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이미지
SNS 이미지
SNS 이미지
SNS 이미지
SNS 이미지
SNS 이미지
배너 이미지
배너 이미지
배너 이미지
배너 이미지
For beautiful and classy life.

임남진(任男珍) Lim, Nam-jin

상식이 통하지 않고 전복되는 부조리한 현실 세계... 현실 세계의 논리와 힘!

이미지 오월감모여재도-義 141x71 한지채색 2009 우리는 현실을 통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에서 불합리한 것을 본다. ​ 현실의 부조리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며 그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과 ‘제정신’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 현실의 삶을 대상으로 인간 삶의 가치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 혼돈과 갈등으로 뒤섞인 삶에 얽힌 희비 속에서 우리 시대의 따뜻하고 건강한 미감을 되찾고 싶다. 임남진 1970 광주출생 1995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 작품소장 광주시립미술관 (주)골프존본사 (주)중흥건설, 나주혁신도시 직지사성보박물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 개인전 ​2019 애연(僾然)_운우지정(雲雨之情) (예술공간 집,광주) 2018 ‘Still Life_Bleu’(양림 미술관, 광주) ‘스틸 라이프’展 (G&J광주전남갤러리, 서울)외 다수 이미지 삼불원-우리들의 정원 110x190 한지채색 2017 이미지 풍속도2 220x240 한지채색 2006 예술의 거리 - ‘뒷방’ ​ 철없어야 예술 한다는 선배들의 말에 철없던 20代 때부터 지금까지 드나드는 이곳은 광주 금남로 뒤편 예술의 거리 ‘영흥 식당’이다. ​ 해마다 ‘오월’이면, ‘희망과 약속의 힘’을, ‘사랑과 우정과 믿음’을 보여주고 말없이 묵묵히‘길’을 밝혀주던 “사람들의 공간”이다. ​ 스스로 져야 할 각자의 ‘짐’들을 안고 막걸리와 소주 몇 잔에 ‘꿈 꿀 자유’를 허락했던 곳이다. ​ 마치 공간과 시간이 폐쇄된 세계처럼 밤낮은 물론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유일한 공간이 아닌가 싶다. ​ 그 주변의 막걸리 애호가들과 그림 그리는 화가들, 사회 활동가들, 잡다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 희비(喜悲)가 교차하고 술의 힘을 빌려 새로운 상황에 대한 불안과 살아야 할 이유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헤매고, 헤매던 사람들에게 ​ ‘불멸의 파라다이스’처럼 육체적, 정신적 피난처로 모두가 ‘하나’가 되었던 곳이 영흥식당이다. ​ 지금도 가끔 이곳을 찾는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머물고 싶거나 잊혀진 사람들과 희미해져 가는 꿈들을 기억하며 불멸의 ‘희망’을 꿈꾼다. - 임남진의 작업노트 중에서 이미지 든자리 난자리, 87x108cm, 한지에 채색, 2019 이미지 Holidays 100x100 한지채색 2018 상식이 통하지 않고 전복되는 부조리한 현실 세계... 현실 세계의 논리와 힘! ​ 권위라는 것. 긍정의 외피를 쓴 여러 현상(진실, 정의, 민주, 신뢰, 희망…)으로 작동하는 말들은 나에게 설득력이 없다. ​ 말로는 민주주의, 불의에 대한 저항을 외치면서 실제 삶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고 바르지 않은 모순들을 보면서 번지르르한 말들이 실은 가상이자 허상의 세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이렇듯 나에게 그림은 허황된 것이 아니라 현실과 삶을 해석하는 다른 버전의 설명이다. ​ 현실을 묘사하고 보여주는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과 삶을 해석하는 데 있어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미지 낮술 35x44 쪽물염색비단채색 2009 지난날 나의 작업은 어둡고 관조적이며 비관적이었다. 내 안에 있는 어두운 감정과 싸우기 위해서 토해내듯 작업을 하였다. ​ 썩은 세상에 일조하는 일 말고 살아갈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서 뭔가 다른 표현방식으로 그려야 한다. ​ 돈이 최고의 잣대가 된 기성 사회에 대한 나의 저항이자 복수이다. ​ 각박하고 잔인한 현대사회 안에서 우리가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 혹은 정신성을 담아내는 일이다. ​ 이미지 달 속의 달 100x100 한지채색 2017

이이남 LEE LEE NAM 뉴미디어 아티스트 - 2편

살아있는 그림 (les peintures vivantes)

