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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뛰는 삶을 선물합니다! - 강범구 유레카 NLP 저자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뛰는 삶을 선물하는 인생 최고의 인연 - 강범구 작가

가슴뛰는 삶을 선물합니다! 강범구 유레카NLP저자 ​ 슈팅스타교육 컨설팅 부대표 고려대 평생교육원 유머비즈니스학과 전임강사 연세대 미래교육원 유머스피치학과 전임강사 ​ ​ 문 혜 은 공공디자인 저널 큐레이터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독일의 문학자 한스 카롯사는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인도의 용수 보살은 중론에서 ‘이 세상 아무리 사소한 사물일지라도 인연으로 일어나고 인연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인생은 만남과 인연을 통해서 삶이 변화, 발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누구를 만난 후 인생이 바뀌었나요? 이달에 만나본 강범구 작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뛰는 삶을 선물하는 인생 최고의 인연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혜은. 작가님을 알게 되면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고 들었어요. ​ 강범구. 저를 만나면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 참 감사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를 만나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진정한 능력! 잠재의식을 만나게 되면서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저는 다만 자신의 잠재의식을 만나게 해주는 가이드 역할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2011년 NLP1)라는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잠재의식을 알게 되었고 학문과 함께 나 자신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 연구를 하면 할수록 놀라운 일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누구나 쉽고 빠르게 자신의 삶에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벌, 인맥, 돈 정말 강사로 발돋움하기에 아무것도 없었던 저의 삶에 건강, 인간관계, 돈 등 필요했던 것들이 삶으로 편안하게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 사람들은 방송을 통해 혹은 책을 통해 플라시보, 피그말리온 효과 등과 같은 이론을 접했고 적용 방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 대부분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강연을 하고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십니다. 아는데 잘 안돼요.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요? 안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상담을 통해 그리고 나의 삶을 통해 잠재의식은 선악을 판단하거나 가르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즉! 잠재의식은 우리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근심 걱정을 하고 있다면 잠재의식은 근심 걱정거리를 계속해서 늘려줄 것이고, 원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 역시도 잠재의식은 이룰 수 있는 방법이나 환경을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 한 가지 체험해 보실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이 방법은 실제 제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인데 지금 잠시 눈을 감고 주변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갑자기 컴퓨터 펜 돌아가는 소리, 사람 목소리, 시계 소리 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안 들리던 것이 들린 것일까요? 우리의 잠재의식이 필터링하던 것들이 들리는 것일까요? ​ 인지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보 필요한 정보라고 할지라도 우리들의 삶에 들어오지 못하거나 들어와도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잠재의식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활성화시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에 대한 정보들이 나를 찾아오게 하거나 내가 알아볼 수 있게 하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정말 행복하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은 진짜 나를 찾는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해봅니다. ​ 문혜은. 그러면 잠재의식에 대해 쉽게 설명을 부탁드리면... ​ 강범구. 잠재의식은 한마디로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능력입니다. 생각으로 이미지를 그리면 잠재의식은 그것들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합니다. ​ 2+2=? 5+5=? 15+15=? ​ 위의 산수 문제 답이 나왔나요? ​ 풀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무의식중에 4. 10. 30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우리의 잠재의식은 이미지가 들어오면 그 어떠한 문제라도 답을 찾아냅니다. ​ 저의 잠재의식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어 나누어 볼까 합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하던 상사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술자리에서 그 상사의 말장난에 속이 상했고 그 뒤로는 그 사람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때 NLP 스킬 중 하위 감각 양식이라는 것을 응용하여 적용했습니다. ​ 그 사람 얼굴에 상상으로 낙서를 하기 시작했죠. 머리는 양쪽 옆은 남겨두고 대머리로 하고 코밑에는 오서방 점을 크게 붙이고 머리카락처럼 긴 털을 그 점 가운데 자라게 하고 말할 때 앞니가 하나 없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계속 웃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람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고 마음이 이전같이 화가 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내가 내 생각의 주인으로 힘을 가지면 변화되는 저를 발견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뒤로 다시 사이를 회복하고 지금도 만나면 기분 좋은 선후배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떤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느냐에 따라 내 삶은 100%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빨간색 사과, 회색 코끼리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보라색 사과, 파란색 코끼리는요? 참 신기하게도 본적도 없는 보라색 사과와 파란색 코끼리가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 네! 내가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언어로 가능하다는 것 ​ 잠재의식은 사람의 언어에 반응하며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에 반응하여 내 삶에 반영합니다. ​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문혜은. 잠재의식을 바꾸는 게 제일 중요한 것처럼 느껴져요. 잠재의식을 변화시키는 테크닉이 있을까요? ​ 강범구. 하위감각양식과 리프레이밍 이 2가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 하위감각양식 사람 얼굴에 낙서를 해보고(시각), 듣고 싶은 소리를 재생해보고(청각), 느낌을 기억해보고(촉각), 향기를 느껴보고(후각), 맛을 상상해보는(미각) 것 불편한 상황을 그대로 삶에 받아들여 계속 끌어안고 있지 말고 내가 원하는 것으로 하나하나 변화시켜보는 것입니다. 5감을 모두 포함할 필요는 없습니다. ​ 상황마다 하나나 두 개 정도씩 인지 컨트롤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환경에 반응하는 내가 아닌 내가 나의 잠재의식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 리프레이밍 리프레이밍 말 그대로 프레임을 다시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화부터 내거나 좌절해버리기보다는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라고 이야기함으로서 원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식당을 하는 사장님이 있는데 매일 뜨내기손님들만 들어오고 혼자 오는 고객이 많다고 했습니다. 장사도 잘 안되는데 꼭 계란말이, 오도독뼈 등 반만 줄 수는 없느냐는 손님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 매번 돌려보내거나 하나를 통으로 팔고 포장해 드린다고 했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으셨던 사장님에게 하위 감각 양식을 통해 원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도록 도와드렸더니 뜨내기 손님 말고 단골이 많은 모습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손님들과 같이 한잔 할 수도 있고 그러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불편한(진상) 고객들이 오면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라고 이야기하며 원하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앵커링(일종의 최면)을 걸어 드렸습니다. 그렇게 한 3개월 즈음 지난 어느 날 연락을 통해 기분 좋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 계속 좋은 마음으로 일할 수 있어서 변화는 없지만 계속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던 중 반만 시키는 손님들이 많아 그냥 메뉴에 반만 팔 수 있다고 적어놓고 팔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팔기 시작하니 손님들이 부담 없이 혼자 와서 편하게 먹고 어느 날부터인가 말도 걸기 시작해서 단골처럼 자주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손님들과 같이 술도 한 잔씩 하면서 너무나 놀라운 삶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 문혜은. 어떠한 계기로 잠재의식을 연구하였나요? ​ 강범구. 저는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 운동선수 출신에 공부랑은 담을 너무 높게 쌓아놓고 살던 삶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CRPS(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라는 불치병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 너무 아파서 병원조차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온 힘을 다해 병원을 찾았고, 검사 결과는 운동선수 출신 혹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발생된다는 CRPS를 진단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수술할 보험도 돈도 없는 참담한 상황 그때 NLP를 배워놓았던 터라 적용을 시작했고 결과는 2주일 만에 호전이 되어 다시 병원을 찾으니 멀쩡하다는 것. ​ 참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부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아보고 나를 들여다보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꿈은 이루어져 갔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안되던 것들이 힘들이지 않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 그래서 나는 그날의 불치병 진단을 내린 의사분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 잘 살고 싶었던 나에게 잠재의식이 만들어준 환경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은 어려운 일? 불편한 일? 이 생기면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하면서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배울 것은 무엇인지 변화해야 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생각하면 또 원하는 것들이 나에게 오고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 문혜은. 이와 관련하여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 강범구. 조셉머피 잠재의식의 힘 ​ 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이 조셉머피입니다. ​ 목사님이셨던 조셉머피 선생님은 성경을 통해 잠재의식의 힘을 알아냈고 그것을 접목하여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사람입니다. NLP 1) 신경언어프로그래밍(Neuro-linguistic Programming)의 약자. 정보처리학자 리처드 밴들러와 언어학자 존 그린더가 창시한 NLP는 1970년대 말에 큰 호응을 얻었다. 밴들러와 그린더는 인간이 자신의 뇌에 언어로써 자신을 프로그램화한다고 주장했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실제 사례를 읽고 따라 해서 강사로서 큰 소득이 생겼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 졸다가 1만 5천 달러를 번 남자의 이야기로 수년 전에 내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레이 햄머스트롬 이라는 사람에 관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 것을 우송해 주었습니다. 햄머스트롬 씨는 피츠버그의 제철소에 일하는 압연공이었습니다. ​ 그 제철소는 최근에 새로 제련된 강봉을 냉각상에 보내는 것을 제어하는 기계를 설치했습니다. 설치자들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이 기계는 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기사들은 여러 날 동안 그것을 수리하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 햄머스트롬 씨는 이 문제를 심사숙고하다가 잘 작동할 수 있는 새 디자인을 고안해 내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 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누워서 잠깐 졸았습니다. 잠들기 전에 그 스위치 문제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낮잠을 자는 동안 그는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완전한 스위치를 디자인 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꿈속에서 본 디자인에 따라 새로운 스위치를 설계했습니다. ​ 백일몽을 꾼 덕분에 햄머스트롬은 1만 5천 달러의 수표를 받았는데, 이것은 그 회사가 여태까지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사원에게 지불한 최고액의 보상이었습니다. ​ 잠재의식의 힘에 대한 사례가 가득한 이 책에서 이런 글을 읽고 강사로서 어떻게 하면 더욱 의미 있고 소득도 올릴 수 있을까를 1주 정도 매일 저녁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 그때 졸음을 참아가며 메모를 하고 있었는데 졸고 일어나니 강사라는 글과 엔터테인먼트 글자가 선명하게 눈으로 보였고 국내 최초로 강사 엔터테인먼트를 개인사업으로 시작하여 2년간 저의 소득은 1억 7천만 원이었습니다. ​ 지금도 이 책을 들고 다니며 읽고 또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성경 마가복음 11장 24절 마가복음의 이 구절을 다시 읽으면서 시제의 구별에 주의하세요. 기도하고 구하는 believe 와 받은 receive 라는 동사는 현재 시제이지만 되리라 shall have는 미래 시제입니다. ​ 여기서 사도 마가는 이 문장의 문법상 사소한 시제의 차이로 대단히 중요한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소망이 이미 성취되고 충족되어 있으며, 벌써 실현되어 있다고 믿고 진심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 소망은 반드시 장래에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

