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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과 첼로의 임창호 명장(明匠)을 찾습니다!

임 창 호 LIM CHANG HO 1935년 통천출생 5세부터 바이올린 사사 1962년 서라벌예술대학 공예과 졸업 1962년 서라벌공예사 창업 1965년 임창호 바이올림 첼로 창업 ​ 낙산사[洛山寺]의 원통보전[圓通寶殿]이 악기로 거듭나 천년의 소리를 재생해 내기를 바란다 ​ 지난 여름 동해를 찾아 화진포의 성과 낙산사를 다녀왔습니다. ​ 그곳 낙산사에서 산불로 소실된 목재로 만들어 기증하여 전시 중인 임창호 명장의 첼로와 바이올린을 한없이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첼로와 바이올린 옆 안내표지에 제작된 배경과 임창호 명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서 그리고 겨울을 맞이하며 임창호 명장을 찾아 인터뷰를 나섰으나 그 어디에서도 임창호 명장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 전화번호는 결번으로 강원도 강릉시 죽현도 149[예술인촌]에 주소지로 있었지만, 강원도청 강릉시 예술인촌 낙산사에도 연락해 수소문해 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 혹시 임창호 명장의 소재를 아시는 분은 저희 편집부에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분의 가슴과 그분의 거친 손마디를 통해 명장의 이야기를 독자들께 알리고 싶습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을 통해 알게 된 내용입니다. 산불로 소실된 낙산사 원통보전이 강릉단오장을 찾았다. 첼로 등 악기 제조가인 임창호(71·강릉시월호 평동) 씨가 불탄 낙산사 원통보전으로 만든 악기를 강릉단오장에서 전시하고 있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5호인 낙산사 원통보전이 지난해 4월 산불로 소실된 것을 안타까워하던 임씨는 낙산사를 찾아 불탄 나무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작업을 시작했다. ​ 지금까지 만든 악기는 첼로 3대, 바이올린 5대, 비올라 2대 등 모두 10대로 이 중 첼로와 바이올린 1대씩은 낙산사에 기증했다. 임 씨는 작업 중 생긴 나무 부스러기도 버리지 않고 모두 모아 강릉 단오장에서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고 있다. ​ 출처-https://blog.naver.com/jhwkghk/220037137676 "임창호 바이올린" 수공예 바이올린 첼로 판매 | 작성자 jhwkghk ​ ​

'악플' 그리고 설리의 극단적 선택을 보면서

안경재 공증인 변호사 25세의 꽃다운 연예인이 악플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리플을 다는 인간 욕구의 본질은 무엇일까? ​ 리플은 자기표현 욕구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 설리의 안타까운 선택이 단순한 기사 거리, 이야기 거리가 아니라, 선플과 악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법제도 운영에 정신적 가치를 좀 더 보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5세의 꽃다운 연예인이 악플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그녀의 성격이 쉽게 상처받고 소심한 성격이었을 수도 있고, 활달한 성격이나 상처가 너무 커서 그랬을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했다. 그녀가 출연했던 악플의 밤 몇 편을 찾아보았다. ​ 방송에 비친 그녀는 활기차고 솔직한 성격으로 보였다.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어서 그녀에 대한 악플은 그냥 무시하면 되는 본인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부담감이 얼마나 컸을까. 말은 총이나 칼보다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 참으로 안타깝고 딱한 사건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 그런 의미에서 리플, 악플, 선플의 개념과 그에 대한 대안 및 법제도 운영을 생각해 보았다. ​ 리플을 다는 인간 욕구의 본질은 무엇일까? ​ 인간은 자기를 표현하고 싶고,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 그런 표현을 통해 인정받고 싶어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표현에 공감하며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 리플은 자기표현 욕구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 리플은 가치 중립적 용어다. 한편 선플과 악플은 리플을 가치판단에 따라 구분한 용어다. ​ 선플과 악플은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순기능을 하면 선플이고, 역기능을 하면 악플이다. ​ 리플은 크게 두 가지 기능을 한다. ​ 감성적 측면에서 보면 리플을 통해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좋은 리플을 통해 본인은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상대방은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한 순기능이 반복되다 보면 서로 친밀한 관계가 되어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 사람은 자기를 인정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 한편 이성적 측면에서 보면 리플을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게 되고, 그 지식이 더 넓고 깊어지기도 한다. 리플은 학술 세미나 기능을 하기도 한다. ​ 친밀한 관계를 만들거나 서로를 똑똑하게 만드는 리플은 선플이요, 그 반대가 악플이다. 악플은 주로 감성적 측면에서 발생할 것 같다. 댓글로 인해 상처받고, 인간관계가 깨어지기도 한다. ​ 댓글로 정보가 왜곡되는 경우도 상상해 볼 수 있으나 그 경우가 많을 것 같지는 않다. ​ 이러한 악플과 선플의 개념을 인식한다면 정신 이상자가 아닌 한 과연 누가 감히 악플러가 되겠는가. ​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실제 경험한 사례도 있다. ​ 꽤 오래전에 이외수 소설가로부터 악플 고소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다. 당시 이외수 작가 홈페이지에는 회원이 몇만 명이나 있었다. 거의 10만 명에 육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누군가 악플을 달고, 이에 대응하여 이외수 작가 본인과 이외수 작가 팬들이 거친 댓글을 달다 보니 홈페이지가 난장판이 되었다. 이외수 작가도 언어 구사가 강한 편이고, 그 팬들도 흥분한 상태라 작가와 팬들의 댓글은 다시 더 심한 악플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외수 작가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 고소장을 쓰는 일이 변호사인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소장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고소 사건이 해결되려면 최소 몇 개월은 걸릴 텐데, 그 기간 작가가 괴로워할 것이다. 그 때문에 작가의 작품활동이 중단될 것도 걱정되었다. 사랑이 아닌 미움과 분노의 마음 밭에서 제대로 된 글이 나올 수는 없다. 고소장을 접수하면 언론에 노출될 텐데, 그런 일에 고소장까지 내느냐는 반발도 우려되었다. 요즘과 달리 당시에는 그런 분위기도 있었다. 고소장을 쓰는 대신에 일주일 가량 어떻게 사건을 풀어나갈지 고민했다. 심사숙고한 결과 이외수 작가 홈페이지에 리플, 선플, 악플의 개념을 적고 말미에 '그대는 악플러인가? 선플러인가?'라는 한 문장을 적었다. 그리고 글 한 편을 더 적었다. 팬들에게 악플에 일일이 대응하지 말고 캡쳐하여 나에게 보낼 것을 부탁했다. ​ 홈페이지에서 작가와 팬들의 거친 언어가 사라졌다. 악플러들은 뜨끔했는지 아니면 두려웠는지 그 후 악플러들은 더 이상 악플을 달지 않았다. 물론 고소장은 접수하지 않았다. 문제 해결을 했으니 수임료는 당연히 받았다. ​ 악플에 대한 법적 대응 방안으로는 크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과 형사처벌을 요구하는 방법이 있다. 악플이 사람을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흉악범임에도 이에 대한 법률제재는 너무 가벼워 보인다. 미필적 고의에 의 한 살인죄가 되지 않을까! 서너 사람이 밤에 무단으로 핸드폰 가게에 침입하여 핸드폰 대여섯 개를 훔쳤다면 구속되거나 실형을 살 가능성이 꽤 있어 보인다. 특히 재범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10여 명이 어느 한 사람에 대해 집중적으로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 댓글을 달았을 때 그 10여 명이 구속되거나 실형을 선고받을 것 같지 않다. 심지어 피해자가 설리 사례처럼 그 때문에 극단적인 행동에 이르렀을지라도... ​ 악플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몇백만 원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데, 손해배상액이 변호사 비용도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이러하니 피해자들이 악플에 대한 법적 조치를 적극 하지 않게 된다. 상담받은 변호사도 손해배상 소송을 권유하지도 않고, 심지어 소송하겠다는 의뢰인에게 심사숙고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화가 나서 소송비용을 들여 시작하나 나중에 소송비용보다 적은 위자료 판결을 받으면 다시 한번 더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 현행법상 얼마든지 악플에 대해 엄벌하거나 위자료를 크게 산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사들은 이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 같다. 정신적 가치가 핸드폰 몇 개만도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러한 판사들의 인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플 퇴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판사들은 재판을 통해 국민들에게 그 기준을 제시하기도 한다. 현재 판사들은 악플 정도는 가벼운 범죄라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판사들의 인식은 악플러들에게 쉽게 악플을 달아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가 되어 설리를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공범으로 볼 수도 있다. ​ 설리의 안타까운 선택이 단순한 기사 거리, 이야기 거리가 아니라, 선플과 악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법제도 운영에 정신적 가치를 좀 더 보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충북 공공디자인 심층 세미나

