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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문명의 빛 - 이집트<Egypt>문명을 통해 본 공공디자인 - 1편 소통

정희정교수의 공공디자인 세계기행 14

청운대학교 교수

정 희 정 디자인학 박사

 

Canon EOS 5D Mark II 1ㅣ30 F2.8

 

고대 이집트인들은 소통하고 기록하기위해 상형문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소통하려고 했던 방법은 언어이기 전에 형상을 담은 그림문자였습니다.

이집트의 상형문은 여러 부호를 한 줄로 늘어놓은 모양이며 글꼴의 형성 초기 단계부터 이미 그리기의 수준을 넘어서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상형문은 모양 자체를 넘어 새로운 공간 개념을 찾아내려는 인간의 시도였습니다.

올해는 눈 구경하기가 어려운 겨울입니다.

그래도 겨울답게 영하를 오르내리고 있는

추운 날씨 속에 방학을 맞아 어디론가 기행을

나서고 싶은 마음을 다잡으며 데스크에 앉아

원고정리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날씨가 춥다 보니 문득 더운 나라가 그립던 차,

과거의 기행 중 덥기로 악명 높았던 이집트를 떠올리며

10년 전의 이집트기행문을 펼쳐봅니다.

중동으로 향하는 저가 항공의 플라이두바이(Flydubai) FZ183편에 우리 일행은 8월의 무더운 여름날 22시 55분 두바이에서 이집트의 룩소르로 향하는 여름밤 비행기에 올랐다. 새벽 2시 무렵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도착 예정이다.

공항 활주로에 내려 트랩을 걸어 내려오며 푹푹 찌는 더운 바람에 실려 퀴퀴하고 텁텁한 이집트만의 이국적인 냄새가 고고한 역사의 도시를 실감케 한다.

 

Canon EOS 5D Mark II 1ㅣ50 F2.8

 

필자는 앙크수나문(Anck-Su-Namum)과 세티 1세의 총애를 받던 승정원 이모탭(Imhotep)의 금지된 사랑, 그리고 미이라와의 사투를 그렸던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영화 ‘미이라’를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또한 프랑스 출신 이집트학 학자인 크리스티앙 자크(Christian Jacq)의 장편소설 ‘람세스’를 읽고 깊이 감동받았으며, 영국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여러 곳의 전시회에서 마주했던 이집트의 유물전의 잔상들이 남아있습니다.

이로 인해 필자의 기억을 따라 그렸던 이집트는 세월이 켜켜이 쌓인만큼 퀴퀴한 냄새를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힘든 기행을 어떻게 다녔는지 신기하기도 합니다.

이집트 기행을 다녀온 후 이듬해인 2011년 이집트는 반정부시위가 열리고 이후 유혈사태에 이르게 되어 여행금지국이 되었던 적이 있었고, 몇 년 후에는 우리가 이용했던 플라이두바이(FZ/Flyduvai)항공이 러시아 남부지역 로스토프나도우공항(ROV/Rostov-on-Don Airport)에서 비와 강한 바람이 부는 악천후 속에서 착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Canon EOS 5D Mark II 1ㅣ400 F7.1

 

룩소르 [Luxor]는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660여 km 떨어진 나일강(江)변에 위치하며 룩소르신전과 카르낙신전 왕가의 계곡이 있습니다. 룩소르신전은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건립하고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증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Canon EOS 5D Mark II 1ㅣ250 F8

 

현재 남아있는 고대 이집트의 신전 가운데 최대 규모인 카르나크 신전은 룩소르 신전과 매우 가까운 3km 지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2000년부터 건립을 시작하여 역대 왕에 의해 증개축이 되풀이되어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전은 신왕국 시대부터 1,500년 뒤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걸쳐 건립된 10개의 탑문 제19왕조의 창시자 람세스 1세로부터 3대에 걸쳐 건설된 대열주실 제18왕조의 투트모세 1세와 오벨리스크 람세스 3세 신전 등이 있습니다. 특히 높이 약 23m의 석주 134개가 늘어선 대열주실은 너비 약 100m, 안쪽 깊이 53m로서 안쪽의 하트셰프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와 함께 고대 이집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Canon EOS 5D Mark II 1ㅣ320 F9

 

기행문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010년 8월 21일 섭씨 50도의 이집트를 찾았다.

500리터 생수 두 병을 뒷주머니에 구겨 넣고 얇은 스카프로 얼굴을 돌돌 말아 가린 후 카메라 두 대를 어깨에 올리고 버스에서 내리면 마치 헤어드라이기의 뜨거운 바람이 내 얼굴을 향하고 있는 듯 뜨겁고 따가운 열기가 숨통을 죄어온다.

말이야 찬란한 문명의 빛 이집트와 그리스를 통해 본 공공디자인기행이었지만 이러다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로컬가이드는 우리 일행에게 2~3일 전에는 52도까지 올랐는데 지금은 그나마 시원해져서 다행이라고 격려합니다.

