접 에폭시 작업도 하고, 천장에 조명과 벽면에 갤러리 레일 작업을 하여 작품을 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제주살이하면서 생전 처음 해보는 작업이 많았다. 바닥 에폭시 작업도 결코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우여곡절 속에 ‘문화예술공간 몬딱’은 2018년 시즌 1로 완성이 되었다. ​ 1월에는 던&에드워드 페인트 회사 대표가 지인의 소개로 몬딱을 방문하여 건물 지붕 및 내, 외벽에 페인트 도색작업을 선뜻 후원해 주기로 했다. 새해부터 너무나 큰 감사한 선물이었다. ​ 외벽은 감귤창고를 연상시키는 노란색으로, 실내는 갤러리이므로 흰색으로 도색하는 작업을 2개월에 걸쳐 마무리했다. 그렇게 색부터 단장된 ‘몬딱 시즌 2’가 시작되었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2018년 문화예술공간몬딱 - 시즌1

오리엔탈(Oriental)+유럽(Europe)의 문화가 공존하는 자유로운 질서의 도시 홍콩

청운대학교 교수 정 희 정 디자인학 박사 ​ Canon EOS 5D F-13 1/30s 일찍이 서구 문명이 자리 잡은 곳이라 마음의 부담감이 없으며, 여러 가지 문화가 있으며 특히 영국을 가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영국의 문화와 한가로이 차를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좋다며 홍콩에 살고 있는 지인이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 2층 버스 및 노면전철의 전면광고를 통해 움직이는 광고가 오히려 홍콩만의 매력 있는 도시공간으로 기억되며 그곳에서는 번잡함 속에서의 자유로운 질서와 복잡함 속에서도 여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이제 시위가 막을 내리고 예전처럼 평화롭고 자유로운 질서가 정착되길 기도합니다. ​ Canon EOS 5D F-2.8 1/200s "홍콩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습니다. 홍콩의 영역 내에서만 국가의 입법, 사법 집행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속지주의에서 발단되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홍콩과 중국의 역사적인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840년 시작된 아편전쟁으로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당시 중요한 식민 무역항 역할을 했으며 이후 국 제 금융 중심지가 되기도 합니다. ​ 1997년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하나의 국가 안에 두 개의 제도가 공존한다는 ‘일국양제(一國兩制)’와 홍콩인에 의한 홍콩의 통치라는 ‘항인항치(港人治港)’의 고도자치제도(高度自治制)가 유지되어 왔습니다. ​ 홍콩 반환 시 50년 간은 현 체제를 유지한다는 ‘50년 불변(50年不變)’도 보장되고 있습니다. ​ 영국적인 생활문화에서처럼 빵 문화와 밀크티가 보편적으로 생활화되어 케이크, 에그타르트, 스콘, 애프터눈 티, 빅토리아피크, 빅토리아 하버, 맥레호스 트레일, 2층 버스, 트램 등 교통수단과 낯익은 곳곳의 장소에서 영국 양식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영국식 호칭으로 불리는 2층 건물(Centre) 엘리베이터(Lift) 지상층(Ground Floor) 등 오리엔탈과 이국적인 유럽풍의 감각적인 두 모습의 조화는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 홍콩에 빠질 수 없는 자랑스러운 건축물로 홍콩센터, 우주박물관, 예술관, 시계탑,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호텔 건물들이 저마다 감각을 자랑하며 조화를 이루어 멀리서 바라보는 홍콩의 낮과 야경은 우아함과 불빛에 감탄을 자아내게도 합니다. ​ 상점들과 대형 쇼핑몰이 꾸준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변화 속에 홍콩은 매번 반복되는 시간 속에 본연의 중국 모습과 잘 어울리며 조화를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 서양문화에 일찍 개항하고 중국 본연의 모습이 배어있는 역사를 지닌 홍콩, 마카오, 칭다오, 상하이 등의 도시는 서양의 건축문화와 함께 혼합된 문화적 특색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Canon EOS 5D F-7.1 1/200s "마치 물감통을 펼쳐둔것처럼 현란한 색채의 도시 홍콩은 전체 면적 가운데 임지가 21%, 목초지와 관목 지역이 50%, 경작지와 양어장이 9%를 차지하여 토지자원이 매우 부족한 상태로 산을 개간하고 바다를 메워 육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Canon EOS 5D F-4 1/125s 담수자원도 매우 열약하여 다란융[大榄涌]과 촨완[船湾] 등지의 대형 저수지에 모아둔 빗물에 의존하였으나 공업 및 일반 용수로 사용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물에 대한 인식이 깨끗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홍콩인들은 음식 문화에서 허락할 수 있는 습관들을 가지고 있는데 식사 전에 뜨거운 물이 담긴 그룻에 각자 놓인 수저와 젓가락을 담아 휘저으며, 개인위생 상태를 확인하여 식사를 시작합니다. ​ 마시는 물 한잔도 소중히 여기는 홍콩인들은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차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시내 