충청북도 공공디자인 발전과 관련 문화산업 활성화를 위한 충북 공공디자인 심층 세미나 ​ 주관 사단법인 충북공공디자인협회 한국문화정보원 ​ 주최 사단법인 충북공공디자인협회 한국문화정보원 건국대학교 글로컬산학협력단, 건국대학교 글로컬지역개발디자인연구센터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충북 공공디자인 관련 문화 육성에 필요한 지식 교류 및 융합의 커뮤니티로서 미래 융합 산업 행방에 대한 기본 전략수립과 정책제시 및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충북 공공디자인 문화 육성을 위한 지역자치단체의 사업 및 협력적 발전의 전략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지난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S컨벤션에서 충북 공공디자인 심층세미나가 열렸다. ​ 세미나에는 충청북도 이장섭 정무부시장, 도의회 연철흠 의원과 송미애 의원 이현웅 한국문화정보원장과 충북도내공공디자인관련 전문기관과 기업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 이날 충청북도 공공디자인협회 윤명한 회장[건국대 교수]은 도시의 정체성은 곧 도시의 가치이며 도시 고유의 자원과 자연문화에 적합한 디자인이 융합하여 도시 경쟁력을 형성한다고 말하며 공공디자인은 도시 경관을 형성하는 하나의 씨앗이며 씨앗이 싹터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루어 마침내 커다란 경관을 형성하였을 때 도시의 경관은 독특한 풍경을 이루고, 오랜 시간 축적되어 충청북도로 표현하는 하나의 귀중한 백년풍토가 될것이라고 세미나의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이미지 한국문화정보원 ​ 행사의 축사로 충청북도 이장섭 정무부지사는 디자인도 사람을 향해야 한다고 말하며 사람에 대한 관심이 곧 행복한 삶을 만드는 근원이 된다며 남녀노소 모두가 일상의 불편을 해결하고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데 같이 노력해서 우리 도민의 삶의 질과 행복을 책임진다는 신념으로 공공디자인 발전에 더욱 노력해 주기를 당부했다. ​ 충청북도 도의회 연철흠 의원은 1980년대 인문 사회적 슬로건이었던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회적 이슈가 오늘날에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찍이 도시의 경쟁력은 도시가 가지는 다양한 문화로부터 나오므로 도시의 문화는 다양성에서 시작되지만 공공디자인을 통해 시각화 되고 도시와 사람 사이의 콘텍스트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측면에서 오늘의 세미나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이어 한국문화정보원 이현웅 원장은 공공디자인은 더 나음을 위한 변화이며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고 모든 것을 수단으로 하는 공공디자인은 우리의 삶과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영역으로 현대 삶의 공간이 가진 폐쇄적 단절성을 개선하고 보다 나은 국민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역할을 강조했다. ​ 주제발표 1 “융합의 시대” 한류와 문화정보를 통한 공공디자인에 대한 접근 건국대학교 윤명한 교수 ​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등 충청북도 11개 시군의 지역문화 행사 및 문화시설의 정보전달과 시민참여형 공공디자인사업의 연계방향 제시 ​ 부처 연계협력사업 추진변화에 따른 문화정보 활용과 공공디자인의 연계를 통한 충청북도 사업방향 제시 ​ 문화정보의 정의와 문화시설의 공공디자인의 공간적 활용 및 디자인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 (문화광장, 문화공원, 문화시설, 문화프로그램의 공공디자인적 접근방안 등) ​ 이미지 한국문화정보원 ​ 주제발표 2 지역 공공디자인의 활성화방향과 전략적 접근방법 청운대학교 정희정 교수 ​ 지역 공공디자인의 개념 정의 ​ 충청북도 공공디자인 종합계획 수립의 방향 제시 (경관법, 공공디자인법, 도시재생 등 정부주도사업과 디자인의 연계성 위원회, 심의안건 등 방향제시) ​ 충청북도 공공디자인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방향 (공공디자인 적용을 통한 시군의 지역개발사업, 도시재생뉴딜사업, 일반농산어촌사업 적용방안 등) ​ 토론회 융합의 시대 ‘한류와 문화정보’를 통한 충북 공공디자인 문제점 및 발전방향 좌장 충청북도 도의회 송미애 의원 ​ 토론자 ​충청북도 건축문화과 최경환 과장 충청북도 도의회 이상식 위원 한국문화정보원 김동훈 팀장 한국공예디자인지흥원 류영미 팀장 충주시청 건축디자인과 김태환 디자인전문관 어번플러스 종합건축사사무소 김영각대표 ​ 충청북도 문화와 공공디자인의 연계를 통한 활성화 방안 (청주국제비엔날레 등) 충청북도 시군의 공공디자인 계획수립의 현황 및 활성화 방향 (공공디자인 사업 마련 등) 공공디자인 관련 시군 행정의 직제 현황 및 공공디자인 사업추진 현황 도시재생뉴딜사업,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등과 공공디자인의 연계강화 군단위 지역의 공공디자인을 통한 지역발전 방향 (예: 충청북도 공공디자인 캐러반 운영- 지역순회 공공디자인 컨설팅 추진 등) 충북공공디자인 협회 설립에 따른 역할과 발전방향 (법정단체 지위 마련, 충청북도 공공디자인 인증제, 공공디자인 사업 활성화 등) ​ 현장스케치 한국문화정보원 /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이남 LEE LEE NAM - 1편

살아있는 그림(les peintures vivantes) ​ 그는 컨버전스 분야 세계 석학인 존 라이크만(John Rajchman)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로부터 극찬을 받아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 ​ 그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모션 포스터를 제작하여 세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삼성전자와 5년 동안 콘텐츠 제공 전속계약을 맺고 55인치와 46인치 LED TV에 자신의 작품 3점을 내장하여 출시해 화제가 되었다. 그는 작년 G20 서울정상회담 때 주요 회의장과 각국 정상이 머무는 호텔 숙소에 비치된 TV와 아이패드, 갤럭시탭 등을 통해 작품을 설치하여 호평을 받았다. ​ 그의 작품은 작년 말부터 애플 앱스토어에서 유료로 서비스 되고 있다. 그는 최근 영국의 동화작가 앤서니 브라운과 함께《동화책 속 세계여행》전을 개최했다. 그의 작품들은 올해 발행된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 전 세계 미술 작가 500명의 작품 가격을 순위별로 기록한 ‘아트 프라이스’에 그는 363위를 차지했다. 그는 누구인가? -류병학(미술평론가) 사진 고흐에 풍경 Scene of Goah 75 inch LED TV 2019_9min40sec 이이남 2019 세계수영선수권 대회 개회식 피날레 미디어 아트 감독 ISEA 국제전자예술심포지움 개막식 미디어 감독 ​ 개인전 (52회) 2019 ‘다시 태어나는 빛 – 뿌리들의 일어섬’ IESA대학, 파리, 프랑스 ‘이이남, 빛의 조우’ 서울식물원, 서울, 한국 ​ 주요전시 2019 ‘Flim & Arts’, 뿌리들의 일어섬 전, 스타시네마, 테이트 모던, 런던. Artificial Intelligence ‘Hyper-Intelligence’ Mr. Media Lab 콜라보전 ​ 서울, 한국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의 이미지 장치’ 전, 국립현대 미술관, 한국 ​ 작품소장처 토마 파운데이션(미국), 지브라스트라트 미술관(벨기에), UN본부(미국), UN사무국(미국), 아시아 미술관(샌프란시스코), 수닝예술관(중국), 예일대학교(미국),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워싱턴), 후진타오 영부인(중국), 국립중앙도서관(서울,한국), 인천국제공항(인천,한국), 리움미술관(서울, 한국), 한미미술관(서울,한국), 컬렉션 솔로(마드리드,스페인), 아랍에미리트 전 자이드 대통령 영부인(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 ​ 2016 부산비엔날레 '혼혈하는 지구' _GOOGLE TILT BRUSH X LEE LEE NAM VR 가상 한자 (홍보자료) 뉴미디어아트는 시·공간적 환영으로 인식되며, 시대와 공간의 의식 세계가 뒤얽혀 있어 여러 파편들의 중첩된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의미는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현존으로 살아 숨쉬는 뉴미디어아트의 특성일 것이다. ​ 따라서 작업에 임하는 나는 첨단기술을 도구로 활용하여 화려한 환영적인 이미지 그 너머에 내재되어 있는 진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 또한 내 작품에 차용된 명화들은 나만의 독특한 재해석과 창의성 그리고 대중성을 고려했다. ​ 이와 더불어 동서양을 아우르는 작품의 변화는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 환영적인 공간의 회화는 지금 당신의 심장에 닿고 있다, Ing…. 레프 마노비치 (미디어 이론가/뉴욕시립대 교수) ​ 그가 미디어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미디어의 역사와 인간이 사용하는 미디어 기술들의 표현적이고 미학적인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이남은 마치 미디어 역사가(또는 미디어 고고학자)처럼, 두 개 또는 더 많은 매체를 병치하는 비교 연구법을 사용하여 서로를 대면하도록 하고, 그것들의 한계를 드러내고, 매체의 성질들을 교환하고, 새로운 관계로 발전시킨다. ​ 이러한 병치는 ‘기존의 미디어’와 ‘새로운 미디어’, ‘아날로그’와 ‘디지털’, 또는 ‘조각’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대립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이남의 예술에 적용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그가 다양한 미디어 재료를 이용한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 재료들은 권력, 전쟁, 종교, 천연자원착취, 인간 간의 경쟁, 빈곤, 고통, 황홀과 연결된 그들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와 그들 사이의 관계는 이이남의 미디어 아트를 통해 활성화된다. 