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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역사와 신비로운 문화! 형제의 나라, 터키 - 2편

형제애의 위기를 기회로!

 

형제애의 위기를 기회로!
“터키의 지진”

터키는 신이 사랑한 나라라고도 합니다. 땅이 비옥하고 사계절과 과일 그리고 야채가 풍부하지만 100년을 주기로 대지진이 일어납니다. 1999년 8월 26일 동아일보 사회면을 인용하면 1999년 8월 17일 새벽 터키 서부에 리히터 규모 7.4의 강력한 지진이 일어난데 이어 24일 오후에는 수도인 앙카라 부근에 규모 4.7의 지진이 또 발생합니다. 서부 이즈미트등 17일 지진의 피해가 컸던 지역에는 24일 이틀째 폭우가 내려 생존자 구조와 시체 발굴이 중단됐으며 구호품 보급에도 큰 차질이 생겼다고 전했습니다. 20만 명의 이재민이 머물고 있는 천막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으며 구호품 지급도 일시 중단돼 이재민들은 더욱 참혹한 처지에 놓였다고 합니다. 터키의 강진은 당시 러시아 경제위기 여파로 곤란을 겪고 있던 중이라 중소기업들을 거의 궤멸시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99년 8월 27일 한겨레신문을 살펴보면 17일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24일 오후 까지 1만 8000여명 부상자는 4만 2000여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 무렵 지구촌은 이상기후로 자연재해가 빈번하여 선진국들의 원조비율이 감축되고 특히 끊임없이 내전과 가뭄 등으로 인위적 자연적 재해를 동시에 겪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해 세계는 동정피로를 느끼면서 외면과 국제 구호활동 계획이 축소되거나 변경되기도 하는 등 모금의 양극화 현상이 있었던 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터키 여행 중 17년째 거주중인 한인이 슬픔에 잠겨 말하던 음성과 표정이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납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지진으로 인하여 전 세계에서 터키로 구원자금을 보냈는데, 한국정부에서 보낸 금액이 7만 불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환율로 보면 한화로 7,000만원인 셈입니다. 당시 일본은 한국보다 100배나 많은 600만 불을 지원하였고 대만이 250만 불을 그리고 전 세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가 10만 불을 국가차원에서의 구원자금으로 보냈다 고하니 한국 지원금이 제일 후순위라고 합니다. 이 사실을 신문에서 접한 터키와 관련된 한국 학자 분들이 금액이 잘못 나온 것이라 생각하고 동그라미 두 개 정도는 빠졌겠다 싶어 확인을 하기도 했다는 후문도 있었다고 합니다. 터키정부에 구원자금을 전달한 현지 공관장은 다른 나라의 지원 금
액을 알아보고 낯이 뜨거웠다고 합니다.

 

 

 

터키를 도웁시다!

한겨레신문 1999년 8월 27일에 의하면 이 무렵 주한 터키 대사관은 20일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 손실을 낳은 터키 지진과 관련해 한국인의 성금을 모집한다고 한국의 국민에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국의 학자, 언론, 의료인, 연예인, 방송인들이 콘서트와 바자회를 통하여 모금운동기간 기업체의 후원을 거절하고 국민의 순수한 모금운동을 하였는데 그 이유로 한국정부와 한국국민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계기로 한국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당시의 신문과 언론을 살펴보면


국제사회 아픔에 동참합시다!
터키의 아픔 함께 보은의 물결!
사랑해요 힘내세요!
왜 터키를 도와야하나!
그들이 우리를 도왔듯이!


