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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韓流)로 인한 외국인(外國人)들의 가출-2

문 혜 은 공공디자인저널 큐레이터 ​

한류[韓流]로 인한 외국인[外國人]들의 가출-2 문 혜 은 공공디자인저널 큐레이터 ​ 한류 열풍이 비상하고 있습니다. ​ 동남 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남미 아랍권 국가 등에서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정과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 한국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 한국 가수와 드라마, 영화에 빠져 한국어 언어를 배우고 이를 취업으로 연결하여 코리안 드림을 꿈꾸기도 합니다. ​ 얼마전 영화 ‘기생충’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한국영화의 위상을 드러낸 작품이며 한국이 궁금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극히 한국 정서를 표현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에게도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독일 출신의 18세 셀리나[Selina]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큐레이터 문혜은 세계는 지금 한국을 주목하고 있고 한국을 알기 위해서 외국인들의 가출은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 독일 출신의 18세 셀리나[Selina]는 한국이 좋아서 무작정 짐을 싸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영화 기생충에 대한 사랑을 수차례나 드러내며 인터뷰에 응했던 그녀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 문혜은. 왜 한국에 오게 되었나요? ​ 셀리나[Selina]. 고등학교 때 연기수업을 하면서 외국 연기 스타일을 배우고 익숙해지고 싶었어요. 그중 한국영화는 나에게 가장 매력적이었고, 한국 영화를 통해 나는 한국 문화가 궁금해지고 한국으로 오기로 결심했어요. ​ 영화 기생충은 정말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해요! ​ 재미를 주면서 반전과 스릴, 스토리가 아주 논리적이었어요. 빈부 차이의 설정을 큰 집과 지하주택 가난의 상징을 냄새로 표현한 점도 디테일한 설정이었다고 생각해요. ​ 한국 영화는 강한 스토리 전개가 있어요. 예상치 못한 전개와 결말은 영화 첫 장면과 상당히 연관되어 있어 짜임새가 있는 것 같아요. ​ 장면 하나하나가 사건의 복선을 알려주는 중요한 구성이며 영상은 보고 있는 사람이 영화 속 주인공으로 혼돈될 만큼 공감과 현실감 있게 준비되어 있어요. ​ 주인공의 결핍이 뚜렷하고 그 결핍이 해결되어지는 과정이 참으로 흥미로운 것 같아요. 한국 드라마 역시 흥미로운 스토리가 많았어요. 쉽게 말하면 자극적이면서 다양한 코드를 보여주고 시청자가 주인공을 괴롭힌 상대를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상태로 한순간에 만들어 버려요. ​ 예를 들면 출생의 비밀로 인한 아픈 성장기,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복잡한 남녀관계, 재벌과 일반인의 사랑 등 파격적인 설정이 지루함없이 저를 사로잡았어요. ​ 세계지도에서 봤을 때 찾기도 힘든 나라가 이처럼 훌륭한 영화와 드라마를 탄생시킬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요. 한국영화와 드라마는 슬픔과 고통 아픔의 무거운 감정들을 잘 설명하고 있었어요. 분명히 특별함이 있어요. ​ 그리고 저는 영화뿐 아니라 한국음악도 아주 좋아해요. ​ 몇 몇의 가수가 좋은게 아니라 모든 가수와 노래가 좋아요. 잘 설명할 수는 없는데 리듬이 좋고 목소리가 아름답고 한이 있는 감정.. 하면 이해가 쉬운가요? 분단의 아픔 뭐 그런 정서에서 출현 되었을까요? ​ ‘후훗...’ 제 생각이에요. ​ 한국 가수들은 옷을 정말 세련되고 유니크하게 입는 것 같아요. 늘 화려하고 독특한 의상을 입고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활기차게 느껴지고 저도 같이 노래와 춤을 따라서 하게 되는 힘이 있어요. 슈퍼주니어, BTS의 춤은 거의 다 외울정도에요. 이들은 헤어스타일도 매우 다양해요. 모양도 수십가지, 색깔도 수십가지, 팔찌반지 악세사리도 가수와 잘 맞게 그리고 시대적으로 어울리게 선택하는 것 같아요. ​ 한국은 가수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세련된 패션을 하고 있었어요. 옷가게도 많구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되었을 때는 제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했어요. 제 패션이 너무 소박 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느낌 때문에... ​ 문혜은. 한국이 좋아서 머물고 있다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 셀리나[Selina]. 그저 좋아서 이곳에 오게 되었지만 저에게는 꿈이 있어요. 바로 배우가 되는 것이에요. ​ 한국영화를 통해 마음이 더 간절해진건 사실이에요. 성격이 외향적이지는 않아서 두렵기는 하지만 제가 알게 된 한국인들은 매우 친절했어요. ​ 그들을 통해 정보를 얻고 배우가 되는 길을 찾고, 준비하기 위해 현재는 어린이들 영어 과외를 하는 중이에요. 한국어를 빨리 완벽하게 익히고 싶어서 어린이 언어를 통해 듣고 따라하고 배우면서 하고 있어요. 아직은 의사소통이 부자연스럽고 힘들지만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독일 출신의 18세 셀리나[Selina]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큐레이터 문혜은 문혜은. 한국에서 가 본 곳중 기억에 남는 곳은? ​ 셀리나[Selina]. 바로 말할 수 있어요! 롯데월드와 코엑스몰이에요. 그 곳에 갔을 때 저는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경이로웠어요. 모든게... 장소자체도 위압감을 느낄 만큼 컸고 뭔가 펼쳐져 있으며 꽉 차 있는 마치 소우주 같은... 다양한 볼거리와 탈것들 그리고 주변 디자인은 제 눈을 사로 잡았어요. ​ 이런 즐거움이 가득한 나라,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장소가 많은 나라에도 과연 사회문제나 청소년 갈등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뭔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고 신나는 그 분위기가 좋아요. ​ 남자 친구가 생기면 또 갈거에요. ​ 문혜은. 한국이 좋은점? ​ 셀리나[Selina]. 음... 새벽까지 모든 가게가 오픈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정말 신기해요. 음식점, 옷가게, 편의시설 등등. 24시간을 여는 가게도 있었어요. ​ 코엑스몰처럼 대형 복합문화 쇼핑몰도 쉽게 찾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생각해요. 배달문화도 이색적이었어요. 무엇이든지 다 만들어서 어디든지 가져다 주는 서비스를 보고 감탄했어요. 한국은 매우 열정적인 나라 같아요. ​ 아직까지 한국에서 크게 불편을 느껴 본적이 없어요. 교통도 편리해서 지하철로 어디든 갈 수 있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안전이 정말 최고인거 같아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범죄에 이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 외국인이라고 택시요금을 더 받는다거나 밤늦게 돌아다녀도 치안이 잘되어 있어요. 음식도 저에게는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에요. 김치전, 떡볶이, 닭갈비를 저는 좋아해요. 매운 이 음식들이 왜 자꾸 생각나는지 모르겠어요. 한국문화와 역사 한국인의 가치관을 음식을 통해서도 저는 조금 이해할 수 있었어요. ​ 정열적이고 부지런한 국민성. 그렇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세계적인 전자 브랜드가 생겨나고 한류 때문에 매일 밤 짐을 싸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는게 아닐까요? 문혜은. 한국에게 바라는 점은? ​ 셀리나[Selina]. 외국인인 제 입장에서 말하자면, 한국어를 보다 빨리 배우고 싶은데 어학원 강의료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에요. ​ 한국에 와서 어학원에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서 조금은 슬퍼요. 저렴한 어학코스가 생겨서 외국인들이 멋진 나라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언어교환이라는 사설 프로그램이 많은데 그곳도 비용을 지불해야 해요. 그런 형식의 언어 습득의 제공이 봉사나 지자체에서 지원되기를 바래요. ​ 그리고 외국인들이 일자리를 찾는 것이 매우 힘들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외국인들에게 기회와 권리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 다양한 점이 많은 나라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모습이 많지는 않았어요. 일자리가 쉽게 주어지면 아마 외국인들은 한국사람과 결혼을 하고 이곳에서 계속 머물기를 희망할거에요. ​ 저 또한 그렇게 하고 싶어요. 문화를 교류하면 더 멋진 문화가 만들어질거 같은데...