신-수련 2 (2007)에서, 클로드 모네가 인생의 마지막 30년 동안 그의 정원에서 그린 250점의 수련 중 한 점을 배경으로 섬세한 애니메이션이 겹쳐져 있다. 모네는 유화물감의 성질을 최대한으로 연구하여, 물에 반사된 꽃의 이미지를 캔버스 위에 한 번의 붓질을 통해 회화적인 흐름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에 더해진 섬세한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원작에서 캔버스 위의 마른 물감이라는 물성을 줄이고, 마치 빛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처럼 변화시킨다. ​ 그러나 우리는 모네가 수련을 그리는 동안 시력을 잃어 갔고, 다른 건강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유화 물감이라는 재료가 더 이상 작가의 제어를 받지 않고 새로운 활기를 얻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창조자의 제어하에 있지 않을 때 재료는 온전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따라서 회화 재료의 해방은 인간의 고통과 병을 동반하기도 한다. ​ 나는 동양화와 결합된 애니메이션의 역할 중 하나는, 예전에는 삶의 흐름 - 즉 오늘날 애니메이션이 가진 역할 - 을 보여줬던 전통 동양화가 이제는 유리 케이스와 경비원, 경비 시스템으로 보호되는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어버린 현실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들은 또한 미술 시장, 화랑 시스템, 박물관과 소장가들의 포로가 되었다. 실제 동양화가 미술관에 갇혀 있는 동안, 이이남의 장난기 많고 유머러스한 애니메이션들은 원작의 흐름과 움직임을 재창조한다. (게다가 책-산수화에서는 두 개의 고전 그림들이 미술품 경매 도록에 인쇄된 이미지로 나타난다.) ​ 이이남의 작품들은 다양한 역사적이고 현대적인 미디어 기술과 그들의 문화사 간의 소통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림의 역사를 논하는 ‘화가’나 조각의 역사를 말하는 ‘조각가’와는 달리, 이것이 이이남이 미디어 아티스트인 이유이다. 이이남의 작품에서는 서양의 유화나 동양화, 조각, 영화, TV, 금속, 물, 빛, 전기 등 다양한 매체를 만나게 된다. 그의 작품을 즐긴다면, 그것들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말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세계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2009-신_금강전도 New-Geumgangjeondo LED TV 7min 10sec 존 라이크만 ​ 그는 “이 작가가 제도권적인 문맥을 파기하면서 다른 공간을 창조하는데 개미를 소재로 한 것이 유머러스하다.” ​ 며 다소 키치적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이이남은 이런 함정을 매우 교묘하게 비켜가면서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었다.” 고 덧붙였다. ZKM Center Bernhard Serexhe ​ 한때 자신을 “뉴미디어 아티스트”라 칭한 이이남 역시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 작가노트 내용 중 그는 “우리는 모든 것이 이분화, 양극화되어 조화를 잃어버린 암흑시대에 살고있다” 라고 단정한다. 이어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어떻게 물질(디지털)과 정신(아날로그)이 분리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가능성을 고민하였다.”라고 말한다. ​ 만일 그의 풍부하고 다양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작품들을 전부 한눈에 볼 수 있다면 그의 작품 주제가 늘 동양과 유럽의 유명한 거장들의 회화에서부터 온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는 대대로 세계 미술사학에 등장하는 전 세계 유명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경을 넘어 우리의 집단적 문화 기억 속에 남겨져있는 명화와 조각들을 선택한다. 이런 미술의 세계화 과정 속에서 디지털화와 전자통신망을 통한 재빠른 보급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고흐에 풍경 Scene of Goah 75 inch LED TV 2019_9min40sec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가나아트센터

글 사진 동양미래대학교 건축과 이정미 교수 ​ 볼륨과 면의 기하학적 단순미 장-미쉘 빌모트 Jean-Michel Wilmotte 이질 재료의 구성과 통합, 볼륨의 비례와 구성, 면의 막힘과 트임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단순미가 돋보이는 외관 2000년대 이후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국내 활동이 늘어가고 있다. 2002년 프랑스 건축가 뱅상 코르뉘Vincent Cornu가 설계한 <대림미술관>을 시작으로, 2004년 마리오 보타Mario Botta, 장누벨Jean Nouvel,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설계한 <리움미술관>, 2005년 렘 콜하스의 <서울대학교미술관>, 2008년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의 <이화캠퍼스복합단지>, 2012년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본태박물관>, 2013년 안도 다다오의 <뮤지엄산>, 2014년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2018년 데이비드 치퍼필드 David Chipperfield의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그리고 이화캠퍼스복합단지를 설계한 도미니크 페로의 설계 안으로 결정된 코엑스 건너편 한전부지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개발까지, 미술관 등의 전시공간뿐 아니라 주택 및 기업 사옥을 비롯하여 대규모 도시개발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이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되면서 국내 건축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카페 피아노 여기서는 단발성으로 그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국내에서 꾸준한 활동을 펼쳐온 프랑스 건축가이자 실내디자이너인 장-미쉘 빌모트Jean-Michel Wilmotte가 설계한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공간을 살펴보기로 한다. ​ 1983년에 국내 최초의 민간 화랑으로 문을 연 이호재 서울 옥션 회장의 ‘가나화랑’이 1988년 9월 평창동에 현재의 <가나아트센터>로 준공되었다. 이후 2018년 <가나아트한남>이 용산 사운즈 한남 복합문화공간에 개관하여 한남동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 가나아트센터는 연면적 850평, 지상 3층, 지하 2층 규모로 전시장 3개와 야외 공연장, 레스토랑과 세미나실로 구성된다. 제1전시장은 기념관 성격으로 작가의 작품을 상설전시하고 있으며, 제2, 3전시장은 기획전 위주로 운영된다. ​ 카페 피아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맞은편 붉은 벽돌 복층건물은 필자가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설계사무실이 있던 곳이다. 현재는 카페로 변했고 주변에는 군데군데 화랑과 카페들이 옛 모습과 다르게 군집해있다. ​ 88 올림픽 준비로 호텔과 백화점 설계가 한창이던 시기에 그곳에서 필자는 처음으로 롯데월드 쇼핑몰 설계에 합류하였다. 일본의 노무라 설계가 주관사였고 그 밑에서 수십 장의 손 도면을 그리며 일했던, 열정 하나로 순수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 공간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에 둘러본 평창동 주택가의 북악산 중턱에서 우연히 발견한 카페 ‘더 피아노’에서는 자연의 요소들이 실내로 끌어들인 신선한 바람으로, 폭포로, 암벽으로, 초록으로, 푸른 하늘로, 산 아래 원경으로, 그리고 내부를 구성하는 실내구조의 오브제화로 압권을 이루고 있었다. ​ 가나아트센터를 설계한 장-미쉘 빌모트는 도시건축뿐만 아니라 실내디자인, 가구, 조명디자인을 아우르는 총체적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백색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미국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Richard Meier는 그를 현대에 살고 있는 르네상스 인이라 부른다. 장르와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새로운 창의적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융합형 창작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 프랑스에서는 루브르 박물관 내부와 샹젤리제 거리의 도시 디자인 등을 작업한 다방면의 건축가이며, 국내에서는 <가나아트센터>를 비롯하여 그 아래 나란히 강한 대비를 이루며 자리한 <서울옥션하우스>, <인사아트센터>, 2014년 완공한 <대전예술가의 집> 등을 작업하였다. ​ 또한 인천국제공항의 실내디자인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2006년에는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초대학장으로 활동하며 한국과 프랑스의 건축 가교 역할을 하였다. 빌모트는 1948년 프랑스 북쪽 가장 오래된 도시중 하나에 해당하는 피카르디시 근교에서 태어나 에콜 카몽도 대학에서 실내건축을 전공하였다. ​ 미테랑 대통령 침실, 워싱턴의 프랑스 대사관 등을 디자인하면서 그의 디자인적 역량을 펼쳤으며 루브르 박물관의 실내디자인을 통해 유명해졌다. 