살아있는 그림(les peintures vivantes) ​ 광주 토박이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그의 작품은 여타의 미디어 아티스트 작품과 달리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 와이? 왜 그의 미디어 아트가 대중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일까? 왜냐하면 그는 대중의 코드와 동양·서양의 코드를 읽어내는 ‘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미디어아트는 현실과 가상인 두 현실이 공존한다. ​ "그러나 나는 시뮬라크르(가상) 작품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고자 한다." ​ 왜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는가? 에 대한 물음은 ‘진리의 사유’에 대한 지평을 열었다. ​ 진리를 깨우칠 때 우리는 두려움·욕망·불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 “내가 발견한 진리는 예술작품으로 변형된다. ​ 나의 작품은 감성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서 내게 다가온 숭고함을 구현하고 있다." 류병학(미술평론가) 이미지 다시 태어나는 빛 - 2019 (Reborn Light - 2019) 12min 30sec Beam Project 2019 ​ 이이남 2019 세계수영선수권 대회 개회식 피날레 미디어 아트 감독 ISEA 국제전자예술심포지움 개막식 미디어 감독 ​ 개인전 (52회) 2019 ‘다시 태어나는 빛 – 뿌리들의 일어섬’ IESA대학, 파리, 프랑스 ‘이이남, 빛의 조우’ 서울식물원, 서울, 한국 ​ 주요전시 2019 ‘Flim & Arts’, 뿌리들의 일어섬 전, 스타시네마, 테이트 모던, 런던. Artificial Intelligence ‘Hyper-Intelligence’ Mr. Media Lab 콜라보전 서울, 한국 ​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의 이미지 장치’ 전, 국립현대 미술관, 한국 ​ 작품소장처 ​토마 파운데이션(미국), 지브라스트라트 미술관(벨기에), UN본부(미국), UN사무국(미국), 아시아 미술관(샌프란시스코), 수닝예술관(중국), 예일대학교(미국),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워싱턴), 후진타오 영부인(중국),국립중앙도서관(서울,한국), 인천국제공항(인천,한국), 리움미술관(서울, 한국), 한미미술관(서울,한국), 컬렉션 솔로(마드리드,스페인), 아랍에미리트 전 자이드 대통령 영부인(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 여기서 말하는 대중의 코드와 동양/서양의 코드란 대중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동〮서양의 명화를 차용한다는 것에 국한 되기보다 그 동〮서양의 명화에 대한 현실인식을 관통한 탁월한 분석력을 뜻한다. 필자는 이 점에 대해서 구체적인 작품을 사례로 들어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필자가 그의 일명 ‘디지털-명화’를 언급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디지털-명화가 태동하게 된 초기 작업을 살펴보아야만 할 것 같다. ​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은 광주 조선대와 동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그는 졸업 후 조각 작품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과 전국조각가협회 특별상도 받았다. 그런 조각가 이이남을 미디어 아티스트로 전이시킨 ‘사건’은 무엇일까? ​ 그가 1997년 순천대 애니메이션 학과에서 미술해부학 강의를 맡았을 때, 학생들이 찰흙으로 스톱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는 것을 보고 ‘움직이는 조각’에 삘이 꽂힌다. 그는 곧 17인치짜리 작은 모니터를 구입해, 그의 전공인 조각을 살려 클레이스톱 애니메이션, 즉 ‘움직이는 조각’ 영상을 만든다. ​ 1998년 제작된 이이남의 클레이아트 애니메이션 <4학년>은 플라스틱에 담겨있던 찰흙 덩어리로 당시 순천대 애니메이션학과 4학년 학생들을 모델로 삼아 제작된 작업이다. 찰흙 덩어리로 만들어진 남학생은 다시 찰흙 덩어리로 돌아가 곧 여학생으로 변신한다. 물론 이이남은 찰흙 덩어리로 학생들 이외에 다양한 동물들(개, 고양이, 호랑이)도 만들었다. ​ 특히 호랑이가 자신의 꼬리를 잘라 먹는 장면을 보면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찰흙 스톱 애니메이션은 이이남의 작업에 큰 변화를 주었다. 이를테면 이이남은 찰흙 스톱 애니메이션을 통해(이전의 ‘무거운’ 조각에서 해방되어) ‘가볍게’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 여기서 말하는 ‘가벼움’은 우리 상식을 뒤집는 ‘유머감각’을 뜻한다. 그 ‘가벼움’은 그의 디지털-명화에서 대중적 호응을 얻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1990년대 말 다양한 클레이아트 애니메이션을 작업했던 이이남은 2000년대 접어들면서 그래픽 애니메이션 작업에 몰두한다. ​ 그는 2002년 SK텔레콤 애니메이션 공모전에 <자살>을 출품하여 대상을 받는다. <자살>은 선비와 물고기의 자살법을 그린 것인데, 선비가 돌에 매달려 물속으로 들어가는 반면, 물고기는 풍선에 매달려 하늘로 올라간다. 너무나도 참을 수 없는 자살의 가벼움이 아닌가? <선악과>는 사과를 사이에 두고 하와와 뱀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던 ‘선악과’와 달리 이이남의<선악과>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하와는 사과가 아닌 뱀을 잡아 먹으면서 관객에게 윙크하기 때문이다. <복수>는 나무를 자르는 남자에 대한 나무의 복수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나무를 자르던 남자가 나무의 그늘에서 누워 잠잔다. 그런데 나무는 자신의 그림자를 이용하여 나무를 자른 남자에게 복수한다. ​ 은 사격표지판에 대한 엉뚱한 발상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총알에 맞은 표지판들은 모두 울상이다. 그런데 총알을 맞지 않은 표지판은 낄낄거린다. 왜냐하면 그 웃는 표지판은 날라오는 총알들을 모두 피했기 때문이다. 총알을 피할 수 없는 표지판이 총알을 피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발상은 이후 ‘그림의 떡’으로 알려진 명화를 움직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하게 한다. 이미지 박연폭포(Parkyeon Waterfall) 5 x LED TV 2017 이이남은 2004년에 오브제에 모니터를 접목시킨 다양한 작품을 제작한다. <밥 먹고 잠자라>는 옛 교실 의자 위에 놓인 도시락의 뚫린 구멍으로 하늘의 구름이 떠가는 영상이 나오는 작품이다. <호주머니 속 풍경>은 옷걸이에 걸린 자킷 호주머니 속에 모니터를 장착해 마치 호주머니 속에 동전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그리고 <생명으로부터>는 고목에 모니터를 장착해 초록 꽃잎들이 흐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브제와 모니터의 접목 작업은 2005년까지 이어진다. 이이남의 <아이 러브 골프>는 골프장 영상과 (홀컵의 위치를 알려주는) 실제 깃발로 접목된 일종의 영상설치작업이다. ​ 전시장 벽면에 골프를 치고 있는 골프장 영상이 투사된다. 그리고 그 골프장 영상 앞에 실제 깃발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라이트로 인해 그 깃발의 그림자가 영상에 겹쳐진다. 따라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마치 그 그림자-깃발을 향해 스윙하는 것으로 착각을 일으킨다. ​ 이이남은 2005년 <실상과 허상>시리즈 작품을 제작한다. 이이남은 ‘에스파냐의 카라바조’로 불리는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an)의 <정물화(Bodegon)>(1636)에서 가운데 화병 2개 대신에 장미꽃과 유리잔을 교체시켜 놓았다. ​ 그런데 유리잔을 보면 영상이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그 영상은 어느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이미지 박연폭포(Parkyeon Waterfall) 5 x LED TV 2017 ​ 그렇다면 이이남의 <실상과 허상>을 보고 있는 관객은 유리잔 속에 담겨있는 관객과 다르지 않단 말인가? 그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관객은 작품 앞에서 단 5초도 서있지 않는다. 관객들은 전시장의 작품을 마치 지나가면서 보듯이 지나친다. ​ 그렇다면 이이남의 <실상과 허상>은 마치 금욕적인 수르바란의 정물화처럼 관객에게 조용히 자신을 성찰하라고 속삭이는 것은 아닐까? ​ 전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이이남은 ​ “제 작품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때 가슴이 쓰립니다” ​ 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알 수 없는 작품 앞에서 시간을 할애할 이유도 없는 셈이다. 우리가 축구경기를 즐기려면 최소한 축구 룰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관객이 미술 작품을 즐기고자 한다면 미술의 룰(미술사의 문맥)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일까? ​ 미술사학자 다니엘 아라스가 “관객이 한 그림 앞에 최소한 5분만 서있었으면 좋겠다” ​ 고 원했다. 그러나 관객은 작품 앞에서 5분은 고사하고 5초도 서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이남은 관객이 자신의 작품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니엘 아라스가 기대한 5분 동안 서있도록 하기위해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지나가는 관객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이이남은 관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 위해 우리들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디지털 기술에 주목한다. ​ 이이남의 ‘명화는 살아있다!’ ​ 이이남은 2004년 이이남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명화의 재매개(remediation) 작품을 제작한다. <김홍도, 신-묵죽도>가 그것이다. 김홍도의 <묵죽도>는 왼쪽 대각선 방향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를 그린 것이다. 김홍도는 대나무 줄기를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쳤다. 조선시대 대부분 ‘묵죽도’가 오른쪽으로 쳤다는 점을 참조한다면, 김홍도의 <묵죽도>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조민환은 어디선가 김정희의 난초 화법을 빌려 대나무를 오른쪽으로 치는 것보다 왼쪽으로 치는 것이 몇 배 어려운 기술이라고 말하면서 왼쪽으로 순식간에 처내려간 김홍도의 <묵죽도>를 놀라운 기교를 과시한 것으로 보았다. ​ 따라서 단원에게 대나무는 흔히 말하는 ‘군자’의 상징으로서의 고결한 대나무가 아니라 필치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소재일 뿐이라고 간주된다. 그런데 대나무 줄기의 필치를 보면 밑에서 위로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의 농담은 줄기 하단보다 상단이 진하다. 그렇다면 대나무는 바람에 대응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 자, 이제 이이남의 <신-묵죽도>를 보자. 오잉? 이이남의 <신-묵죽도> 대나무는 마치 ‘절개’를 비웃듯 가볍게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신기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당연히 움직일 수 없다고 확신한 그림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객을 더 놀라게 하는 것은 흔들리는 대나무 위로 눈이 내리는 것이다. 눈은 대나무 위에 서서히 쌓인다. 그리고 대나무 위의 쌓인 눈은 차츰 녹아 원래의 모습으로 컴백하는 것이 아닌가? ​ 이이남의 <신-묵죽도>는 김홍도의 <묵죽도>를 디지털 아트로 재매개한 것이다. 여기서 재매개는 기존 미디어(회화)를 디지털로 미디어화 시킨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이이남의 디지털 아트는 회화(명화)를 디지털로 재구현(Refashion)시킨 것이라고 말이다. 마치 절개를 지키듯 움직이지 않는 김홍도의 <묵죽도>는 디지털을 통해 마치 절개를 버린 듯 바람에 흔들린다. 이이남의 <신-묵죽도>를 보는 관객은 사색에 잠기기는커녕 오히려 놀란다. ​ 그렇다! 관객은 이이남의 <신-묵죽도> 앞에서 4분을 즐긴다. ​ 이이남의 재매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6년이다. 이이남의 대표작들 중 하나인 <8폭 병풍>도 2006년에 제작된다. 잔잔한 가야금 소리와 함께 소치 허련의 <홍매도>의 텍스트(제발)이 바람에 날리듯 의제 허백련의 <묵죽도> 화폭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나비를 전문적으로 그렸다고 하여 ‘남나비’로 불렸던 남계우의 <화접도>에 그려진 나비가 갑자기 날개 짓을 하더니 의제의 <산수화> 화폭으로 사뿐사뿐 날아간다. 도대체 ‘그림의 떡’인 나비가 어떻게 날개 짓을 하면서 날아다닐 수 있단 말인가? 왜냐하면 8폭 병풍의 화폭이 화선지가 아니라 LCD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기 스위치를 켜면 병풍에서 가야금 소리가 나오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꽃잎과 나뭇가지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일반 관객은 21세기 미디어 병풍 앞에서 신기한 표정으로 런닝타임 5분 30초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즐긴다. ​ 이미지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Gogh-The Starry Night, Arles 75 inch LED TV 2019)_17min ​ 하지만 박물관이 모든 유물들을 예술작품으로 전이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점에 앙드레 말로는 주목한다. 박물관은 박물관의 물리적 한계(크기) 때문이 아니라 건축물과 한 몸인 벽화나 모자이크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박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유물들은 박물관으로 운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 각국에 있는 모든 박물관을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세계 각지에 있는 모든 작품을 볼 수 없다. ​ 이미지 다시 태어나는 빛-2019 (Reborn Light-2019) 12min 30sec Beam Project 2019 앙드레 말로 왈, ​ “오늘날 대학생은 대부분 컬러 사진 복제품인 훌륭한 작품들을 가질 수 있다. 