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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부톡스(BAMBU TALKS)-정희정 교수

2시간의 강의… ‘디자인’의 진실과 진리를 규명하다.

모두를 위한 공공디자인

공공디자인의 오해와 진실

 

"지난 달 ‘밤부톡스(BAMBU TALKS)-정희정 교수의 모두를 위한 공공디자인’ 강의 열려"

 

그에게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 가치다. 세상을 끌어안되, 마땅히 있어야 함에도 그 안에 없는 것을 채굴하는 엄숙한 작업이다. 그래서 국내 제 1호 공공디자인 박사 정희정 교수에게 디자인은 세상에 대한 묘사이자, 영혼으로 써내려간 서사다. 평소 그는 절규하듯 되뇌곤 했다. “디자인은 모두를 위한 것이며, 영혼이 깃든 필생의 과업”이라고….

지난 1월 10일 저녁 강남 한복판 밤부씨어터에서 열린 ‘밤부톡스(BAMBU TALKS)-정희정 교수의 모두를 위한 공공디자인’ 강의에서도 그러했다.

 

박경만 주간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날 정 교수는 정성껏 준비한 발표자료에 논문과 탐사 자료를 바탕으로 또 한 번 ‘디자인 영혼’의 실체를 청중들과 교감하고, 디자인에 대한 무심한 오해를 해명하며, 진실을 넘어선 진리를 갈파하느라 마지막 한 줌의 체력까지 소진했다. 2시간여 강의 후 당연히 파김치가 되었고, 목소리도 갈라졌지만 표정만큼은 달랐다. 희열이랄까. 얼굴에선 광채가 났다.

이날 강의에서 그는 시종 “디자인은 일련의 ‘가치 체계’”라고 확언했다. “계획에서부터 과정과 마감, 사후 관리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체계…. 그런 거죠. 곧 삶의 질이나 방식과 맞닿는 총체적 행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총체적 행위, 그러니까 디자인 행위의 주체로서, 자신과, 객관 일반의 현실을 화해시키려는 학문적 인격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그를 잘 아는 제 3자들은 그런 정교수에 대해 “사물과 세상을 그냥 모방하기보단, 유기적 구조를 디자인으로 창조하는 능력의 소유자”쯤으로 격상시키기도 한다.

그런 시선이 되레 자연인 ‘정희정’에 대한 불유쾌한 예찬이 될 수도 있을까. 적어도 이날 그의 열강에 취한 50여 명 ‘밤부 톡스’ 청중들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러기엔 강의에서 복기된 정 교수의 지난 디자인 여정이 너무나 처절했다. 조건없는, 치열한 헌신의 세월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미 알려져있다시피 정 교수는 민관을 넘나들며 디자인, 특히 공공디자인 분야에서 독보적인 이론과 실천을 거듭해왔다. 이젠 대한민국 정부의 중요 국책사업이 된 도시재생과 농어촌 뉴딜의 원조 발의자가 정 교수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 단체들도 디자인 정책 방향타가 필요할 때면 그가 없어선 안 되었다. 정책 과정에서 그는 단순한 초빙 대상이 아니라 주도적 참여자라고 해야 맞다.

“저는 그저 수동적 관전평이나 던지는 아카데미즘에 취하지 않았습니다. 실천적이고 능동적인 제안자이며, 이슈 메이커가 되고 싶었죠. 제 나름대로 누구보다 앞장 서 담론과 정책을 구성하는데 헌신했다고 자부합니다.” 그의 말마따나 공공디자인 세계에 대한 그의 광활한 탐구 행로는 누구도 따라 잡을 수 없다. 국내는 말할 것 없고, 아시아와 유럽 등 세계 각국을 섭렵한 여정을 합하면 지구를 몇 바퀴 돌 정도다. 도심에서 원시 자연을 만난 싱가포르의 디자인 풍토에 주목했고, 홍콩의 ‘자유로운 질서’를 뇌리에 새겼으며, 도쿄, 런던, 바로셀로나의 진화된 발상을 자신의 내면에까지 기록했던 여정이었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그런 정 교수는 “대한민국은 현수막 공화국”이라고 서슴없이 나무란다. ‘거름지고 장에 가듯’ 유행이 되어 버린 간판개선사업에 대한 따끔한 일침도 빼놓지 않는다. ‘단순한 것이 더 아름답다’는 단순한 진리가 무색하게, 가독성도 심미성도 미학적 가치도 없는, 허접한 디자인 현실을 질타한 것이다. 오로지 디자인에 인생을 건, 고집스런 학자에게서 나옴직한 진보적인 제언이며 고언이다.