1993년 건축학학위를 받으면서 방송국이나 오페라 극장, 시청사 등의 큰 규모 작업을 시작하여 이후 빌모트 & 어소시에이츠로 디자인 사무소를 꾸리면서 전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 프랑스 디자인은 아르데코의 전통과 도제의 전승 두 흐름을 지니는데, 아르데코 정신은 구상적인 형태에 기하학적 요소를 더해 직선을 강조하는 장식적 효과와 재료에 가치를 부여하여 장엄한 형태를 탈피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르데코의 새로운 기술과 기법을 거부하고 전통에 머무르려는 방어적 모습으로 인해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중심이 되어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예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 이후 프랑스에 전파된 유럽의 기능주의는 쇠퇴하나 점점 도시화 되고 대체 에너지에 대한 관심 고조로 디자인은 국제화되어 간다. 다품종 대량생산의 경향이 나타났고 아방가르드의 재활성화에 의해 조형예술의 부활과 수공예에 대한 가치가 재발견되어 실내디자인이 크게 대두되었다. ​ 빌모트는 고전 건축을 개수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과거와 현대를 접목하는 자신만의 디자인을 발전시키며 20세기 초 건축가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 ntosh와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 그리고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에게 영향을 받는다. ​ 스코틀랜드의 매킨토시는 가구부터 실내디자인을 비롯하여 건축에 이르는 전천후 디자이너 겸 건축가로 고전적인 축을 결합한 장식을 배제한 공간을 선보였다. 미술공예운동과 역사주의, 자연의 형태, 일본문화 등의 영향을 받아 기하학적인 아르누보의 특성을 지니는 공간에서 수평선을 강조하면서 장식 없는 담백한 공간과 단순한 디테일을 통해 새로운 비례 체계를 완성하였다. ​ 또한 수평과 수직을 통한 기하학적인 시스템으로 마감과 구조를 일하고 직선 요소와 곡선 요소의 대비로 상승작용을 취하는 작업을 하였다. ​ 사진 이정미 요제프 호프만은 비엔나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이탈리아 여행을 계기로 자유롭고 새로운 형태를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매킨토시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이기도 한 호프만은 윤곽선을 통해 세심하게 건축물을 장식하면서 육중한 매스 덩어리가 아닌 면으로 구성된 건축으로 인식되도록 디자인한다. ​ 기하학적인 구성과 축의 설정 그리고 단순미가 돋보이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이탈리아 건축가 중 카를로 스카르파의 영향으로 디테일과 공간에 빛의 사용에 대한 영향을 받았다. 장-미쉘 빌모트는 이질 재료의 구성과 통합을 통해 접합부를 강조하는 장식적 디테일과 빛의 양을 풍부하게 받아 들여 부드럽게 확산시키는 모서리 창, 이중 파사드 등의 공간 조형 언어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 빌모트는 건축의 모습이 실내공간을 결정짓는다고 말하는데, 이는 19세기 건축이념이 현대에도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와 현재의 교류를 영원한 주제로 여기며, 공간의 맥락성을 표현하려 하였기 때문에 기존의 흔적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가미해 나간다. 과거의 것과 현대의 것의 강렬한 대조를 통해 상반된 시간의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 가나아트센터 사무동 외관의 수평의 목재는 시간의 흔적을 느끼게 하고 매끄러운 백색의 수평 외장재와 질감의 대비를 통해 건축물에 포인트를 주었다. 또한 서울옥션하우스의 청동재 마감과도 대비를 느끼게 하였다. ​ 북한산 자락 경사지에 위치한 가나아트센터는 석회석 계열의 환한 아이보리색이 칠해져 아침 햇빛을 받아 명암의 대조를 부드럽게 보이며 그 자태가 마치 직각 버전의 백자를 보는 듯 하다. ​ 오르막 진입 시에는 두 개의 벽면과 지붕을 메인 매스에서 떨어뜨리고 그 사이를 어둡게 유리로 처리하여 면들은 가볍게 움직이는 듯 하고 건축물 매스는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부각된다. ​ 반면 내리막 길에는 이중 외피로 인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으로 흡사 벽면과 지붕 면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형상을 보인다. 그리드를 이루는 외벽 석회석 타일은 백색의 부정형 재료이며 겹겹이 층을 이루는 흰색 패널들이 빛과 움직임에 응답하며 역동적 구성을 만들어낸다. ​ 사진 이정미 석회석 계열 아이보리 외벽을 메인으로 수평의 어두운 목재 루버를 요소요소에 적용하고 금속과 유리를 재료로 하여 절묘하게 처리했다. 금속은 지붕 루버로, 창틀로, 계단실 오브제들로 나타난다. ​ 미술관 진입은 2차선 도로지만 차량 통행이 적어 보행로로 느껴질 정도로 한적한 메인 도로에서 목재로 된 계단식 기단을 거쳐 바로 들어가거나, 언덕 쪽으로 미술관을 지나 야외 공연장의 대형 계단을 내려와 뒷마당을 통과하여 진입할 수 있다. ​ 경사지에 위치한 지형의 특성을 살려 한국전통의 마당 같기도하고 서양의 오디토리엄과도 같은 야외 공연장이 미술관에 빛의 양을 풍부하게 하는 역할과 함께 완충 공간의 역할을 한다. 외부 공연장에서는 퍼포먼스 등의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조각들은 공연장 위쪽 실외에 배치되어 있다. 사진 이정미 후면 외부 벽면에는 계단의 구조를 표현한 디자인으로 빌모트의 건축 특성 중 하나인 계단을 통한 오브제화를 표현하고 있는 외부 계단이 있다. ​ 공간 구성은 중정을 중심으로 전시, 판매, 업무 공간으로 나누어 옥외 계단과 나란히 뻗어있는 브리지로 공간을 연결하고 분절하는 한편, 전면의 일부 벽과 특히 마당 쪽 벽을 모두 창문 벽으로 처리하여 각각의 내부 공간마다 자연의 빛을 은은하게 또는 가득 채우며 공간에 활기를 제공한다. ​ 또한 벽과 지붕에 적용한 다양한 비율의 목재와 금속 루버 그리고 창문의 프레임을 통해 수직 수평의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후면으로 진입하면 뒷마당에서는 석탑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는 조각품들이 있다. 사진 이정미 이 중에서 지용호의 ‘버팔로 돌연변이’가 강렬하게 시선을 끈다. ​ 후면 마당을 통한 진입은 내려다보며 공간을 관장하는 느낌이다. 넓고 밝은 곳에서 은은한 빛이 유입되는 실내로 진입하는 느낌이다. ​ 메인 전시를 보기 전 미술관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는 항상 즐겁다. 메인 도로 쪽 주출입구는 짧은 진입 유도 동선이지만, 계단을 올라 로비 진입을 유도하는 계단식 기단 위에 올라서면, 굵직한 집성목 목재바닥으로 된 넓지 않은 매개 공간이 발코니로 연결되며 금속루버로 된 떠 있는 지붕과 돌출된 매스가 만드는 지붕이 마치 전통한옥의 대문 앞에 서있는 느낌을 만든다. ​ 안내데스크가 있는 로비는 좌우가 창문벽인데 들어서면 맞은편 마당 쪽에서 비추는 아침의 빛이 로비에 스며들면서 그림자를 통해 공간에 시간성을 부여한다. 투명한 전면창 너머로 마당을 향해 공간은 확장된다. 가나아트센터는 아침에 방문하는 것을 권한다. ​ 아침의 서측 진입부 창에는 블라인드를 모두 내려 빛이 주는 극적 효과가 잘 구현되도록 하고 로비는 강한 직사광선이 만드는 창틀의 그림자가 공간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그 결과 백색 실내에 아주 다양한 톤의 변화가 나타나 부드럽고 감각적인 특질이 결합된 명료한 시야를 구축한다. ​ 제1전시실은 안내데스크 뒤로 몇 계단 아래에, 외부에서 보았을 때 뒤쪽 매스 부분에 위치한다. 전시장 내부는 비교적 낮고 아담한 규모다. 창문이 없지만 안쪽 깊숙한 곳에서 뒤돌아 보면 입구에서는 마당 쪽에서 들어오는 아침의 빛이 은은하게 투입되고 있다. 전시장 내부에 있는 계단을 통해 수직으로 위에 있는 2층의 제2전시장으로 연결된다. ​ 사진 이정미 방문했을 때는 세 개의 전시장 모두에서 한국 추상 초기 대표 작가 이응로 작가의 ‘군상’ 시리즈가 시대별로 전시되고 있었다. ​ “화가의 무기는 그림입니다. 예부터 예술가들은 권력자에 봉사하고, 권력의 노예가 되어 왔지요. 그러나 현대의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굳게 지키며 민중들 편에 서야 합니다.” ​ “나는 그림의 제목을 모두 ‘평화’라고 붙이고 싶다. 서로 손잡고 같은 율동으로 공생공존을 말하는 그림 아닌가, 그런 민중의 삶이 곧 평화라 본다. 이 사람들이 바로 민중의 소리이고 마음인 것이다.” ​ 라고 말하는 이응로 화가의 말처럼 예술이 민중들 편이 되고, 민중들이 함께 공생공존하는 평화를 기원해 본다. 사진 이정미 동백림 사건으로 옥중에서 밥알을 매일 조금씩 모아서 헌 신문지에 개어서 조각품을 만들었던 군상 시리즈의 모티베이션이 된 옥중조각 두 점이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 제1, 2, 3전시장은 각각 1층에 제1전시장, 그리고 제1전시장 내부계단을 통해 2층에 오르면 제2전시장이 있고, 로비홀 상단으로 직교하는 외부의 계단과 수평을 이루는 브리지를 통해 제3전시장으로 연결되는 구성이다. 브리지 공간은 제3전시실로 들어가는 전실 역할을 하며 엘리베이터나 계단이 아래층과 레스토랑과 전시실을 3층으로 연결한다. ​ 공간은 압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경사지 지형의 특성을 이용한다. 제1전시실은 로비로부터 몇 계단 내려가 있고, 수직으로 위에 있는 제2전시장을 나서면 길고 환한 브리지로 된 갤러리 공간이 펼쳐지며 이 공간의 양측에서 자연광이 들어온다. 사진 이정미 이어지는 제3전시장은 입구 좌측에 있는 엘리베이터실 매스 하나가 공간에 강력한 역할을 하게 된다. 암실처럼 차분한 장방형 우측 전시실 벽을 따라 작품을 감상하며 진행하다 보면 검은색 패널 하나가 서 있다. 그 뒤 넘어에서는 은은하게 좌측에서 빛이 번져 들어온다. ​ 제3전시장의 막다른 곳에서 좌측으로 꺾어지면 공연 마당이 보이는 광경을 틀짖는 창문벽이 있다. 그 창을 통해 자연의 빛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실 공간과 사이에 난 이 창문벽을 통해서 외부 계단실에서 사무동으로 연결되는 복도 공간을 너머 창문벽과 복도의 갤러리 천장으로 걸러진 빛이 복도에서 들어온다. ​ 그 뒤에는 마당과 대형계단 그리고 전통적 수목인 소나무가 식재되어 동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또한 깊이 들어온 이곳 실내에서는 대형계단과 소나무가 시야를 막아주기 때문에 하늘이 보일 때의 눈부심은 줄어든다. 사진 이정미 이응노 화가의 말년작에는 색이 사라지고 춤추는 듯한 군상들만이 점점 더 늘어난다. 전시장 실내를 이루는 색상은 제2전시장에서 보이던 갈색마저도 사라지고 흙색과 백색으로만 정리되어 있다. 거기에 자연의 빛만이 시시각각 변하며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다. 다시 돌아 나온 갤러리홀에는 3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흰색으로 이어진다. ​ 난간 패널, 강철기둥의 I빔 등은 서양의 클래식한 디테일로 정교함을 보여주며 금속의 오브제처럼 가구식으로 짜여져 직선으로 자리한다. 3층 또한 외부의 계단과 수직을 이루는 브리지를 통해 연결된다. 3층에는 브리지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는 오픈된 실내공간과 외부 데크가 정면과 좌측, 양쪽에 배치되어 있고 브리지 공간 양쪽의 창을 통해 공간은 외부로 확장되며 도시로 확장 된다. ​ 자연광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다. 양측의 데크 모두 높은 지형에 위치한 미술관의 특성으로 인해 평창동 일대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이 데크들이 주는 광경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 ​ 사진 이정미 74년생 젊은 조각가 이환권의 ‘늘어진 소녀상’이 깜짝 놀라게 한다. ​ 소녀상도 깜짝 놀란 표정을 하고 있다. 위트있는 즐거운 경험이랄까. 3층 발코니를 나가면 평창동 전경을 틀짖는 발코니 난간과 내밀어진 지붕이 그늘을 제공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1층에는 미슐랭 가이드에 오른 한국 전통음식점이 있다. ​ 이 음식점에는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예찬하는 이왈종 화가의 작품이 함께하고 있다. 일상에 쫓기는 삶이지만 언젠가 휴일 아침 일찍 미술관을 찾아 작품들과 함께 한적한 여유를 즐기는 기회가 있기를 기원해 본다. 사무동 화장실에 있는 착시효과를 이용한 독특한 간접조명 창은 재미를 더해준다.