그는 또 사진 복제품을 통해 인류의 많은 그림들, 오래된 고대의 예술들, 먼 옛날 콜럼버스 발견 이전의 인도와 중국의 조각 작품들, 일부 비잔틴 미술품, 로마의 벽화들, 원시적이고 대중적인 예술들을 만날 수 있다.” ​ 앙드레 말로는 사진 복제품을 통해 세계 각지에 있는 모든 작품을 볼 수 있음을 간파한다. 따라서 그에게 도록은 일종의 ‘벽 없는 박물관(Museum without Walls)’이되는 셈이다. 앙드레 말로는 ‘벽 없는 미술관’을 ‘상상의 박물관’으로 명명했다. 왜냐하면 상상의 박물관은 죽은 유물에 생명력(상상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숀 레비 감독의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을 영화로 재매개한 것이 아닌가? ​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이이남의 디지털-명화는 명화 복제품을 통해 명화를 디지털 아트로 재매개 한 것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이남의 디지털-명화는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을 디지털 아트로 재매개한 것이 아닌가? 숀 레비 감독의 <박물관이 살아있다!>와 마찬가지로 이이남의 디지털-명화 역시 디지털 기술로 상상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 이이남의 디지털-명화는 ‘명화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이이남의 탁월한 분석력은 동양과 서양의 명화 선정에도 나타난다. 이이남의 <모네와 소치의 대화>가 그것이다. ​ 이이남은 모네의 <해돋이, 인상>과 소치의 <추경산수화>를 옆으로 나란히 배치해 놓았다. 모네의 <해돋이, 인상>에서 해와 배가 소치의 <추경산수화>로 서서히 흘러가고, 소치의 <추경산수화> 전경에 있는 배와 섬이 모네의 <해돋이, 인상>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 모네의 <해돋이, 인상>해가 소치의 <추경산수화> 산 뒤로 은폐되자 모두 밤으로 바뀐다. 밤이되자 건물들에 불빛이 밝혀진다. 흥미롭게도 소치의 <추경산수화> 전경에 있는 섬의 집에도 불빛이 밝혀진다. 소치의 <추경산수화>에 쓰여진 텍스트(화제)가 마치 바람에 날리듯 모네의 <해돋이, 인상>으로 날라간다. ​ 이이남은 <모네와 소치의 대화>는 서로 다른 공간·시간에 제작된 모네와 소치의 그림들을 마치 서로 선물을 주고받듯이 디지털로 ‘이동’시켜 자연스럽게 교감한다. 마르셀 뒤샹 이후 급진적인 작품을 하고자 하는 작가라면 ‘빌려쓰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이남은 명화를 일종의 ‘레디-메이드’로 사용한다. 물론 그는 명화를 그대로 제시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명화를 그대로 제시한 것으로 만족했다면, 그는 뒤샹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명화를 ‘되돌려-먹이기’ 한다, 어떻게?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가 그것이다. ​ 차도살인지계? 유하는「武歷 18년에서 20년 사이―무림일기1」 밑에 ‘차도살인지계’를 “남의 칼로 적을 침”이라고 언급해 놓았다. 그렇다면 이이남의 <신-금강전도>는 이이남 자신의 손이 아니라 ‘남의 손을 빌려 상대방을 치는 작품’이란 말인가? 남의 손을 빌린다? ‘남의 손 빌려쓰기’의 최초 사례는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될 것이다. ​ 하지만 뒤샹의 <샘>은 남의 손을 빌려 제작한 작품이지만 ‘적’을 치는 작품은 아니다. ‘적’을 치는 작품? 혹 그것인 기존 작품에 똥침을 놓는 작품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그것을 ‘패러디(parody)’로 부른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패러디는 미술작품에서부터 시나 문학, 그리고 음악이나 영화 또한 광고에 이르기까지 주로 명작을 모방(인용 혹은 차용)하여 그것을 풍자 또는 조롱하는 작품으로 이해하곤 한다. ​ -중략- ​ 이이남이 차용한 명화들은 대부분 자연을 그린 그림들이다. 왜일까? 왜 그는 자연을 그린 명화를 즐겨 차용한 것일까? ​ 그는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대학시절까지 집안의 농사일을 도왔다. 물론 그는 당시 “농삿일이 죽도록 싫었다”고 한다. 그는 “왜 시골에서 태어나서 이런 고생을 할까”를 입에 달고 살았단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의 “시골 경험이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 그는 특히 의제 허백련의 그림을 적잖이 차용했는데, 허백련 그림에 그려진 풍경이 이이남의 어린 시절 고향의 풍경이다. 따라서 그는 자연을 그린 그림들을 자연스럽게 즐겨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들이 온화하고 서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 혹자는 이이남의 작품들을 보고 ‘착하고’ ‘예쁘고’ ‘범생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비아냥에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는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는 대중에게 ‘아트’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무거움’을 ‘어깨’에 짊어지게 하기보다 오히려 웃음(가벼움)을 선사하는 ‘행복전도사’를 자처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가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닐까? ​ 그런 점에서 이이남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디지털 팝 아티스트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디지털 팝 아티스트인 이이남은 좀 더 대중에게 가깝게 접근하기 위해 새로운 ‘유통문화’를 만들고 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저렴한 가격으로 작품을 구입해서 벌 수 있는 유통구조 말이다. ​ 앙드레 말로는 “상상의 미술관이 자신의 변모를 계속 추구한다”고 진술했다. 백남준은 미술관을 방문했던 관객들이 TV 앞에 모여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차렸다. 그는 1984년 서울과 뉴욕, 파리, 베를린의 TV를 통해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을 방영했다. 그는 미래의 미술관을 대중매체로 보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백남준은 그것을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 제2의 백남준으로 불리는 이이남은 서두에서 중얼거렸듯이 스마트 TV뿐만 아니라 모바일과 아이패드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물론 당신은 이이남의 디지털-명화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여 소장할 수도 있다. 아이폰 어플에 있는 10작품은 단 1.99달러에 구입할 수 있고, 아이패드 어플에서는 12점의 작품을 3.99달러에 소장할 수 있다. 만약 아날로그 아트가 희소성을 지향했다면, 디지털 아트는 대중성 확보가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이미지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Gogh-The Starry Night, Arles 75 inch LED TV 2019)_17min 현대미술연구소 김옥렬 대표 Kim, Ok-real 빛의 재탄생, ‘세례 받는 TV’ ​ 이이남의 전시의 주제는 <빛이 되다 Becomes Light>이다. 이번 전시<빛이 되다> 중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빛의 재생 Reborn Light’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작가가 시도하고자 하는 ‘빛’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가 레일 위를 달리는 것에 비유한다. 그리고 그러한 불안을 해소하고 허상에 갇혀 방황하는 인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본다. ​ 그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의 사유방식은 ‘세례 받는 TV’로 인간의 은유 혹은 환유를 보여준다. 작가는 그것은 TV모니터가 물속으로 들어가 잠기는 것을 죽음으로 다시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을 부활로 설정하고 있다. ​ 작가의 이러한 시도에는 ‘TV는 인간을 닮았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 또한 작가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의 구분처럼, TV를 콘텐츠와 프레임의 관계로도 해석한다. 이처럼 작가는 그간에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자연과 도시, 진품성과 복제성 등 미디어 콘텐츠가 가진 기술로 시〮공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리고 이번 전시작은 날개짓을 하는 비둘기의 영상이 담긴 모니터를 물속으로 잠기게 하고, 다시 그것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설치물을 통해 ‘세례 받는 TV’를 탄생시켰다. ​ 그렇다면 세례 받기 전과 세례를 받고 난 TV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 ​ 이점은 애초의 의도를 떠나서 소통의 과정과 결과에서 다양한 시각의 차이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 ‘죽음을 넘어 빛’이 되는 TV에 대한 은유는 그 자신의 표현에서처럼, ‘인간의 나약함과 사회적 시스템에서 받게 되는 불안, 그러한 불안에 직면하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일 것이다. ​ 그것은 마치 견고한 시스템 속에서 억압을 뚫어내고자 하는 잠재된 욕망처럼, 무의식에 내재된 충동 역시 사회적 효용성을 떠나 규칙의 위반을 통해 희열을 추구한다. 이러한 추구는 라캉(J. Lacan)이 말한 일종의 과잉욕망이 죽음을 향한 욕망이듯 충동 역시 현실너머의 실재와 관련되고 있음이다. ​ ‘세례 받는 TV’는 금지된 욕망과 충동의 대리만족, 그것의 전략인 승화(sublimation)의 허구성으로 살아 있으나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새로운 탄생을 위해 물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맞이한다. ‘TV모니터’가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죽음으로 상징하는 이유다. 이를테면 부활에는 죽음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기의 힘에 전적으로 몸을 맡긴 TV는 죽음을 향해 담담하게 마주하며 하강한다. 이는 상흔(trauma)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용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 순간이야 말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고통과 직면하는 역설의 순간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 저항과 전복이 내제된 라캉의 ‘희열’(Jouissance)에는 결핍의 충족을 위해 전복을 시도하는 과잉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만족 보다는 고통을 수반한다는 과잉욕망은 충동에 사로잡혀 금기를 넘어선다. 그 너머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 죽음과의 대면을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해 주어진 체계 안에서 안주할 수 있는 대체물에 상상이 투영된다. ​ 이렇게 볼 때, 인간의 모습이 투영된 TV, 어쩌면 인간 그 자체인 TV는 오늘날 순종과 포기를 통해 소외와 박탈을 경험해야만 하는 상실감을 화려한 ‘빛’으로 삶을 담아내는 것이리라. 삶을 둘러싸고 있는 허상들, 그 속에서 우리는 그 어떤 선택을 하던지 간에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이동하는 과정, 그 과정이 왜곡과 변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이 기도 하다. ​ 이러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작가가 인식하고 있는 ‘빛’의 의미는 마치 거울 없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타인 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앞서 얘기한 ‘빛’의 의미란, 타인 속에서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나, 그것이 바로 ‘세례 받는 TV’에 투영된 생명의 빛일 것이다. 이렇게 ‘빛’의 부활은 죽음을 넘어야 비로소 빛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김옥렬 Kim, Ok-real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일시: 2020년 02월 06일~ 4월 23일 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과 (주)씨씨오씨(대표 강욱)은 2020년 2월 06일(목)부터 4월 23일(목)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9년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자 76명의 작품 300여점 등 어른들을 위한 일러스트 원화 작품들과 그림책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1967년부터 시작하여 2019년 53회째를 맞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전시로 매년 세계 80여 개국에서 3천여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이 전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최고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을 통해 최종 70여 명의 작가들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하고 작품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선정된 작품들의 전시는 실험적이고 감각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 일러스트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전시로도 유명하다. ​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등용문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볼로냐아동도서전BCBF’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권위 있는 전문가들에게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재능을 평가받을 수 있는 장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아동도서를 넘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컨텐츠로 성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세계 각지의 젊고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성공과 성장의 발판을 제공하고 있으며, 명실 공히 세계 최고의 일러스트 전시로 인정받고 있다. ​ 알탄Altan, 무나리Munari, 이노첸티Innocenti, 퀀틴 블레이크Quentin Blake, 루자티Luzzati, 숀탠Shaun Tan 까지 오랜 시간 수많은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엄격한 심사를 통해서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는 이야기와 문화, 비전을 공유하는 특별한 장소가 되고 있다. 