이달의 예술가 - 국립국악관현악단 문형희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며 새로운 예술의 삶을 찾아가는 이 시대의 예술가

이미지 국립국악관현악단 이달의 예술가 국립국악관현악단 문형희 ​ 공공디자인저널 문혜은 큐레이터 우리가 오랫동안 개념화하고 진리라고 믿고 있는 삶의 방식에서 탈피하는 것, 그 삶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며 새로운 예술의 삶을 찾아가는 이 시대의 예술가 문형희를 만났다. 이미지 국립국악관현악단 지난해 3월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던 양방언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인투 더 라이트(Into the Light)에서 국립국악관 현악단은 아리랑 로드-디아스포라를 선보였다. ​ 디아스포라는 정치·종교적 이유로 삶의 터전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던 공동체 집단을 뜻한다. ​ 재일동포 2세로 역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산 양방언은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아리랑’을 소재로 총 7악장을 써내려갔다. 이날 공연은 국악관현악 교향곡으로 이들을 위로하는 여정과 동시에 국악관현악단의 멋진 사운드와 역동적인 연주로 2000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 큰 감동과 여운을 선사했다. ​ 특히 5악장 ‘잃어버린 아리랑’, ‘연어아리랑’, ‘빠뜨라크아리랑’을 새로 작곡된 아리랑을 선보였는데 이날 예술감독 업무대행 겸 악장인 문형희는 남성 독창부분을 노래했다. ​ 문형희 악장의 담백하면서도 전문가 뺨치는 노래 실력은 그날 온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뿐이랴. 문형희는 현재 뛰어난 기량을 갖춘 대금연주자이며 국립국악관현악단 및 유수의 관현악단을 지휘한 지휘자이며,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의 스펙트럼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자신의 예술가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었으며 그 결과 그는 고정되어진 틀에서의 예술적 행위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 수용,열린 마음,문형희의 성향에는 나고 자란 집안의 분위기가 큰 영향을 끼쳤다. 풍금을 치길 즐기시던 아버지. 노래를 좋아하시는 어머니 피아노,기타,하모니카를 불면서 지냈던 두 누나와 형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던 문형희는 성인이 되면 완성된 음악으로 더 잘 그려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 그의 음악적 꿈과 갈증은, 지금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해소되었고, 지금의 국악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대금을 전공한 문형희는 스승이자 영혼의 지도자이신 이생강 선생님을 만나 산조를 배웠다. 그는 현재 이생강 선생님의 대금산조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다. ​ 과감한 시도와 개방성, 서양음악과 국악의 협업에 주저함이 없던 이생강의 여러 시도는 그 시절의 문형희의 생각과 맞닿는 부분이 있었다. 그 자체에 큰 영감을 받은 문형희는 다양한 음악을 수용하는 마음과 태도로 공부하였다. ​ 이후 중앙대학교에 진학한 문형희는 박범훈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음악적 영역을 더 넓혀갈 수 있었다. 그 이전의 국악관현악은 그에게 있어 관심을 끌만큼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박범훈의 중앙국악관현악단은 그렇지 않았다. ​ 박범훈은 서양적 작곡기법과 화성을 전통음악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는 능력을 보였고 국악관현악을 통해 훌륭한 사운드로 완성해보였다. 그 당시 저는 국악관현악으로도 서양오케스트라처럼 저렇게 멋지게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박범훈의 중앙국악관현악단의 과감한 시도와 개방성이 저에겐 큰 영감이 됐습니다.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박범훈의 시도와 개방성은 문형희에게 또 다른 가능성과 용기를 깨닫게 해주었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문형희는 지금의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이미지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의 저는 대금연주자로서 수많은 연주 경험과 다채로운 실력향상의 기회를 가지게 됐습니다. 당대 제일가는 최고의 명인들과 공연하는 기회도 많았고, 명인들과의 인연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연과 경험을 통해 저는 국악인으로서 우리 음악의 폭을 넓히고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국악관현악단은 활발한 시도와 개방성으로 국악계에 대표적 장르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발전의 또 다른 이면에는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가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 대표적으로 다양한 레퍼토리의 부재와 음악적 사운드를 만들고 끌고 갈 수 있는 지휘자의 역량과 역할, 오랫동안 고정화된 관현악단의 구조적인 시스템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점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 그중 국악창작곡의 레퍼토리에 있어서 2000년대 중반까지의 국악관현악은 박범훈, 이상규, 백대웅 등 1세대 작곡가들의 시대였다면 이후의 관현악은 ‘창작과 실험’의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새로운 젊은 작곡자들의 출연과 동시에 서양음악을 전공한 작곡자들이 국악관현악이라는 장르에 합세하며 국악관현악 레퍼토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했다. ​ 이렇듯이 국악관현악곡은 다양한 변화를 통해 발전한 반면 그 곡을 만들어내고 연주하는 지휘자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부재한 상태였다.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연주자 활동을 하던 문형희는 지휘자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학원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 2008년엔 한강필하모닉 정기연주회를 지휘했다. 프로그램은 베토벤 ‘에그먼트 서곡’ 서양 오케스트라를 위한 미키 미노루의 가야금 협주곡 ‘소나무’ 베토벤교향곡 4번으로 구성했다. 국악 전공자가 서양클래식 레퍼토리로 지휘를 한다는 건 그 시절 굉장히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미지 국립국악관현악단 국악관현악단을 지휘하는 서양 지휘자들은 많은데 왜 국악을 전공한 국악지휘자는 서양음악을 할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을 깨고 싶었어요. 다소 엉뚱한 발상에서 시작한 문형희의 생각은 그대로 현실로 이어졌고 지금도 국악을 전공한 지휘자가 전곡을 서 레퍼토리로 지휘한 연주회는 흔치 않다. ​ 황병기 예술감독이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이끌던 시절, 문형희는 단체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서양음악 지휘뿐만 아니라 유수 국악관현악단을 지휘한 문형희는 지휘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양한 지휘자가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그의 노력이 지금의 국악관현악단의 음악적 발전으로 연결되었으리라. ​ 지휘자의 꿈을 꾸었던 그는 지휘자로서 다양한 경험과 활동과 동시에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수석연주자와 악장을 역임하면서 대금연주자로서의 본연의 역할 또한 꾸준히 지켜나갔다. ​ 2016년 문형희 대금연주회 ‘서으로 가는길’은 그 해에 이데일리 대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듯 문형희는 여러 분야에서 자기의 음악적 역량을 다양하게 소화해내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저는 지금도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집중해야 할 일을 찾고나면 그 일이 이 사회에 특히 우리 음악에 어떤 공익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순간순간 변하는 이 시대에 우리 음악도 변화에 맞춰 과감하게 변화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음악도 실은 과거의 창작 음악이었고 변화와 수용을 통해 하나의 전통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변화에 적극적이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가 생각하는 것 앞뒤 안 가리고 일단 해봅니다. 질보다 양이 많아야 질 좋은 하나라도 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미지 국립국악관현악단 세상 모든 것이 다 예측 가능하다고 떠드는 사람들은 헛똑똑이가 많다. 그만큼 세상은 복잡계 속에서 그 질서\를 유지하며 변화해 나간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들뢰즈(Gilles Deleuze)는 노마디즘(nomadism)의 삶을 권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개념화하고 진리라고 믿고 있는 제한된 가치와 삶의 방식에서 탈피하고 그 삶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바꿔나가는 유목민의 살아가는 삶, 그는 지금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예술가들은 이 시대의흐름에 맡기며 예술적 삶을 찾아 새로운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 우리가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우리를 만드는 것처럼 지금도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삶의 흐름에 순응하며 자기의 예술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예술가들의 모습을 문형희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