시계바늘 거꾸로... 역발상의 스토리가 담긴 명소 춘천 육림고개

허름한 70~80년대풍 건물과 간판, 첨단의 젊음과 아이디어의 조화 수많은 관광객들 운집, 각자의 취향에 맞는 타임머신 즐겨

시계바늘 거꾸로… 역발상의 스토리가 담긴 명소 춘천 육림고개​ ​ 허름한 70~80년대풍 건물과 간판, 첨단의 젊음과 아이디어의 조화 수많은 관광객들 운집, 각자의 취향에 맞는 타임머신 즐겨 ​ 기획취재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춘천 육림고개는 낡음과 새로움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 낡음 속에서 ‘낡게된 의미’를 발굴해낸 부조화스런 조화로 채색된 곳이다. ​ 후미진 고갯길이 도심의 핫플레이스로 거듭난 도시재생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만한 지점이다. ​ 2020년 새해 벽두, 오래된 골목의 부활이라고 할 이곳의 겨울은 봄나들이처럼 계절답지 않은 흥겨움으로 가득하다. ​ 육림고개는 춘천의 번화가 명동에서 멀지 않은 언덕빼기 동네다. 약 300여 미터의 오르막과 내리막 비탈길이 이어지며, 양쪽으로 허름한 70~80년대풍의 가게들이 오순도순 늘어서있다. ​ 주름진 얼굴의 짙은 화장이 그렇듯, 억지로 꾸며진 흔적은 없다. 그저 방심한 듯, 수 십년 세월의 두께를 그냥 내밀고 있을 뿐이다. 그게 매력이다. 그 때문에 수많은 21세기 사람들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이곳을 찾아 각자의 취향에 맞게 타임머신을 즐기곤 한다. ​ 언뜻 보잘 것 없어보이지만, 본래 육림고개는 70~80년대 춘천 제일의 번화가였다. 명동에 그 자리를 내어주기까지 이곳은 각종 생활용품과 즐길 것 볼만한 것들이 흥청대던 곳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오면서 외곽에 신도시가 생기고, 인근 명동을 중심으로 좀더 있어보이는 모던풍의 상권이 발달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 더욱이 대형 마트들이 춘천에도 비집고 들어오면서 육림고개상권은 쓰러지고 말 운명이었다. 주민들도 대거 빠져나가면서 도심 속 스산한 빈민촌으로 추락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이치란 새옹지마 아니던가. ​ 육림고개는 춘천의 번화가 명동에서 멀지 않은 언덕빼기 동네다. 약 300여 미터의 오르막과 내리막 비탈길이 이어지며, 양쪽으로 허름한 70~80년대풍의 가게들이 오순도순 늘어서있다. ​ 주름진 얼굴의 짙은 화장이 그렇듯, 억지로 꾸며진 흔적은 없다. 그저 방심한 듯, 수 십년 세월의 두께를 그냥 내밀고 있을 뿐이다. 그게 매력이다. 그 때문에 수많은 21세기 사람들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이곳을 찾아 각자의 취향에 맞게 타임머신을 즐기곤 한다. ​ 을씨년스럽던 이곳엔 2015년을 전후한 시기, 다시 봄바람이 스미기 시작했다. 옛것을 보고파하는 세태를 활용해 춘천시가 이곳에 ‘막걸리촌 특화거리’를 만든 것이다. ​ ‘막걸리’가 풍기는 감격시대의 애잔함을 도시재생의 키워드로 이용한 것이라고 할까. 그 와중에 ‘서민주막’, ‘모친주막’ 등이 문을 열면서 사람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고, 나중엔 ‘청년 창업’을 기치로 내걸며 젊은이들을 유인하기 시작했다. ​ 젊은 창업가들이 대거 발길을 들여놓으면서 이곳 언덕빼기 빈촌은 달라졌다. 시대를 거꾸로 돌려세운, 역발상의 스토리가 담긴 명소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 개성과 위트, 발칙한 도발이 번뜩이는 상점들이 늘어섰고, 산뜻한 젊음과 아이디어, 설익은 희망과 벤처정신, 그리고 오래된 골목, 낡은 건물의 처마와 70년대풍 촌스런 간판이 마구 뒤섞이며, 그들만의 텍스트가 넘쳐나는 곳으로 변신한 것이다. ​ 그런 특별한 변화가 점차 외부로 알려지면서 춘천은 물론, 수도권 등 외지에서도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지금 와선 아예 명동을 뺨치는 춘천의 대표적인 아이콘 행세를 하고 있다. 그게 2020년 버전의 육림고개다.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곳 가파른 고갯마루 초입엔 육림영화전시관, 육림다방 따위가 먼저 방문객을 반긴다. 그 곁엔 DJ룸, 뮤직박스 등등이 영화 소품처럼 늘어서있다. 맞은 편엔 작은 그림을 사거나, 원데이클래스에서 그림을 배울 수 있는 달고나 잡화점, 앙증맞은 꽃가게, 다양한 스콘과 수제 스프레드를 선보이는 점빵, 케이크점, 캔들샵 등 젊은 감성의 가게들이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언덕길을 채우고 있다.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강냉이 튀깁니다’ 시골장터 풍경이나 다름없는 60년대식 기름집과 강냉이집이 퇴락한 슬라브 지붕을 머리에 올린채 아직도 살아있다. 그리곤 어설프지만 정성스레 써붙인 유리가라스(글래스) 글귀가 새삼스럽다. ‘결명자, 우엉, 뚱딴지, 둥글레, 여주…’ ​ 나이가 육림고개 희로애락의 세월과 얼추 비슷해 보이는 일미기름집. 헐벗은 듯 낡디낡은 벽체나 문설주 앞엔 너절한 물품이 내동댕이라도 쳐진 듯, 그야말로 너절하게 널려있다. ​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그 옛날 신작로변 시골구멍가게의 데자뷰라고 할까. 그 곁의 ‘올챙이국수’집은 그런 희미한 흑백의 기억을 새삼스레 소환하고 있다.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개고기와 ‘(사)인문학정원’의 기묘한 동거? 일미기름집 옆, 퇴락한 건물 간판의 ‘보신탕’ 간판이 인문학의 고품격과 아무렇게나 섞인 것도 육림고개 다운 풍경이다. 굳이 꾸미지 않은 산다는 것의 본능에 충실한 모습 그대로다. 수 십 년을 거스른, 금방 허물어질 것 같은 건물 외벽 앞엔 21세기의 세련된 자동차들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다. ​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그 두 갈래가 갈라지는 비탈길 첫머리에 ‘오늘도 달콤-마쿠아롱’을 내건, 다쿠아즈가 있고, 약간 시선을 돌리면 세련된 외관의 ‘노이’ 공방이 눈에 잡힌다. 독일풍의 건물인가 싶지만, 아니다. 그 옛날 곡물 창고나 방앗간인 듯한 건물에 기발한 디자인을 입혀 ‘소품’ 가게로 돌변케 한 것이다. ​ 육림고개 ‘중앙통’은 바닥이 주름살처럼 갈라진 시멘트길이다. 그 좌우의 점포들은 또 한 번 세월의 간극을 곱씹게 한다. ‘경양식 1988’엔 어설프게 포크 나이프질하던 촌스런 기억이 담겨있고, 그 곁엔 꽤 세련된 악세사리 가게도 있다. 내리막을 조금 더 따라가면 ‘조선커피-로스팅 하우스’가 ‘조선’스런 풍경으로 서있다.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가게 풍경과는 달리 간판 문구는 위풍당당하다. ‘Since 1977’-. ​ 고갯길 사이사이엔 좁디좁은 골목길이 실핏줄처럼 엿보인다. 대부분은 성인 한 사람이 겨우 어깨를 펴고 지나갈 만한 좁고 구불구불한 낡은 골목길이다. 가파른 골목길 계단 층층은 때로 광고판으로 변한다. 한계단 한계단마다 흰색 페인트로 대충 휘갈긴 문구들로 가득하다. ‘육림미용실’, ‘철든식탁’, ‘육림객잔’…. ​ 모두 골목 안에 알박기처럼 박혀있는 조그만 가게들이다. 애초 춘천시가 만든 ‘막걸리촌 특화거리’의 원조집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육림포차, 서민주막 등이 그렇다. 서민주막 10여 미터 처마는 형형색색의 막걸리병을 주렁주렁 이고있다. 실외 장식치곤 꽤 기발하다싶다. 그 곁엔 다시 ‘새마을운동’ 시절의 동신고무신, 메밀전집, 서민슈퍼가 나란히 문을 열고 있다. 맞은 편엔 ‘경상도 미용실’이 보인다. ‘헤어살롱’은커녕 동네 미장원보다 초라해보이는 모양새다. 주인장딴엔 간판 유리문이나 벽체 페인트칠한 모양이 깔끔을 떨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수더분한 외관이 차라리 정겹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춘천시는 매년 한 차례씩 육림고개에 입주할 청년 창업자들을 공모한다. 정식 명칭은 ‘청년몰 조성사업’이다. 이들 청년상인들에게 대해선 창업에 관한 기본교육과 컨설팅을 거쳐, 임차료, 홍보 마케팅 등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 “이는 지역사회를 활성화하는 사업으로서, 육림고개 상점내, 빈 점포 등 유휴공간에 청년상인 점포를 입점시켜 쇼핑·문화·체험 등 창의적 테마를 융합한 공간”이라는게 춘천시의 설명이다. ​ 청년몰을 조성함으로써 젊은층을 새로운 고객으로 유입하고, 육림고개 상점가에 활력을 제고한다는 목표다. 그렇게 보면 춘천시의 도시재생 전략이 나름대로 성공한 편이다. ​ 육림고개를 찬찬히 둘러보자면 대략 한 시간 남짓이면 족하다. 물론 아이쇼핑 수준이 그렇다는 얘기다. 주마간산식의 투어 끝에 되돌아온 고갯길. 그 초입엔 해가 바뀌었음에도 ‘2019육림데이’ 현수막이 나그네를 배웅한다. ​ 그 아래 옷가게에선 1만원, 5천원 떨이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선사하고 있다. 얼마나 쓸만하고, 입을 만한 옷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핑크색 노을로 물든 육림고개 언저리는 그렇게 슬로우비디오로 하루가 저물어간다.