지금도 미래를 이어갈 수많은 차세대 아티스트들이 이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CHITOSE_CHITOSE ⓒ Noemi_Vola 다양한 볼거리를 만족시키는 풍성한 전시 컨텐츠 ​ 1) 메인전시: 올해의 작가 76명의 일러스트 원화 300여점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의 최종 선정 작가 76명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의 전시 ​ 2) Vendi Vernić 특별전: 2018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우승자<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SM재단과 함께 심사를 통해 매년 1명에게 최고상 2018 International Award for Illustration–BC BF/Fundación SM을 수여하는데 선정된 작가에게는 상금과 출판 그리고 다음해 특별전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8>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작가는 벤디 베르니치Vendi Vernić(Croatia)으로 그녀의 책과 원화작품을 만날 수 있는 특별전시도 만나볼 수 있다. ​ ⓒ Jan_Bajtlik 3) Masha Titova 특별전: <볼로냐아동도서전2019> 비주얼 아이덴티티 선정작가 ​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는 매년 신진 일러스트 작가 한 명을 선정해 볼로냐아동도서전(BCBF)의 아이덴티티 이미지를 제작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이미지들은 BCBF의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전시장 인테리어와 포스터 등 홍보물을 위한 메인 이미지를 창작하게 되는데 그 원화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 4) 어린이책의 노벨상 ‘라가치상’ ​ ‘어린이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볼로냐아동도서전의 ‘라가치상’. 2019년 수상도서 16권을 전시한다. 창작성, 교육적 가치, 예술적인 디자인을 기준으로 픽션, 논픽션, 뉴호라이즌, 오페라 프리마 등 4개 분야 별로 대상 1권과 우수상(mention) 2~3권을 선정해 수여한다. ⓒ MARIKA_MAIJALA 5) 보림출판사, 책을 품은 벽 ​ 보림출판사는 그림책 전문 출판사로 2017년 ‘볼로냐아동도서전 BCBF_최고의 출판사상’을 수상했다. 도서 편집 혁신분야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출판사들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한국 출판사로는 최초의 수상이라 그 의미가 더 특별하다. 1976년 창업 이래 40여 년간 새로운 그림책을 만들어 오고 있는 보림출판사의 세계적인 그림책들을 직접 만나보자. ⓒ Liuna_Virardi ​ 6) 작은 볼로냐를 만나다! ​ ‘빨간 도시’, ‘뚱보들의 도시’, ‘현자들의 도시’, ‘포르티코의 도시’, ‘부자 도시’ 등 볼로냐처럼 많은 별명을 가진 도시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매력을 지닌 도시라는 의미인데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에서는 전시와 더불어 젊은 층을 위해 전시장 속에서 숨은 그림을 찾듯 다양한 요소를 찾는 미션도 함께 진행된다. ⓒ Olga Shtonda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세계를 만나다. ​ 이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이번 전시는 많은 젊은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모두가 만나고 싶은 전시로 자리 잡았다. 2019년 4월 볼로냐 전시를 시작으로 일본의 5개 도시와 한국의 서울을 거쳐 중국까지 월드투어로 전시될 예정이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한 예이기도 하다. ​ ⓒ Antoine_Corbineau 과거 이 전시가 한국에서 개최된 이력은 있으나, 이 처럼 수십 년을 내다보는 월드투어에 정식으로 포함되 서울에서 전시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2020년 2월 6일부터 4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위 전시를 통해, 세계 권위있는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2019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76명의 순수하고 창의적인 작품들을 만나보시기 바란다. ​ ⓒ KIM_SEULKEE(김슬기)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 귀국전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서의 현대성(現代性)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귀국전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서의 현대성(現代性) ​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은 1월 18일(토)부터 3월 15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을 개최합니다. 이번 <추사귀국전>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학예(學藝)의 특질인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現代性)’을 주제로,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 영남대박물관, 김종영미술관, 수원광교박물관, 이천시립월전 미술관, 선문대박물관, 일암관, 청관재, 일중문화재단, 개인 등 30여 곳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이 전시를 통해 현판, 대련, 두루마리, 서첩, 병풍 등 추사의 일생에 걸친 대표작은 물론, 추사의 글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서화미술 작가의 작품 120여 점을 볼 수 있습니다. ​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은 과천시, 예산군, 제주 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와 공동으로 2020년 1월 18일(토)부터 3월 15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에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이하 <추사귀국전>) 전시를 개최한다. ​ 이 전시는 2019년 6월 18일부터 8월 23일까지 개최된 동명(同名)의 전시를 한국에서 다시 개최하는 것이며, 예술의전당에서 전시를 마치면 제주, 예산, 과천에서 1년 동안 순회 개최된다. ​ 이 전시는 <같고도 다른(사이불사 似與不似) : 치바이스와 대화(대화제백석 對話齊白石)>(2018.12.05 ~ 2019.2.17 /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 이은 두 번째 한(韓)·중(中) 국가예술교류 프로젝트다. ​ 지난 중국 전시에서는 30여만 명이 관람하는 등 중국 대중과 학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파장은 국내 공공기관의 호응으로 이어져 지난해 9월 예술의전당, 과천시(김종천 시장), 예산군(황선봉군수),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고길림 본부장)는 ‘글로벌 추사 콘텐츠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 <추사귀국전>은 그 양해각서에 따른 첫 번째 결실이라 할 수 있다. ​ 2020년도 한해를 서울-제주-예산-과천으로 전국순회하는 <추사귀국전> ​ 이번 <추사귀국전>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학예(學藝)의 특질인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現代性)’을 주제로,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 영남대박물관, 김종영미술관, 수원광교박물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선문대박물관, 일암관, 청관재, 일중문화재단, 개인 등 30여 곳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다. ​ 이 전시를 통해 현판, 대련, 두루마리, 서첩, 병풍 등 추사의 일생에 걸친 대표작은 물론, 추사의 글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서화미술 작가의 작품 120여 점을 볼 수 있다. ​ <추사귀국전>을 개최하는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은 ​ “21세기 중국에서 확인된 19세기 동아시아 세계인(世界人) 추사 선생의 학예성과를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대중들이 새롭게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는 다짐을 밝혔다. ​ 한편 2월 13일(목)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추사국제학술포럼이 예술의전당 주관으로 개최된다. 이 행사에서는 이동국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큐레이터가 모더레이터로 나선 가운데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실장의 기조 강연을 시작으로 중국 측에서는 예신(叶欣), 푸치앙(傅强), 우구오바오(吴国宝)가 발표를 할 예정이다. 한국 측에서는 이완우, 허홍범, 정병규가 추사학예의 세계성과 현대성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 추사학예의 세계성과 현대성을 확인한 지난 중국 전시 ​ 그간 우리는 추사를 한국 안에서만 최고라고 해왔다. 이번 전시를 기획해나가는 과정에서 솔직히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사를 중국에서 알아줄까’하고 걱정을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기우였다. 한국보다 중국에서 100여 년의 간극을 일시에 허물며 추사가 살아 돌아와서 중국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 매일 5천여 명을 헤아리는 관람객들이 추사를 만났다. 문화예술계 지도자와 전문연구자, 서법가, 정치지도자와 관료는 물론 일반관람객 모두가 추사를 더 정확하고 진지하게 감상하고 토론하였다. 이런 광경은 좀처럼 한국의 서예 박물관 전시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 또 한국에서 추사학예를 ‘기괴고졸(奇怪古拙)’한 조형 미학을 특징으로 평가하였다. 하지만 괴(怪)의 본질인 현대성(現代性)을 간파해내기보다 추사체(秋史體)의 성취를 모화주의(慕華主意)의 산물이나 개인의 천재성이 강조된 나머지 신화처럼 여기기도 했다. 진위논쟁에 빠져 정작 추사체(秋史體)의 미학(美學)을 세계사적인 관점과 현대적인 미로 연결시켜 바라보지 못하였다. ​ <추사중국전>에서 추사의 <계산무진谿山無盡>을 본 우웨이산吳爲山 중국국가미술관장은 “글씨를 넘어서서 그림이다. 허실(虛實)의 미학을 극대화하면서 심미적으로나 조형적으로 현대적이고 추상적이다.” 라고 평가했다. ​ ‘아시아 문명과의 대화’ 일환으로 열린 <추사중국전>국제학술포럼에서 중국국가미술관 장칭[張晴] 부관장은 “추사는 글씨의 성인(서성, 書聖)이다. 이번 전시가 실증하듯 ‘경전(經典)’을 남김으로써 역사에 기여하고 있다. 왜 이제야 우리는 서성(書聖) 추사를 알게 되었는가.” 라고 만시지탄(晩時之歎)을 하였다. ​ 북방민족인 김정희는 성인(聖人)이다. 경전(經典) 창출을 통해 서법역사(書法歷史) 발전에 심대한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서법(書法)의 모국(母國)이라하는 중국으로부터 추사체(秋史體)가 비롯되었지만 추사는 당시 서법을 혁신(革新)하였다. 하지만 추사의 한계도 분명한데, 갑골문 금문의 연구실천은 오늘날 우리작가들의 몫이다. 우구오바오 吳國寶 중국미술관 소장작품부 서법분야전문 학예사/서예가 <추사중국전>의 가장 큰 성과는 중국 관람객과 대화함으로써 ‘추사는 세계이고 현대’라는 생각을 실증하였다는 점이다. 이와 상응하여 이번 <추사귀국전>은 오늘날 한국 관람객들이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추사 서예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자 한다. 19세기 동아시아의 급변하는 시공간의 지평에서 추사 글씨의 세계성과 현대적 미를 이번 전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 19세기 동아시아 서(書)의 패러다임을 뒤바꾼 추사체(秋史體) ​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 ​ 청나라 금석고증학이 19세기 발흥하여 동아시아 서(書)의 역사학은 첩학(帖學)에서 비학(碑學)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러한 때 추사와 청나라 문인인 옹방강, 완원의 한·중간의 교류는 학문과 예술의 일치를 뜻하는 학예일치(學藝一致)와 비학(碑學)와 첩학(帖學)의 융합을 뜻하는 비첩혼융(帖混融)의 결정체인 ‘추사체(秋史體)’를 창출할 수 있게 하였다. ​ 이런 추사체의 조형미학과 정신경계를 요약하면 기괴고졸(奇怪古拙)과 유희(遊戱)다. 하지만 추사 생존 당대에도 추사체의 괴의 미학에 대해서 비난과 조롱이 비등하였다. 추사는 이에 대해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라고 응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기교가 좋고 나쁨(공졸, 工拙)을 또 따지지 마라[非以書爲也. 工拙又不計也.]”