기업형 새농촌 선도마을 사업 추진위원장 윤덕수(YOON DEOG SOO)

공공디자인 전문가의 행복한 귀농(歸農)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기업형 새농촌 선도마을 사업 추진위원장 윤덕수 YUN DEOG SOO ​ 귀농한 지 3년 차로 복숭아와 대추를 주 작목으로 재배하는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마을 주민과 동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소속감과 애향심을 키우는 게 귀농 초기의 희망이었으나 기업형 새 농촌 선도마을 사업의 추진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 어깨가 무겁고 걱정이 앞섰으나 이장님, 각 반 반장님, 그리고 노인회, 부녀회, 학곡자율방범대,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참여로 아름답고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택배 왔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복숭아 두 상자가 왔다. ​ 백도와 황도! 그렇게 커다란 복숭아는 난생 처음이었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 그렇게 달달한 복숭아는 또한 처음이었다. ​ 그를 처음 만난건 어느 특강에서였다. 앞줄에 앉은 그를 보면서 필자가 강의를 하는지 그가 강의를 하는지, 우리는서로 교감했다. ​ 다음 해 당시 필자가 몸담고 있던 한양대학교 대학원 공공 디자인 전공 과정에 입학하여 학업의 꿈을 펼쳤다. 그의 나이 54세였다. ​ 그렇게 필자와 인연이 되었고 그는 대학원 졸업 당시 ‘안전한 보행 도로를 위한 환경개선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석사학위 최우수논문상을 받기도 했던 그였다. ​ 그의 귀농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어느새 이렇게 크고 달달한 과일을 키워내고 또 귀농한 마을에서 지역 경관개선사업과 역량강화사업의 리더가 되어 마을 만들기를 하고 있다니 그의 노력과 재능에 놀라울 따름이다. ​ 자랑하고 싶었다. 자료를 청해 받아보면서 또 한 번 놀랐다. 넉넉하지 않은 예산으로 일구어내고 또 만들어가는 역시 그 다운 발상과 능력치였다! 과거 서울에서 실내건축회사를 운영했던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 58년 개띠! 제 제자 선생님입니다! 그를 자랑스럽게 소개할 때 붙는 수식어다. 공공디자인 전문가의 행복한 귀농[歸農]그의 앞날이 기대된다. 사진 윤덕수 127.5ha에 이르는 원주시 소초면 학곡1리에는 2017년 기준 181가구 365명(남 186, 여 179)이 살고 있다. 강원도와 원주시가 지원하는 기업형 새 농촌 선도마을 사업은 시간적인 범위로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지역 경관개선사업, 지역 역량 강화사업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행복한 마을 공동체”를 비전으로 치악산 숨결이 살아있는 생태, 체험, 관광마을로의 도약과 주변 경관개선 사업 및 교육을 통해 지역 이미지 개선, 아울러 지역 역량 강화를 통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소득 증대 기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선도마을 사업은 주변 경관 및 역량 강화 교육을 통해 지역 이미지 증진과 쾌적한 삶 속에 주민의 정주 여건이 나아지도록 노력하고 더 나아가 외부인의 방문이 활성화되고 재방문이 이루어져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루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 계획의 수립과정부터 소통하고 논의하는 끝없는 반복을 통하여 가치관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의 가치를 찾아 서로 협력하고 추진해왔다. ​ 갑론을박의 진통을 통해 경관 사업으로 하천 제방 사면에는 복토하여 거름을 살포하고 핑크뮬러를 식재하였다. 봄에 식재하여 여러 차례 풀을 뽑고 관수하여 지금 잘 자라고 있어 가을이 되면 푸른 핑크뮬러가 핑크색으로 탈바꿈하게 되어 원주에서는 최초로 핑크뮬러 군락을 이루게 되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고 찾아오는 방문객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 이것을 배경 삼아 청정학곡마을 타이포 조형물을 설치하고 타지역과 차별성과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하여 환영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복숭아캐릭터 남녀 복돌이와 복순이를 양쪽에 세워 학곡 마을의 장소성을 명확히 표현했으며, 반대쪽 옹벽 상부에는 학곡마을의 스토리를 조형물로 표현하였다. ​ 사진 윤덕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가치 있는 공간으로 농어촌을 주목하고 삶의 질 향상 및 마을 품격을 높여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수단으로 경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지역 특성에 맞는 가로경관 조성, 창출과 관리가 관심받고 있다.