한국의 크리스마스 씰

자료제공 대한결핵협회 기획취재 공공디자인저널 인턴기자 정가람솔 ​ ​ 어린시절 성탄종소리가 울릴 때쯤이면 학교에서 샀던 알록달록 크리스마스 씰과 우체국에 달려가 크리스마스 씰시리즈와 씰첩을 사던 일이 떠오른다. 결핵 퇴치기금을 모으기 위해 크리스마스 전후에 발행하는 크리스마스 씰의 기원을 찾아 본다. 척박한 한국의 의료환경을 바꾼 푸른 눈의 의료선교사 셔우드 홀(Sherwood Hall) ​ 100여 년 전 누구 하나 눈길 주지 않던 동방의 작은 나라에 찾아와 열악한 의료환경 개선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던진 푸른 눈의 선교사들에게 당시 우리나라가 해줄 수 있었던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그들은 기본적인 인격체 취급받지도 못하던 당시의 여성들을 위해 힘썼고 폐결핵을 악귀에게 받는 벌이라 생각하던 무지한 한국인을 위해 힘썼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힘썼던 것처럼 그들의 노력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도록, 겹겹이 쌓이는 역사의 층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그들을 기억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 덴마크 코펜하겐의 작은 마을 우체국장이었던 아이날 홀벨은 결핵으로 목숨을 잃어가는 아이들을 도울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연말이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우편물에 붙여 기금을 모으는 씰(seal)에 착안하였고, 1904년 국왕의 허락을 받아 세계 최초의 크리 스마스 씰을 발행했습니다. ​ 그 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크리스마스 씰 모금 운동은 전 세계적인 결핵퇴치 운동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캐나다인 선교사 셔우드 홀에 의해 최초의 씰이 발행되었고, 1953년 대한 결핵협회의 창립과 함께 결핵퇴치 기금을 모으는 모금 운동으로 정착되었습니다. ​ 대한결핵협회는 매년 10월부터 2월까지 5개월간 크리스마스 씰 집중 모금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인 성금은 결핵퇴치사업을 위해 협회가 수행하는 각종 사업에 투입되어 소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 특히 노숙인 결핵지원사업, 학생 행복나눔지원사업, 결핵시설 지원사업 등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결핵치료 및 생활지원을 위해 값지게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결핵을 퇴치하기 위한 각종 홍보 사업, 결핵조기발견을 위한 검진사업, 결핵균 검사 및 연구사업 등의 주요 재원이 됩니다. ​ 지난 해 메르스 사태를 통해 우리는 값진 경험을 얻었습니다. 전염병 관리의 중요성과 위기 상황 대처의 중요성을 보았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있어왔던 질병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에 서 멀어진 결핵, 지금이 위기라는 마음으로 철저하게 관리하고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 결핵으로부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대한결핵 협회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 대한결핵협회장 경만호 크리스마스 씰의 유래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세계 최초의 씰 발행자 아이날 홀벨 산업혁명 이후 결핵이 전 유럽에 만연했던 19세기 말, 덴마크도 예외가 아니었다. 천성이 착하고 어린이를 좋아했던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 직원 아이날홀벨(Einar Hollbelle)은 당시 많은 어린이들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 그러던 중 연말에 쌓이는 크리스마스 우편물과 소포를 정리하면서 동전 한 닢짜리‘씰’을 우편물에 붙여 보내도록 한다면 판매되는 동전을 모아 많은 결핵기금을 마련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국왕인 ‘크리스찬 9세’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마침내 1904년 12월 10일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되었다. 그의 소박한 발상이 많은 덴마크인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냄으로 써, 크리스마스 씰 운동은 빛을 발하게 되었다. 1953년 ​ 한국전쟁으로 결핵이 급격히 만연하자 1953년 11월 6일 뜻있는 선각자들에 의해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었다. 창립과 함께 대한결핵협회에서는 그 해 12월 보건부의 승인을 얻어 첫 씰을 발행 하였다. 소재는 색동저고리를 입은 소녀로, 우표 도안가였던 강춘환 씨가 도안했다. ​ 색동저고리는 설빔으로 새해를 축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남존여비, 남아선호 사상을 매우 싫어했던 셔우드 홀의 뜻에 따라 문창모 박사가 적극 추천하여 이 도안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 씰 전지 구성은 특이하게 18×10(180매)이며, 유럽과 미주지역에서 실시하여 성과를 거두고 있던 우편모금 방법을 채택하여 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보건소, 의원, 단체 등에 크리스마스 씰 모금 취지문과 함께 발송하였는데 국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씰이 전혀 인식되지 않은 상태여서 상당수가 봉투를 개봉도 하지 않은 채 반송되었다. ​ ​ ​ 미국의 크리스마스 씰 운동 미국에서 최초로 씰을 발행한 에밀리 비셀 덴마크에서 발행된 크리스마스 씰이 붙은 편지가 대서양을 넘어 미국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덴마크계 미국인 작가 자콥 리이스(Jacob Riis)는 고향에서 보내온 편지에 크리스마스 씰이 붙여진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결핵의 비극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형제 중 6명이 결핵으로 죽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핵 기금 마련을 위해 씰 운동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던 활동적이고 인정이 많은 델라웨어(Delaware) 의 에밀리 비셀(Emily bissel)과 함께 결핵환자를 입원 치료하던 한 병원의 운영비를 마련하고자 씰 모금운동에 나서기로 결심하였다. 씰 도안은 자신이 하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1907년 윌밍톤(Wilmington) 우체국에서부터 씰 판매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씰 운동에 대한 호응도가 낮아 잘 판매되지 않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신문사를 찾아가 간곡히 설명하였고 열의에 찬 그녀의 의지에 감동한 편집장은 마침내 크리스마스 씰에 관한 이야기를 기사화하였다. 지역사회 언론의 역할로 메시지가 전달되면서 미국의 대 통령, 대법원장, 국회의장이 모두 씰 모금에 앞장섰으며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씰 운동의 확산 ​ 1904년 발행된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덴마크와 미국으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자 곧 스웨덴, 독일 및 노르웨이 등 주변국이 뒤따르고 1915년엔 루마니아에까지 전파되었다. 동양권에서는 1910년 필리핀에서 처음으로 씰이 발행되었으며 이어 일본에서는 1925년 12월에 자연요 양사(自然療養社)라는 민간 잡지사가 처음으로 씰을 발행하였고 1926년부터 결핵예방회에서 본격적으로 씰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 세계 여러 곳에서 씰 운동이 성공을 거두자 1925년 이후로는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이태리 등 유럽국가와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국가 및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 중동지역으로 확산되었고 많은 나라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함으 로써 사랑과 나눔의 실천운동은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운동 셔우드 홀 박사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12월 일제 치하에서 캐나다의 선교의사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 처음으로 씰 운동을 시작하였다. 