중심가의 수 많은 유명 호텔의 라운지에서는 오후가 되면 홍콩시민들이 티를 즐기는 모습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 다양한 방식으로 홍차를 마시는데 홍차만 진하게 우려내어 마시는 것과는 달리 홍콩은 오랜 세월 영국의 지배를 받아오며 영국의 다양한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홍콩식으로 혼합되어 독특한 양식으로 발달된 것들도 많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따뜻한 우유를 타먹는 밀크티를 홍콩사람들은 즐겨 마신다고 합니다. ​ 홍콩에 살고 있는 지인은 일찍이 서구 문명이 자리 잡은 곳이라서 마음의 부담감이 없으며 여러 가지 문화가 있으며 특히 영국을 가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영국의 문화와 한가로이 차를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좋다며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Canon EOS 5D F-9 1/500s 복잡한 골목길에 들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람들의 행렬에 이끌려 가다보면 에스컬레이터를 만나게 됩니다. 홍콩 정부에서 건설한 교통체계로 홍콩 센트럴(中环, 중환)과 미드레벨(半山区, 반산구)을 잇는 다수의 에스컬레이터 및 무빙워크로 센트럴 지역과 주변 거주 지역의 교통 체증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1987년에 제시되어 1994년 10월 15일에 개통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입니다. ​ 시내 주변의 쇼핑몰과 소호거리가 잘 연결되어 있는데 총길이 800m로 출발지에서 종착지까지 소요시간은 20분이며 아침 출근시간인 오전 6시에서 10시까지는 에스컬레이터가 위에서 아래로 작동하고 출근시간이 지나면 오전 10시20분부터 밤12시까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로 바뀌는 세계에서 가장 긴 옥외 에스컬레이터로 헐리우드 로드와 캣스트리트, 만모사, 소호거리를 지나가게 됩니다. Canon EOS 5D F-6.3 1/250s 한때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었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의 배경이되기도 한 이 영화는 내용보다도 1995년 당시 그 시대에 파격적인 영상미와 아름다운 화면과 연출로 많은 화제를 모았던 작품으로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어” “감정이 풍부한 수건” 등 통통 튀는 대사와 마마스 앤 파파스의 명곡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을 배경음악으로 세기말 신세대들의 감정적 반향을 불러일으켜 홍콩을 잘 아는 사람들 사 이에서는 지금도 사랑받는 장소로 자주 찾는다고 합니다. ​ 홍콩에 밤문화의 즐길거리중 하나로 ‘란 콰이퐁’ 소호거리는 골목들에 즐비한 아기자기한 유럽풍 스타일 샵들과 각종 음식점, BAR, 레스토랑 골동품 현지분위기가 물씬 나는 상점들이 모여있으며 쇼핑이 끝난 관광객들과 홍콩시민들이 퇴근길에 지나가게 되는 거리입니다. ​ 인산인해인 골목길을 들어서면서 때로는 옆걸음으로 때로는 기다렸다 통행하는 좁은 골목길은 필자에게도 인상 깊게 기억되어 있습니다. Canon EOS 5D F-9 1/320s "독일의 공습에 건물의 앞모습만 남아 사연 많은 홍콩의 시내를 밝히는 마법처럼 아름다운 성바올 세인트폴 대성당 인근은 화려한 밤 조명과 레이져 쇼가 펼쳐지는 홍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 섬세한 프레스코화 양식의 건축물, 조화로운 계단과 광장은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기다란 계단에 앉아 어느 누군가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기는 평화로운 장소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인들이 식민지배를 끝내고 마카오를 중국으로 반환할 때 자국에서 가져온 돌을 깔아 만들었다는 물결무늬 모자이크 노면은 우연중에 건축물과 상점에서 눈길을 옮겨주는 재미있는 관광자원이 되기도 합니다. ​ 밝은 하늘아래 연노랑 건물과 진초록 성당이 포르투갈의 지배를 오래 받아서인지 아직까지 많이 남아있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광장 주변에 남아 유럽양식의 건축물들이 장엄한 느낌과 분수와 벤치 주변의 까페들과 어우러져 다양한 축제분위기를 연출시켜며 이색적인 풍경들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 홍콩은 150여 년간 영국의 통치를 받으면서 서구의 문물과 제도가 정착되었습니다. 특히 서구식 자본주의에 기초한 상업 금융 등 서비스 산업이 고도로 발달하였고 주민의 상당수가 이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 사회체제와 제도는 서구화된 반면 주민들의 의식 구조와 가치관은 동양적인 요소가 많이 잔존해 있습니다. 사회보장제도와 공공주택 임차제도가 잘 구비되어 있긴 하나 빈부격차가 비교적 크며 소득대비 세금부가가 비중이 큰 편으로 주택 가정문화가 빈약하게 발달하여 개인 소유의 주택보유율이 적다고 합니다. ​ 홍콩의 고층빌딩들은 숲속을 연상케 할 만큼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서 있습니다. 