정건영

멀티 퍼커셔니스트 정건영 교수

비브라폰 연주 정건영 Chung KunYoung ​ 오스트리아 프라이너 사립음대 정교수 오스트리아 비엔나국립음대 초빙교수 일본 교육 컨설팅 And Vision 소속 타악기 아티스트 One World Percussion Ensemble 멤버 미국 Ludwig-Musser 소속 비브라폰 아티스트 (사)한국 장애인 공감 예술원 원장 서울특별시 홍보대사 세한대학교 예술학부 학부장 경기도교육청 홍보대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손!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 동양인 최연소 비엔나국립음대 초청교수 장애 없는 자유로운 타악기 세계를 열어 누구나 소통할 수 있는 음악 세상을 만들어 가는 멀티 퍼커셔니스트 정건영 교수 One world percussion Ensembel 2010년 동양인 최연소 비엔나국립음대 초청교수로 발탁되며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킨 정건영은 지난 2009년부터 현재까지 오스트리아 프라이너(Prayner)예술대학교 정교수로 한국과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국제적인 연주자, 교육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 중인 정교수는 2000년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난 후 클라우디오 아바도, 예후디 메뉴인, 주빈 메타 등 세계 정상의 유럽 클래식 음악가들을 배출한 비엔나국립 음대에서 발터 파이글(Walter veigl)을 사사. 오스트리아 Der Dioezese St'Poelten 종교음악대학에서 합창지휘를, 프라이너 예술대학교에서 관현악 오케스트라 지휘를 전공했다. ​ 지난 2004년 오스트리아 페스테스트 타악기 콩쿠르에서 1위로 입상한 바 있는 정건영은 비엔나필하모닉오케스 트라에서 객원 단원으로 리카르토 무티, 주빈메타, 등 세계의 유명 지휘자들과 수많은 연주를 하며 멀티 퍼커셔니스트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 MBC의 한 교양 프로그램에서 분당 1,142타, 현재 1,300타를 돌파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손’으로 소개되기도 했던 그는 특히 오스트리아 비엔나국립음대 동문인 주빈 메타와의 협연을 시작으로 비틀즈의 드러머 링고스타가 소속되어 있으며, 비브라폰의 거장인 게리버튼이 소속된 세계적인 타악기 전문브랜드 ‘루딕 무써(Ludwig-Musser)’와 세계에서 팀파니 아티스트 최초로 엔도스 계약을 맺었다. ​ 이외에도 지난 2012년에는 세계 클래식 대가들의 총망라한 네트워킹인 앤드비젼(AndVision,일본)의 아시아에서 유일한 타악기 수석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팀파니 수석인 라이너 제거스(Reiner Seegers)와 함께 독보적인 교수법으로 이름을 빛내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세계 최고 솔로이스트인 Jeff Queen, Nebojsa Zivkovich와 함께 ‘2013 Seoul Drum Festiva’에서 타악기 앙상블 ‘One World Percussion Ensemble’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 국내·외 굴지의 유명 연주 홀에서 Tonkuenstler Orchester, 코리안 심포니 등 다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전문 연주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그는 존 케이지 작곡 분석, 호흐라이너 연주법, 어린이를 위한 음악 그림 동화책(아빠 모차르트 초콜릿 사주세요) 등 다양한 논문과 저서를 출판하며 학생들을 위한 지속적인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다. ​ 대표적인 예로 장애 없는 자유로운 타악기 세계를 열어 누구나 소통할 수 있는 음악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발달장애인들과 함께하는 ‘한국장애인공감예술원’을 창립했다 누구나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음악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오랜 꿈이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 비브라폰 연주 발달장애인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저는 사실 소통의 속도 문제라고 말하고 싶어요. ​ 조금 느리게 말하고 느리게 생각하는 사람들 이 있는 거죠. 1분에 1,200타를 치며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손을 가졌다고 평가 받는 저도 오스 트리아 빈에서 유학할 때에는 대표적인 느린 사람, 모자란 친구로 통했어요. 독일어가 잘 안되니까 그들 눈에 저는 말 못 하는 학생으로 보일 뿐인 거죠. 다들 그랬죠. 비브라폰 연주 '쟤는 왜 여기 있는 거지?' '어쨌든 여기 들어왔으니까 잘 도와줘라' '애가 멍해서 그렇지 시키면 정확하게 하니까 너희가 도와줘라' ​ 그때 어렴풋이 발달장애인들의 마음을 알게 됐어요. 저도 항상 느리게 배웠으니까요. 당시 제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는 언어가 아니라 악기였어요. 발달장애 아이들도 저처럼 악기로 세상과 소통해요. 가르치다 보면 그 아이들이 타악기로 표현하는 세상이 느껴져요. 세상의 수많은 눈물과 슬픔, 그리고 단순하지만 너무 큰 위로... 연주사진 언어가 아닌 음악으로 마음을 나누는 건 우리 모두에게 유용할 뿐 아니라 좀 더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빈에서만난 제 멘토나 음악의 대가들에게 배운게 바로 그거였어요. 음악이 단순한 밥벌이가 아니라는 것. 좋은 대학을 가거나 유명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도구라는 것이죠. 사실 이것이 음악 본연의 기능이죠. 또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더구나 타악기가 주는 위로는 다른 악기에 비해 훨씬 단순하면서도 생생합니다. 단순하고 생생한 만큼 아이들의 피드백도 강렬할 수밖에 없죠. 타악기의 가장 우월한 장점이죠. 세계적인 타악기 앙상블 다양한 타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세계적인 *멀티퍼커셔니스트 정건영은 2001년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본격적으로 타악기를 시작해 2004년 오스트리아 페스테스트 타악기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 빈 국립음대 타악기 학사, 석사, 최고연주자 과정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동양인 최초로 빈 국립음대 초빙교수를 지내고, 오스트리아 프라이너 콘서바토리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빈 국립음대 출신으로 구성된 안톤 베베른 오케스트라에서 리카르도 무티, 주빈 메타 등 세계 유명 지휘자들과 연주했고, 쉔부른 오페라극장, 빈 뮤직페어라인 골든홀, 비엔나 하이든 홀독주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 현재 퀸의 로저 테일러, 비틀즈의 링고스타, 마룬파이브의 멧플린 등 세계적인 드러머들을 전속 아티스트로 선정한 바 있는. 미국의 드럼 전문 회사 루딕무써(Ludwig-Musser)에 동양인 최초로 전속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활동 중이며, 국내에서는 세한대학교에 적을 두고 서울시 홍보대사와 경기도교육청 홍보대사로도 위촉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정건영과 함께하는 한국장애인공감예술원’은 그동안 소통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아 왔던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치유와 위로의 새로운 음악 세상을 열어갈 계획이다. ​ 특히 IT를 활용한 4차 산업과 연계, 비싼 악기 구입 걱정 없이 누구나 쉽게 타악기 연주 활동에 입문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큰 장점이다. ​ 궁극적으로 많은 콜라보 활동을 통해 발달장애인들이 다양한 음악의 세계를 경험하고 세계적인 연주가로 성장해 갈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게 정건영 교수가 열린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꿈꾸는 야심찬 계획이다. ​ *멀티 퍼커셔니스트란? 두드리는 서양 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멀티 퍼커셔니스트라고 합니다. 팀파니, 마림바, 비브라폰, 실로폰, 글로켄슈필, 심벌즈, 트라이앵글, 탬버린, 큰 북, 차임벨 등을 연주합니다. 보통은 오케스트라에서 존재감이 없었어요. 최근에는 독주도 있고, 연주자가 전면에 드러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한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변희진

DIY 체험형 디자인 교구 '마이슈즈디자인'

신한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변희진 DIY 체험형 디자인 교구 ‘마이슈즈디자인'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하이힐을 빨리 신고 싶어서 발이 빨리 자라길 기다리며 집안의 신발장 청소를 담당했다. ​ 발이 너무 커져 예쁘고 멋진 구두를 마음대로 신을 수 없는 아픔이 있었지만 신발에 대한 사랑은 계속되었다. ​ 런던예술대 대학원과정에서 제작한 커스터마이징 슈즈 / ‘자력’을 주제로 자석의 원리를 이용하여 스트랩형태를 변형할 수 있는 디자인 ​ 대학 3년을 마치고 휴학 후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유럽여행을 하면서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대학을 졸업 후 영국에서의 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London College of Fashion)에서 패션풋웨어(Fashion Footwear)를 전공으로 만4년간 유학생활을 하면서 주제도 커스터마이징 슈즈가 주 주제를 이루었다. 한 켤레의 슈즈에서 다양한 디자인을 표현하고 연출할 수 있는 형태를 연구하고, 졸업작품컬렉션도 마치며 보그잡지에서 촬영을 해가기도 하였다. ​ ​ 런던예술대 대학원과정에서 제작한 커스터마이징 슈즈 / 구두와 부츠 부분을 합하여 부츠로도 펌프스로도 선택하여 신을 수 있다. 이윰액츠(대표 이유미)에서 프로젝트로 슈즈디자이너로 참여했던 3D프린팅 아트 슈즈 ​ 한국에 돌아와서 슈즈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정부 지원을 받아 청년창업도 도전해보았다. 맞춤형 슈즈브랜드를 개발하기도 하며 비즈니즈에 대한 영역도 모든 사람의 발 형태가 다른 것과 정형화된 사이즈에 대한 고민을 하며 3D프린팅분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아티스트와의 협업프로젝트로 3D프린팅슈즈를 디자인하며 작업 영역을 넓혀나갔다. ​ 디자인권 등록을 하고 2017 세계여성발명대회에서 수상한 DIY 슈즈디자인 패턴과 스트랩으로 다양하게 연출한 모습. ​ 박사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진학한 대학원에서 캡스톤디자인프로젝트를 통해 어린이 교재와 교구를 개발하게 되어 슈즈디자인 분야에 대한 체험을 교재와 교구를 통해 할 수 있도록 개발한 것을 계기로 지금의 ‘마이슈즈디자인’이 제품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 슈즈를 디자인해보고 직접 만들어서 신어볼 수 있는 체험형 교구를 개발하며 슬리퍼 패턴을 어린이들이 손쉽게 완성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 디자인권 출원과 세계여성발명대회에서 수상 그리고 클라우드펀딩도 도전해보며 연구하고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논문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 ​ 마이슈즈디자인 컬러별 패턴과 완성된 모습 신세계아카데미에서의 ‘마이슈즈디자인’ 강좌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수업하며 서로의 발 크기를 재어보기, 그려보기, 자신의 발에 이름 붙여보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하며 엄마 아빠와 함께 DIY 슬리퍼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집중하는 눈빛, 자신이 만든 슬리퍼를 신고 좋아하는 모습, 아이들마다 모두 아름답고 멋지게 디자이너가 되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통해 보람도 많이 느끼게 되었다. ​ 필자의 세 아이들도 마이슈즈디자인 수업에 참여해서 자신이 직접 꾸미고 완성한 슬리퍼를 신고 자랑스러워하며 유치원에 들고 가서 신으려고 유치원 가방에 챙겨 넣어 가져가기도 했다. ​ 자신만의 개성과 창의성을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개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슈즈디자인을 통해 재미를 느끼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 개발을 하며 소재, 패턴, 디자인 개발에도 꾸준히 신경을 쓰고 있다. ​ 백화점 강좌와 어린이집 특강 그리고 수업 특강과 노인미술치료수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 신한대학교 디자인예술대학 디자인학부 산업디자인전공 교수로 나즌(Nazn 대표 문현미)의 디자인 디렉터로 세 아이의 엄마로, 다양한 역할을 해내며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행보를 기대한다. ​