한류(韓流)로 인한 외국인(外國人)들의 가출(家出)

문 혜 은 공공디자인저널 큐레이터 ​

한류[韓流]로 인한 외국인[外國人]들의 가출[家出] 문 혜 은 공공디자인저널 큐레이터 ​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 열풍이 뜨겁다고 합니다. ​ 젊은이들이 명문대학에 합격했어도 진학을 포기하고 무작정 짐을 싸서 한국으로 온다고 합니다.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에서 취직하여 한국에서 살고자 한다고 합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던 이유로 외국대학에 한국어 학과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21살의 이탈리아 여성에게 왜 한국을 좋아하는지를 인터뷰 했습니다. Italy Imane 21세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문혜은. 한국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 Imane. 그 느낌 아세요? 눈을 감고 지구본 위에 올린 손가락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기분을?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한국을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2015년 여름이었는데 한국이 저에게 새로운 곳은 아니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대장금이라는 한국드라마를 보았던 것을 기억했거든요. ​ 그 순간부터 저는 한국이 어떠한 곳인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지? 그들의 가치관과 믿음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나라가 저에게 줄 수 있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 배워 나갔습니다. ​ 그 마지막 질문은 조금 어려웠어요. 그렇지만 저는 찾았죠, 한국이 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제가 한국에 줄 수 있는 것보다 많다는 것을요!... ​ 문혜은. 한국엔 언제 처음 와 보셨나요? ​ Imane. 한국으로의 첫 방문은 2019년 2월이었어요! 제 배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었죠! 고층 건물들과 차분한 사찰[절]들의 조화! 사람들의 친절함과 전통 떡의 달콤함! 그리고 그들의 깊은 문화와 의미 있는 언어가 저에게 시작이었죠 이것은 저의 이야기이고 저는 아직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 그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겠죠, 제 친구들처럼요. 몇몇 사람들은 한류의 한국드라마와 케이팝에 의해 본의 아니게 한국을 알게 된 경우도 있죠. 그중 BTS를 빼놓을 수 없죠. 한국 문화와 한국의 새로운 시대를 연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한국 그룹 중 하나이니깐요. 다른 친구들은 춤을 배우거나 인턴십을 위해 한국에 왔어요. 다른 이들은 새로운 삶과 직업을 찾기 위해서 왔죠. Italy Imane 21세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하지만 우리는 그저 한국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여행자들일 뿐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한국에 오는 거의 모든 방문객들이 한국에 대해 배우고 있거나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들 다른 이유를 가지고 말이죠. 저 같은 경우에는 이유가 간단했습니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그 사람과 말을 나누지 못하겠습니까? 제가 느끼는 것과 저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저를 표현하기 위해, 그것이 제가 시작한 이유입니다. 음악에 대해서 저는 한국어가 노래로 부르기 가장 좋은 언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사를 전부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리듬과 목소리와 어우러진 그 안의 감정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저에게 이탈리안 가수와 한국 가수의 차이점을 물으신다면 저는 정확한 답변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모든 가수들은 같은 나라에서 왔든 아니든 그 가수만의 고유한 특별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와 한국 드라마의 차이라면 거의 모든 한국 드라마들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가장 이슈가 되는 사회문제들에 이야기하기도 하죠. 빈부격차, 계급에 의한 차이, 가정 혹은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 같은 것들이 있겠네요. ​ 이탈리아 영화들은 보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여기 있으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기억 중 하나는 제가 처음으로 SFW(Seoul Fashion W)에 간 것이었죠. 저는 한국의 패션이 유니크하고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적인 스타일과 전통적인 스타일의 조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요. ​ 문혜은. 한국에서 지내면서 느낀 점 드라마에서 보았던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 대한... ​ Imane. 서울의 길거리들은 마치 살아있는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위를 걷는 사람들에게 자신들만의 스 타일을 뽐낼 수 있게 해주고 그들이 자기를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제가 한국인과 결혼하고 싶냐고요? 사랑은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으로부터 얻고 싶은 것이 뭐냐고요? 저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삶이 쉬운 면도 있죠. 저는 한국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합당한 권리를 안겨줄 수 있는 멋진 나라가 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다채로운’ 이라고 생각합니다.

강화군 교동도 대룡시장

60~70년대, 쇠락한 ‘추억’을 소환하다

강화군 교동도 대룡시장 60~70년대, 쇠락한 ‘추억’을 소환하다 ​ 기획취재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낡고 옛스런 시장 골목, 영화세트 방불케하는 가게·상점들 ​ 실향민 정착지서 비롯, ‘빈티지’한 매력으로 ‘관광명소’ 부상 ​ 주말이면 관광객 쇄도, “유명해지자 젠트리피케이션 엄습”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허름한 여닫이 유리문의 동네 이발관, 지나는 사람들은 굳이 들어가려 하진 않는다. 대신에 유리창 너머로 힘들게 까치발을 하여 이발소 안을 ‘구경’할 뿐이다. ​ “영업을 하긴 하나~ 앗! 사람이 있긴 있네~” ​ 그랬다. 이발소는 영화세트가 아니었다. 멀쩡하게 영업 중인 이발소 안에선 칠순을 넘겼음직한 백발의 이발사가 나른한 오후의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작 이발하러 들어가는 사람은 없지만, 그 옛날 구수한 동네 이발관을 구경하려는 외지인들로 그 앞은 장사진을 이룬다. 교동도 대룡시장 한 가운데 ‘교동 이발관’ 역시 이 섬을 찾는 사람들이 애써 발췌하려는 옛 이야기 중 하나다. ​ 교동면소재지가 있는 대룡리에 있는 대룡시장은 교동도의 ‘번화가’이자 중심지다. 애초 6.25 당시 바다를 격하고 마주보는 황해도 연백군 피난민들이 자리잡은 곳이다. 그들은 당장 먹고살 방도가 없다보니, 전쟁통에 주저앉은 자리에서 그냥 좌판을 벌이고, 노점상을 이어갔다. ​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 이곳은 21세기의 스마트한 풍경에 식상한 사람들의 카타르시스가 녹아든 곳으로 변했다. 대룡시장은 흐르는 세월따라 업그레이드되지도 않았고, 첨단으로 치닫는 시대에 맞춰 변주하지도 않았다. 그냥 전쟁 직후 주저앉은 그 모습 그대로다. ​ 구불구불하고 초라한 골목, 낡고 병든 것 같은 60년대식 슬레이트 지붕, 덕지덕지 때가 묻고 칠이 벗겨진 담벼락, 어설프고 유치해 보이는 간판, 연식이 오래된 구멍가게들… 그야말로 누렇게 빛바랜 흑백사진과도 같다. ​ 첨단과 세련됨에 멀미하는 요즘 사람들에겐 그래서 대룡시장은 또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른바 ‘빈티지’한 향수를 즐길 만한 곳으로 떠올랐다. 이미 여러 차례 언론매체에 소개되면서, 이젠 수도권에서 손꼽히는 관광지가 되었다.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공공디자인저널>이 이곳을 찾던 날도 그러했다. 겨울철이어서 찬바람이 맴도는 휑한 골목길을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반경 100미터 남짓 방사형 시장 골목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 ‘단밤, 군밤, 새우젓’… 그냥 내키는대로 메뉴를 써붙인 듯한 가게 앞에는 자못 줄이 길었다. 합판 매대 위, 한 봉지 5천원짜리 군밤은 날개돋힌 듯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특별히 맛이 있어가 아니라, 그 때 그 시절의 고소한 추억을 맛보는 표정들이었다. ​ 그 뒤켠으로 뚫린 허름한 뒷골목, 붓글씨로 쓴 것 같은 흰색 바탕의 배너간판이 눈을 끈다. ‘전막걸리’, ‘빈대떡’, ‘옹심 이 팥죽’, ‘제비집 빈대떡’… 간판과 메뉴 모두 화장끼 없는 맨얼굴처럼, 정겹고 소박하다. MSG와는 거리가 먼 옛 주막 거리의 진솔했던 먹거리를 연상케하는 그런 곳이다. ​ 이곳엔 유독 담벼락을 길쪽으로 뚫어내고 만든 상점들이 많다. 대부분 수 십 년은 되었음직한 낡은 농가주택의 귀퉁이를 오려낸 곳들이다. 어설프지만 제딴엔 멋을 낸답시고 ‘유리 글라스’로 전면을 치장하거나 핑크빛 차양을 내두르기도 했다.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그 중엔 어색하게 ‘모던’함을 강조한 액세서리 가게도 있다. 가게 앞을 장식한 물건들은 제법 오가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만했다. 4천원 짜리 열쇠고리에 시선을 주는 사람들도 많았고, 조금은 조악해보이는 장신구를 만지작거리는 행인들도 꽤 있었다. 허나 낡디낡은 슬레이트 지붕이나 사과 궤짝 매대는 역시 70년대풍의 쇠락한 아우라를 감추진 못했다. ​ 교동 대룡시장의 콘텐츠는 뭐니뭐니해도 ‘데자뷰’의 발자취다. 먹거리부터가 그렇다. 외지인들이 유독 붐비는 곳들이 대부분 그런 곳들이다. 골목이 삼거리로 갈라지는 어귀의 ‘황금꽈배기’집도 그렇고, 뜨끈한 오뎅 국물 김이 서린 가게도 그 중 하나다. ‘영심이 커피상점’ 간판을 내건 곳에선 커피와 함께 추억의 ‘뽑기’과자도 등장한다. ​ 그 옆 가게에 내걸린 ‘황해도 연백 모찌떡’ 걸개는 남다른 사연을 전한다. 초로의 가게 주인은 “부모님이 연백 출신 피난민”이라고 했다. 옛날 찐빵, 콩떡, 식혜, 옥수수 등도 팔고 있어, 역시 호기심 어린 관광객들 이 꽤 많이 찾는다. ‘한가네 뻥 강정’은 그 시절, 명절이면 북적이던 강정집의 설렘을 재연하고 있다. 붉은 색의 차양을 마치 캐노피처럼 드리운게 생뚱맞다 싶기도 하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인천광역시와 강화군은 지난 2017년부터 이곳 대룡리 일대를 ‘추억이 있는 골목길’로 꾸미기로 하고, ‘대룡시장 골목길 조성사업’과 재정비사업을 펼쳐왔다. 이를 통해 골목 안길을 포장하고 마을게이트와 시장게이트, 포토존을 설치했다. ​ 또 인근의 교동초등학교 담장을 재정비하고, 우시장 터를 조성하는 등 관광지 조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런 일련의 사업의 키워드는 역시 ‘추억’과 ‘실향민’이다. “한국전쟁 당시 교동도에 머물렀던 실향민들은 물론, 현대의 도시인들이 옛 추억을 찾아 대룡시장을 다시 찾음으로써 민통선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게 강화군의 기대다. ​ 그러나 빛에 가려진 그늘은 있게 마련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대룡시장과 교동도에도 어김없이 찾아들었다.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지고,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땅값과 임대료가 덩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 본래 이 지역은 옛 실향민들의 관습처럼 1년에 한번 임대료를 지불하는 ‘연세(年歲)’였다. 외딴 섬 귀퉁이 장터 골목이던 시절 그랬듯이 연 30~50만원이면 족했다. 그러나 관광명소가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연세 30만원이 월세 30만이 되고, 연 360만으로 불어난 것이다. 게다가 토박이 주민뿐 아니라, 외지인들이 스며 들어와선 상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군밤을 팔던 60대의 A씨는 “관광객들이 구경만 하고, 물건을 사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면서 “그나마 외지인들이 많아지면서 본토 사람들은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군데군데 ‘임대문의’를 써붙인 곳이 적잖게 눈에 띈다. 아예 아무런 설명도 없이 폐허로 내버려진 가게와 건물도 꽤 있다. ​ 그렇다고 주민들은 딱히 대안도 없다. 60~70년대를 소환한 스토리텔링이 그야말로 잊혀진 추억이 되지않게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곧 잊혀지고, 다시 외딴 섬으로 남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 육포, 쥐치구이 따위를 팔던 B씨는 “빨리 겨울이 지나고, 주말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수 밖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 표정이 후미진 시장 뒷골목의 스산함과 닮았다.