숨막히는 더위의 이집트, 찬란했던 이집트문명과 파라오의 영광이 고스란히 간직된 유물에서 공공디자인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문명의 오딧세이로 명명되는 이집트기행의 첫번째 키워드로 소통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Canon EOS 5D Mark II 1ㅣ40 F3.2

 

소통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소통의 수단은 목소리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말[Speaking]의 역사는 점차 체계적인 틀을 갖춘 언어[Language]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적이라는 의미는 단순히 집단을 이루어 사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은 떼를 지어 사는 개미나 짐승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함께 모여 있어야 각각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는 하나의 생존 법칙에 의해 모여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리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닙니다. 그 속에는 지성과 감성이 공존하고 다양한 사유를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능력은 공동체라는 틀 안에서의 소통을 통해서만 길러지는데 우리가 즐겨보는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사랑과 배신의 감정, 다양한 책을 통해 접하는 지식과 성찰 등이 모두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정이라는 소집단에서 생활을 시작합니다. 가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경험하면서 자아가 생성되고 이후 인간은 성장함에 따라 개인 간의 소통을 넘어 집단생활에서도 소통의 힘을 발휘하게 되며 실제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고라(광장)에서 다양한 토론을 거쳐 의사를 결정했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의회라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고,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은 수많은 사람에게 똑같이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을 전승하기에도 시간적 육체적 어려움이 따랐고 그래서 문자[Text]가 탄생하였다고 합니다. 인간은 파피루스나 한지에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면서 소통을 기록하게 되는데 문자는 인간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후대에 전하게 되며 또한 보다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Canon EOS 5D Mark II ㅣ1/250 F-5.6

 

이집트인들도 소통을 위한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을 것이며 그러한 결과들을 우리는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갑골문과 상형문은 그 발생지가 심상치 않다는 점외에도 닮은 점이 많아 지금도 둘의 연관성에 대한 호기심의 질문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적어도 4,000여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 그중에서도 가장 발전된 지식과 정보를 다루었던 사람들은 경제와 정치의 영향력 측면에서 리더 그룹에 속했는데 그들이 소통하려고 했던 방법은 언어이기 전에 형상을 담은 그림문자였습니다. 이집트의 상형문은 여러 부호를 한 줄로 늘어놓은 모양이며 글꼴의 형성 초기 단계부터 이미 그리기의 수준을 넘어서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상형문은 모양 자체를 넘어 새로운 공간 개념을 찾아내려는 인간의 시도였습니다.

 

‘성스러운 문자’상형문은 모양과 동시에 발음을 나타내기 위한 표음부호로도 사용되었고 이후 자연스럽게 표음문자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갑골문은 인간이 가진 ‘직관’의 존재를 인식했다는 점, 상형문은 인간이 가진 ‘논리적 사고’의 존재를 인식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보면 결국 ‘직관’과 ‘논리’로 나뉘는 동서양의 문화적 특성이 글꼴을 놓고 고민하던 원시 시대부터 서로 다른 싹으로 자라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후 수천 년을 이어 내려가게 된 문자의 틀이 이미 잡혀있던 셈입니다. 동서양의 한자가 덩어리로서의 그림 글꼴이라는 것과 알파벳이 풀어쓴 표음부호라는 서로 다른 문자의 정체성은 이렇게 초기 단계에서부터 드러났습니다.

 

Canon EOS 5D F-5 1/100s

 

기원전 8,000년 경, 이른바 ‘신석기 혁명’으로 문화를 건설하기 시작한 인류는 기원전 3,000년 경 도시를 건설하고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문명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기원전 2,000년 경이 지나 지중해와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기원전 1,100년 경, 에게 문명의 몰락 이후 도시가 파괴되고 문자가 사라졌던 ‘암흑시대’를 지나, 그리스인들이 알파벳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800년 경의 일입니다. 알파벳은 처음부터 그리스인의 창작물은 아니었고 동부 지중해 연안에 있던 페니키아 문자에서 발전된 것이라고 합니다.

지중해 동부 지역에 비블로스, 시돈, 티루스 등의 도시국가를 만들고 지중해를 무대로 활발한 교역 활동을 펼쳤던 페니키아인들은 상인이었을 뿐 아니라 선진 문명을 서양에 전달하는 문명의 전달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활동으로 페니키아 문자가 자연스럽게 그리스로 전해졌고, 이후 모음이 없이 자음만 있던 문자를 그리스인들이 변형하였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모음을 표기하기 위해 아랍어 문자의 일부 자음인 A(알파), E(엡실론), O(오미크론), Y(윕실론)을 빌려왔으며, I(이요타) 등은 기존의 문자를 변형해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어 알파벳 24개 (자음17개, 모음 7개)가 완성되었습니다.

알파벳의 사용으로 지식의 대중화가 가능해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사물이나 추상적인 관념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문자는 성직자나 귀족 등 소수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한자를 알려면 적어도 1,000자, 메소포타미아의 서기들은 600자 이상의 설형문자를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문자학자들은 알파벳의 발명이야말로 지식의 대중화를 가져온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합니다. 알파벳을 통해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가능해졌고, 다양한 소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Canon EOS 5D F-6.3 1/160s - 2010년 8월 이집트 룩소르에서 편집인

 

신왕국 시대의 제18대 왕조에서 제20왕조까지의 왕들의 묘소로 만든 왕가의 계곡과 룩소르신전을 돌아본 후 우리 일행은 초경량 항공기인 MS356편을 이용해 17시 50분 룩소르를 출발하여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를 향한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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