윤석민 (Yoon Seok Min) - Design Group Yoon space

색다른 곳에서의 휴식은 즐겁다.

윤석민 YOON SEOK MIN Design Group . Yoon space 불현듯 잔을 채우던 ‘데낄라’병을 껴안고 일어나 연체동물처럼 춤을 추던 윤석민 소장! 그를 생각하면 서양인들로 북적이던 상하이의 10여 년 전 밤이 생각난다. 압구정에서 그랬고 삼성동 방이동... 늘 우리는 술을 마셨고 그때마다 끼 많은 그의 개그를 봐왔다! 그동안 그의 공간풀이에서도 알 수 있지만 늘 감성충만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낸다. 저널에 올릴 인물 사진을 받았다. 기가 찼다! 전화를 걸어 이제 중년이니 얌전한 사진을, 그럴싸한 상반신 사진을 달라했더니, 없단다. 쾌활한 사진 밖에는, 자기는 그게 좋단다. 그랬다. 그는 늘 쾌활했다. 성격 좋고 옷 잘입고 끼많은 그가 역시 또 발칙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꼭 자기같은 작품인데 참 근사하다.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인기인 모양이다. 능글능글한 그의 미소가 그리운 밤이다. -편집인 아웃도어용 리빙공간 '알방' 색 다른 곳에서의 휴식은 즐겁다. 아웃도어용 리빙공간 ‘알방’ 설계 : 윤공간 디자인 윤석민 / 송평 R&D 박정수 시공 : 송평 R&D 박정수 위치 :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해변 면적 : 6.9 m2 바닥 : P-TILE 벽,천정 : 발포 폴리스티렌 (EPS Expanded Polystyrene) 사진 : 인디포스 송기면 우린 늘 색다른 곳에서의 여행과 휴식을 꿈꾼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러한 바람처럼 호텔이나 펜션, 민박, 텐트, 캠핑카가 아닌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차별화된 공간으로 계획하였다. 마치 거대한 ‘알’처럼 보이는 공간은 이동이 가능해 내가 원하는 어디에서도 자리 잡을 수 있다. 디자이너는 일반적인 숙박의 개념을 넘어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공간을 제안하고 싶었으며, 이곳을 ‘아웃도어용 리빙공간’이라는 개념을 부여했다. 비록 6.9㎡(2.1평)면적의 작은 공간이지만 8개가 일률적으로 놓여있는 알방은 건축적인 재미까지 선사한다. 똑같아 보이지만 출입문에 다양한 색을 입혀 그 나름대로의 개성과 유니크함을 더했으며, 숫자나 이름이 아닌 색으로 불려지게 했다. 하나의 조각처럼 보이기도 하고 건축물 같기도 한 알방은 어느 한쪽으로 경계를 두기보다 독특한 애매모호함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보여지는 멋만이 아닌 사람과의 어울림을 생각해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였다. ‘발포 폴리스티렌 ’(EPS Expanded Polystyrene)을 주재료로 사용하여 경제성, 경량성, 단열성, 이동성, 난연성, 방수성을 갖추었으며, 내진효과, 내풍효과, 대류효과까지 있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알방은 앞으로 추가적으로 계속 제작할 계획이며 현재 특허청에서 디자인 등록증을 획득하였다. 제작과정에 있어서도 금형을 떠서 FRP로 만드는 보편적인 과정이 아닌 사람의 손을 거친 수공예 작품(EPS 600m/m 두께를 125m/m로 오랜 시간 수작업으로 깎아서 만드는 시간성의 결과물이다.)이라 더욱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이다. 디자이너는 이곳에서 최고가 아닌 유일한 공간에서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디자인했으며,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추억이 만들어지는 장소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인터뷰] 김기석 (Kim gi-seok) - (주) 치악산 황골 장바우푸드