땅이 좁고 인구는 많아 대부분의 고층건물이 주상복합으로 상업과 주거공간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 주상복합과 임대주택, 다세대 주거문화가 발달하였으나 주거공간이 비좁아 실내에 세탁물을 널 수 있는 다용도 공간이 없는 구조가 많아 옷가지와 빨래 등을 널어 창문을 열어두고 지내는 모습들을 손쉽게 볼 수 있습니다. Canon EOS 5D F-10 1/500s 외식문화가 발달하여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음식보다 길거리의 로컬음식들과 음료들을 다양하고 저렴한 가격에 접할 수 있는데 이러한 환경으로 인하여 길거리에 홍콩인들의 생활패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스트릿거리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Canon EOS 5D F-3.2 1/200s 홍콩은 풍수지리에 관련하여 민감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개인의 길흉화복은 물론이고 상업적인 용도로도 풍수를 거론하기도 합니다. ​ 지역과 장소에 영향을 주는 자연 에너지의 흐름이 좋으면 부와 건강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풍수가 건물 디자인을 결정하고 바꾸는건 기본이며 일부러 건물 주위에 물이 흐르게 하거나 어항을 만들기도 하고 빌딩 입구에 의미있는 사자상을 세우기도 한다고 합니다. ​ 풍수지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홍콩은 미신적인 예로 홍콩의 다리 밑 해피밸리 지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싫어하거나 저주하고 싶은 상대를 두고 종이를 태우면 저주가 내린다고 믿기도 한다고 합니다. ​ 중국 땅이라고 하지만 서구 문명이 일찍이 자리 잡은 곳이라서 서양의 느낌이 많은 홍콩은 여러가지 멋진 문화가 있지만 굳이 영국을 가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영국의 문화가 묻어나 있으며 홍콩의 밤은 골목골목 들어선 유럽풍 레스토랑과 BAR, 골동품 상점 등이 어우러져 소통의 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Canon EOS 5D F-6.3 1/160s 철저한 자유시장 경제체제, 3차 산업 위주의 산업구조와 높은 대외의존도, 아시아의 국제금융 중심지인 홍콩의 공항에서 처음 만나는 홍콩의 공공디자인 시각매체들은 시인성과 주목성을 잘 나타내고 있었으며 기둥구조물에 통합 설치된 곡선형 안내정보대와 고채도의 픽토그램으로 주목성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 공항 내 특성에 맞게 삼각형 폴형의 방향유도 사인으로 여러 방향에서 정보 확인이 가능하도록 배려하고 빠르게 이동하는 통로공간에 이용자의 동선을 고려하여 사선으로 배치한 광고사인 시스템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 특히, 노후된 건물외부나 구조물을 가리는 넓은 판형의 옥외광고물들은 홍콩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 있는 광경으로 건축물의 파사드에 타공판넬을 전면에 마감하고 사인시스템을 배치하여 노후된 건축물의 미관개선 및 홍보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으며 2층 버스 및 노면 전철의 전면광고를 통해 움직이는 광고가 오히려 홍콩만의 매력 있는 도시공간으로 기억되며 그곳에서는 번잡함 속에서의 자유로움과 복잡함 속에서도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이제 그만 시위가 막을 내리고 예전처럼 평화롭고 자유로운 질서가 정착되길 기도합니다."

디테크 게엠베하 [르노 마스터 VIP 리무진]

​ 최상의 편안함을 선사하는 디테크게엠베하 르노 마스터 VIP 리무진 ​ 퍼스트클래스의 품격을 지상에 구현하다. 1998년부터 유럽 상용밴 시장 1위를 꾸준하게 지켜온 100년 이상의 르노 상용차 노하우의 결정체입니다. 디테크 게엠베하의 르노마스터 VIP리무진은 고객님의 편안하고 안전한 여행을 책임지겠습니다. ​ 시선을 사로잡는 유러피안 스타일의 세련된 외관디자인, 여유로운 실내공간과 고급 편의사양은 고객님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 퍼스트클래스로 표현되는 최상의 편안함은 더이상 하늘 위에서만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디테크 게엠베하와 함께라면 지상에서도 최상의 편안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유러피안 디자인이 만나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자료 디테크 게엠베하(DTECH) ​ V.I.P 리무진 전용 Champagne gold Color 페인팅 그릴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차체 윈드실드 부분과 보닛에 적용된 같은 컬러의 래핑과 함께 럭셔리한 이미지를 구성합니다. 어둠속에서도 빛나는 보석, 마스터 V.I.P 리무진을 소개합니다. ​ V.I.P 리무진은 Obsidian black Color의 차체와 Gold Color의 래핑을 적용해 럭셔리한 인상을 전달합니다. 또한 블랙컬러로 도색된 19인치 옵션 알로이휠은 차체와 Chic한 이미지를 만들며 carbon fiber 부품들과 함께 마스터 V.I.P 리무진을 완성합니다. ​ 마스터 V.I.P 리무진은 독일의 뛰어난 기술력으로 언제 어디서나 오너를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열정적인 장인들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진정성 있는 배려와 섬세함으로 전해지는 큰 감동 완벽을 더하는 노력으로 즐거움을 전달합니다. 