라고 하고 있다. ​ 이러한 추사의 학예성취에 대해서 《청조문화(淸朝文化) 동전연구(東傳硏究)》 저자인 후지스카 치카시(藤塚鄰, 1879~1948)는 “(이처럼) 청조문화(淸朝文化)에 정통하고 새롭게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을 조선에 수립 선포한 위대한 공적을 이룬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고금독보(古今獨步)라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한다. ​ ‘반역적’ 성격과 큐비즘 성격이 있는 고금독보적(古今獨步的) 추사체(秋史體) ​ 전 중국서법가협회 주석이자 현존 중국최고의 서법가로 추앙받는 션펑(沈鵬, 1931~현재)은 “변혁의 중심에 있었던 김정희의 서법(書法) 작품은 강렬한 반역적(反逆的) 성격이 있다. ​ 특히 비(碑)가 첩(帖)으로 들어가는 모종의 ‘불협과 부조화(不協調)’의 성격 때문에 일반인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김정희의 서법에서 조선민족의 강렬한 독립과 자주(自主)와 자강(自强)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고 말했다. ​ 20세기 한국현대 서화미술의 토대인 추사체 ​ 이런 맥락에서 김종영의 추상조각, 윤형근의 획면추상, 손재형, 김충현의 비첩혼융(碑帖混融)은 추사체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선구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가 그간 20세기 한국의 문예를 식민지, 서구화라는 관점에서 전통과 현대가 단절되었다는 기존 시각을 탈피하는 것이다. ​ 다른 한편으로 이번 <추사귀국전>은 추사의 전통적·한국적 미학이 중국이라는 다른 공간과, 또 현대라는 다른 시대와 대화함으로써, 동아시아와 현대를 아우르는 공유자산의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 ‘학예일치’ ‘해동통유’ ‘유희삼매’ 3가지 키워드로 조명하는 추사의 ‘괴(怪)’의 미학 ​ 이번 전시는 ‘괴(怪)의 미학을 키워드로 ‘추사체’의 성격 전모를 ▲연행(燕行)과 학예일치(學藝一致) ▲해동통유(海東通儒)와 선다일미(禪茶一味) ▲유희삼매(遊戱三昧)와 추사서의 현대성 등 총 3부로 구성하였다. ​ <연행과 학예일치>에서는 해석 1) 옹방강, 완원으로부터 실사구시(實事求是) 관점의 경학(經學)과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을 수용하여 고예(古隷)로부터 역사와 서법이 녹아든 추사체를 완성해내는 것, 해석 2) 추사가 옹방강, 완원을 만나 실사구시(實事求是) 관점에서 해석한 경학(經學)과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을 수용하고, 고예(古隷)로부터 역사와 서법이 녹아든 추사체를 완성해내는 것을 보여준다. ​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실사구시잠(實事求是箴)>, <복초재시집(復初齋詩集)>, <소영은(小靈隱)>, <상량·상견(商量·想見)>, <문복도(捫腹圖)> 등 추사와 청조 문인과의 교유관계 핵심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임군거효렴경명(臨君擧孝廉鏡銘)>, <예학명임(瘞鶴銘臨)>, <배잠기공비제발(裵岑紀功碑 鉤勒本 題跋)>, <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鏡)> 등 추사체(秋史體)의 궁극인 고예(古隷)를 재해석한 작품과 <양한금석기>, <해동금석원>, <해동금석영기> 등 조·청(朝淸) 문인들의 금석학 연구 자료들을 통해서 서(書)가 학문의 전제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살펴본다. ​ <해동통유와 선다일미>에서는 제주 유배라는 극한의 실존에 서 유마거사(維摩居士)를 자처하면서 유불선(儒佛仙)을 아우르는 통유(通儒)이면서,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와 만나 선(禪)과 차(茶)를 하나로 승화시키는 추사의 정신세계를 보는 것이 관건이다. ​ <문자반야(文字般若)>, <칠불설게 도득문지(七佛說偈 都得聞之) 등게송(偈頌) 모음, <직심도량(直心道場)>, <영모암편배제지발(永慕庵扁背題識跋)>, <명선(茗禪)>,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 그리고 <부기심란(不欺心蘭)>, <향조암란(香祖庵蘭)>, <추사 소치 합작시화 ‘산수국’> 등을 전시하는데, 이들은 통유(通儒)와 서화일체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걸작들이다. ​ <유희삼매와 추사서의 현대성>에서는 비첩혼융(碑帖混融)의 ‘추사체’가 발산하는 불계공졸(不計工拙)과 천진(天眞)의 정수를 볼 수 있다. <계산무진(谿山無盡)>, <도덕신선(道德神僊)>, <순로향(蓴鱸鄕)>, <사서루(賜書樓)>, <판전(板殿)>, <완당집고첩(阮堂執古帖)>, <무쌍·채필(無雙·彩筆)>, <인고·폐거(人苦·弊去)> 등의 작품을 통해 추사체의 유희삼매 경지를 만나볼 수 있다. ​ 이와 동시에 김종영 윤형근 손재형 김충현 등 20세기 한국의 현대서화미술 대표작가들이 추사서를 통해 자신의 예술을 여하히 성취해냈는가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계산무진(谿山無盡)>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165.5x62.5cm 간송미술관 소장 <도덕신선(道德神僊)>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32.2×117.4cm 개인 소장 <판전(板殿)> 김정희金正喜(1786~1856) 1856 종이에 탁본 22.8×85.0cm 개인 소장 <유희삼매(游戏三昧)> 등 「완당집고첩(阮堂执告帖)」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18.0×414.0cm 김종영미술관 소장 칠불설게 도득문지’ 등 선시문 모음 ‘七佛说偈 都得闻之’等 禅诗文集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33.9×22.8cm 개인 소장 <향조암란(香祖庵蘭) 「난묵합벽첩(蘭墨合壁帖)」>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26.7×16.8cm 개인 소장 <무쌍·채필(無雙彩筆)>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각 128.5x32.0cm 일암관 소장 <명선(茗禅)>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115.2x57.8cm 간송미술관 소장 <문복도扪腹图> 정조경程祖庆(1785~1855) 1853 비단에 수묵 94.5×26.2cm 개인 소장 <임군거효렴경명(臨君擧孝廉鏡銘)>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86.0x46.0cm 개인 소장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옹방강翁方纲(1733~1818) 1817 종이에 먹 23.6×304.0cm 개인 소장 추사국제 학술포럼 ​ 시간 : 2020년 2월 13일(목) 13:00-18:00 장소 :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챔프홀 ​ 학술포럼 주최 예술의전당, 과천시, 예산군,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 书法博物馆首席学艺士李东拲 학술포럼 모더레이터: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큐레이터 이동국 ​ 한국 발표자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실장 이완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서예사) 허홍범 과천시 추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정병규 글와사대표, 북디자이너 ​ 중국 발표자 예 신 중국국가화원서법전각원 해외서법연구소 부소장 叶 欣 中国国家画院书法篆刻院海外书法研究所副所长 푸치앙 중국국가미술관 소장작품부 학예사/서법학박사/서예가 傅 强 中国美术馆藏品征集部书法家 우구오바오 중국국가미술관 소장작품부 학예사/서법학박사/서예가 吴国宝 中国美术馆藏品征集部书法家 ​ <추사귀국전> 전시구성 [제1부] 연행(燕行)과 학예일치(學藝一致) ​ 여기서는 추사가 북학(北學)의 핵심인 청대(淸代)의 경학(經學)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을 조선에 도입하여 역사(歷史)와 서법(書法) 두 방면으로 어떻게 연구/실천해서 학예일치(學藝一致)의 경지로 완성해내는지를 대표작품으로 보여준다. ​ 추사는 24세 연행(燕行)때 청조 학예계 거장인 78세 옹방강과 47세 완원으로 부터 ‘경술문장(經術文章) 해동제일(海東第一)’로 격찬을 받으며 두 분을 평생 스승으로 모신다. 그 후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모토로 편지지도와 문집(文集)· 금석문(金石文)학습을 통해 경학(經學)과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 서법(書法)을 연마하여 학예일치(學藝一致)의 경지를 일생에 걸쳐 구축하였다. ​ 추사의 경학은 “마융(馬融)과 정현(鄭玄, 한 대의 훈고학)을 두루 망라하고, 정자(程子) 주자(朱子, 송대 성리학)를 등지지 말라[博綜馬鄭, 勿畔程朱]”가 말해주듯 옹방강의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의 입장에 서있다. 금석고증학자로서 추사는 청조 학예방법론을 우리 역사현장에 적용시켜 일생동안 조선화에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 31세(1816)에 <북한산진흥왕순수비>조사를 시작으로 <경주무장비(慶州藏寺碑)>발굴은 물론「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錄)」과 『해동비고(海東碑攷)』저술하였고, 67세(1852) 북청(北靑) 유배(流配)시에는「석노시(石砮詩)」「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竟)」을 제작하였다. 또 이런 성과는 중국에서 유희해의 <해동금석존고>과 <해동금석원>, 옹수곤의 <해동금석영기>와 같은 조선 금석고증학 열풍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 추사는 왕법(王法)에 정통성을 둔 기존 서사(書史)를 뒤집은 완원의 <남북서파론(南北書派論)>과 <북비남첩론(北碑南帖論)>을 지남으로 왕법(王法)은 물론 그 이전으로 돌아가 서(書)의 근원인 북비와 한예를 하나로 녹여내면서 독자적인 비첩혼융의 추사체(秋史體)를 창출해내고 있다. ​ 얼마나 한예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한예(漢隸) 한 글자는 해서와 행서 열 글자와 맞먹는다.漢隸一字, 可抵楷行十字.”고 할 정도다. 특히 “예서(隷書)는 바로 서법의 조가(祖家)이고, 한예(漢隷)의 묘는 오로지 졸(拙)한 곳에 있음[隷書是書法祖家。漢隷之妙。專在拙處]”을 간파하고, 한예 중에서도 서한(西漢)시대 정(鼎) 감(鑑) 로(爐) 등(鐙)의 글자로 거슬러 올라가 추사체(秋史體)를 창출해내고 있다. ​ 요컨대 이러한 추사와 옹방강 완원의 일생에 걸친 학연과 묵연의 성과로 인해 한중교유 역사상 19세기는 가장 찬란한 황금기로 자리매김 되었다. ​ 주요작품은 <심중니·이명도(尋仲尼·以明道)> <추사·담계필담서(秋史·覃溪筆談書)>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박종마정 물반정주(博綜馬鄭 勿畔程朱)> <실사구시잠(實事求是箴)> <복초재시집(復初斋詩集)> <소영은(小靈隱)> <죽재·화서(竹斋·花屿)> <상량·상견(商量·想見)> <완원‘남북서파론’(阮元‘南北書派論)> <임군거효렴경명(臨君擧孝廉鏡銘)> <임원수원년경명(臨元壽元年鏡銘)> <예학명임(瘞鶴銘臨)> <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鏡)> <배잠기공비제발(裵岑紀功碑 鉤勒本 題跋)> <유득공시의도(柳得恭詩意圖)> <문복도> <송자하선생입연시(送紫霞先生入燕詩)> 등이다. ​ [제2부] 해동통유(海東通儒)와 선다일미(禪茶一味) ​ 정통 유학자(儒學者)인 추사는 유교(儒敎)는 물론 불교(佛敎)와 도교(道敎)를 아우르는 통유(通儒)로서 학문과 사상을 서예술(書藝術) 하나에 모두 녹여내고 있다. 특히 제주 유배 시기의 처절한 실존을 소동파(蘇東坡)를 사숙하여 학예(學藝)로 극복해내면서 해동통유(海東通儒)의 면모를 완성해내고 있다. ​ 추사는 55세(1840.6.22)때 동지겸사은부사(冬至兼謝恩副使)로 임명(任命)되었으나 윤상도옥사(尹尙度獄事)가 재론(再論)되면서 이미 망자가 된 부친 김노경이 탄핵(彈劾)되고, 자신은 제주도(濟州道)에 유배(流配)되었다. 제주유배시절 추사는 소동파가 그랬듯이 유마거사(維摩居士) 병거사를 자처하면서 자제소조(自題小照)에 “담계(覃溪)는‘고경(古經)을 즐긴다’라 일렀고, 운대(雲臺)는 ‘남이 일렀다 해서 저 역시 이르지를 않는다’라 하였으니, 두 분의 말씀이 나의 평생을 다한 것이다. ​ 어찌하여 해천(海天)의 입립자가 원우(元祐)의 죄인과 같은 고. 覃溪云嗜古經。芸臺云不肯人云亦云。兩公之言。盡吾平生。胡爲乎海天一笠。忽似元祐罪人”라고 할 정도다. 또 ‘문자반야(文字般若)’를 비첩혼융(碑帖混融)으로 실천해내면서 추사체(秋史體)를 왕성하게 실험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초의선사(艸衣禪師)와 유(儒)불(佛)을 넘나드는 교유를 통해 다선일미(茶禪一味)와 전다삼매(煎茶三昧)의 경지를 구축하였다. ​ 주요전시작품은 <문자반야(文字般若)> <무량수각(无量壽閣)> <‘칠불설게 도덕문지(七佛說偈 都得聞之)’등 게송(偈頌) 모음> <직심도량(直心道場)> <제해붕대사영(題海鵬大師影)> <관음경·팔중송(觀音經·八重頌)> <영모암편배제지발(永慕庵扁背題識跋)> <명선(茗禪)>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 <일로향각(一爐香閣)> <전다삼매(煎茶三昧)> <합병신천지(合丙辛天地) 우향각(芋香閣)> <부기심란(不欺心蘭)> <향조암란(香祖庵蘭)> <추사 소치 합작 시화‘산수국’> 등이다. ​ [제3부] 유희삼매(遊戱三昧)와 추사서의 현대성(現代性) ​ 추사는 해배 이후 강상생활·북청유배·과천시기에 비첩혼융의 굴신지의屈伸之義의 필획(筆劃)이 창출해내는‘괴(怪)’의 미학을 골자로 하는 추사체(秋史體)를 자유자재로 구사해내고 있다. 심지어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졸(工拙)을 또 따지지 마라[非以書爲也. 工拙又不計也.]”라고 하고 있다. ​ 추사체의 비난과 조롱에 대해서마저도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不怪。亦無以爲書耳]”고 응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추사체(秋史體)의‘괴(怪)’의 미학경계는 방정(方正)의 끝이자 기괴(奇怪)의 궁극지점이다. “구서(歐書)도 역시 괴목(怪目)을 면치 못했으니 구와 더불어 함께 돌아간다면 다시 사람의 말을 두려워할 게 있으리까. ​ 절차고(折釵股)·탁벽흔(坼壁痕) 같은 것은 다 괴의 지극이며 안서(顔書) 역시 괴이하니 왜 옛날의 괴는 이와 같이 많기도 한지요. 歐書亦未免怪目。與歐同歸。復何恤於人耶。如折釵股圻壁痕。皆怪之至。顔書亦怪。何古之怪。如是多乎哉。라고 추사는 말한다. ​ 추사체(秋史體)는 왕법(王法) 중심의 첩학(帖學)과 그 이전의 비학(碑學)이 시기별 혼융(混融)궤적을 그리며 다음과 같이 완성·창출되고 있다. ​ Ⅰ. 시체습용기(時體習用期)[24세 연행(燕行) 전후] Ⅱ. 옹방강/팔분예(八分隸)학습기(學習期)[3,40대] Ⅲ. 구양순(歐陽詢)/고예(古隸)재해석기(再解析期)[50세 전후] Ⅳ. 비첩혼융기(碑帖混融期)[55~63세 제주 유배(流配)] Ⅴ. 추사체(秋史體)완성기(完成期)[63~71세 해배(解配)이후] ​ 주요전시 작품은 <계산무진(谿山無盡)> <도덕신선(道德神僊)> <순로향(蓴鱸鄕)> <사서루(賜書樓)> <판전(板殿)> <완당집고첩(阮堂執古帖)> <칠언시사구 행서팔곡병(七言詩四句 行書八曲屛)> <청관산옥만음(靑冠山屋漫吟)> <무쌍·채필(無雙·彩筆)> <인고·폐거(人苦·弊去)> <왕사정 제중삼영(王士禎 齋中三詠)> 등이다. ​ 위의 작품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천진(天眞)이자 유희삼매(遊戱三昧)의 정신경계에 노니는 것이 추사체(秋史體)이다. 일체의 구속(拘束)에서 벗어난 대자유(大自由) 절대자유(絶對自由)의 경지인 것이다. 예술의 기원이 인간의 유희본능(遊戱本能)이라고 할 때 예술의 본령인 시서화(詩書畵)를 일체(一體)로, 융복합(融複合)으로 하나 되게 ‘유희삼매(遊戱三昧)’로 살아간 추사는 문자영상(文字映像)시대 인공지능(人工知能,AI)시대 오늘날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다. ​ 이런 맥락에서 김종영 윤형근 손재형 김충현 등 20세기 한국의 현대서화미술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서예는 물론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추사서의 조형과 미학 전통이 현대와 호흡하며 한국예술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도원에 핀 꽃 - 왕열