한남뉴타운 재개발 3구역

한남대교 북단에 또 하나의 '강남' 출현...

기획취재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한남뉴타운 재개발 3구역 한남대교 북단에 또 하나의 ‘강남’ 출현… ​ 주민들 삶의 여건 개선? …‘재개발 수익과 지대 극대화’에 무게 ​ 서울시 시공사 과열 경쟁에 입찰 무효, ‘내년 봄 다시 재입찰’ ​ 재개발 앞두고 세입자들 내쫓겨, ‘재개발식 도시재생’ 지적도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글쎄요... 아마 조합 측에서 재입찰하면 내년 봄쯤에나 (시공사가)결정되지 않을까요. 정확한 시기는 몰라요. 아마 조합원들에겐 날짜가 전해졌을 거예요.”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 근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귀찮다는 듯 “우리도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며 퉁명스레 말을 꺼냈다. ​ 이곳 한남뉴타운 재개발 3구역(이하 ‘한남 3구역’)은 시공사의 부당 행위와 서울시의 입찰 무효화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최근 언론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이 업소에도 이미 몇몇 언론사 취재진이 다녀갔다. 그 때문에 이곳 관계자는 “(찾아오는 기자들에게) 똑같은 소리 반복하는 것도 지쳤다”며 달갑잖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다음 입찰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아마 서울 최고의 인기 지역이 될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 그의 책상 뒤 벽면엔 ‘한남뉴타운 청사진’ 그림이 뒤덮고 있다. ​ 한남 3구역 재개발은 서울 시내에서 오랜만에 등장한 초대형 재개발지역이다. ​ 용산구 한남동 686번지 일대 약 39만㎡ 부지에 총 5,800여 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순천향대병원을 거쳐 이태원에 이르는 대사관로와, 이슬람서울 중앙성원~보광초등학교~도깨비시장~경의중앙선 한남역을 잇는 구간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 순천향병원 맞은편 외국 대사관들을 지나 조금만 주택가로 들어서면 마치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후미진 비탈길 골목이 이어진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세대주택들은 대부분 1970년대 초반 지어진 곳들이다. 남산 자락과 한강이 만나는 경사 지대에 동네가 들어서다 보니 가파른 언덕과 계단이 많다. ​ 낡은 벽돌 담장과 시멘트 블록, 칠이 벗겨지거나 녹이 슨 대문 등 한 눈에 봐도 퇴락한 듯한 느낌이다. 이 지역은 현재 알려지기론 사업비 7조 원, 공사비만 2조 원 가량에 달해 서울 시내 최대 규모의 재개발 사업으로 꼽힌다. 한남뉴타운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먼저 시공사 선정에 들어갔다. ​ 워낙에 규모가 크다 보니 애초 건설사들의 컨소시엄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단독 시공을 원하는 바람에 건설사들 간에 시공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현대건설, 대림산업, GS건설 등 이른바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는 건설사들이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조합원들을 상대로 혁신설계니, 이주비 혜택이니 하며 선심을 사기에 바빴다. ​ 현대건설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라 집주인이 재개발로 인해 내보내야 하는 세입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이주비를 이주비 5억 원 이상 무이자로 주겠다고 나섰다. 대림산업은 법규상 짓게 되어 있는 임대주택 중 800여 채를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놓았고, GS건설이 분양가 7,200만 원 이상을 보장한다고 했다. ​ 이는 법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도정법 132조에는 ‘(조합원에게) 재산상 이익 제공 의사를 표시하거나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서울시와 국토부는 입찰에 참가한 현대건설과 GS건설, 대림산업이 20건 이상 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 GS건설과 대림산업은 설계와 관련해서도 법을 어겼다. 도정법은 애초 사업비의 10% 안에서만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들 건설사들은 그 범위를 뛰어넘는 ‘혁신설계’안을 제시, 조합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서울시가 정한 ‘공공 지원 시공자 선정 기준’을 어긴 것이다. ​ 이에 서울시는 지난 달 과열경쟁과 함께 집 값 안정화 정책에 반한다는 이유로 입찰을 무효화하고, 검찰 수사까지 의뢰를 했다. 결국 한남3구역 지역주택조합은 이사회를 열고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권고를 받아들여 시공사를 재입찰하기로 결정했다. ​ 조합측은 문제가 되었던 건설사들의 기존 입 찰제안서 위반사항을 수정할 것인지, 아니면 서울시 방침대로 전면 재입찰을 할 것인지 고민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아예 재입찰을 하기로 하고, 그 시점을 내년 5월로 정했다. ​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상식적으로는 한남3구역 시공사를 선정하기 위해 재입찰을 진행할 경우 기존 입찰에 참여했던 현대건설, GS건설, 대림산업뿐 아니라 새로운 건설사도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얘기다. 이들 3사는 지난 수년 동안 이 지역에 대한 설계, 제안 등을 만들고 조합원들과도 깊숙하게 교감해왔다. ​ 이들이 입찰에 불참한다면 모를까, 이미 탄탄한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는 3사를 제치고 새로운 건설사가 선정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부동산업계의 견해다. 이 지역의 또 다른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기존 3사가 재입찰에 참여하면 다른 건설사들은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 정작 건설사 입장에서 보면 한남3구역의 수익성은 그리 기대할만한 것이 못 된다. 대지 가운데 건물의 면적, 즉 건폐율도 42%에 이르러, 서울 일반 신축 아파트의 2배 수준이다. 건물을 좀 더 촘촘하게 지을 수 없게 한 것이다. 또 한강변 고도제한으로 인해 초고층으로 짓기도 어렵다. 또 조합원 물량도 전체의 80%에 달하고, 그나마 분양가상한 제 적용을 받는다. 이곳 공인중개사 A씨는 “한 마디로 사업성이 낮다”면서 “그러나 건설사들에게 그런 점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했다. ​ 건설사들에겐 이 지역이 장차 더 큰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이번 한남3구역은 앞으로 한남뉴타운 사업을 추가로 수주하고, 강 건너 압구정 재건축사업을 따내기 위한 전초전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 지역은 강남 못지 않은 부동산 시장의 ‘블루칩’으로 꼽힌다. ‘한남동=부촌’이라는 막연한 인식까지 더해져서 최고의 노른자위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 그래선지 재개발을 앞두고 집값, 땅값도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치솟고 있다. 남산을 등지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어서 특히 그렇다. 일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대지 지분 33m²(10평)도 채 안 되는, 수십년 낡은 빌라가 평당 1억 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무효화 되긴 했지만, 시공사 입찰 마감 후에는 호가가 그 보다 수 천 만원 올랐다”고도 한다. 비슷한 면적의 허름한 다세대 주택 역시 매매가가 8억 원을 웃돈다. ​ 재개발 계획이 본격화되면서 곤혹스러운 건 세입자들이다. 도정법상 세입자들을 내보내기 위해선 집주인이 이주비(주거 이전비)를 제공해야 한다. 많게는 한 세대당 1천만~3천만 원에 달한다. 전에는 조합측이 부담했으나, 10년 전 도정법이 개정되면서 집주인의 몫으로 바뀌었다. 그렇다 보니 최근엔 “전세금 올릴 필요도 없으니, 그냥 나가 달 라”는 집주인들이 많다. ​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주거이전비를 아끼기 위해 세입자를 내쫓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설립되면서부터 이 지역 부동산 업소들 간엔 “집주인에게 주거이전비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임대차 계약서가 나돌기 시작했다. ​ 한남3구역은 기존 뉴타운사업의 무분별한 개발 방식을 개선코자 한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취지와 맥을 같이 한다. 애초 도시재생은 그 지역 역량을 강화하고, 새로운 기능을 도입·창출하며,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서울시는 도시재생을 통해 주민들을 축출하지 않고도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그림을 그려 보이고 있다. ​ 이에 비해 재개발은 그중 노후화된 주거환경 개선과 재정비에 초점을 둔다. 그런 점에서 한남3구역은 ‘개발’이 갖는 또 하나의 빛과 그림자를 고스란히 내면화하고 있는 현장이다. 최고의 한강조망권, ‘부촌’을 낀 저개발지역이라는 프리미엄, 그리고 고도의 지대(地代) 추구 가능성과 부동산 잉여가치를 내포한 지역이어서 더욱 그렇다. ​ 현대건설과 GS건설, 대림건설 등이 이들 지역을 최고의 전략요충지로 보고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현지의 또 다른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제 시공사가 확정되고, 개발이 이뤄지면 이곳 한강 북쪽의 새로운 ‘강남’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어쩌면 향후 서울 부동산 시장의 지형도를 전망할 만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 그런 점에서 한남3구역은 2020년형 재개발 모형으로 꼽힐 만하다. 다만 뉴타운 정책을 수정한 서울형 도시재생사업과는 거리가 먼 ‘재개발식 도시재생’으로 기억될 것이란 지적도 뒤따른다.