최상급 소재와 디자인을 적용한 디테크 게엠베하의 “OTTOMAN”모델과 프리미엄 럭셔리는 지향하는 “MASSTIGE”모델 두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료 디테크 게엠베하(DTECH) 자료 디테크 게엠베하(DTECH) 월드 클래스 전륜구동은 동력효율과 쾌적한 실내 공간을 위한 탁월한 기술입니다. 섬세하게 조율된 맥퍼슨 스트럿은 차체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조율할 뿐만 아니라 실내로 유입되는 진동과 소음을 적절히 차단합니다. 쇼퍼드리븐 성향에 가장 적합한 전륜구동을 선택한 마스터 V.I.P 리무진의 승차감은 월드클래스라 자부합니다. ​ 2.3 dCi 디젤 트윈터보 엔진은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 (Renault Nissan Aliance)의 핵심 기술력이 집중된 결정체 입니다. 최적화된 출력과 연비는 운전자에게 만족감을 주며 이와 함께 설계된 6단 수동 변속기는 운영비용에 대한 부담감을 현저하게 줄여줍니다. 자료 디테크 게엠베하(DTECH) 강력한 주행성능을 조율하는 기술을 통해 뛰어난 노면 접지력으로 눈길 등 미끄러운 도로에서도 정확하고 안정적인 주행을 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오토 스탑 앤 스타트(Auto Stop & Start)는 차량 정차시 자동으로 엔진을 정지시키고, 기어를 넣으면 다시 엔진이 작동되는 시스템으로 연료소모를 줄여줍니다. ​ 최적화된 설계에 스마트한 IOT기술이 접목된 르노 마스터 V.I.P 리무진은 어떤 조건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낼 수 있습니다. 자료 디테크 게엠베하(DTECH) 차량 통합 IOT기술은 운전자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아주 작은 실수도 없애줍니다. 와이드 뷰 사이드 미러는 훨씬 확장된 시야각을 확보하여 사각지대의 범위를 줄여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 어라운드 뷰를 지원하는 IOT시스템은 간편하게 차량 인포시스템에서 접근할 수 있으며 거대한 차체를 컴팩트하고 스마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1. 어라운드 뷰 시스템(AVS) 2. 차선이탈경보 시스템(LDW) 3. 경사로 밀림방지 장치(HSA) 앞선 기술력은 다양한 bespoke옵션으로 나타난다. 고객이 원하는 어떤 컬러와 그래픽 디자인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마스터 V.I.P 리무진의 카탈로그에는 일반적인 자동차의 컬러차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량생산되는 몰개성한 컬러차트로 고객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방해하지 않고 색상을 정하기 때문이다. 사진 디테크 게엠베하(DTECH) 최상의 나파가죽과 섬세한 장인정신으로 실내 공간을 재창조 했습니다. 손이 닿는 모든곳이 퀼팅처리된 가죽으로 마감되었으며, 고급 요트데크에 사용되는 하이테크 우드를 사용한 바닥은 일반적인 자동차와는 확연히 다른 럭셔리함을 제공합니다. 피톤케어와 냉난방 시트는 탑승자에게 최적의 거주성을 제공합니다. 추후 뛰어난 보안을 자랑하는 이동식 오피스로의 변신이예정되어 있습니다. 회의실 내부의 대화가 외부에서 들리지 않게 차단하는 첨단 기술을 마스터 V.I.P에 적용할 예정입니다.

하남위례도서관

Hanam Wirye Library 하남위례도서관 ​ 회사명 (주)종합건축사사무소선기획 / 대표자: 이용민 ​ 설계개요 발주처 : 하남시립도서관 대지위치 : 하남시 학암동 90-17 일원 대지면적 : 1,500㎡ (공원전체면적:19,977㎡) 건축면적 : 1,025.38㎡ 연면적 : 2,230.95㎡ 건폐율 : 6.04% 용적률 : 11.38% 규모 : 지상3층/지하1층 구조 : 철근콘크리트 외부마감 : 로이복층유리, 화강석, 점토벽돌 주차대수 : 12대 이미지 (주)종합건축사사무소선기획 이제 오늘날의 마을 도서관은, 책을 읽고 지식을 얻는, 독서실과 같은 단순하고 한정된 공간 활용을 넘어, 일상적인, 편안한, 복합적인, 그리고 우연한 소통과 다양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다중적인 장소를 지향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위례신도시의 공원을 품은 대지 안에, 공원의 일부로서 시민들의 우연한 만남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소통의 장으로서의 도서관을 제안하고자 했다. ​ 푸른 공원 안에서 도서관이 독립된 건물로 부각되기보다는, 공원 안의 하나의 시설물로서 주변과 조화되며,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편안하게 접근하고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일상적인 생활공간의 연장으로서의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 ​ 이미지 (주)종합건축사사무소선기획 1, 2층은 공원과 연계되어 휴식, 문화, 이벤트의 장이 되는 활동적인 공간으로 구성하고, 상부는 공원을 바라보는 심플한 형태의 단일한 매스로 상징성을 부각하고자 했다. ​ 도서관의 기능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만나고 소통하며, 함께 체험하는, 복합적인 용도의 ‘마을의 거실’로서 기능하고, 일상생활 안에서 우연한 만남과 사건이 넘치는 소통의 장으로서의 무대, 즉 ‘Happening Stage’를 제안하고자 했다. ​ 외부와 내부가 연계되며, 다양한 이벤트의 무대가 되는 컬쳐센터이자, 쉼터 및 소통공간으로 활용되는 공원의 쉘터로 쓰여짐으로써, 활발한 소통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 Happening Stage, 우연한 소통의 장 [설계개념] ​ 이제 마을의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고 지식을 얻는 배움의 공간을 넘어, 시민들이 만나고 소통하며 함께 체험하는 복합적인 용도의 ‘마을의 거실’로 기능하고 있다. ​ 특히 위례도서관은 공원의 일부로서, 자연을 담아내고 책을 만나는 공간이자 공원 안의 쉼터가 되며, 또한 다양한 이벤트의 무대이자 때로는 마을공동체의 교류의 장으로 쓰여지고자 한다. 