6대째 전통기법으로 황골엿을 만드는 김기석 효[孝]와 전통[傳統]의 가치를 찾는 김기석

인터뷰 김기석 Kim gi-seok[주]치악산 황골 장바우푸드 대담 정 희 정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6대째 전통기법으로 황골엿을 만드는 김기석 효[孝]와 전통[傳統]의 가치를 찾는 김기석" 옜다! 엿 먹어라! 과거 자식이 많던 시절 가장 총애하는 장남에게만 나무라듯, 아무것도 아닌 듯 던져주었던 사랑의 보약! 내 아이를 똑똑하게 키우려면 조청으로 만든 음식을 먹이세요! (6대 김기석(37)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강원도 치악산에 6대째 황골 엿으로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에 때마침 강원도를 돌아보는 길에 찾아보았습니다. 황골 엿은 강원도 치악산 중턱에 자리 잡은 황골부락에서 100년 넘게 토속농산물로 만들어온 향토식품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아스팔트포장이 되어 접근이 편하지만 과거 이곳은 두메산골이었다고 합니다. 치악산 자락 황골 부락[황골로]에서 변함없이 전통기법 그대로 6대째 황골 엿의 대를 이어가는 김기석 대표를 만났습니다. 가내공장의 초입에서 16세에 시집와서 4대째 엿을 만들며 가업을 이어오시는 황정오 할머니(85세)를 만났습니다. 엿에 넣을 첨가물로 땅콩을 다듬고 계셨습니다. 황골 엿은 다양한 첨가제를 만들어 수백 가지의 엿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4대 할머니 황정오(85)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편집부. 대를 이어 가업을 이어간다는게 흔한 일은 아니며 특히나 37세의 젊은 나이에 대도시로 나가지 않고 부모님 곁에 남아 가업을 잇는 이유나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김기석. 어려서 부터 부모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죽어도 안하려 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다가 4년 전에 돌아와 정착했다. 이곳은 과거 말도 못하게 깊은 두메산골이었다. 80년대 초에 버스가 들어왔던 두메산골이었다. 벼농사가 안돼 감자나 밭농사를 지었고 겨울에는 할 게 없으니 엿을 만들어 읍내에 내다 팔아서 생계를 이어갔다. 황골 엿이 유명세를 타면서 일이 바빠졌고 어렸을 때는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했으나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만은 없었다. 매주 주말이면 집에와서 부모님을 도왔다. 그러던중 아버님이 허리를 다치셔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돌아와 정착했다. 100% 수제품으로 부모님이 잠 못 이루시고 일하는 모습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5대 아버지 김찬열(63)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편집부. 간단한 제작방법을 이야기 해주십시오. 김기석. 강원도와 이북 제조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밥을 해서 삭히는데 저희는 강원도에서 생산된 옥수수와 질금 쌀 엿기름을 가마솥에 넣고 끓인다. 다른 지방과 달리 밥을 하는게 아니라 통째로 끓여서 제조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 남쪽지방은 딱딱하게 해서 구멍이 숭숭 뚫린 흰색 가랑엿으로 만들지만 저희는 제조방법부터 틀리니 갱엿자체가 부드럽다. 엿은 하루 반, 조청은 하루 종일 가마솥에서 끊인다. 과거에는 화목으로 가마솥을 지폈으나 위생상 가스로 대체하였다. 남쪽지방의 엿은 딱딱하다. 그대로는 먹기 힘들기 때문에 추가 제작 과정을 거친다. 한 번 더 잡아 당겨 공기도 넣어 숭숭 구멍이 뚫리는 흰색 가랑엿을 주로 만든다. 항골 엿은 추가적인 작업 없이 갱엿 그 자체를 상품화하기 때문에 촉촉하며 초콜릿처럼 부드럽다.원재료는 직접농사를 지어 보급한다. 부족한 재료는 태백이나 횡성 등에서 가져오며 쌀은 지역 것을 사용한다. 질금 보리에 싹을 띄우는 것으로 어머니 고향이 전남 벌교로 그쪽에서 계약 재배한 보리를 가져온다. 끓여서 상품화 하는데 엿은 하루반 조청은 만하루가 소요된다. 불 곁을 떠날 수 없는 자는 것도 일의 연속이다. 시간을 놓치면 다 버려야 한다. 과거에는 화목으로 했으나 잡티같은게 들어가 위생상 가스로 바꾼 것이다. 일의 수고를 덜기 위해서 가스로 바꾼 게 아니라 위생이 목적이었다. 어렸을 때는 장작을 참 많이 팻었다. 공장에서 옛날방식으로 만들다 보니 위생이 문제된다. 장작을 때면서 불의 세기를 조절하기 위해 풍무같은 것을 사용하게 되는 데 화목이다 보니 잡티 같은 것이 많이 날리고 가마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도시분들이 좋아하지 않아서 지금은 가스로 바꾸었다. 편집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김기석. 일본을 가보니 대물림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더라 내가 6대가 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어머님은 반대하셨으나 아버님은 은근히 좋아하시는 눈치였다. 그렇게 시작하기는 하였으나 힘든 것은 사실이다. 새벽 2~3시에 일어나 시작되는 일과로 잠이 부족하고 아직도 배우고 있는 단계지만 자부심을 느낀다. 주위에서 칭찬을 많이 해주실 때 힘이 난다. 편집부. 엿에 대한 효험이나 복용 시 좋은이유 또는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점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십시오! 김기석. 수분이 많은 게 조청이고 농축이 많은 것이 엿이다! 머리를 맑게 하고 배를 따뜻하게 하며 소화를 촉진한다! 옛날에 임금님들이 조청을 아침 공복에 드셨다고 한다. 조상님들이 과거시험볼 때 어머니들이 아이를 가졌을 때도 먹었다고한다. 배를 따뜻하게 하고 머리를 맑게 한다. 과거 조상님들은 좋은 일이 있을 때 엿을 사용했다. 엿기름이 들어가서 소화가 잘된다. 내 아이를 똑똑하게 키우려면 조청으로 만든 음식을 먹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사탕이나 초콜릿이 아니라 조청이 들어간 음식을 먹여라. 옜다! 엿 먹어라! 과거 자식이 많던 시절 가장 총애하는 장남에게만 나무라듯, 아무것도 아닌 듯 던져주었던 사랑의 보약! 요즘 사람들은 엿의 장점보다 욕으로만 알고 있더라! 편집부. 여긴 눈 많이 오죠? 김기석. 아휴! 말도 마세요. 편집부. 여름에는 덥나요? 김기석. 여름에는 시원해요. 편집부.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가요? 김기석. (멋쩍게 웃으며) 돈벌이가 크게 안된다 밥먹고 살 정도다. 전통방법 그대로 제작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이든다. 사람들이 물엿은 알지만 조청은 모른다. 제가 판촉행사를 나가보면 젊은 분들이 조청을 잘 모르더라. 엿도 모르더라. 물엿은 아는데 조청이 뭔지 모르고 엿도 요즘 젊은 사람들이 욕으로만 받아들이지 그게 먹는 음식으로는 생각을 안 하더라. 힘든 것 보다도 그게 가슴 아프고 제일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특유문화인데 사라지는 거 같아 안타깝다! 일제강점기때 조청과 엿을 못 만들게 했다. 우리나라만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문화다. 설탕을 사용토록 했다고 들었다. 황골 마을 굴뚝에 연기가 나면 순사가 쫒아 왔었다고 한다. 먹고살기 위해 땅으로 연기가 스며들어 나가는 방법으로 명맥을 이어왔다고 들었다. 고조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밖에 나가지 않으시고 생계를 이어오셨기 때문에 5대까지 이어오셨다. 어머니께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알리고 싶어서 원주시의 도움으로 합법적인 제품화를 통하여 본격적으로 황골 마을의 엿이 재조명되었다. 또 다른 어려운 점은 앞에 전통이란 게 붙으면 육체적인 고통이 따르더라.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편집부.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 방송된다고 했는데 유명세를 타게 될 것 같습니다. 가내수공업을 넘어 시스템화 된 시설로 계획하지는 않는지요? 김기석. 부모님과 늘 함께 고민하는 점이다. 기계화 되고 시스템화 되면 간단하다. 몸도 한결 편안할 것이다. 문제는 맛이다. 맛이 달라지는게 우려된다. 손맛을 인위적으로 따라 갈 수 있을까 걱정이다. 24 절 기 동안 엿을 하다보면 똑같은 재료로 똑같이 만들어도 날씨에 따라 기온에 따라 미묘하지만 맛이 다르더라. 계속해 본 사람만이 제조비율을 안다. 이론적 레시피로 하는 게 쉽지 만을 않을 것 같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편집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공장에 들어가 보니 5대째 가업을 이어가시는 아버님 김찬열씨(65세)가 커다란 가마솥에 매달려 엿을 달이고 있고 한편에서는 이모님이 포장으로 분주합니다. 할머니 4대째 황정오씨(85세)는 엿에 들어갈 재료들을 돌보시느라 바쁘시고 5대째 가업을 잇는 어머니는 원주시내에 황골 엿 홍보차 행사에 나갔단다. 공과대학 페기물전공 석사출신으로 서울에서 좋은 직장을 다니다 가업을 잇기 위해 황골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유는 딱 한가지,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시는 게 마음에 걸려서였다고 합니다. 2살짜리 딸이 있고 아들은 추가로 낳고 싶다는 그는 후세에 7대를 이어가는 가업으로 물려주고 싶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합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6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김기석씨에게서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왔습니다. 치악산 황골 엿을 이어가는 6대째 장인으로의 당찬 서막을 알리는 그에게서 편집인은 진한 효심과 전통의 가치를 아는명인이며 장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의 세월이 지나도 대를 이어 이곳 치악산 황골 마을에서 황골엿을 만들며 살아가길 기대해 봅니다. 10년 후에 다시 인터뷰를 약속하고 서산에 기우는 해를 보며 서둘러 귀경길에 올랐습니다.

밤부톡스(BAMBU TALKS)-정희정 교수

2시간의 강의… ‘디자인’의 진실과 진리를 규명하다.