셔우드 홀은 감리교 부부 선교의사 윌리엄 제임스 홀 (William James Hall)과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사이에서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가난한 결핵환자들과 일반 서민들을 돌보고 깨우치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캐나다에서 의학공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926년부터 해주구세병원에서 일하다가 1928년 해주구세요양원을 설립하였다. 문창모 박사 셔우드 홀은 1932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면서 발행동기를 “첫째, 한국사람들에게 결핵을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둘째, 만인을 항결핵 운동에 참여시키는 것, 즉 씰 값을 싸게 하여 부자 나 가난한 사람이 모두 사도록 하고, 셋째는 재정적 뒷받침을 필요로 하는 결핵퇴치사업의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라고 회상하였다. 당시 셔우드 홀과 함께 일하던 문창모 박사와 크리스마스 씰 위원회 집행위원이던 김병서 선생도 씰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32년 이후 1940년까지 9차례에 걸쳐 씰이 발행되었지만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 셔우드 홀이 스파이의 누명을 쓰고 일본 헌병대에 의하여 강제로 추방, 정든 한국 땅을 떠나게 됨으로써 씰 발행도 중단되었다. 그의 헌신적인 노 력에도 불구하고 씰에 대한 당시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 당시 씰 운동이 얼마나 어려웠던가에 대한 한 가지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있다. ​ 결핵을 앓던 어떤 여인이 씰을 가슴에 붙이고 셔우드 홀을 찾아와 “선생님, 저는 씰을 이렇게 가슴에 붙였는데도 낫지 않습니다”라고 호소하였던 이야기는 씰 초창기의 일화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 셔우드 홀은 1991년 4월 5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98세로 타계하였으며, 유언에 따라 부모가 묻혀 있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해 9월 19일 부인 메리안홀(Marian Hall)도 같은 장소에 안장되었다. ​ ​ 8.15 이후의 크리스마스 씰 운동 김병서 선생 8·15 해방 후에는 1949년 과거 해주에서 셔우드 홀을 도왔던 문창모 박사가 주도하여 한국복십자회에서 씰을 발행하였고 1952년에 한국기독의사회에서 씰을 발행하였으나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범국민적인 성금 운동으로 착수된 것은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부터였다. 그 후 대한결핵협회는 매년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였으며, 이승만 초대 대통령 때부터 매년 대통령을 비롯한 삼부요인은 물론 각계각층 인사와 학생 등 온 국민이 씰 모금운동에 기꺼이 참여함으로써 점차 결핵퇴치기금 모금운동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미8군 장병도 씰 운동에 동참하였다. 이와 같이 사회적인 씰의 인식도가 제고되면서 크리스마스 씰 이외에 1963 년에는 극장모금이, 1964년에는 고궁 입장료 첨가모금이 시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궁모금은 1971년, 극장모금은 1973년에 각각 중단되었다. 남해바다의 신비 1995년 씰 20종 1974년에는 행정개혁위원회의 건의로 크리스마스 씰 모금 허가 액수가 대폭 감액되고, 대신 체신부 주관으로 우표 첨가모금이 실시되었으나 한 번으로 끝났다. ​ 1980년부터 씰 모금허가액이 다시 증가되면서 이에 따른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씰 운동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게 되었다. 임금님 행차하셨네 2000년 씰 20종 1983년 대한결핵협회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크리스마스 씰첩’을 발행하여 비매품으로 공급하는 한편 씰 수집에 열의를 가졌던 분들을 위해서 씰 수집 경진대회도 개최하였다. ​ 1984년에는 우리나라 우표 100주년을 맞아 체신부가 10월 22일부터 10월 31 일까지 개최하는 국제 우표전시회에서도 과년도 씰을 일반에게 판매하여 씰 수집가의 수입열에 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 1988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11월 3일부터 11월 8일까지 세계 크리스마스 씰 전시회를 개최하였으며 과년도 씰을 수집가에게 판매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한국 조폐공사에서는 화폐박물관 개관 때 크리스마스 씰 상설 전시대를 마련하여 한국 씰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과 우주과학기술 2008년 씰 뽀로로 친구들이 함께하는 겨울 스포츠 2011년 씰 ​ 1989년에는 크리스마스 씰 모금의 주 대상인 학생들이 친근하게 부를 수 있도록 크리스마스 씰의 노래를 시인 구상 씨가 작사하고 길옥윤 씨가 작곡하여 1993년 창립 40주년 기념행사장에서 조선일보 소년소녀 합창단이 노래를 불러 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1990년에는 지난해에 발행된 세계의 크리스마스 씰 영문판을 발간하여 IUATLD(국제항결핵 및 폐질환연맹) 회원국에 배포하였으며 일부는 IUATLD에 기금 확보를 위하여 기증하였다. ​ 1993년에는「한국의 크리스마스 씰」도감을 발행하여 국내외 수집가 들의 수집욕구와 씰 수집에 대한 관심을 높였으며, 1999년에는 그동안 누락된 자료와 새로운 씰들을 보완하여 2판을 발행하였다. 또한 2003년에는 창립 50주년을 맞아「한국의 크리스마스 씰」3판을 발행 하였으며, 2010년에는 씰 도감을 구하고자 하는 수집가들의 요청이 이어져 네 번째로「한국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되었다. ​ 매년 IUATLD 연차회의 때 실시하는 크리스마스 씰 콘테스트에서 우리나라는 1988년, 1989년, 1990년, 1992년, 1993년, 1995년, 1996년 총 7회에 걸쳐 1위 입상을 하였고, 1987년과 2000년도에는 2위 입상, 1985년도에는 3위에 입상하여 다른 회원국들로부터 한국은 씰 콘테스트에 참가하지 말라는 권유를 받을 정도로 디자인과 인쇄기술의 우수성을 보여주었다. 출처 발행인 회장 : 경 만 호 발행일 : 2016. 3. 발행처 : 대한결핵협회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바우뫼로 6길 57 전화 : 02-2633-9461 홈페이지 : www.knta.or.kr / loveseal.knta.or.kr SNS 페이스북 - facebook.com/kntapr 블로그 - blog.naver.com/knta_pr 이 책은 협회 역사 자료를 비롯해 여러 씰 수집가 분들의 원고, 자료들을 참조하여 제작되었습니다. 도움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이탈리아 베네체아[VENEZIA]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 ​ 청운대학교 교수 정 희 정 디자인학 박사 Canon EOS 5D F9 1/500s 베네치아[Venezia]는 영어로 베니스(Venice)입니다! ​ 물의 도시 베니스! 절묘한 예술품 같은 창조물이 가득한 도시 베니스! 세계를 장식하는 보석상자 베니스! ​ 그토록 아름다운 베네치아가 최근 반백 년 만에 대홍수로 수위가 160cm에 이르게 올라 베네치아의 대명사인 산마르코 광장이 폐쇄되고 학교가 휴교령이 내리고 시민들이 재해를 당했습니다. 세계의 문화재 또한 비상입니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 도시의 문화재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켜야 할까요? 우리 인류의 기억과 추억이 담겨있는 베니스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Canon EOS 5D F/11 1/500s 아드리아해의 반짝이는 햇살 아래 흔들리는 곤돌라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카페의 야외데크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모금을 목에 적십니다. ​ 2002년 월드컵이 열린 다음해 필자는 이탈리아에서 처음 커피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큼 달콤 씁쓸한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 무렵 유럽문화의 아름다움에도 함께 취했던 시절이었습니다. ​ 16년 전인 2003년과 2008년 두 차례 베니스를 경험했습니다. 당시 유럽은 필자에게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 하늘을 찌를 듯 웅장하고 정교한 건축물과 가는 곳마다 역사적 배경이 되는 곳들 특히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던 아드리아해의 보석 베네치아는 유럽 특유의 낭만이 배가 되어 오랜 세월 동안 가슴속에 기억되는 곳입니다. ​ Canon EOS 5D F/10 1/500s 베네치아[Venezia]는 영어로 베니스(Venice)로 불리는 이탈리아 베네토주(州)의 주도(州都)이며 ‘물의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니스를 묘사하고 찬미하는 데는 장르가 없으며 시대 또한 초월합니다. ​ Canon EOS 5D F/8 1/500s 물의 도시 베니스! 절묘한 예술품 같은 창조물이 가득한 도시 베니스! 세계를 장식하는 보석상자 베니스! 괴테는 모든 것이 풍요롭게 반짝인다고 표현했으며 사랑으로 만들어진 베네치아라고도 일컬어지며 라틴어로 ‘계속해서 오라’는 의미를 가진 지구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 ​ 두 눈을 감으면 아드리아해의 바람이 솜털 위에 살랑이며 노젓는 곤돌라가 음악 소리로 들려옵니다. 