Flower in Utopia

도원에 핀 꽃 Flower in Utopia ​ 전시일시: 2020년 2월 8일~ 2월 16일 전시장소: 한전아트센타[서울시 서초구 서초동1355] 1층 1,2전시실 ​ 왕열 ​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학 박사 개인전 62회 (중국,일본,독일,스위스,미국,프랑스 등)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한국미술작가대상 (한국미술작가대상 운영위원회) 단체전 520여회 ​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미술은행, 성남아트센터, 성곡미술관,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워커힐 미술관, 갤러리 상, 한국해외홍보처 한국은행, 동양그룹, 경기도 박물관, 한국종합예술학교 단국대학교, 카톨릭대학교, 채석강 유스호스텔, 호텔프리마, 천안시청, 천안세무서, 한남더힐 커뮤니센터 ​ 이미지 왕열 봄날의 명상,캠바스에 아크릴,90.9x72.7cm ,2019 작가 왕열은 <겨울나기> 연작과 같은 초기의 작업에서부터 최근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새’를 중심적인 소재로 등장시킨다. 이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새들은 복잡한 인간사(人間事)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의인화된 존재라고 한다. 그로인해 작품은 ‘새’들을 통해 우리네 삶의 다양한 형태를 거울처럼 들여다보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유토피아’로 일컬으며 작품에서 중층적인 장소로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 주지하였듯이 그의 근작들은 꾸준히 <유토피아>를 주제로 나타내는데 그 의미에 대한 이해는 어원을 통해 극명히 드러난다. ​ 이처럼 작품은 우리의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희노애락의 에피소드를 ‘새’를 통해 제시하였다. 그리고 고뇌와 즐거움이 교차하는 모습 속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통해 초월적 의미의 유토피아를 일깨운다. 실상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힐링(healing)’의 문화가 열풍이다. 너도나도 마음의 안식과 유토피아를 갈구하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작가는 진정한 전통적 태도를 기반으로 현대적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 이미지 왕열 116.5x91.0cm 2019 그것으로 작품은 평범한 현실 속에서 마음의 자유를 찾을 수 있는 휴식의 공간 자체로 기능하며, 동양미학 특유의 상승적 의미들을 되새기도록 만들고 있다. ​ 그리고 여기에서 왕열의 작품들은 소소한 이야기, 화면의 구성, 표현, 기교 등 모든 관점에서 전통화단의 고유한 가치를 현시대적으로 풀어내려는 고민이 도원에 핀 꽃을 통하여 얼마나 깊이 있게 응축되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

툴루즈 로트렉 展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 Henri de Toulouse-Lautrec

Henri de Toulouse-Lautrec ​툴루즈 로트렉 展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 후기인상주의 화가이자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전시회가 2020년 1월 14일부터 5월 3일까지(96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 이번 툴루즈 로트렉 전은 국내에서 선보이는 로트렉 의 첫번째 단독전으로, 그리스 아테네에 위치한 헤라클레이 돈 미술관(Heraklei don Museum)이 소장하고 있는 15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며, 전시작품 모두가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툴루즈 로트렉은 19세기 후 반,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와 밤 문화의 상징 물랭 루즈 등을 무대로 파리 보헤미안의 라이프 스타일을 날카롭게 그려낸 프랑스 화가이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포스터, 석판화, 드로잉, 스케치, 일러스트 및 수채화들과 로트렉의 사진 및 영상, 이 시대의 생활용품 등은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을 19세기말 생동감 넘치는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과 물랭 루즈로 안내해 줄 것이다. ​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 중, ‹제인 아브릴 Jane Avril, 1893›, ‹아리스티드 브뤼앙 Aristide Bruant in his Cabaret, 1893› 등 포스터 작품들과 ‹배에서 만난 여인 The Passanger from Cabin 54, 1895› 등 석판화 작품들, 연필과 펜으로 그린 스케치 작품들, ‹르 리르(Le Rire)›, ‹라 레뷰 블랑슈(La Revue Blanche in 1895)› 등 잡지에 게재된 그래픽과 풍자 일러스트 등은 화가 툴루즈 로트렉을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19세기 말 파리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 La Belle Épo que)의 상징들이기도 하다. ​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로트렉의 미술작품 뿐만 아니라 로트렉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과 미디어아트, 당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그의 일러스트 등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으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회이다. 이번 전시회는 2007년부터 그리스와 미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순회 전시 중이며, 이번 서울 전시회는 14번째 전시이다. ​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툴루즈 로트렉은 19세기 후 반,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와 밤 문화의 상징 물랭 루즈 등을 무대로 파리 보헤미안의 라이프 스타일을 날카롭게 그려낸 프랑스 화가이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포스터, 석판화, 드로잉, 스케치, 일러스트 및 수채화들과 로트렉의 사진 및 영상, 이 시대의 생활용품 등은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을 19세기말 생동감 넘치는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과 물랭 루즈로 안내해 줄 것이다. ​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 중, ‹제인 아브릴 Jane Avril, 1893›, ‹아리스티드 브뤼앙 Aristide Bruant in his Cabaret, 1893› 등 포스터 작품들과 ‹배에서 만난 여인 The Passanger from Cabin 54, 1895› 등 석판화 작품들, 연필과 펜으로 그린 스케치 작품들, ‹르 리르(Le Rire)›, ‹라 레뷰 블랑슈(La Revue Blanche in 1895)› 등 잡지에 게재된 그래픽과 풍자 일러스트 등은 화가 툴루즈 로트렉을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19세기 말 파리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 La Belle Épo que)의 상징들이기도 하다. ​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로트렉의 미술작품 뿐만 아니라 로트렉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과 미디어아트, 당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그의 일러스트 등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으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회이다. 이번 전시회는 2007년부터 그리스와 미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순회 전시 중이며, 이번 서울 전시회는 14번째 전시이다. 툴루즈 로트렉은 그가 주로 활동했던 프랑스 파리나 19세기말의 시대를 넘어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다. 37년의 짧은 생애동안 5,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로트렉은 몽마르트의 작은 거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이기도 하다. I don't belong to any school. I work in my corner. I admire Degas. ​ 나는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는 내 멋대로 그림을 그릴 뿐이다. 하지만 나는 에드가 드가를 존경한다.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툴루즈 로트렉의 삶과 작품 세계 1864. 11. 24 ~ 1901. 9. 9 ​ 벨 에포크 La belle époque (1871 ~ 1914) ​ 1871년, 보불전쟁(Franco-Preussen War)이 끝나고 프랑스에는 모처럼의 평화와 풍요가 찾아온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대로 불리는 ‘벨 에포크’가 활짝 열리는 순간이었다. 파리에는 산업과 예술과 문화가 번창했다. 파리의 상징 에펠탑(Eiffel Tower)이 세워지고, 최초의 파리 지하철이 개통됐다. 무엇보다 벨 에포크를 대표하는 예술 분야는 미술이었다. ​ 피카소, 샤갈, 모딜리아니, 칸딘스키 등 유럽 각국의 화가들이 파리로 모여들었고, 예술 표현이 굉장히 자유로워졌다. 다양한 서양미술 사조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탄생했고, 활짝 꽃을 피웠다. 그들 중에서도 인상주의 화가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다. ​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에드가 드가, 폴 세잔, 반 고흐, 폴 고갱, 오귀스트 로댕 등 서양미술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화가들이 모두 이 시기에 활동한 작가들이다 ​ 20세기 그래픽 아트, 포스터의 탄생 ​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이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건, 18세가 되던 1882년 파리로 이주하면서부터다. 아카데미 화가인 레옹 보나(Leon Bonnat)의 화실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학문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 그러나, 얼마후 보나가 화실을 닫자, 역시 아카데미 화가인 페르낭 코르몽(Fernand Cormon)의 화실로 옮겼다. 이곳에 몇 년간 적을 두고 미술공부에 전념했지만, 로트렉은 에드가 드가나 화실에서 사귄 친구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세계를 동경했고, 진정으로 그들을 스승으로 생각했다. ​ 1884년, 로트렉은 몽마르트(Montmartre) 언덕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몽마르트는 1880년경에 이르러 보헤미아니즘(Bohemianism),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의 중심지로 부상한 지역이다. 로트렉은 이곳을 근거지 삼아 화랑과 미술관을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토론하고, 작업실과 모델을 함께 쓰는 등 세기말 파리의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즐겼다. ​ 이 시기 로트렉은 나비(Nabi)파 화가인 피에르 보나르나 에두아르 뷔야르, 후기인상주의 화가인 반 고흐 등과 자주 어울렸지만, 어떤 예술 유파에도 휩쓸리지 않았다. 그는 이론이나 운동보다 천부적인 감각과 재능으로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근본적으로 로트렉은 야외의 자연 빛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인상주의와는 달리, 실내의 인공 조명을 선호했다. 이런 로트렉의 화풍은 물랭 루즈의 실내 조명 아래서 그린 모델들의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 1889년, 몽마르트에 댄스홀 물랭 루즈(Moulin Rouge)가 오픈했다. 물랭 루즈는 열자 마자 바로 파리의 명소가 되었고, 유명 인사들이 드나드는 최고의 사교장이었다. 물랭 루즈의 개업은 로트렉의 작품세계가 큰 변혁을 맞는 계기가 된다. 로트렉에게 이 물랭 루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자 아뜰리에였고 그곳에서 펼쳐진 공연들과 사람들은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 로트렉은 지정석을 두고 매일 밤 이 물랭 루즈를 드나들면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그림에 담았다. 로트렉에게 그림은 매일매일의 삶을 기록하는 일기장과도 같았다. 로트렉은 사람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눈과 빠른 손놀림으로 그가 만난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 1891년 가을, 로트렉이 제작한 포스터 ‘물랭 루즈, 라 굴뤼(Moulin Rouge, La Goulue)’는 로트렉을 일약 파리의 유명인사로 만들어 준 작품이었다. ​ 로트렉은 지금까지의 18세기적 포스터를 개념이 전혀 다른 대담한 표현과 기법으로 20세기적 그래픽으로 바꿔 놓았다. 이 포스터를 계기로 석판화(Lithography)기법을 이용한 걸작 포스터와 판화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로트렉 은 벨 에포크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 ​It is fair to say that without Lautrec, there would be no Andy Warhol. ​ 로트렉이 없었다면 앤디 워홀은 없었을 것이다. - 미국,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천재화가 로트렉의 고독한 생애 ​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이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건, 18세가 되던 1882년 파리로 이주하면서부터다. 아카데미 화가인 레옹 보나(Leon Bonnat)의 화실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학문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 그러나, 얼마후 보나가 화실을 닫자, 역시 아카데미 화가인 페르낭 코르몽(Fernand Cormon)의 화실로 옮겼다. 이곳에 몇 년간 적을 두고 미술공부에 전념했지만, 로트렉은 에드가 드가나 화실에서 사귄 친구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세계를 동경했고, 진정으로 그들을 스승으로 생각했다. ​ 1884년, 로트렉은 몽마르트(Montmartre) 언덕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몽마르트는 1880년경에 이르러 보헤미아니즘(Bohemianism),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의 중심지로 부상한 지역이다. 로트렉은 이곳을 근거지 삼아 화랑과 미술관을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토론하고, 작업실과 모델을 함께 쓰는 등 세기말 파리의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즐겼다. ​ 이 시기 로트렉은 나비(Nabi)파 화가인 피에르 보나르나 에두아르 뷔야르, 후기인상주의 화가인 반 고흐 등과 자주 어울렸지만, 어떤 예술 유파에도 휩쓸리지 않았다. 그는 이론이나 운동보다 천부적인 감각과 재능으로 자기 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 근본적으로 로트렉은 야외의 자연 빛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인상주의와는 달리, 실내의 인공 조명을 선호했다. 이런 로트렉의 화풍은 물랭 루즈의 실내 조명 아래서 그린 모델들의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 아리스티드 브리앙/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 /1893 | Lithography | 138×99cm 제인 아브릴 / Jane Avril / 1893 | Color Lithography | 129×93.5cm 물랭 루즈, 라 굴뤼 / Moulin Rouge, La Goulue / 1891 | Color Lithography | 170×118.7cm 앰배서더 카바레의 아리스티드 브뤼앙 / Ambassadeurs.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 / 1892 | Color Lithography | 138×96 cm Au Pied Du Sinaï(표지) / 1897 | 조르주 클레망소의 책 시나이 산기슭에서 Elles / 1896 | (석판화 연작 中) | Color Lithography Cavalier / 1879 - 1881 | Ink Drawing Le Jockeye / 1899 | Color Lithography | 51.1 x 35.5 ㎝ Polaire (Le Rire 잡지) / 1895 | Color Lithography | 26.2 x 12.2 ㎝ ​