시민들의 일상 안에서 우연한 만남과 사건이 넘치는 소통의 장으로서의 ‘무대’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미지 (주)종합건축사사무소선기획 ​ 근린공원과 자연스럽게 연계된 개방형 복합문화공간 조성 [평면계획] ​ 도서관의 1층은 접근동선 및 근린공원과의 직접적인 연계를 고려하여 열람공간과 관리영역을 계획하여 이용자 동선과 관리자 동선을 나누어 효율적인 통합운영이 가능하도록 하였고 지상 1층에 어린이 열람 및 전시공간을 위치시켜 가족과 아동이 쉽게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며 근린공원과 연결되어 유연하면서도 친근한 숲속 도서관이 될 것이다. ​ 1층 평면도 ​ 공원을 담아내는 유연한 공간계획 [ 평면계획 ] 근린공원과 연계한 상상STAGE를 통하여 복합문화공간으로 독서 및 휴식 등 다채로운 활동공간을 형성할 것이다. 일반 열람실은 자연을 조망하며 지식을 쌓아가고 happening box를 통하여 각 공간의 수직적 연계를 통하여 시각적 개방감과 유연한 소통의 공간을 연출하였다. 열람실은 오픈플랜으로 계획하여 친근한 분위기의 지식공간을 지향하고, 문화/동아리실을 가변형공간으로 다목적 활동이 가능한 확장형 공간계획을 하였다. 열람실과 옥상정원과 연계되는 가변형 공간의 러닝카페를 통하여 다양한 사용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도서관을 계획한다. ​

다산과 화성(華城)

수원은 경기도의 도청소재지로, 경기도를 대표하는 큰 도시입니다. 그런 수원에는 유명한 유적도 많고 역사적 기념물들이 즐비하지만, 그 모든 것 중에서도 특별히 유명한 것은 ‘화성’이라는 아름답고 견고한 성(城)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인들이 감탄하는 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은 조선의 정조임금과 다산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국보급 문화재입니다. 1792년 음력 4월 9일 진주목사(晉州牧使)로 근무하던 다산의 아버지 정재원(丁載遠)이 근무지 현장에서 별세합니다. 그해 5월 다산 형제들은 진주로 달려가 충주(忠州)의 하담 선영으로 목사공을 반장(返葬)합니다. 장사를 마친 다산 형제들은 고향 마현(馬峴)으로 돌아와 곡하고 여막을 짓고 거처합니다. 아끼던 신하가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정조는 경연의 신하들에게 장례는 제대로 치렀으며, 슬픔을 이기고 건강은 제대로 회복하였는가를 묻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정조는 다산에게 상중(喪中)이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폐할 수 없다면서 국가의 대역사인 수원성[華城]의 규제(規制)를 지어 올리라는 하명(下命)을 내렸습니다. 『사암선생연보(俟菴先生年譜)』에는 그때 임금이 내린 하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왜 다산에게 성제(城制)에 대한 글을 올리도록 했는가라는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유년(1789) 겨울 배다리를 놓은 역사(役事)에 정약용이 그 규제를 만들어 공(功)을 이루었으니, 그를 불러 집에서 성(城)의 규제를 만들어 바치게 하라”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산은 집상 중에, 여러 옛사람의 좋은 성제를 참고하고 훌륭한 제도만을 취하여 초루(?樓)·적대(敵臺)·현안(懸眼)·오성지(五星池) 등의 여러 법도를 조목조목 나누어 정리하여 바쳤습니다. 성제를 바치자, 임금은 또『도서집성』과『기기도설』을 내려주면서 인중(引重)과 기중(起重)의 법을 강(講)하라고 명하자, 다산은「기중가도설(起重架圖說)」이라는 기중기·거중기 등의 사용법까지 올려바쳤습니다. 그런 사용법에 의해서 활차(滑車)와 고륜(鼓輪)이 작은 힘으로 크고 무거운 물건을 잘도 옮겨놓게 되었습니다. 요즘으로 보면 도르래의 원리, 지렛대의 원리를 통해 제작된 기중기(起重機)와 같은 것으로, 인력은 적게 들고 큰 공역을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을 쌓는 일이 끝나자, 기쁨을 이기지 못한 임금이 다산에게 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기중기를 이용하여 경비 4만 양이나 절약되었다(幸用起重架 省費錢四萬兩矣)”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수원의 화성은 다산의 지혜와 능력이 발휘되어 완성된 성입니다. 애초에는 10년을 공기(工期)로 잡았으나 기계의 활용으로 2년 9개월에 완성되었으니, 이 또한 매우 다행한 일입니다. 당시 일부 신하들은 경비가 과다하고 오래도록 공사를 하다 보면 백성들의 피해가 크다고 반대 의견을 제시했지만, 다산의 공으로 빠른 공사, 작은 비용으로 마쳤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경기도, 수원, 화성 역시 다산을 말하지 않고는 거론하기 어려운 곳들임을 이런 데서 알게 됩니다.