핫플레이스 - 서울 익선동

100년 전 풍경, 21세기 액자속 '환생'

기획취재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핫플레이스-서울 익선동 100년 전 풍경, 21세기 액자 속 ‘환생' ​ 서울 종로 한복판 익선동,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주목 옛 한옥마을, 오래된 한옥 재활용 ‘빈티지’한 매력 발산 청년창업가, 예술인 몰려, 카페·공방·맛집·소품점·의상실 등 ​ 서울시, ‘건축자산 가치 공유와 시민 공감대 마련’ 심포지엄 ‘젠트리피케이션’ 최소화, 공공디자인의 축 ‘건축자산’ 재평가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서울 종로 한복판에 조선조 풍의 모습이 21세기형 액자 속에서 환생한 동네가 있다. ‘익선동 한옥마을’이다. 이곳은 오래되고 낡은 공간에 디지털 시대의 재기발랄한 숨결을 불어 넣은 듯, 이른바 ‘빈티지’한 매력이 한껏 빛을 발하는 곳이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익선동 한옥마을은 대부분 100년 전 지어졌다. 일찌감치 한옥의 매력으로 주목받은 북촌과 달리 낙후된 채로 방치됐다. 그러던 어느 날 공방과 카페, 옷가게 등 청년창업가들이 모여들면서 불현듯 옛것과 초현대식 기호가 공존하는 핫플레이스로 격상되었다.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로 나와 곧장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익선동 한옥마을이 나온다. 이곳 골목은 건장한 성인 남성 두 명이 나란히 서면 가득 찰 정도로 비좁다. 골목 양옆으론 한옥을 개조해 ‘예스러움의 미학’을 뽐내는 맛집과 카페, 소품점들이 이마를 나란히 하며 얼굴을 내민다. ​ 익선동 입구에 있는 오래된 여관은 호텔풍 카페로 다시 태어났다. 카페, 베이커리, 갤러리, 바로 이루어진 복합문화공간으로 인기를 끈다. 또 다른 가게들은 대부분 한옥의 틀을 그대로 살렸다. 허름했던 한옥 문간방은 비디오 가게로 치장되었다. 세월의 손때 묻히며 초라했던 판자 대문은, 낡은 그대로 스마트한 양문 도어로 거듭났다. ​ 공방이나 카페, 의상실 등은 담장을 허문 곳이 많다. 허문 자국과 공간은 그대로 멋들어진 창문이 되었다. 허름한 한옥 안마당은 스마트한 매장으로 변신했다. 구수한 옛 이야기가 서린 툇마루는 세련된 응접실이 되었다. 자취생이나 어느 병약한 문학도의 기약 없는 꿈이 맴돌았을 문간방은 캐노피 달린 테라스가 되었다. 카페, 무비홀, 영화감상실, 의상실, 맛집 등등이 모두 그런 식이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모던걸, 모던보이의 데자뷔를 즐길만한, 개화기로의 타임슬립도 빼놓을 수 없다. 추억의 ‘만홧가게’도 그때 그 시절의 그런 음영을 소환한다. 유리도어로 바꾼 옛 대문 간엔 다양한 장르의 만화책을 과시하듯, 이마에 ‘만홧가게’ 간판이 앙증맞게 걸려있다. 더욱 아득한 타임머신의 진미를 선보이는 곳도 있다. 포토존까지 갖춘 의상 대여솝이 그런 곳들이다. 이곳에선 개화기 의상을 빌려주기도 해 익선동의 묘미를 한층 더해준다. 익선동은 그처럼 특별한 볼거리와 느낄 거리를 안겨주는 도심 속 이색지대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애초 익선동 일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 최초의 부동산 개발자’ 로 통하는 독립 운동가 정세권 씨가 조성했다.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종로통에 일본식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았다. 친일파에게서 익선동 건물과 땅을 사들인 그는 골목골목에 도시형 한옥을 지었다. ​ 1900년대 초 ‘신식’으로 개발된 이 동네는 소박한 서민의 삶과 화려한 화류계의 삶이 공존했다. 당시 익선동은 ‘요정 골목’으로 유명했다. ​ 지금은 이비스호텔이 들어섰지만 ‘국내 1호 관광요정’ 오진암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인 1950년대 3대 요정(삼청 각·오진암·대원각)으로 이름을 떨쳤다. 종로통을 휘어잡았다던 김두한에 이어 제3공화국 실세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드나들던 단골집이기도 했다. ​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때의 ‘단물’이 빠진 듯, 익선동은 점점 비어가기 시작해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몇 해 전 비싼 자릿세에 홍대 등에서 쫓겨온 예술가와 청년창업자들이 익선동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0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한옥 보전 등을 이유로 개발계획을 부결한 후 3~4년 익선동 골목에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대거 모여들면서 지금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 그러나 익선동의 전성기 역시 언제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요즘 땅값이 다시 오르고 있는 익선동은 매물이 거의 없을 정도다. 맛집 상권이 유명세를 타면서 임대료도 올랐다. 건물주들은 날로 임대료를 올리고, 인심도 각박해지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망령이 이곳에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 이대로라면 임대료가 끝없이 치솟고, 세입자들이 밀려나고, 그 자리를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이 메울 것이다. 그 결과는 익선동 전성기의 종말이다. 다시 예전의 쇠락한 신세가 될 게 뻔하다. 그게 싫다면 건물주와 주민들, 그리고 정책 당국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 건축가가 들려주는 ‘익선동’에 대한 이야기… 서울시, ‘건축자산 가치 공유와 시민 공감대 마련’ 심포지엄 ‘젠트리피케이션’ 최소화, 공공디자인의 축 ‘건축자산’ 재평가 ​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도시 공간자산 내지 공공디자인의 축으로서 건축자산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심포지엄이 지난 12월 6일 열렸다. ​ 이날 서울시는 서울역사박물관(1층 야주개홀)에서 ‘건축자산 가치 발굴 및 지역재생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는 특히 서울 익선동과 을지 커피한약방, 공간자산 운영, 건축자산 활용사례 등을 주제로 한 것이다. ​ 최근의 익선동 등의 사례에서 보듯, 오래된 장소와 공간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건축물의 원형 또는 일부를 활용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변화시켜 도시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도시 명소화가 날로 주목을 받고 있다. ​ 이미 서울의 북촌, 서촌, 익선동, 성수동 등에서도 한옥 등 근·현대 건축물과 옛 골목길 등을 살린 지역재생과 문화 복합공간으로 조성되어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날 발제자와 참석자들은 “한옥 등 건축자산이 밀집한 오래된 도시와 지역 재생에서는 시민, 지역주민과의 공감대가 중요하며 경제적 가치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재생정책 추진이 바람직하다.” 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 이를 위해 오래된 건축물과 장소의 가치를 살려 명소화와 재생을 이루어 낸 건축주, 건축가, 지역활동가가 공간자산 재생과 활용사례가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 이 자리에선 특히 ‘건축자산의 가치 재인식과 활용’이라는 주제로 ‘익선동 사례로 본 건축자산의 가치와 활용’(김선아 에스에이케이 건축사무소 소장)이 부각되었다. 또 ‘을지커피한약방 등 오래된 건축물의 보전활용’(커피한약방 강윤석 대표), ‘지역 중심 공동체의 공간자산 운영사례’(협동조합 Tium 정혜영 대표와 임완주 활동가), ‘서촌창고, 한옥 스테이등 건축자산을 플랫폼으로 활용한 지역 활성화 사례’(지랩 노경록 대표) 등이 소개되었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김기호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한옥 등 건축자산의 보전 활용 정책과 연구에 참여해 온 우동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윤인석 성균관대학교 교수, 이영아 대구대학교 교수, 정유승 서울주택도시공사 도시재생본부장, 이기배 서울시 한옥건축자산과장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 한편 서울시는 지난 8월 건축자산에 대한 조사·관리·활용을 위한 실천과 제와 전략을 담은 시 최초의 종합계획인 ‘건축자산 진흥 시행계획’을 공고했으며 2022년까지 실천과제별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중이다. ​ 이에 따르면 한옥은 물론 근·현대 건축물 등 오래된 건축물이 일방적인 규제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자산화의 기회라는 인식 전환의 계기와 함께 규제보다는 ‘적극적 활용을 지원’ 방식으로 추진한다. ​ 시민에게는 자발적 의사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옵션을 제공함으로써 역사·문화 보전이 일방적 규제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아닌 ‘자산화’의 기회라는 인식 전환과 동시에, 건축자산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재생을 이끄는 자산이자 거점 역할을 하도록 최대한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 서울시는 “최근 도시재생정책의 패러다임이 오래된 장소와 공간의 가치 재인식과 재생거점으로 활용 전환되고 있는 만큼, 서울 전역으로 건축자산 지원정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바이올린과 첼로의 임창호 명장(明匠)을 찾습니다!