모두를 위한 공공디자인 공공디자인의 오해와 진실 "지난 달 ‘밤부톡스(BAMBU TALKS)-정희정 교수의 모두를 위한 공공디자인’ 강의 열려" 그에게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 가치다. 세상을 끌어안되, 마땅히 있어야 함에도 그 안에 없는 것을 채굴하는 엄숙한 작업이다. 그래서 국내 제 1호 공공디자인 박사 정희정 교수에게 디자인은 세상에 대한 묘사이자, 영혼으로 써내려간 서사다. 평소 그는 절규하듯 되뇌곤 했다. “디자인은 모두를 위한 것이며, 영혼이 깃든 필생의 과업”이라고…. ​ 지난 1월 10일 저녁 강남 한복판 밤부씨어터에서 열린 ‘밤부톡스(BAMBU TALKS)-정희정 교수의 모두를 위한 공공디자인’ 강의에서도 그러했다. 박경만 주간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날 정 교수는 정성껏 준비한 발표자료에 논문과 탐사 자료를 바탕으로 또 한 번 ‘디자인 영혼’의 실체를 청중들과 교감하고, 디자인에 대한 무심한 오해를 해명하며, 진실을 넘어선 진리를 갈파하느라 마지막 한 줌의 체력까지 소진했다. 2시간여 강의 후 당연히 파김치가 되었고, 목소리도 갈라졌지만 표정만큼은 달랐다. 희열이랄까. 얼굴에선 광채가 났다. ​ 이날 강의에서 그는 시종 “디자인은 일련의 ‘가치 체계’”라고 확언했다. “계획에서부터 과정과 마감, 사후 관리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체계…. 그런 거죠. 곧 삶의 질이나 방식과 맞닿는 총체적 행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총체적 행위, 그러니까 디자인 행위의 주체로서, 자신과, 객관 일반의 현실을 화해시키려는 학문적 인격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그를 잘 아는 제 3자들은 그런 정교수에 대해 “사물과 세상을 그냥 모방하기보단, 유기적 구조를 디자인으로 창조하는 능력의 소유자”쯤으로 격상시키기도 한다. ​ 그런 시선이 되레 자연인 ‘정희정’에 대한 불유쾌한 예찬이 될 수도 있을까. 적어도 이날 그의 열강에 취한 50여 명 ‘밤부 톡스’ 청중들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러기엔 강의에서 복기된 정 교수의 지난 디자인 여정이 너무나 처절했다. 조건없는, 치열한 헌신의 세월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 이미 알려져있다시피 정 교수는 민관을 넘나들며 디자인, 특히 공공디자인 분야에서 독보적인 이론과 실천을 거듭해왔다. 이젠 대한민국 정부의 중요 국책사업이 된 도시재생과 농어촌 뉴딜의 원조 발의자가 정 교수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 단체들도 디자인 정책 방향타가 필요할 때면 그가 없어선 안 되었다. 정책 과정에서 그는 단순한 초빙 대상이 아니라 주도적 참여자라고 해야 맞다. ​ “저는 그저 수동적 관전평이나 던지는 아카데미즘에 취하지 않았습니다. 실천적이고 능동적인 제안자이며, 이슈 메이커가 되고 싶었죠. 제 나름대로 누구보다 앞장 서 담론과 정책을 구성하는데 헌신했다고 자부합니다.” 그의 말마따나 공공디자인 세계에 대한 그의 광활한 탐구 행로는 누구도 따라 잡을 수 없다. 국내는 말할 것 없고, 아시아와 유럽 등 세계 각국을 섭렵한 여정을 합하면 지구를 몇 바퀴 돌 정도다. 도심에서 원시 자연을 만난 싱가포르의 디자인 풍토에 주목했고, 홍콩의 ‘자유로운 질서’를 뇌리에 새겼으며, 도쿄, 런던, 바로셀로나의 진화된 발상을 자신의 내면에까지 기록했던 여정이었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그런 정 교수는 “대한민국은 현수막 공화국”이라고 서슴없이 나무란다. ‘거름지고 장에 가듯’ 유행이 되어 버린 간판개선사업에 대한 따끔한 일침도 빼놓지 않는다. ‘단순한 것이 더 아름답다’는 단순한 진리가 무색하게, 가독성도 심미성도 미학적 가치도 없는, 허접한 디자인 현실을 질타한 것이다. 오로지 디자인에 인생을 건, 고집스런 학자에게서 나옴직한 진보적인 제언이며 고언이다. ​ ‘밤부 톡스’ 강의에서 표출된 그의 디자인 철학은 카오스적 역설의 질서를 연상케 한다. 마치 직관적이며 즉자적인 사고와, 심원하고 합리적인 사유가 세밀하게 교집합한다. 그렇게 감성과 숙고가 화합하며 ‘정희정’ 만의 디자인 프레임이 태어나는 것이다. ​ 이날의 강의 행간에선 좀더 본질적 언어도 발견된다. “디자인은 모든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확신이 그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한 결코 권태로울 수 없는, 삶과 사람, 인간애의 실천 양식이기도 하다. 그것의 표출이 유니버설디자인, 배리어프리디자인, 색채와 선과 형상을 통한 안전디자인 등의 체계화로 이어진 것이다. ​ 그래서 정 교수는 “우리는 도시와 달라서 디자인이 필요없다.”던, 그가 만난 어느 군수의 언설에 한 동안 분노했다. 알량한 정치적 타산으로 회색빛 토목만을 중히 여기는 삼류 정상배의 무지함에 격분한 것이다. ‘삶이 곧 디자인’임을 온몸으로 보여온 학자로선 용납할 수 없는 망언이자, 희롱이었다. ​ 정 교수의 그런 문제적 성찰은 평소 지칠 줄 모르는 저술작업으로 나타났다. 그가 지금껏 써낸 것만 해도 수 십 권은 될 것이다. 국내 디자인 관련 학계나 전문가들 중에 그 만큼 많은 책을 써낸 사람도 드물다는게 학계 안팎의 정평이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제 그는 또 한번의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국내 초유의 공공디자인 전문잡지인 <공공디자인저널. PUBLIC DESIGN JOURNAL> 창간의 닻을 올린 것이다. 열이면 열 “무모한 짓”이라고 말렸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사람은 없었다. ​ “왜 그런 걸 하냐 물으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어요. 굳이 ‘설득’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다만 공공디자인은 나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 그 결정체라고나 할까요.” ​ 정 교수는 “디자인의 가치를 담을 수 있고, 나눌 수 있고, 알릴 수 있기만 하면 족하다.”며 창간의 변을 대신하곤 했다. 하긴 그가 속내에 담은, 말하지 않은 이유는 있다. 죽은 미학으로서 디자인 권력을 비판할 근거가 미디어 텍스트이며, 디자인 세상을 새롭게 재구성할 강력한 모티브가 저널리즘이란 믿음, 그것이다. 물론 그도 ‘인간’이다. 매월 잡지 마감 후 ‘뭉칫돈’이 들어갈 때면 밤잠이 편치 않고, 후회가 막급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시금 추스르곤 한다. ​ “1년 후에도 살아 남겠습니다. 그 때 다시 와 주시고, 봐 주십시오.” ​ ‘밤부 톡스’ 강의가 마무리될 시각에도, 그는 청중에게 그렇게 말했다. <공공디자인저널> 편집인으로서 독자에게 바치는 헌사이며, 공공디자인에 모든 것을 바친 학자로서 세상에 전하는 출사표다. 오랜 강의에 그는 지쳐 보였다. 목소리는 잠기고 갈라지며, 가라앉았다. 허나 그의 ‘워딩’은 여느 때보다 분명했다. 이에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강의는 그렇게 끝났다. ​ 2월호에 계속됩니다.

Artist 김민수

잊혀질 뻔 했던 제주 흑우를 발견한다.