'종각역 태양의 정원' 개장

자료 제공 서울시안전총괄실 안전총괄과 도시기반시설본부 토목부 ​ 서울시 자연채광 제어기술이 적용된 ‘종각역 태양의 정원’ 개장! ​ 지상의 햇빛을 고밀도로 모아 지하로 전송하여 탄생한 태양의 정원! ​ 자연광을 이용한 지하 정원 조성! ​ 교양강좌, 공연 등 다목적 문화공간 및 청년창업 지원을 위한 공간 조성! ​ 혁신기술에 대한 테스트베드 제공과 지하 유휴공간 재생에 대한 비전 제시! 이미지 서울시안전총괄실 안전총괄과 도시기반시설본부 토목부 ​ 이미지 서울시안전총괄실 안전총괄과 도시기반시설본부 토목부 서울시는 종각역에서 종로서적(종로타워 지하2층)으로 이어지는 지하보도에 ‘종각역 태양의 정원’을 조성하고 지난12월 13일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북측의 지하보도가 혁신적인 자연채광 제어기술을 적용하여 도심속 지하정원으로 재탄생되었다. ​ 자연채광 제어기술은 지상의 햇빛을 원격 집광부를 통해 고밀도로 모아 특수 제작된 렌즈에 통과시켜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지하 공간까지 전달하는 혁신적인 기술로 지상에 설치되는 집광부 장치는 프로그램을 통해 태양의 궤도를 추적하여 효율적으로 태양광을 집광할 수 있으며, 투명한 기둥으로 태양광이 전송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 이미지 자연채광 제어기술 설명도 - 서울시안전총괄실 안전총괄과 도시기반시설본부 토목부 ​ 이미지 서울시안전총괄실 안전총괄과 도시기반시설본부 토목부 지상에 8개의 집광부를 설치하고 자연채광 제어기술을 활용, 자연 그대로의 햇빛을 지하로 전송하여 비춤으로써 유자나무, 금귤나무, 레몬나무 등 과실수를 포함한 37종의 다양한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지하 정원을 조성하였다. ​ 단순한 녹지공간뿐만 아니라 계단을 리모델링하여 객석을 만들어 각종 교양강좌나 소규모 공연이 가능한 다목적 문화공간을 조성하였으며 특히 청년창업 지원을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홍보, 판로, 교육, 지원 사업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 이미지 서울시안전총괄실 안전총괄과 도시기반시설본부 토목부 ​ 한파나 미세먼지 등 외부 기상 여건과 상관없이 지하에서 자연 그대로의 태양광을 느낄 수 있으며, 날씨가 흐린 날엔 자동으로 LED 조명으로 전환돼 외부 날씨와 상관없이 일정 조도 확보도 가능하다. 이미지 지상 집광부 서울시 안전총괄실 안전총괄과 도시기반시설본부 토목부 ​ 서울시는 증가하는 도심 속 유휴공간에 대해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방안을 모색해왔으며, 노후한 고가도로를 공중 정원으로 변모시킨 ‘서울로 7017’에 이어 2018년 종각역 지하 유휴공간에 지하 정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하고, 1년여 간의 공사를 거쳐 지난 12월 13일 개장하였다. ​ 기본구상 용역에는 미국 뉴욕의 지하 공간 재생 프로젝트인 로라인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제임스 램지(라드 스튜디오) 건축가도 참여하였으며 로라인의 태양광 채광기술을 담당하는 한영 합작 벤쳐기업인 선포탈이 설계 및 공사과정에 참여했다. ​ 이미지 태양광전송 서울시안전총괄실 안전총괄과 도시기반시설본부 토목부 ​ 한편 서울시는 종각역 지하 공간의 이름에 대한 시민 공모전을 통해 ‘종각역 태양의 정원’을 공식 명칭으로 선정했는 데 2018.8.13~9.11까지 진행된 시민 공모전에는 총 1,139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2,750점의 명칭이 제안된 바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은 “특별한 쓰임 없이 비어 있던 공간, 그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통로 역할에만 머물렀던 곳이, 혁신적인 기술을 통해 지상의 태양광을 지하로 끌어들여 나무가 자라고 사람이 머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면서, “종각역 태양의 정원은 혁신기술의 테스트베드이자 서울의 지하 유휴공간 재생에 대한 비전”이라고 말했다. ​ ​

인터뷰 - 조성일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이미지 제공 서울시설공단 " 노후화 진입한 서울... 인프라 관리 소홀하면 차세대에 큰 짐" "1,000만 서울 시민의 일상과 밀접한 도시기반 시설의 A부터 Z까지를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의 체질이 바뀌어가고 공조직 특유의 수동성·경직성이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세포 단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서울시 안전총괄실장(1급)을 지낸 조성일(61) 16대 이사장이 지난 7월 부임하고서부터다. 현장, 소통, 안전, 혁신을 강조하는 조 이사장의 청사진을 살펴본다." 조 이사장은 30여 년동안 건설, 도시계획, 안전분야에서 근무한 자타공인 안전 전문가다. ​ 3선 시장으로서 시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설공단 대표에 그를 앉힌 이유가 무엇일까. ​ 도시 노후화로 인해 도로, 터널, 교량, 상수도, 주차시설, 공원, 경기장, 심지어 공공자전거 따릉이까지 현시점에서 인프라 분야 안전 관리에 더욱 신경 쓰겠다는 임명권자의 의지가 읽힌다. ​ 조 이사장은 또 공무원 재직 시 남들이 손사래 치는 업무를 2% 다른 방식으로 여럿 해결해낸 혁신가여서 혁신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박 시장과도 손발이 맞는다. ​ 조 이사장은 “입사 지원서에도 현장을 중시하겠다고 썼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하지 않나. 