낙산사[洛山寺]의 원통보전[圓通寶殿]이 악기로 거듭나 천년의 소리를 재생해 내기를 바란다

임 창 호 LIM CHANG HO 1935년 통천출생 5세부터 바이올린 사사 1962년 서라벌예술대학 공예과 졸업 1962년 서라벌공예사 창업 1965년 임창호 바이올림 첼로 창업 ​ 낙산사[洛山寺]의 원통보전[圓通寶殿]이 악기로 거듭나 천년의 소리를 재생해 내기를 바란다 ​ 지난 여름 동해를 찾아 화진포의 성과 낙산사를 다녀왔습니다. ​ 그곳 낙산사에서 산불로 소실된 목재로 만들어 기증하여 전시 중인 임창호 명장의 첼로와 바이올린을 한없이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첼로와 바이올린 옆 안내표지에 제작된 배경과 임창호 명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서 그리고 겨울을 맞이하며 임창호 명장을 찾아 인터뷰를 나섰으나 그 어디에서도 임창호 명장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 전화번호는 결번으로 강원도 강릉시 죽현도 149[예술인촌]에 주소지로 있었지만, 강원도청 강릉시 예술인촌 낙산사에도 연락해 수소문해 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 혹시 임창호 명장의 소재를 아시는 분은 저희 편집부에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분의 가슴과 그분의 거친 손마디를 통해 명장의 이야기를 독자들께 알리고 싶습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을 통해 알게 된 내용입니다. 산불로 소실된 낙산사 원통보전이 강릉단오장을 찾았다. 첼로 등 악기 제조가인 임창호(71·강릉시월호 평동) 씨가 불탄 낙산사 원통보전으로 만든 악기를 강릉단오장에서 전시하고 있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5호인 낙산사 원통보전이 지난해 4월 산불로 소실된 것을 안타까워하던 임씨는 낙산사를 찾아 불탄 나무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작업을 시작했다. ​ 지금까지 만든 악기는 첼로 3대, 바이올린 5대, 비올라 2대 등 모두 10대로 이 중 첼로와 바이올린 1대씩은 낙산사에 기증했다. 임 씨는 작업 중 생긴 나무 부스러기도 버리지 않고 모두 모아 강릉 단오장에서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고 있다. ​ 출처-https://blog.naver.com/jhwkghk/220037137676 "임창호 바이올린" 수공예 바이올린 첼로 판매 | 작성자 jhwkghk ​ ​

'악플' 그리고 설리의 극단적 선택을 보면서

리플을 다는 인간 욕구의 본질은 무엇인가?

안경재 공증인 변호사 25세의 꽃다운 연예인이 악플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리플을 다는 인간 욕구의 본질은 무엇일까? ​ 리플은 자기표현 욕구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 설리의 안타까운 선택이 단순한 기사 거리, 이야기 거리가 아니라, 선플과 악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법제도 운영에 정신적 가치를 좀 더 보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5세의 꽃다운 연예인이 악플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그녀의 성격이 쉽게 상처받고 소심한 성격이었을 수도 있고, 활달한 성격이나 상처가 너무 커서 그랬을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했다. 그녀가 출연했던 악플의 밤 몇 편을 찾아보았다. ​ 방송에 비친 그녀는 활기차고 솔직한 성격으로 보였다.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어서 그녀에 대한 악플은 그냥 무시하면 되는 본인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부담감이 얼마나 컸을까. 말은 총이나 칼보다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 참으로 안타깝고 딱한 사건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 그런 의미에서 리플, 악플, 선플의 개념과 그에 대한 대안 및 법제도 운영을 생각해 보았다. ​ 리플을 다는 인간 욕구의 본질은 무엇일까? ​ 인간은 자기를 표현하고 싶고,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 그런 표현을 통해 인정받고 싶어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표현에 공감하며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 리플은 자기표현 욕구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 리플은 가치 중립적 용어다. 한편 선플과 악플은 리플을 가치판단에 따라 구분한 용어다. ​ 선플과 악플은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순기능을 하면 선플이고, 역기능을 하면 악플이다. ​ 리플은 크게 두 가지 기능을 한다. ​ 감성적 측면에서 보면 리플을 통해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좋은 리플을 통해 본인은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상대방은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한 순기능이 반복되다 보면 서로 친밀한 관계가 되어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 사람은 자기를 인정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 한편 이성적 측면에서 보면 리플을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게 되고, 그 지식이 더 넓고 깊어지기도 한다. 리플은 학술 세미나 기능을 하기도 한다. ​ 친밀한 관계를 만들거나 서로를 똑똑하게 만드는 리플은 선플이요, 그 반대가 악플이다. 악플은 주로 감성적 측면에서 발생할 것 같다. 댓글로 인해 상처받고, 인간관계가 깨어지기도 한다. ​ 댓글로 정보가 왜곡되는 경우도 상상해 볼 수 있으나 그 경우가 많을 것 같지는 않다. ​ 이러한 악플과 선플의 개념을 인식한다면 정신 이상자가 아닌 한 과연 누가 감히 악플러가 되겠는가. ​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실제 경험한 사례도 있다. ​ 꽤 오래전에 이외수 소설가로부터 악플 고소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다. 당시 이외수 작가 홈페이지에는 회원이 몇만 명이나 있었다. 거의 10만 명에 육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누군가 악플을 달고, 이에 대응하여 이외수 작가 본인과 이외수 작가 팬들이 거친 댓글을 달다 보니 홈페이지가 난장판이 되었다. 이외수 작가도 언어 구사가 강한 편이고, 그 팬들도 흥분한 상태라 작가와 팬들의 댓글은 다시 더 심한 악플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외수 작가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 고소장을 쓰는 일이 변호사인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소장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고소 사건이 해결되려면 최소 몇 개월은 걸릴 텐데, 그 기간 작가가 괴로워할 것이다. 그 때문에 작가의 작품활동이 중단될 것도 걱정되었다. 사랑이 아닌 미움과 분노의 마음 밭에서 제대로 된 글이 나올 수는 없다. 고소장을 접수하면 언론에 노출될 텐데, 그런 일에 고소장까지 내느냐는 반발도 우려되었다. 요즘과 달리 당시에는 그런 분위기도 있었다. 고소장을 쓰는 대신에 일주일 가량 어떻게 사건을 풀어나갈지 고민했다. 심사숙고한 결과 이외수 작가 홈페이지에 리플, 선플, 악플의 개념을 적고 말미에 '그대는 악플러인가? 선플러인가?'라는 한 문장을 적었다. 그리고 글 한 편을 더 적었다. 팬들에게 악플에 일일이 대응하지 말고 캡쳐하여 나에게 보낼 것을 부탁했다. ​ 홈페이지에서 작가와 팬들의 거친 언어가 사라졌다. 악플러들은 뜨끔했는지 아니면 두려웠는지 그 후 악플러들은 더 이상 악플을 달지 않았다. 물론 고소장은 접수하지 않았다. 문제 해결을 했으니 수임료는 당연히 받았다. ​ 악플에 대한 법적 대응 방안으로는 크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과 형사처벌을 요구하는 방법이 있다. 악플이 사람을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흉악범임에도 이에 대한 법률제재는 너무 가벼워 보인다. 미필적 고의에 의 한 살인죄가 되지 않을까! 서너 사람이 밤에 무단으로 핸드폰 가게에 침입하여 핸드폰 대여섯 개를 훔쳤다면 구속되거나 실형을 살 가능성이 꽤 있어 보인다. 특히 재범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10여 명이 어느 한 사람에 대해 집중적으로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 댓글을 달았을 때 그 10여 명이 구속되거나 실형을 선고받을 것 같지 않다. 심지어 피해자가 설리 사례처럼 그 때문에 극단적인 행동에 이르렀을지라도... ​ 악플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몇백만 원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데, 손해배상액이 변호사 비용도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이러하니 피해자들이 악플에 대한 법적 조치를 적극 하지 않게 된다. 상담받은 변호사도 손해배상 소송을 권유하지도 않고, 심지어 소송하겠다는 의뢰인에게 심사숙고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화가 나서 소송비용을 들여 시작하나 나중에 소송비용보다 적은 위자료 판결을 받으면 다시 한번 더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 현행법상 얼마든지 악플에 대해 엄벌하거나 위자료를 크게 산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사들은 이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 같다. 정신적 가치가 핸드폰 몇 개만도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러한 판사들의 인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플 퇴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판사들은 재판을 통해 국민들에게 그 기준을 제시하기도 한다. 현재 판사들은 악플 정도는 가벼운 범죄라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판사들의 인식은 악플러들에게 쉽게 악플을 달아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가 되어 설리를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공범으로 볼 수도 있다. ​ 설리의 안타까운 선택이 단순한 기사 거리, 이야기 거리가 아니라, 선플과 악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법제도 운영에 정신적 가치를 좀 더 보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충북 공공디자인 심층 세미나