다양한 제목으로 자발적 터키 돕기 운동 확산이 이루어졌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터키 재앙때 보여준 한국 정부의 태도는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국경과 이념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개념이라는 신념에서 우방인 터키의 불행에 대한 우리 정부와 국민의 인식이 지나치게 미흡하다는 생각과 터키는 우리가 어려울 때 피를 흘리며 도와준 ‘형제의 나라’ 임에도 이번 재앙을 그저 먼 나라의 일로만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 “우방국 터키의 불행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순수 민간주도가 결성”되었고 “터키국민에게 마음 전해줄터” 라는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의료봉사단이 구호활동에 참여했으며 터키를 돕고싶다며 성금기부 방법을 묻는 전화가 꼬리를 물며 국민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일고 있는 보은
과 인류애의 실천에 대한 민간차원의 운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일차적으로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터키에 대한 보은의 의미에 그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이것은 단순히 빚을 갚는다는 보은의 차원을 넘어서 지구촌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고귀한 인류애의 실천이었습니다. 터키의 방송국 STV 에서는 일주일 동안 한국에서 펼쳐지는 터키지진 전 국민 돕기 다큐를 찍고 돌아갔으며 이 방송은 50분 동안 터키의 전역에 방송 되고 이를 지켜본 터키국민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40일 동안 많은 국민들의 노력으로 23억을 마련했고 정부가 보낸 7천만 원과 국민이 만든 23억을 통해 비로소 한국이 은혜를 모르는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국민의 소원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2002월드컵
터키와 한국의 사랑

터키인들이 한국에 대해 서운했을 때가 두 번 있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88 서울 올림픽 때였고 두 번째는 1999년 터키 지진 때의 한국정부 지원금이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에 터키의 한 고위층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터키인이라 소개하면 한국인들에게서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은 데 대해 놀란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고 합니다. ‘터키라는 나라가 어디있는지 아십니까?’ 돌아온 답은 대부분 ‘아니요’였고 충격을 받고 돌아간 후 그는 자국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고 합니다.

 

이런 어색한 기류가 급반전된 계기가 바로 2002 월드컵이었습니다.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하자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터키 유학생들이 터키인들의 한국 사랑을 소개하면서 터키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습니다. 6.25 참전과 올림픽 등에서 나타난 터키인들의 한국 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팬들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습니다. 한국과 터키의 3,4위전이 열리던 당시 자국에서 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 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경기는 승패에 관계없이 한국 선수들과 터키 선수들의 즐거운 어깨동무로 끝이 났고 터키인들은 승리보다도 한국인들의 터키사랑에 더욱 감동했으며 그렇게 한국과 터키의 ‘형제애’는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유전학이나 인류학적으로도 터키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몇 안되는 북방계 몽골리언국가(몽고, 한국, 일본, 에스키모, 인디언)중 하나로, 헝가리 와 함께 북방계 몽골리언의 유전자가 많이 남아있는 유럽 국가이지만 몽고반점이 있으며 같은 우랄알타이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지만 통일신라시대 이후 우리는 중국의 영향으로 한문을 사용했고 터키는 아랍의 영향을 받아 언어는 전혀 다르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자부심을 갖는 나라, 2002년 월드컵 터키전이 있던 날 한국인에게는 식사비와 호텔비를 안 받던 나라, 월드컵 때 우리가 흔든 터키 국기(國旗)가 터키에 폭발적인 한국 바람을 일으켜 그 후 한국제품 수입을 2003년 59%, 2004년 71%나 증가시킨 나라가 바로 터키입니다.

 

 

 

2002년 6월 29일 월드컵 경기당일

붉은악마를 필두로 경기장 입구에서부터 소형 터키국기를 배포하는 등 자발적인 서포터가 이루어지고 경기에 앞서 터키의 애국가가 울릴 때 경기장에서는 엄청난 환호와 더불어 초대형 터키국기가 등장합니다. 더불어 관중석에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터키국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었습니다. 월드컵 4강 경기에 앞서 상대편 국가를 이처럼 환영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선수들은 이런 팬들에게 보답하듯이 멋진 경기를 보여줍니다. 한국은 3대 2로 아쉽게 경기에서 졌지만 관중석에서는 다시 한 번 터키의 초대형 국기가 등장했고 그 위에는 보다 작은 태극기가 등장합니다. 양 국가 선수들은 서로 손을 잡고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기도 하고 터키 대표 팀의 툰카이 선수는 자신의 아들을 그라운드에 데리고 와서 함께 달리기도 했습니다.
 

 

1월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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