또한 화려한 가면무도회가 열리고,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축제가 열리기도 합니다. Canon EOS 5D F/11 1/500s 상업과 예술의 번영이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향락과 은밀한 관능의 세계로 바라보기도 했던 베니스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도 있습니다. ​ 여러 자료들을 찾다 보니 1647년에 오픈했다고도 하고 1720년에 오픈되었다고도 알려진 산마르코광장의 카페 플로리안에 카사노바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탄식의 다리를 건너 감옥에 있다가 탈출하여 도망하는 과정에서 평소 즐겨 찾던 이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신 후 플로리안의 커피 맛은 변함없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재미난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 베네치아의 역사는 567년 이민족에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만(灣) 기슭에 마을을 만든 데서 시작됩니다. ​ 베니스는 원래 바다 늪지대였는데 베니스에 이주한 사람들이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으나 여러 문헌 자료의 평균값으로 이야기하면 약 110만 개 정도의 말뚝을 박아 110여 개의 섬을 조성하고 섬과 섬을 400여 개의 다리로 연결하여 만든 인공운하의 도시라고 합니다. ​ Canon EOS 5D F-10 1/500s - 베니스의 건물에 창문이 많은 것은 건물의 하중을 줄여 가라앉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고도 합니다. 베니스는 인구 15만 정도의 작은 도시로 1,000년을 지속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동지중해와 아드리아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로는, 아드리아해의 서쪽 해안에 위치하여 유럽 중부대륙과 연결되며 동구와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지리학적 접근성이 주요했다고 합니다. ​ 또한 인구 15만의 베니스시민들은 자력 생산기반이 없이는 지속가능성의 생존이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우치고 해외무역상인이 되어 상선대를 조직하여 지중해를 넘어 인도양까지 원거리 무역을 하였습니다. ​ 고기를 좋아하는 유럽인들에게 엄청난 이윤을 남기고향신료를 판매하며 부를 축적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다른 한편으로는 아드리아해 달마시아 지역 해변은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해적들이 출몰하여 베니스 상인들의 상선을 약탈하는 일이 심해졌고 이를 계기로 부유한 베니스는 단시간 내에 동지중해에서 가장 강력한 함대를 구축하게 되었고 베니스 함대는 달마시아 해적을 소탕하고 나아가서 비잔틴 황제에게 동지중해와 아드리아해를 지키는 재해권을 위임받아 십자군 원정을 주도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 베니스는 아름다운 산마르코 광장과 미로 같은 수로 사이의 건축물과 또 미로 같은 골목길들 또한 재미있는 볼거리 관광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는 단연 산마르코 광장입니다. ​ 그곳에는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산마르코 대성당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마르코 대성당은 성인 마르코의 유골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로 옮겨와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10세기 후반에 일부가 불에 소실되었으나 11세기에 대부분 복원되었고 일부는 13세기와 15세기에 증축한 것으로 산마르코 대성당은 중세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 건물이 웅장하고 뛰어난 예술품으로 장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 건축의 장점을 조화롭게 구성하여 베네치아 양식이란 새로운 건축 양식을 만들었는데 웅장하면서도 화려하여 훗날 서유럽 건축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Canon EOS 5D F-11 1/500s 산마르코 광장과 주변에는 독특한 건축 양식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많은데 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는 두칼레궁전은 베네치아 고딕 양식을 대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칼레궁전과 감옥 사이에는 운하를 연결해주는 다리가 있는데 죄인들이 감옥에 갈때 이 다리를 건너며 탄식했다고 해서 ‘탄식의 다리’라고 이름 붙여져 있습니다. ​ 산마르코 광장 남서쪽인 대운하 지역에는 베네치아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 있고 1630년 베네치아에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도시 인구의 약 20%에 해당하는 4만 7,000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흑사병으로부터 목숨을 보전한 시민들이 성모마리아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 이 성당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Santa Maria della Salute]은 56년 동안 지어졌는데, 팔각형의 바닥 위에 세운 커다란 돔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 그 밖에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San Giorgio Maggiore)은 르네상스와 신고전주의 양식이 멋진 조화를 이룬 건축물입니다. Canon EOS 5D F-10 1/500s 아름답고 신비로운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이야기가 많습니다. 종횡무진 희대의 바람둥이 이야기를 그린 2006년 개봉작 카사노바와 폴 슈레이더 감독 1990년 작품 ‘베니스의 열정’은 베네치아라는 곳에선 초현실적인 일도 별로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의 모티브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 한편,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감독의 2002년작 ‘월요일 아침’에서는 월요일 아침이면 공장에 출근해야하는 어느 노동자가 갑자기 연장 가방을 던지고 어릴 때부터 취미였던 그림 그리기의 화구를 들고 고향을 떠나 베네치아로 오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 또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1954년 작품 ‘센소’는 베네치아의 푸른 밤을 이보다 잘 찍은 경우는 없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은 인종 차별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잔인한 복수심과 사랑과 우정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거래를 하는 모험을 그린 작품으로,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가장 부유했던 도시 베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 베니스의 운하와 건축물을 배경으로 주옥같이 아름다운 사랑과 전설들이 영화와 소설로 이야기됩니다. Canon EOS 5D F-10 1/500s 겨울철에는 유럽의 가장 유명하고 매혹적인 카니발 중 하나인 베니스 가면 축제(Venice Carnival)가 열리는데 이 축제는 전통적인 가장무도회와 정교한 18세기 복장을 부활시킨 것으로 한 해 동안 이 도시의 가장 하일라이트로 시내 중심가인 산마르코 광장(St Mark's square)과 극장 등에서 뮤지컬, 연극, 곡예, 댄스 공연이 펼쳐집니다. ​ 축제 기간에 등장하는 가면과 의상은 ‘세계 유일의 가면 축제’로 찬사를 받을 정도로 그 독특함을 지니고 있으며, 이 기간 동안에는 1백만 명에 가까운 전 세계의 관광객이 몰려들어 베니스의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길은 인파들로 넘쳐납니다. ​ Canon EOS 5D F-10 1/500s Canon EOS 5D F4 1-1600s 그토록 아름다운 베네치아가 최근 반백 년 만에 대홍수로 수위가 160cm에 이르게 올라 베네치아의 대명사인 산마르코 광장이 폐쇄되고 학교가 휴교령을 내리고 시민들이 재해를 당했습니다. ​ 세계의 문화재 또한 비상입니다. 영국의 BBC방송에 따르면 전형적인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로 전 지구적인 해수면 상승과 바다 위에 세운 베니스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어서 피해가 가중된 것이라고 합니다. ​ 실제로 필자가 두 번째 방문했던 2008년에도 산마르코광장의 곳곳에 물웅덩이들이 많았으며 점점 가라앉고 있어 한국에 돌아와 지인들과 제자들에게 아름다운 베니스로의 여행을 권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오늘날 대홍수는 비단 베네치아만의 재해가 아니라 인류의 재해이며 어쩌면 재앙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수위가 160cm를 넘으면 베니스의 70% 안팎이 침수될 수 있으며 지난 홍수의 최대 수위는 180cm이었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 도시의 문화재를 어떻게 보호하고 지켜야 할까요? 우리 인류의 기억과 추억이 담겨있는 베니스가 제 모습을 되찾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디테크 게엠베하 [MASTER SCHOOL BUS]