충청북도 공공디자인 발전과 관련 문화산업 활성화를 위한 충북 공공디자인 심층 세미나

충청북도 공공디자인 발전과 관련 문화산업 활성화를 위한 충북 공공디자인 심층 세미나 ​ 주관 사단법인 충북공공디자인협회 한국문화정보원 ​ 주최 사단법인 충북공공디자인협회 한국문화정보원 건국대학교 글로컬산학협력단, 건국대학교 글로컬지역개발디자인연구센터 ​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충북 공공디자인 관련 문화 육성에 필요한 지식 교류 및 융합의 커뮤니티로서 미래 융합 산업 행방에 대한 기본 전략수립과 정책제시 및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충북 공공디자인 문화 육성을 위한 지역자치단체의 사업 및 협력적 발전의 전략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지난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S컨벤션에서 충북 공공디자인 심층세미나가 열렸다. ​ 세미나에는 충청북도 이장섭 정무부시장, 도의회 연철흠 의원과 송미애 의원 이현웅 한국문화정보원장과 충북도내공공디자인관련 전문기관과 기업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 이날 충청북도 공공디자인협회 윤명한 회장[건국대 교수]은 도시의 정체성은 곧 도시의 가치이며 도시 고유의 자원과 자연문화에 적합한 디자인이 융합하여 도시 경쟁력을 형성한다고 말하며 공공디자인은 도시 경관을 형성하는 하나의 씨앗이며 씨앗이 싹터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루어 마침내 커다란 경관을 형성하였을 때 도시의 경관은 독특한 풍경을 이루고, 오랜 시간 축적되어 충청북도로 표현하는 하나의 귀중한 백년풍토가 될것이라고 세미나의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이미지 한국문화정보원 ​ 행사의 축사로 충청북도 이장섭 정무부지사는 디자인도 사람을 향해야 한다고 말하며 사람에 대한 관심이 곧 행복한 삶을 만드는 근원이 된다며 남녀노소 모두가 일상의 불편을 해결하고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데 같이 노력해서 우리 도민의 삶의 질과 행복을 책임진다는 신념으로 공공디자인 발전에 더욱 노력해 주기를 당부했다. ​ 충청북도 도의회 연철흠 의원은 1980년대 인문 사회적 슬로건이었던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회적 이슈가 오늘날에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찍이 도시의 경쟁력은 도시가 가지는 다양한 문화로부터 나오므로 도시의 문화는 다양성에서 시작되지만 공공디자인을 통해 시각화 되고 도시와 사람 사이의 콘텍스트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측면에서 오늘의 세미나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이어 한국문화정보원 이현웅 원장은 공공디자인은 더 나음을 위한 변화이며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고 모든 것을 수단으로 하는 공공디자인은 우리의 삶과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영역으로 현대 삶의 공간이 가진 폐쇄적 단절성을 개선하고 보다 나은 국민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역할을 강조했다. ​ 주제발표 1 “융합의 시대” 한류와 문화정보를 통한 공공디자인에 대한 접근 건국대학교 윤명한 교수 ​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등 충청북도 11개 시군의 지역문화 행사 및 문화시설의 정보전달과 시민참여형 공공디자인사업의 연계방향 제시 ​ 부처 연계협력사업 추진변화에 따른 문화정보 활용과 공공디자인의 연계를 통한 충청북도 사업방향 제시 ​ 문화정보의 정의와 문화시설의 공공디자인의 공간적 활용 및 디자인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 (문화광장, 문화공원, 문화시설, 문화프로그램의 공공디자인적 접근방안 등) ​ 이미지 한국문화정보원 ​ 주제발표 2 지역 공공디자인의 활성화방향과 전략적 접근방법 청운대학교 정희정 교수 ​ 지역 공공디자인의 개념 정의 ​ 충청북도 공공디자인 종합계획 수립의 방향 제시 (경관법, 공공디자인법, 도시재생 등 정부주도사업과 디자인의 연계성 위원회, 심의안건 등 방향제시) ​ 충청북도 공공디자인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방향 (공공디자인 적용을 통한 시군의 지역개발사업, 도시재생뉴딜사업, 일반농산어촌사업 적용방안 등) ​ 토론회 융합의 시대 ‘한류와 문화정보’를 통한 충북 공공디자인 문제점 및 발전방향 좌장 충청북도 도의회 송미애 의원 ​ 토론자 ​충청북도 건축문화과 최경환 과장 충청북도 도의회 이상식 위원 한국문화정보원 김동훈 팀장 한국공예디자인지흥원 류영미 팀장 충주시청 건축디자인과 김태환 디자인전문관 어번플러스 종합건축사사무소 김영각대표 ​ 충청북도 문화와 공공디자인의 연계를 통한 활성화 방안 (청주국제비엔날레 등) 충청북도 시군의 공공디자인 계획수립의 현황 및 활성화 방향 (공공디자인 사업 마련 등) 공공디자인 관련 시군 행정의 직제 현황 및 공공디자인 사업추진 현황 도시재생뉴딜사업,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등과 공공디자인의 연계강화 군단위 지역의 공공디자인을 통한 지역발전 방향 (예: 충청북도 공공디자인 캐러반 운영- 지역순회 공공디자인 컨설팅 추진 등) 충북공공디자인 협회 설립에 따른 역할과 발전방향 (법정단체 지위 마련, 충청북도 공공디자인 인증제, 공공디자인 사업 활성화 등) ​ 현장스케치 한국문화정보원 /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거리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거리, 전국 최초로 '건축물'이 아닌 '공간'이 문화재로 등록