ARTIST 김민수 Kim Min Soo 백석대학원 미술학박사 수료 서귀포 문화예술공간 ‘몬딱’운영 우리에게 스마트폰 사진작가로 유명한 김민수 그러나 그는 철저한 그림쟁이였다! 그는 뷰파인더를 통해 사진이라는 명분으로 늘 가슴속에 밑그림을 그려내고 있었을 것이다. 흑우(黑牛)의 눈빛과 털깃에서 제주바람결을 고스란히 표현해 낼수 있는 천재작가! 제주흑우(濟州黑牛)를 그려낸 그를 보면서 늘 그랬듯이 외마디 탄성이 새어나온다. 그는 나의 오랜 벗이다. 그는 예술성이 뛰어나고 늘 앞서 나갔다. 어른이 되면서는 점점 과묵하고 부드럽지만 뚝심 있게 변해갔다. 그러고 보니 김민수작가는 흑우를 닮았다. 흑우도 그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문득 짐을 싸서 제주살이를 떠나던 그를 떠올려보니 끌림에 의한 그 둘의 만남은 필연이다! - 편집인 ‘일제에 수탈당한 흑우의 비극적이고 놀라운 진실’ 제주도의 유명한 흑돼지와 제주마(馬)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데 왜 유독 제주흑우(濟州黑牛)는 모르는가? 이 멋지고 잘생긴 흑우는 무슨 이유로 멸종의 위기에서 부활되고 있는가? 제주도에서 흑우(黑牛)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나는 여러 문헌을 찾아보며 제주흑우에 담긴 놀라운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흑우를 주제로 한 미학적 예술사진 작업이 한동안의 탐사보도적인 글쓰기로 나아가고, 이제 그림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록 개인의 작은 발걸음이지만 ‘우보천리(牛步千里)’, 우직한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는 마음가짐으로 한 걸음씩 내디디며 일제강점기 멸종의 위기를 겪고 부활하고 있는 우리 제주흑우를 찾아 문화 예술적 기행(紀行)을 하고 있다. 제주흑우의 내일을 만들어 가고 싶다. <우보천리 제주흑우 / 목탄화 / 100호> 프레임 안이 흑(黑)빛으로 가득 찬다. 짧지만 강하게 뻗은 뿔은 검은털에 도도함을 더한다. 근육질 몸뚱어리를 떠받치고 있는 흑색 발굽은 우직함을, 잘생긴 턱의 듬성듬성 짧고 강한 흰 수염은 고집을 드러낸다. 아! 그리고 내 눈과 마주한 그의 은빛 먹빛 커다란 눈망울은 순수함 속에 슬픔을 담고 있다. 흑우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사람의 얼굴과 오버랩된다. 문득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보천리 제주흑우 / 목탄화 / 100호> 작가로서 나는 당연히 그를 미학적으로 바라보고, 그만의 미를 찾아 화폭에 담아내야 한다. 프레임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흑색은 강렬하고 압도적이다. 뿔은 조형학적으로 소의 표정을 다양하게 만든다. 머리에 짧고 단단하게 솟아오른 한 쌍의 뿔은 도도함과 우직함, 강인함을 드러낸다. 짧아서 우아하지는 않지만 질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제주흑우 / 목탄화 / 30호> 아, 그리고 소의 눈망울은 많은 감정을 드러낸다. 시인 김기택은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 소가 가진 말은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라고 노래했다. 그 커다란 은빛, 먹빛 눈망울이 내게 말을 한다. 나는 그 앞에 서 있다. 그를 바라본다. 역시 자태보다는 눈빛이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고 가는 그의 얼굴을 남겨 주고 싶다. 먹빛 가득한 흑색을 가득 차게 그리고 싶다. 그의 얼굴을 담아내기로 한다. 우직함을, 도도함을, 고집과 슬픔을 표현하고 싶다. 전시: 우보천리 제주흑우 목탄화 전시일정: 2018년 12월 15일~20일 장소: 서귀포 이중섭창작스튜디오 1F 관람시간 : 오전 10시~ 오후 6시 * 2019년에도 서울과 기타 도시에서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1월호에 계속됩니다.

공공을 위한 기능주의 기반의 디자인, 정우람솔

EARN DESIGN LAB 대표

그는 기능주의를 기반으로 구조를 이용한 생활용품 분야의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으며, 100년 뒤에도 사용할 수 있는 표준디자인을 연구하고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2015년 11월 2일, ‘EARN DESIGN LAB’이라는 1인 디자인 기업을 설립하였다. 현재 타이핑 작업을 돕는 A4 STATION의 출시를 시작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EasyCap을 개발, 국제출원을 진행하는 등 표준화에 힘쓰고 있다. 향후 10년 안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면봉 하나라도 최소한의 비용으로 설계하고 이유 없는 곡선과 곡면은 최대한 절제하며, 장식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으로 엔지니어링 기반의 디자인을 구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Shower Head Legs: 손빨래를 하거나 욕실 청소 시 샤워기 헤드를 바닥에 놓았을 때 수압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을 막아주는 구조 개발 "100년 뒤에도 사용되는 디자인, 유명한 디자이너, 기업을 꿈꾸지 않습니다. 제가 세운 회사는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 아닙니다. EARN DESIGN LAB이란 기업은 표준 제품을 만들기 위한 도구일 뿐, 오직 표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저와 기업의 목표입니다." EasyCap: 악력이 부족한 어린이나 노약자들이 지렛대의 원리로 손쉽게 뚜껑 하단 접합부를 끊을 수 있는 페트병 캡 구조 개발 저는 제품디자인과 공학을 전공하며,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자취를 따라 많은 국제 전시들과 샵, 뷰띠끄, 기업들을 경험하였습니다. 그곳엔 너무나도 많고 다양한 사람들의 수요와 욕구가 있었습니다. 많은 디자인을 만나면 만나볼수록 하나로 좁혀지는 사실은 가장 좋은 제품은 우리가 평소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생활에 녹아 있는 제품이라는 것입니다. 시대를 대표하는 제품은 계속 있어 왔고 좋은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남아 표준 제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에 사용하신 커피의 빨대를 기억하십니까. 1937년 프리드먼의 빨대구조에 대한 특허등록을 시작으로 현재까지도 빨대는 사용되고 있습니다. 칫솔, 케이블타이, 지퍼 같이 우리의 생활 속에 녹아들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인류의 생활과 동화되고 있는 제품들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제품입니다. 세상엔 사족과 같은 제품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쓰레기통이 필요해서 사러 간 경험이 있습니다. 쓰레기를 담기 때문에 눈에 띄고 싶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하얀 벽에 숨어드는 무늬가 없는 아주 평범한 흰색 원통 플라스틱 휴지통을 찾고 있었습니다. 다이소에도 없었습니다. 대형마트에도 없었습니다. 국내 쇼핑몰에서 조차도 없었습니다. 제가 찾고 싶은 건 그저 기본도형인 원기둥 모양의 쓰레기통이었을 뿐인데 그 어떤 제품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자기제품을 과시라도 하듯 화려한 구조, 눈부신 패턴과 컬러, 다양한 파츠들을 덕지덕지 덧붙이기 바빴습니다. 모두 겉껍데기를 채우는데만 치중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이렇게 많은 쓰레기통 디자인이 있지만 가장 평범한 구조의 쓰레기통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껍데기를 중요시한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느껴졌습니다. Gas Canister Recycling Tool: 부탄가스 용기내 동봉 가능한 잔류가스 방출 구멍을 내는 툴 개발.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누르는 작은 힘만으로도 안전하고 쉽게 잔류가스 배출구멍을 낼 수 있도록 설계 정보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유형의 가치가 축소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몇십 종류나 되는 전자제품이 역사 속에 사라졌으며, 날로 발전해가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활용 기술은 우리 인류를 물질 사회에서 해방시키고 있습니다. 이미 시각과 청각은 인간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할 단계까지 접어들었으며, 기본적인 촉각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머지않아 후각과 미각 또한 전기신호로 제어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결국 남는 것은 우리 인류뿐입니다. 모든 제품은 소형화되고 내장되며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더욱 서로만을 바라보게 될 뿐입니다. 정말로 인간중심의 사회인 2차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떤 제품이든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시대는 곧 올 것이며 특히나 제품의 외형으로 인해 얻는 만족의 역 치 값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것입니다. 즉 물질에서부터 얻는 행복은 무뎌질 것이며 사랑과 우정, 성취욕과 같은 무형에서 얻는 가치가 중요시될 것입니다. 모두가 가질 수 있다면 더 이상 심미성은 무의미해집니다. 모든 제품은 축소되고 숨겨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공공디자인에 집중해야 합니다. 결국 인류와 함께 오랜 세대동안 함께 남을 디자인은 생활에 필요한 공공디자인 뿐입니다. Easy jug : 하단에 경사를 주어 물 따르는 힘을 줄인 jug 구조 개발. 세척 후 적재 후에도 물이 신속히 빠질 수 있도록 하는 토출구의 기능 제공 사족의 디자인은 곧 사라집니다. 무인양품에서 말하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디자인 철학이 지금 인류에게 적용되고 있는 시점입니다. 개개인의 제 품은 더 이상은 중요치 않습니다. 사람이 중요해지면 중요해질수록 우리의 생활과 피부에 닿는 공공디자인이 더욱 필요해집니다. 더 이상 공공디자인은 국가와 지자체만의 의무가 아닙니다. 기업과 시민의 공공디자인에 대한 인식 또한 성숙되어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어여쁜 디자인만을 찾는다면 머지않아 옛날디자인을 하는 디자인 후진국 국가로 전락하고 말것입니다. 다가오는 새로운 가치와 공존할 수 있는 표준화된 공공디자인을 구축해야 합니다. 미래에 물질은 더 이상 인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역사박물관에 보관될 형형색색의 제품을 만들지, 인류와 함께 계속 사용되어질 제품을 만들지는 현세대의 우리들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12월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