취임 날 직원들의 손을 잡고 현장의 중요성을 인지시켰다.”고 했다. ​ 취임 첫날 별도 취임식을 생략한 채 내부 결함으로 보수 중인 내부순환로 정릉천 고가교 현장으로 달려가 업무를 봤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 그는 지금도 매주 3회 현장을 찾는다. 목적은 두 가지다. 공단 직원의 93%를 차지하는 현장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가 먼저다. 두 번째는 직접 눈으로 현장 안전 위해 요소를 찾아 챙기기 위해서다. ​ 이사장이 직접 나서니 현장 작업장에는 긴장이 돈다. 그는 ‘나사 풀린 곳이 없는지 살피는 일’이라고 비유했다. 현장을 많이 다니는 대신 내부 회의 시간은 단축했다. 과거 2시간씩 하던 회의를 15분으로 줄이는 등 일하는 방식을 효율화시켰다. 이미지 제공 서울시설공단 이처럼 잠재적 위험요소가 도시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는 ‘위험도 알아야 보인다’는 신조 아래 국내외 각종 사고 동영상을 사내 인트라넷 망에 공유해 전 직원이 볼 수 있게 했다. ​ "서울은 1970~80년대 고도경제 속에 압축 성장을 해왔죠. 우리보다 앞서 1930년대 건설된 뉴욕, 1950~60년대 건설한 도쿄가 노후화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간접인프라 수준이 D+학점(미국토목학회, 2017년)이며 우리 돈으로 5,200조 원이 들어간다는 보고가 있고, 일본의 경우 2010년부터 노후 심각성을 인지해 사회 전체적으로 대비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2030년에 심각한 노후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미 진입 단계에 와 있습니다." 조 이사장이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안전 전문가가 된 데에는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충격적인 사고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나서다. ​ 1993년 원효대교가 붕괴된다고 뉴스 보도가 나온 뒤 그는 종합건설본부(현 도시기반시설본부)토목부에서 일하며 교량 보수를 공부했는데 이듬해 무너진 다리는 성수대교였다. ​ 조 이사장은 “아픈 환자(다리)가 발생했는데 환자가 몇 명인지 다른 환자는 괜찮은지 알 수 없었으며, 이를 검사해야 할 의료진조차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당시 허술했던 교량 관리를 전했다. ​ 1년 뒤에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현장에 나가보니 끔찍했어요. 지금도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요. 다시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안전분야에 매진하게 된 계기다. 이미지 제공 서울시설공단 성수대교 사고 때 서울시에 기술 자문을 해 준 영국인 박사와의 인연으로 영국 써리대로 유학길에 나섰다. 교량 관리와 관련한 전문이론을 배우며 박사 학위를 땄다. 퇴직 후에는 서울시립대에서 도시노후화, 교량·터널 붕괴, 도로함몰, 지진 등 도시방재와 안전문제 전반에 대해 강의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 현재도 주말엔 박사과정에서 강의 중이며,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안전은 중앙정부 행정 전반에서 뒤로 밀리고, 민간에선 이윤에 밀린다. 그렇게 밀리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이다. 안전의 중요성은 꾸준히 알려야 한다.”고 힘 주어 말했다. ​ 그는 아이디어가 남다른 혁신가 스타일이다. 시 도시안전 실장 재직 때 1884년부터 영국대사관이 점유해 통행이 불가능 했던 덕수궁 돌담길 170m 구간을 재치 있는 묘안으로 돌려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 우리 땅을 돌려달라는 서울시와 못 주겠다는 대사관이 대립각을 세울 당시 그는 문화 거리를 만들어 영국과 한국의 전통을 동시에 살리는 공간으로 활용하자고 대사관 측에 제안했다. 영국이 이를 수락해 지난해 12월 결국 시가 점유구간을 반환 받고 돌담길을 완전히 연결, 덕수궁 둘레길을 완성했다. ​ 올 초 서울시가 성곽 마을인 성북 2구역과 신월곡 1구역 간에 적용하기로 한 ‘결합개발’도 그가 고안한 제도다. 이는 개발되는 쪽이 용적률을 높여 받는 대신 규제에 묶여 개발되지 못하는 쪽에 이익을 나눠 주는 일종의 개발권 양도제 개념이다. ​ 그는 “서로 갈등요소가 있을 때 덮어두지 않고, 그것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쪽으로 집중했고, 거기서 성과를 냈을 때가 상당히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 조 이사장은 취임 100일 뒤 박 시장에게 현장, 소통, 안전, 혁신 4개 분야를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또 공단이 관할하는 다종다양한 사업들 가운데 따릉이, 장애인택시, 고척 돔구장, 어린이대공원을 집중적으로 챙기겠다고 했다. ​ 먼저 따릉이에 중간 안전 바를 달았다. 