독일의 기술과 검증을 거친 어린이 통학버스 MASTER SCHOOL BUS ​ 작성 디테크 게엠베하 R&D 개발팀 사진 디테크 게엠베하 ​ 사진 디테크 게엠베하 ​ 아이들의 등하굣길, 르노 마스터와 함께 1998년부터 유럽 상용밴 시장 1위를 꾸준하게 지켜온 100년 이상의 르노 상용차 노하우의 결정체입니다. 디테크 게엠베하의 르노마스터 어린이 통학차량은 아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책임지겠습니다. ​ 시선을 사로잡는 유러피안 스타일의 세련된 외관디자인, 여유로운 실내공간과 고급 편의 사양은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사진 디테크 게엠베하 통학차량 기본 컬러는 Yellow Color의 차체와 Black Color의 랩핑을 적용해 보다 안전하고 가시성을 높여주어 다른 차량과 보행자에게 안전운전 또는 더 큰 주의를 줄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습니다. 르노 마스터 밴에는 르노 마스터 전용 경광등 하우징이 특징입니다. 정차시 작동되는 맞춤형 경광등은 아이들의 승하차가 있음을 주변과 후방 차량에게 알려줌으로써 사고를 예방합니다. 사진 디테크 게엠베하 - STOP SIGN 사진 디테크 게엠베하 - 전면하방 확인용 거울 사진 디테크 게엠베하 - 후사경(운전석/동승석) 아이의 안전을 생각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르노 마스터 어린이 통학버스의 안전 장치는 탑승한 아이들은 물론 외부 사각지대까지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STOP Sign은 뛰어난 인지성과 견고한 안전성, 작동의 편리성을 갖추어 사고를 예방합니다. 전면하방 확인용 거울과 후사경은 차량 앞쪽에 붙인 거울로 측면이나 후방 시야를 확보, 사각지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대비하여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으며 어린이 승하차 시 위험한 상황들을 예방할 수 있는 중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후방 경고음 발생장치는 후방 안전장치 의무장착 법규에 따라 후진 기어 작동 시 경고음을 발생하여 후방에 있는 아이들의 사고를 예방합니다. ​ 사진 디테크 게엠베하 르노 마스터 어린이 통학버스는 안전하고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합니다. ​ 사진 디테크 게엠베하 아이들의 다양한 활동에 자유로움을 제공하는 넉넉하고 편안한 실내공간에 안정감있고 귀여운 시트디자인과 넓은 공간은 아이들을 위한 쾌적한 실내환경을 구현합니다. 또한 독서등, 개별 냉난방 시스템 등 아이들을 위해 디테일한 부분까지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 접이식 의자가 없는 구조로 안전하고 여유로운 좌석공간을 제공합니다. 유럽 최고 수준의 스마트 주행 보조시스템을 보유한 르노 마스터 어린이 통학버스는 아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만들어줄 것입니다. ​

논산시 축제브랜드 디자인개발

청운대학교&제이아이 논산시 축제브랜드 디자인개발 사진 '양촌곶감축제' 일러스트 타입 대표이미지 포스터 ​ “논산시 대표 5대 축제브랜드 재정립” ​ 논산시는 매년 개최하는 5대 축제(딸기, 젓갈, 대추, 곶감, 고구마)의 대외적 홍보 및 인지도 향상과 축제의 연계성 있는 디자인 체계를 위해 축제브랜드 디자인을 개발했다. ​ 청운대학교와 제이아이의 공동 작업으로 진행된 논산시 축제브랜드 디자인개발은 논산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 작업됐다. 축제를 진행하는 축제추진위원회, 마을 부녀회장, 이장님 등 논산을 대표하는 5대 축제의 농특산품을 직접 키우고 재배하는 분들의 의견을 듣고 축제의 주제인 농특산품의 무엇을, 어떻게 브랜드로 디자인해야할 지 고민했다. ​ 논산시 축제브랜드 디자인개발의 가장 큰 핵심은 축제 대표이미지 아이덴티티 구축이다. 브랜드 로고가 아닌 대표 이미지가 중요한 이유는 축제브랜드이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브랜드를 개발하고 로고 컨셉에 맞춰 대표이미지 및 홍보물을 구축하지만 축제는 다르다. ​ 축제는 매년 개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표이미지의 아이덴티티가 구축되어야 축제브랜드의 상징성, 연계성, 일관성을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잡게 된다. 논산시 대표 5대 축제는 논산의 사계절을 축제를 통해 즐길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천혜 환경을 가진 논산에서 제철에 익은 농특산품을 논산의 자연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이다. 이를 논산시 축제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정하고 브랜드 컨셉을 도출했다. ​ 브랜드 컨셉은 ‘유쾌하고 건강한 만남’이다. ​ 사람과 사람의 만남, 명품 특산물과의 만남, 도시와 농촌의 만남을 의미하며 다양한 연령대가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논산시 축제브랜드 대표이미지는 논산의 사계절과 잘익은 농특산품을 대표이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고 호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작업했다. 사진 '양촌곶감축제' 이미지 타입 대표이미지 포스터 12월에 열리는 ‘양촌곶감축제’는 논산의 한해를 마무리하는 축제이다. ​ 일러스트 타입은 한겨울에 열리는 축제이지만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따뜻하게 즐길 수 있는 축제임을 나타낸다. 반대로 실사 이미지 타입은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톤앤매너로 작업했다. ​ 사진 '논산딸기축제' 일러스트타입 대표이미지 포스터 사진 '논산딸기축제' 이미지 타입 대표이미지 포스터 5대 축제 대표이미지는 두가지 타입으로 디자인되었다. 가족, 친구, '연인의 유쾌하고 건강한 만남'이라는 축제브랜드 컨셉에 맞는 일러스트 타입과 논산시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고품질의 특산물을 표현한 실사 이미지 타입이다. 사진은 딸기 중 '설향'이라는 품종으로 새하얀 눈위에 딸기를 연출해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사진 '강경젓갈축제' 이미지 타입 대표 포스터 바다를 나타내는 듯한 배경은 자세히 보면 ‘강경젓갈축제’가 열리는 둥근 달이 뜬 10월의 밤을 표현하기도 한다. 젓갈을 그렸을 때 맛있어 보이지 않는 점을 고려해 젓갈로 만들어지는 원물 위주로 그래픽 작업을 했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담아냈다. 실사 이미지 타입은 젓갈의 역사를 가진 강경의 전통적인 부분과 정갈하고 깔끔한 젓갈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사진 '강경젓갈축제' 일러스트 타입 대표이미지 포스터 사진 '상월고구마축제' 일러스트 타입 대표이미지 포스터 사진 '상월고구마축제' 이미지 타입 대표이미지 포스터 늦여름과 초가을에 열리는 상월고구마축제는 계절감을 담아내기가 어려웠다. 일러스트 타입은 고구마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톤앤매너로 했고 실사 이미지 타입은 품질 좋은 고구마를 보여주고 있지만 늦여름의 싱그러움도 나타내고 있다. ​ 사진 '연산대추축제' 이미지 타입 대표 포스터 사진 '연산대추축제' 일러스트 타입 대표이미지 포스터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40년!

1973년 봄에서 연말까지 국가보안법 위반자, 즉 ‘역적죄’라는 죄명으로 감옥의 독방에서 책만 읽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미 다산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의 일이어서 줄곧 읽은 책은 다산의 시문집(詩文集)이었습니다. 어려운 한문의 글이어서 대강대강 짐작으로 읽었지만, 잊히지 않던 글은 다산이 귀양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이었습니다. 폐족이 되어 불우하기 짝이 없는 아들들이 좌절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기를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내용에서 좌절에 빠져있던 나를 다시 깨우쳐 주었던 점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혼자만 읽기에는 너무 아쉬워 남들도 읽었으면 하는 생각도 지녔습니다. 고등법원에서 무죄로 석방되어 74년부터 밥벌이 수단으로 고등학교 교사로 생활하느라 한문의 번역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독서 한 가지 일만은 절대로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라는 내용 같은 것은 젊은 사람이나 학생들이 꼭 읽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일에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70년대가 흘러가려던 79년, 나의 막역한 친구 조태일 시인이 시인사라는 출판사를 차리고 만날 때마다 뭔가 책을 써서 출판하라는 권고를 그치지 않고 해주었습니다. 강요에 가까운 권고를 뿌리치지 못하고, ‘억지 춘향이’식으로 마지못해 응해서 이룩된 번역서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제목의 다산 서간문을 모아 번역한 책이었습니다. 한문 독해력도 약하고 번역하는 방법도 서툴러 매우 소략하고 거칠게 번역해서 출판한 날이 79년 11월 20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40년! 초판의 책이 나온 뒤로 글을 손보고 내용을 추가했으니, 이번의 책은 다섯 번째로 정성을 들인 책입니다. 글도 손보았지만, 좋은 내용을 추가해서 넣었다는 것이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떤 해에는 몇천 부, 어떤 해에는 몇만 부가 팔리면서 책은 세상에서 유명한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네 번째로 나온 2009년의 책은 금년까지 36쇄에 이르러 참으로 많은 분량의 책이 독자들을 찾아갔습니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리고 여러 곳의 대학 국어에도 게재되면서 국민적 교양서의 자리를 얻었습니다. 이런 독자들의 성원에 눈을 감을 수 없는 일은 글이 어렵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내용은 좋은데, 알지 못하는 용어나 단어들이 많다는 불평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정성이라도 기울여 용어나 단어들을 쉽게 풀어서 주를 달아주는 작업을 했습니다. 네 번째 책이 나온 지도 벌써 10년, 글도 한편 더 넣어 무게를 올리고, 중·고등학교 학생이나 젊은 독자들도 선호하도록 출판사의 노력이 기울여졌으니 조금은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책으로 나왔습니다. “사람은 한때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라는 한마디만 젊은이들이 가슴에 새긴다면, 얼마나 큰 지혜를 안겨주는 책인가요. 세상에 공개하려고 저술한 책에서는 다산의 속마음을 알아내기 쉽지 않지만, 아들·형님·제자들에게 보낸 그의 사신(私信)에는 깊은 속마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으니 다산의 마음을 알려면, 이 책이 아니고 더 좋은 어떤 책이 있겠는가요. 40년 사이, 다섯 번째 펴내는 책, 독자들의 분에 넘치는 사랑을 지하의 다산에게 전해드리면서, 다산의 용기와 지혜를 본받아 우리 모두가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에 가까이 가기를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