기획취재 정 희 정 공공디자인저널 편집인 박 경 만 주간 이미지 목포시청 등록문화재 718-15 구 화신백화점 목포지점 건물 목포의 근대역사문화공간 거리는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 이후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 부동산 투기의 부적절성과 근대문화유산을 어떻게든 살려야겠다는 예술가의 안목 또는 사명감이 작용했다는 의견이 분분한 이곳 근대역사문화공간 거리의 대상지의 행정구역은 목포시 만호동이다. ​ 필자는 만호동 외에도 노후화되고 슬럼화된 지역의 이미지의 주변 대의동 만의동 온금동 대반동 등을 함께 떠올려 본다. 필자는 이슈의 중심이 되었던 이곳의 환경을 비교적 잘 알고 있다. ​ 필자의 고향은 진도인지라 1984년 진도대교가 세워지기 이전, 진도의 벽파항에서 버스를 철선에 실어 해남 옥동을 경유해 목포로 들어가던 길과 진도의 쉬미항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의 뱃길,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중학교 다닐 무렵까지는 진도에서 목포항까지 여객선을 타고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배를 탔던 기억이 있다. ​ 배멀미로 기운이 다 빠졌지만 어린 필자의 눈으로 본 목포항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어마어마하게 많고 커다랗던 배와 수많은 사람들!... ​ 지금의 근대역사문화공간 거리는 당시 목포항만여객터미널에서 목포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이다. 건어물 가게들을 지나 첫 번째 만나게 되는 주거지역의 시점부며 항구의 종점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 세월이 지나고 목포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해 1학년 때까지는 목포에서 살면서 고향 진도를 오갈 때도 목 포항에서 배편을 이용해 고향을 다닐 때 지났던 길이었고 대 학 친구들의 집이 있었고, 화실이 있었고, 미술대학 선후배 들의 작업실도 있었던 등하교의 버스 길이었다. ​ 지금은 추억 속에 있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도 들르게 되는 이곳은 과거 근처에 초원호텔이 있어 사우나와 여러 행사들을 했었던 생활 터전이었다. ​ 팥죽을 맛있게 하던 분식집이 있어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해에 한두 번씩은 고향을 오가는 길에 지나가는 길목이었다. ​ 해를 거듭할수록 노화되고 낙후되어 가는 거리풍경과 마을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떨칠 수 없었다. ​ 부동산 투기 의혹 등 사회적 이슈들로 탈도 많았지만, 그곳이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되고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하니 한편으로 기대가 된다. ​ 그곳에서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 일대) 지난달 18일부터 20일까지 ‘2019 전라남도 혁신박람회’가 열렸다. ​ 덕분에 오래전에 준비했다 미루었던 목포 근대역사문화의 거리에 대한 초고를 다듬어 보았다. 이미지 목포시청 근대역사관일원 낡고 쇠락한 일제 강점기의 흔적들, 시민들 집단 지성 발휘 ‘보존’ 이끌어내 국내 최초로 ‘등록문화재’ 지정, 미래 지향적 ‘도시재생’ 방식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미지 718-5호 구 목포부립병원 관사 전북 군산, 경북 영주, 전남 목포는 각기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원도심을 끼고 있다. 그 중에서도 목포시 대의동과 만호동, 유달동 일대의 ‘근대역사문화의 거리’는 얼마 전 손혜원 국회의원의 투기 의혹 보도를 계기로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 그러나 이런 정치적 쟁점과는 무관하게 이곳은 19C 말과 일제 강점기의 도시 공간과 주거 양식을 온전히 접할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은 곳이다. ​ 지난해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문화유산으로서 그 값어치를 인정받고 있는 이 지역은 도시재생과 공공디자인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 과연 주거와 삶의 양식은 시대와 접합되며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하는가? ​ 무조건 낡은 옛것을 지우며, 새롭고 현재적인 기억으로 채워가야 하는가? ​ 공간과 시간에 관한, 그런 존재적 질문까지 던지게 하는 것이다. 현지 취재를 통해 그간의 과정과 내역을 살펴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돌이켜본다. ​ 이미지 목포시청 등록문화재 718-15호 구 화신백화점 목포지점 건물 ​ 1920년대 그대로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산 ​ 목포는 1897년 개항해 올해로 120년 근대 무역항의 이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목포에는 국내 어느 도시보다 많은 근대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격자형 근대도시계획을 적용한 원도심 도로가 그대로 보존되어있고, 일제 수탈의 상징인 옛 동양척식회사 건물과 오거리 문화센터로 활용되는 동본 원사 등이 아직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 학계에서도 이 지역은 전국적으로 드물게 남아 있는 근대 역사문화 공간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한다. ​ 특히 목포시 유달동과 만호동 일대는 개항 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지역이다. 지금도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판매시설이었던 옛 화신백화점 건물과 수탈의 상징이었던 동양척식회사 등 당시의 건물들 상당수와 옛 거리가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 이 지역엔 또 1920년대 근대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동네 어귀에는 일본식 다다미방이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들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는 상부가 없어 1층만 남은 채 90여 년 전 지어진 일본기독교회 건물도 눈에 띈다. “일본인 개항지로서 당시 일본인들이 다녔던 교회 건물로서, 당시 일본교회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사례”라는 현지 문화해설사의 설명이다. ​ 목원동 일원에는 목포 예술인의 풍류와 근대어촌의 풍경을 담은 골목길도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있고, 원도심에는 현대식으로 활용 가능한 다양한 유형의 일본식 가옥과 공간이 많이 남아 있다. ​ 그 때문에 “근대 개항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흐름에 맞춰서 새로운 신도시로 만들어진 공간들이 원형 그대로 가장 잘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구 화신백화점 건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화신백화점은 일제강점기 당시 목포 지역에서 동아 부인상회와 함께 대표적인 판매시설로서 당시 건물로서는 특이하게 철근콘크리트 라멘조로 건축되었으며 외관도 수직선, 수평선, 원을 강조하며 기하학적 형태로 구성하고 내부도 넓은 개방적 공간을 구성하며 모더니즘 건축기법을 선구적으로 적용한 근대기 목포 지역의 백화점 건물로서 당시의 생활상, 장소성을 보여주는 상가 건물이다. 이미지 목포시청 등록문화재 718-9호 목포 해안로 교차로 상가주택 전국 최초로 ‘건축물’ 아닌 ‘공간’이 문화재로 등록 ​ 2017년 이후 문화재청은 이곳에 있는 일본 영사관과 동양척식주식회사, 양동교회, 목포사범학교, 동본 원사 등 10곳을 사적과 시·도유형문화재, 등록문화재 등으로 지정했다. 그 후 2018년 8월 역사성과 가치를 인정해 유달동과 만호동 일대를 전국 최초의 ‘공간 문화재’로 등록했다. ​ 목포 근대역사문화지구 내 15개 근대건축물들을 문화재로 지정했다. 건축사와 생활사 측면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는 판단 때 문이다. 근대문화유산의 입체적 보존과 활용을 위해 건축물이 아닌 공간이 문화재로 등록된 것은 목포 사례가 처음이다. ​ 목포시도 이에 맞춰 문화재 지정 후 근대역사 2관 인근에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등을 조성하는 등 근대문화유산 활용에 적극 나섰다.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건축물인 근대역사문화 2관 인근에 9개의 일본식 가옥을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하여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조성한 것이다. ​ 이미지 718-11호 구 동아부인상회 목포지점 이곳 근대역사관 인근 지역은 전형적인 근대 도시계획의 결과물이다. 주변의 근대건축물과 일본식 주택, 도로 폭 등이 근대 목포의 경관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 이런 풍경을 차용해서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조성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관점의 근대문화유산 활용 시책으로 평가되었다. ​ 애초 문화재 지정이나 보존 여부는 지자체나 건물소유주가 신청하는 게 기본인데, 목포는 다르다. 목포시민들이 문화재청에 건의를 하고 문화재청에서 그 가치를 인정해줘서 보존이 된 케이스다. 보존 결정이 난 후 국가 차원에서 ‘등록문화재’ 제도가 처음 생김으로써 목포가 그 첫 모범사례를 보여준 셈이 되었다. ​ 2017년 도시재생 뉴딜사업지구에 선정되고, 2018년 문화재청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될 무렵 전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뉴딜’ 사업 선정 경쟁을 벌였다. ​ 그중에서도 문화재 전문가들이 판단했을 때 목포가 가장 우수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지역으로 인정받은 것이란 설명이다. ​ 근대기 목포의 대표적 번화가이자 중심지였던 구 목포경찰서 앞 교차로에 면해 건축된 가장 상징적 상가 건물로 교차로에 면한 부정형의 다각형 대지에서 대지 형태에 맞춰 부정형의 다각형 평면과 독특한 외관을 구성하였으며, 특히 교차로 모서리에 면한 수직적 벽체를 아치형 창문과 옥탑 장식을 강조한 일본 마찌야(町家) 형식으로 2층 규모의 목조상가주택이다. ​ 주거 기능을 형성한 상업거리의 흔적, 역사성, 장소성을 보여주는 보존상태가 양호한 상가건물이다. ​ 사진 박경만주간 ‘도시재생사업’ 3가지로 구분되어 진행 ​ 현재 목포 유달동과 만호동 일대에서 시행 중인 도시재생사업은 대략 3가지로 나뉜다. ​ 지난 2017년 12월 국토교통부에 의한 중심시가지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인 ‘1897 개항장 거리’, 서산온금 보리마당, 그리고 문화재청이 주관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 사업’ 등이 그것이다. ​ 그중 ‘1897 개항문화의 거리’는 29만 4,831㎡(316억원)를 대상으로 2022년까지 완료되며, 서산온금 보리마당은 9만 9,553㎡(224억 원)에 걸쳐 2021년까지,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11만 4,036㎡(500억 원)에 대해 2023년까지 각각 완료될 예정이다. ​ ‘1897 개항장 거리’ 사업과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은 사업 면적의 91.6%가 서로 겹쳐진다. ​ 사업 지역은 대체로 소규모 ‘자투리’ 필지로 쪼개져있다. 옛 화신백화점처럼 1개 필지당 600㎡가 넘는 경우도 있지만 9.9㎡에 불과한 소규모 필지도 들어있다. ​ 현재 19개 필지로 등록된 도로 면적 3만 5,490㎡를 제외하면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1개 필지당 평균 면적은 134㎡다. ​ 그렇다 보니, 10~20평 가량의 작고 낡은 집들이 비어있는 상태로 있는 경우가 많다. 현지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들은 개발 제한에 묶여있어 잘 팔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사진 목포시청 등록문화재 718-9호 목포 해안로 교차로 상가주택 등록문화재 제718-14호 목포 해안로 붉은벽돌창고 ​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창고로 추정되며, 당시 목포 부두와 가까운 지역에서 화물을 보관하기 위해 건축물로 당시 목포 부두와 근거리 지역에 많은 창고가 건축되었으나 근대기 목포 부두와 그와 연계된 창고 지역의 흔적, 역사성, 장소성을 보여주는 붉은 벽돌 창고로 건축원형의 보존상태가 양호한 창고이다. ​ 당시 창고로서는 특이하게 붉은 벽돌을 주재료로 건축되었으며, 기본적 건축형식은 벽돌 조적조 벽체를 통 칸의 장방형 평면으로 구축하고 상부에 목조트러스와 박공지붕 형식의 구조를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 사진 목포시청 등록문화재 718-12호 목포 번화로 일본식 상가주택 목포시민들 “순전히 우리 힘으로 문화유산 보존케 해” ​ 최근의 ‘손혜원 사건’으로 마치 목포 원도심의 근대 문화유산 거리 지정이 특정인의 입김으로 보전된 것처럼 일부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목포 시민들은 매우 불쾌해한다. ​ 시민들은 “우리들의 노력과 열정으로 낡은 건물과 문화유산들이 철거 위기를 넘기고 오늘까지 지켜졌다.”라고 반박한다. 실제로 철거될 위기 때마다 목포시민들은 여론을 모아 이를 막아내곤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건물은 지난 1996년 철거가 결정됐으나, 그 후에도 10년 동안 비어있는 채로 방치되었다. 당시 이를 사용하던 해군은 목포시가 이를 매입할 것을 요청했으나, 여의치 않자 결국 철거 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같은 결정을 두고 지역에서는 보존이냐 철거냐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일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문화재로서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일단 철거를 미뤄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 격론이 거듭된 끝에 “일제 강점기, 목포의 역사를 보여줘야 한다”는 전문가들과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음으로써 1999년 전라남도 지방문화재로 남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2년 후인 2001년 국내 처음으로 ‘등록문화재’ 제도가 생겨난 것이다. ​ 근대기 목포의 대표적 번화가이자 상업중심거리였던 번화로 일대에서 구 동아부인상회 목포지점 건너편에 위치한 상가건물로 일제강점기 과자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가늘고 긴 대지에 전면도로에 면한 정면은 좁고 안쪽으로 매우 길게 2층 목조 건물을 구성하였으며, 근대기 목포 지역의 대표적 상업 거리의 흔적, 역사성, 장소성을 보여주는 상가건물이다. ​ 사진 박경만주간 시민들 반대 여론에 당국 철거 방침 철회 ​ 목포 동본 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는 1930년대 일본 사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로서, 지난 2007년 철거되고 주차장으로 활용될 뻔했다. ​ 이 건물 역시 목포지역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이본 현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모습의 건물"이라며 철거를 반대한 끝에 같은 해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근대역사문화공간의 서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옛 화신백화점도 같은 일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목포 지역의 대표적인 판매시설이었던 이 건물은 당시로선 특이하게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 이 건물은 수직과 수평, 원을 강조하는 외관과 넓은 개방적 공간을 갖추고 있어 주목을 받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8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전문가들은 "근대 건축에서 많이 사용됐던 반우너형 아치가 장식적으로 채택됐는데 그런 측면에서도 돋보이는 건물"이라고 평가한다. 사진 박경만주간 2019년도 110억 원, 2023년까지 500억 원 예산 투입 ​ 일제 강점기 근대 도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목포시 만호동과 유달동 일대의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 사업은 오는 2023년까지 사업비 500억 원이 책정되었는데, 올해부터 본격적인 예산투입이 시작된다. 우선 근대역사공간에는 문화재 보존과 관리를 위해 국비 등 앞으로 200여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 전문가들의 표현을 빌리면 기존의 문화재는 점(點)의 구도로 관리했다면, 이번 사업은 면(의 차원으로 확장,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관리 체계가 이뤄진다. 목포시는 우선 2019년도에 사업비 110억 원을 확보하고, 사업추진 자문단을 구성한 후 근대건축자산 30곳을 매입해 등록문화재 보수에 나서기로 했다. ​ 그중 1단계인 금년에는 근대건축자산 30곳 매일을 위한 45억 2천만 원, 등록문화재 보수비용 24억 원, 정밀실측과 학술조사비 등 41억 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목포시는 등록문화재 15곳을 포함해 30곳의 근대건축자산을 매입할 계획이다. ​ 사진 박경만주간 목포시 "정밀한 아카이브 작업 등 기본정비계획 수립" ​ 이를 위해 목포시와 문화재청은 우선 먼저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사업의 기본 정비 계획을 수립하고 정밀 측정을 한 후 이들을 데이터화하는 아카이브 사업을 할 계획이다. 이 기본 계획에 따라서 필요한 자산들을 하나씩 매입하고, 정비·보수하면서 근대역사문화거리를 보전하는 사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 목포시는 현재 투명성과 공공성, 그리고 합리적인 절차와 방법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매입 대상을 확정하고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서 예산 집행을 최종 결정한다는 입장이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 또 이 사업과는 별개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인 '1897 개항문화의 거리' 사업도 동시에 진행하기로 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란 기대도 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