‘밤부 톡스’ 강의에서 표출된 그의 디자인 철학은 카오스적 역설의 질서를 연상케 한다. 마치 직관적이며 즉자적인 사고와, 심원하고 합리적인 사유가 세밀하게 교집합한다. 그렇게 감성과 숙고가 화합하며 ‘정희정’ 만의 디자인 프레임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날의 강의 행간에선 좀더 본질적 언어도 발견된다. “디자인은 모든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확신이 그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한 결코 권태로울 수 없는, 삶과 사람, 인간애의 실천 양식이기도 하다. 그것의 표출이 유니버설디자인, 배리어프리디자인, 색채와 선과 형상을 통한 안전디자인 등의 체계화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정 교수는 “우리는 도시와 달라서 디자인이 필요없다.”던, 그가 만난 어느 군수의 언설에 한 동안 분노했다. 알량한 정치적 타산으로 회색빛 토목만을 중히 여기는 삼류 정상배의 무지함에 격분한 것이다. ‘삶이 곧 디자인’임을 온몸으로 보여온 학자로선 용납할 수 없는 망언이자, 희롱이었다.

정 교수의 그런 문제적 성찰은 평소 지칠 줄 모르는 저술작업으로 나타났다. 그가 지금껏 써낸 것만 해도 수 십 권은 될 것이다. 국내 디자인 관련 학계나 전문가들 중에 그 만큼 많은 책을 써낸 사람도 드물다는게 학계 안팎의 정평이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제 그는 또 한번의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국내 초유의 공공디자인 전문잡지인 <공공디자인저널. PUBLIC DESIGN JOURNAL> 창간의 닻을 올린 것이다. 열이면 열 “무모한 짓”이라고 말렸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사람은 없었다.

“왜 그런 걸 하냐 물으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어요. 굳이 ‘설득’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다만 공공디자인은 나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 그 결정체라고나 할까요.”

정 교수는 “디자인의 가치를 담을 수 있고, 나눌 수 있고, 알릴 수 있기만 하면 족하다.”며 창간의 변을 대신하곤 했다. 하긴 그가 속내에 담은, 말하지 않은 이유는 있다. 죽은 미학으로서 디자인 권력을 비판할 근거가 미디어 텍스트이며, 디자인 세상을 새롭게 재구성할 강력한 모티브가 저널리즘이란 믿음, 그것이다. 물론 그도 ‘인간’이다. 매월 잡지 마감 후 ‘뭉칫돈’이 들어갈 때면 밤잠이 편치 않고, 후회가 막급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시금 추스르곤 한다.

“1년 후에도 살아 남겠습니다. 그 때 다시 와 주시고, 봐 주십시오.”

‘밤부 톡스’ 강의가 마무리될 시각에도, 그는 청중에게 그렇게 말했다. <공공디자인저널> 편집인으로서 독자에게 바치는 헌사이며, 공공디자인에 모든 것을 바친 학자로서 세상에 전하는 출사표다. 오랜 강의에 그는 지쳐 보였다. 목소리는 잠기고 갈라지며, 가라앉았다. 허나 그의 ‘워딩’은 여느 때보다 분명했다. 이에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강의는 그렇게 끝났다.

 

 

 

 

2월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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