자전거 차체가 균열이 자주 생겨서다. 처음에 시에선 디자인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했으나 조 이사장은 교통실장에게 직접 전화해 “디자인이 먼저냐 안전이 먼저냐”를 묻고, “안전이 우선한 다.”는 판단을 받아 처리했다. ​ 공단은 고척돔구장, 어린이대공원 활성화 방안 마련을 위해 직원이 자율 토론하는 오픈이노베이션과 용역 실시 등 투트랙으로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조 이사장은 “변화되는 소비 패턴을 좀 더 액티브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매너리즘 타파를 강조했다. ​ 그는 임기가 끝나는 2년 7개월 뒤 공단의 변화된 모습을 예측해 달라는 질문에 “공단이 꼭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는 기관, 일부 분야에선 국내에서 최고 수준의 기관이 돼 있기를 바란다. 간부 몇 명이 잘 하는 게 아니라 직원 전체가 활력을 갖고 자긍심을 갖는 조직이길 바란다.”고 했다. ​ 앞선 세대로서 책임감도 드러냈다. 그는 “젊은 뒷세대는 인구는 줄어들고 초고령화 사회로 복지 부담이 커지는데, 여기에 인프라 노후화까지 겹치는 것”이라며 “뒷세대에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관리해 뒷세대에 마이너스 유산으로 남겨줘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 매주 현장을 바쁘게 챙기는 일은 보통 체력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는 하루 일과를 아침에 수영을 하는 것에서 시작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것으로 마친다. 주말에는 되도록 일하지 않는다. 대신 업무시간에는 강도 높게 일한다. 그는 “업무 시간에 세게 해서 그런지 직원들이 마냥 좋아하는 거 같진 않다”며 웃었다. ​ "우리 공직사회의 문제는 순환보직이죠. 업무를 좀 파악하려 하면 다른 곳으로 가고…. 심하게 얘기하면 매번 초보운전자가 고난도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겁니다." 조성일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오픈 이노베이션’을 도입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 보통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업이 대학, 연구소, 타 기업 등과 협업을 통해 내부 자원을 외부와 공유하면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제도를 말한다. 국내에서도 제약회사, 벤처기업, LG그룹 등이 도입해 운영 중이다. ​ 공단은 기존 오픈이노베이션 개념에 공공기관이자 시설공단만의 특수성을 반영한 ‘서울시설공단 오픈이노베이션’ 제도를 개발, 지난 7월 국내 공공기관 최초로 도입했다. 조 이사장이 7월 취임 이후 만든 제도이니 ‘조성일형 오픈이노베이션’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 공단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보직, 부서 간 장벽을 없애 직원들이 주요 이슈를 두고 열린 토론을 하고 선진 사례 분석을 공유해 개선점을 도출하는 흐름이다. 참여자들은 사전에 주제와 관련한 국내외 학술자료를 조사한다. 미리 조사를 진행하므로 회의 때에는 사안의 핵심으로 직행, 심도있는 논의가 가능하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이고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 또, 보고·검토 등 정형화된 의사 결정 방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직원 스스로 의사 결정을 내므로 직원은 더욱 책임감을 갖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 우선 기술 분야에서 시작했다. ‘보다 안전한 자동차전용도로 교량 관리를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를 1차 과제로 정했다. ​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등 서울의 11개 자동차전용도로를 관리하고 있는 공단은 현재까지 9차에 걸친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미국 내 교통담당 기관의 선진 사례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 미국 플로리다주, 미네소타주, 버지니아주, 텍사스 주 등 교통국으로부터 직접 교량 점검 가이드라인을 공유받고, 서울과의 사례를 비교 분석 중이다. 공단 은 이를 거쳐 나온 개선점을 서울의 교량 실정에 맞게 현장에 적용할 예정이다. ​ 이어 서울어린이대공원, 고척스카이돔 등 공단이 운영하는 다양한 시설 관리에 관해서도 오픈이노베이션 제도를 적용해본다. 내년에는 대학, 연구소, 민간기업 등 외부와도 협업할 계획이다. ​ 새로운 제도에 특히 젊은 직원들이 반긴다. 조 이사장은 “공단 직원들이 직접 미국 주교통국에 메일을 보내고 전화 통화로 자료를 얻어서 발표를 하는데, 1,000 페이지 분량의 영문자료를 요약하고 발표하는데 2주일밖에 걸리지 않더라”며 “공단에 우수한 인재들이 많다. 공단의 미래가 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