이이남 LEE LEE NAM - 1편

살아있는 그림 (les peintures vivantes)

살아있는 그림(les peintures vivantes) ​ 그는 컨버전스 분야 세계 석학인 존 라이크만(John Rajchman)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로부터 극찬을 받아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 ​ 그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모션 포스터를 제작하여 세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삼성전자와 5년 동안 콘텐츠 제공 전속계약을 맺고 55인치와 46인치 LED TV에 자신의 작품 3점을 내장하여 출시해 화제가 되었다. 그는 작년 G20 서울정상회담 때 주요 회의장과 각국 정상이 머무는 호텔 숙소에 비치된 TV와 아이패드, 갤럭시탭 등을 통해 작품을 설치하여 호평을 받았다. ​ 그의 작품은 작년 말부터 애플 앱스토어에서 유료로 서비스 되고 있다. 그는 최근 영국의 동화작가 앤서니 브라운과 함께《동화책 속 세계여행》전을 개최했다. 그의 작품들은 올해 발행된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 전 세계 미술 작가 500명의 작품 가격을 순위별로 기록한 ‘아트 프라이스’에 그는 363위를 차지했다. 그는 누구인가? -류병학(미술평론가) 사진 고흐에 풍경 Scene of Goah 75 inch LED TV 2019_9min40sec 이이남 2019 세계수영선수권 대회 개회식 피날레 미디어 아트 감독 ISEA 국제전자예술심포지움 개막식 미디어 감독 ​ 개인전 (52회) 2019 ‘다시 태어나는 빛 – 뿌리들의 일어섬’ IESA대학, 파리, 프랑스 ‘이이남, 빛의 조우’ 서울식물원, 서울, 한국 ​ 주요전시 2019 ‘Flim & Arts’, 뿌리들의 일어섬 전, 스타시네마, 테이트 모던, 런던. Artificial Intelligence ‘Hyper-Intelligence’ Mr. Media Lab 콜라보전 ​ 서울, 한국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의 이미지 장치’ 전, 국립현대 미술관, 한국 ​ 작품소장처 토마 파운데이션(미국), 지브라스트라트 미술관(벨기에), UN본부(미국), UN사무국(미국), 아시아 미술관(샌프란시스코), 수닝예술관(중국), 예일대학교(미국),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워싱턴), 후진타오 영부인(중국), 국립중앙도서관(서울,한국), 인천국제공항(인천,한국), 리움미술관(서울, 한국), 한미미술관(서울,한국), 컬렉션 솔로(마드리드,스페인), 아랍에미리트 전 자이드 대통령 영부인(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 ​ 2016 부산비엔날레 '혼혈하는 지구' _GOOGLE TILT BRUSH X LEE LEE NAM VR 가상 한자 (홍보자료) 뉴미디어아트는 시·공간적 환영으로 인식되며, 시대와 공간의 의식 세계가 뒤얽혀 있어 여러 파편들의 중첩된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의미는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현존으로 살아 숨쉬는 뉴미디어아트의 특성일 것이다. ​ 따라서 작업에 임하는 나는 첨단기술을 도구로 활용하여 화려한 환영적인 이미지 그 너머에 내재되어 있는 진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 또한 내 작품에 차용된 명화들은 나만의 독특한 재해석과 창의성 그리고 대중성을 고려했다. ​ 이와 더불어 동서양을 아우르는 작품의 변화는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 환영적인 공간의 회화는 지금 당신의 심장에 닿고 있다, Ing…. 레프 마노비치 (미디어 이론가/뉴욕시립대 교수) ​ 그가 미디어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미디어의 역사와 인간이 사용하는 미디어 기술들의 표현적이고 미학적인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이남은 마치 미디어 역사가(또는 미디어 고고학자)처럼, 두 개 또는 더 많은 매체를 병치하는 비교 연구법을 사용하여 서로를 대면하도록 하고, 그것들의 한계를 드러내고, 매체의 성질들을 교환하고, 새로운 관계로 발전시킨다. ​ 이러한 병치는 ‘기존의 미디어’와 ‘새로운 미디어’, ‘아날로그’와 ‘디지털’, 또는 ‘조각’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대립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이남의 예술에 적용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그가 다양한 미디어 재료를 이용한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 재료들은 권력, 전쟁, 종교, 천연자원착취, 인간 간의 경쟁, 빈곤, 고통, 황홀과 연결된 그들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와 그들 사이의 관계는 이이남의 미디어 아트를 통해 활성화된다. 신-수련 2 (2007)에서, 클로드 모네가 인생의 마지막 30년 동안 그의 정원에서 그린 250점의 수련 중 한 점을 배경으로 섬세한 애니메이션이 겹쳐져 있다. 모네는 유화물감의 성질을 최대한으로 연구하여, 물에 반사된 꽃의 이미지를 캔버스 위에 한 번의 붓질을 통해 회화적인 흐름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에 더해진 섬세한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원작에서 캔버스 위의 마른 물감이라는 물성을 줄이고, 마치 빛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처럼 변화시킨다. ​ 그러나 우리는 모네가 수련을 그리는 동안 시력을 잃어 갔고, 다른 건강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유화 물감이라는 재료가 더 이상 작가의 제어를 받지 않고 새로운 활기를 얻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창조자의 제어하에 있지 않을 때 재료는 온전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따라서 회화 재료의 해방은 인간의 고통과 병을 동반하기도 한다. ​ 나는 동양화와 결합된 애니메이션의 역할 중 하나는, 예전에는 삶의 흐름 - 즉 오늘날 애니메이션이 가진 역할 - 을 보여줬던 전통 동양화가 이제는 유리 케이스와 경비원, 경비 시스템으로 보호되는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어버린 현실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들은 또한 미술 시장, 화랑 시스템, 박물관과 소장가들의 포로가 되었다. 실제 동양화가 미술관에 갇혀 있는 동안, 이이남의 장난기 많고 유머러스한 애니메이션들은 원작의 흐름과 움직임을 재창조한다. (게다가 책-산수화에서는 두 개의 고전 그림들이 미술품 경매 도록에 인쇄된 이미지로 나타난다.) ​ 이이남의 작품들은 다양한 역사적이고 현대적인 미디어 기술과 그들의 문화사 간의 소통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림의 역사를 논하는 ‘화가’나 조각의 역사를 말하는 ‘조각가’와는 달리, 이것이 이이남이 미디어 아티스트인 이유이다. 이이남의 작품에서는 서양의 유화나 동양화, 조각, 영화, TV, 금속, 물, 빛, 전기 등 다양한 매체를 만나게 된다. 그의 작품을 즐긴다면, 그것들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말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세계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2009-신_금강전도 New-Geumgangjeondo LED TV 7min 10sec 존 라이크만 ​ 그는 “이 작가가 제도권적인 문맥을 파기하면서 다른 공간을 창조하는데 개미를 소재로 한 것이 유머러스하다.” ​ 며 다소 키치적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이이남은 이런 함정을 매우 교묘하게 비켜가면서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었다.” 고 덧붙였다. ZKM Center Bernhard Serexhe ​ 한때 자신을 “뉴미디어 아티스트”라 칭한 이이남 역시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 작가노트 내용 중 그는 “우리는 모든 것이 이분화, 양극화되어 조화를 잃어버린 암흑시대에 살고있다” 라고 단정한다. 이어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어떻게 물질(디지털)과 정신(아날로그)이 분리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가능성을 고민하였다.”라고 말한다. ​ 만일 그의 풍부하고 다양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작품들을 전부 한눈에 볼 수 있다면 그의 작품 주제가 늘 동양과 유럽의 유명한 거장들의 회화에서부터 온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는 대대로 세계 미술사학에 등장하는 전 세계 유명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경을 넘어 우리의 집단적 문화 기억 속에 남겨져있는 명화와 조각들을 선택한다. 이런 미술의 세계화 과정 속에서 디지털화와 전자통신망을 통한 재빠른 보급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고흐에 풍경 Scene of Goah 75 inch LED TV 2019_9min40sec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히즈윌 HISWILL

히즈윌 -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인터뷰 문 혜 은 큐레이터 ​ 2007년도에 창립된 CCM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현대기독교 음악) 프로젝트로 가수 4명이 구성된 팀으로 평소에 주님 음성이 마음에 들릴 때마다 일기처럼 적어 두었던 글에 음을 붙여서 곡을 만들어 10집의 앨범을 발매했다. ​ 음악은 굉장히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어 사람의 마음을 회복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에 마음을 회복시키는 ‘영양제’ 같은 음악을 계속 만들고 히즈윌 음악과 가사를 통해 하나님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다리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쁨이라고 말하는 히즈윌(Hiswill)을 만나본다. 이미지 히즈윌(HISWILL) 사진 히즈윌(HISWILL) 멤버사진 문혜은. 안녕하세요! 히즈윌을 결성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 것같은데요 히즈윌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 히즈윌. 안녕하세요. 히즈윌 작사 작곡가 장진숙입니다. ​ 히즈윌은 2007년도에 제가 만든 CCM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현대기독교 음악) 프로젝트예요. 지금은 몇 년간 함께 활동한 가수 4명으로 구성된 팀이나 그룹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원래 팀을 결성하거나 활동을 시작하려던 계획은 전혀 없었어요. 평소에 주님 음성이 마음에 들릴 때마다 일기처럼 적어 두었던 글들을 가지고 음을 붙여서 곡을 만들기 시작한 것인데 그게 모여 2008년 1집인 <Driven by His Will>이라는 앨범이 되었어요. 저는 성악을 전공했기에 처음 곡을 쓸 당시엔 작곡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제가 쓴 글들에 코드와 멜로디를 붙여 단선 악 보를 제작 할 수 있었는데 어릴적부터 알 던 친구의 도움으로 제가 쓴 곡들을 편곡 하여 음반으로 낼 수 있었어요. 히즈윌의 모든 앨범의 작사와 작곡은 제가 하고 있어요. 그리고 앨범마다 곡에 맞는 가수나 뮤지션이 참여하는 식으로 제작되고 있어서 일종의 프로젝트앨범의 형식이에요. 현재 총 10개의 앨범 (정규앨범 6개, 일본어 앨범 1개, 연주앨범 1개, EP 2개)이 발매되었어요.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10개의 앨범이 나온 걸 보니 매년 하나씩 만들었다고 해도 되겠네요. ​ 이미지 히즈윌(HISWILL) 문혜은. 앨범을 제작하는 시기나 앨범의 주제곡 등은 어떻게 정하시나요? ​ 히즈윌. 제 마음에 가장 큰 메시지로 다가오는 단어나 방향에 대해 주제를 잡고 그 주제로 가사를 쓰고 주제 맥락에 맞게 작곡한 곡들로 채워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 음성에 따라 살아가고 싶은 방향이 생기거나 방황 중에 다시 주님께 돌아가고 싶은 마음 등이 생기면 그런 메시지를 가지고 주제로 잡아요. ​ 음악을 통해 제 개인적으로 받은 감동을 사람들과 나누면서 함께 믿음의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앨범을 제작하는 시기를 딱히 정해 놓지는 않지만 2년에 한 번씩 정규앨범이 나오고 있어요. 그 중간중간에 크리스마스나 패밀리 워십 앨범 일본 선교 등 특별한 목적을 가진 싱글이나 EP 앨범을 제작하기도 하고요. 이미지 히즈윌(HISWILL) 문혜은. 히즈윌 앨범을 제작하면서 기억에 남는 추억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 히즈윌. 3집을 마치고 결혼을 했어요. 4집은 뱃속에 첫째 아이를 가지고 작업을 했고 가장 최근에 나온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 앨범과 정규 6집 <STOP>은 둘째 아이를 가진 상태로 작업을 했어요. 출산과 육아를 겪으면 심신의 많은 스트레스로 인해 신앙을 유지하기가 참 쉽지 않을 때가 많은데 그런 상황에서 저의 고백적인 기도하는 마음이 가사에 묻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제 곡을 들을 때면 ‘가사가 참 와 닿는다’는 말을 많이 해요. ​ 하나님께서 그 고백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제게 곡을 쓰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히즈윌 2집 수록곡 중 <곁눈질>이란 곡이 있는데 매 순간 주님을 바라보며 살자는 내용의 곡이에요. 이 곡을 녹음하는 당일까지도 곡을 소화하는 부분이 애매하고 이상해서 포기해야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막상 발매되고 나니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곡이 되었죠. ​ 그리고 가장 잘 알려진 3집의 <광야를 지나며>라는 곡도 김동욱 형제의 목소리가 조금 독특해서 마지막까지 많은 걱정을 했는데 지금은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 곡이 없었을 정도로 훌륭한 곡이 되었어요. ​ 우리의 삶은 우리의 계획대로 되는 것 같이 보여도 주님의 큰 계획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라는 믿음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제게 늘 삶의 다양한 굴곡을 주시는 것 같아요. ​ 이미지 히즈윌(HISWILL) 문혜은. 아홉 번째 앨범을 바이올린과 피아노로만 연주한 곡으로 제작하셨는데 특별히 이렇게 기획 제작하신 의미 계획 등이 있으실 것 같아요. ​ 히즈윌. 때로는 가사가 있는 곡들이 주는 긴장에서 벗어나서 음악만으로 기도나 묵상을 할 때 도움이 되는 곡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잔잔하게 악기로만 듣는 찬양은 또 다른 감동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간 만들어온 곡들 중에서 가장 많이 들려지는 곡들을 모아 앨범을 내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던 중, 마침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바이올리니스트 이신행과 함께 작업할 수 있게 되었어요. ​ 이신행 씨는 제가 부산에 있을 때부터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친한 동생인데 유학 중 한국에 들어올 때면 틈틈이 히즈윌 앨범에 참여해왔어요 그리고 히즈윌이 시작될 때부터 호흡을 맞춰온 김창대 편곡자가 피아노 편곡과 연주를 맡아주면서 앨범이 완성될 수 있었죠. ​ 가사가 없이 악기만 있다 보니 두 사람의 호흡이 정말 중요했어요. 피아노 연주자가 부산에 살고 바이올리니스트가 서울에 있다 보니 함께 연습을 할 수 없어서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 먼저 피아노 가이드를 만들고 거기에 맞춰 바이올린 연습을 하는 방식으로 맞췄어요. 몇달이 걸렸습니다. 다행히 완성도 있는 앨범이 나오게 되어 너무나 감사해요. ​ 이미지 히즈윌(HISWILL) 문혜은. 앞으로 제작 준비 중인 앨범이 있으시다면 어떤 주제로 제작하실지 귀띔해주세요. ​ 히즈윌.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마음에 감동이 있을 때마다 작업을 하기 때문에 딱히 지금 계획한 것이 있지는 않아요. 주님이 제 삶에 예비하신 시기에 특별한 마음을 주실 때가 오면 그때 앨범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 문혜은. 히즈윌의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 또는 포부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 히즈윌. 음악은 굉장히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어요.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회복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에 마음을 회복시키는 ‘영양제’ 같은 음악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나아가서 히즈윌 음악과 가사를 통해 하나님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다리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 문혜은. 마지막으로 공공디자인저널 구독자 여러분들께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 히즈윌. 공공디자인 저널 구독자분들 중에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분이 계시다면, 꼭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독교에서 복음(Good News, Gospel)은 창조주께서 우리 각자에게 약속하신 값 없이 주는 은혜라고 합니다. 공공디자인이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하는 디자인이라면 복음은 공공의 보편성을 넘어서 모든 개개인의 영혼을 통해 그들의 방식에 가장 적합하게 소통하는 하나님의 보편적임과 동시에 개별적 메시지에요. ​ 그 놀라운 메시지가 궁금하시다면 꼭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권합니다.

한계륜

개인전 [에리스 방문기] 세 개의 전시회에 대하여!

취재 공공디자인저널편집부 ​ 개인전 [에리스 방문기] 세 개의 전시회에 대하여! ​ 에리스에 도착하다 왜소행성 에리스를 향해 떠나는 여정! 아트스페이스 뮤온-제7회 개인전 2016 ​ 지구귀환 에리스에 홀로 지내며 느낀 외로움, 지구귀환을 위한 분투! 갤러리 오-제8회 개인전 2018 ​ 에리스를 그리다 내 방안에서 생각하는, 에리스에 대한 회고! 밤부갤러리-제9회 개인전 2019 사진 밤부갤러리 전시 스케치 사진 한계륜_파랑의 승리 BLUE WIN_벽면 위에 수성페인트, 영상프로젝션_1200X240CM_2019 1997년 영상 설치 개인전을 시작으로,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등 다양한 전시를 통해 현재까지 비디오 설치작품을 발표해온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 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 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밤부갤러리에서 만난 작품전 ‘에리스를 그리다’와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사진 [번뇌번개]나무, 페인트, 영상프로젝션 - 2019 미국의 문학가이자 역사 신화학자로 알려진 토머스 불핀치 Thomas Bulfinch의 1855년작 [The Age of Fable]에서 ‘에리스 Eris’는 불화(不和)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 그녀의 등장은 언제나 다툼과 분쟁을 일으켰고, 결국 트로이의 전쟁이 발발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그녀는 명왕성 뒤편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왜소행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 내가 신혼이던 20년 전, 아내와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각자 좋아하는 영화를 이야기해보고, 나는 우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그리스로마신화는 꿰고 있었지만 우주의 물리적 움직임에는 완벽하게 무관심했다. ​ 그전까지 나는 모든 사람들이 우주에 관심이 아주 많고, 우주가 배경이 되는 공상과학영화는 무조건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왔다. ​ 천지현황우주홍황[天地玄黃宇宙洪荒] 어릴 적 가마솥에 누룽지를 외치며 알게 된 한자도 우주에 대한 언급으로 인류의 삼라만상을 적어나가고 있었으니 그때까지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 누구나 우주에 대해 지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으리라는 것에... 사진 [번개의 이동] 애니메이션 4분30초_2019 어른이 되어 우주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하고, 어려서부터 가져왔던 호기심을 과학적 이론으로 적어나간 설명을 확인하는 순간 궁금함은 또다시 늘어만 간다. ​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확인하는 학문이었고, 결국 우주의 구성은 과학적 가설이라는 이름의 온갖 창작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 4차원 시점에서 직진하는 물질이 중력장에 의해 왜곡된 3차원 시공간을 지나면서 생기는 특이한 현상을 통해 우주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창작 소설이 나에게도 몇 개 있고, 이것을 과학적 이론으로 증명해 줄 수 있는 알파고가 내게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 누가 나의 소설들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과학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우주는 수도 없이 그 존재가 바뀌어왔다. 시대마다 확고한 사실이었고, 현재도 우리가 배운 모습이 사실일 것이라 믿고 있다. ​ 그러나 미래에도 우리가 규정한 현재 모습의 우주가 그대로일 수 있을까? 인간이 광활한 우주의 한구석 먼지한 톨 위에 모여 살며 바라본 우주는,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생각해 낼 수밖에 없다. ​ 그러다 보니 우주는 그리스 로마 신화이고, 소망과 원망의 대상이고, 이해관계의 사사로운 감정이 투사될 수밖에 없는, 인간 세상의 프로젝션 스크린이다. 모르는 우주에 대한 동경과 상상은, 역설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잘 알게 만드는 촉매제가 된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진 [자기분석장치 분석] 철위에 페인트, 프린트용지. 2019 2003년 10월 23일 에리스의 존재가 우연히 촬영된다. 2005년 1월 5일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를 드디어 인지하게 되었고, 초기 그녀의 발견은 명왕성과 함께 10번째 행성으로 등록되리라 기대를 하고 있었다. ​ 에리스를 발견한 미국의 마이클 E. 브라운의 연구팀은 당시 인기 TV 드라마의 여주인공 제나(Xena)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불렀고, 당시 언론은 마이클 E. 브라운의 딸 릴라(Lila)로 부르기도 했다. ​ 그러나 그녀의 지위에 대한 오랜 논란은 결국 행성의 자격에 대한 규정을 만들어내게 되었고, 결국 에리스보다 작은 크기로 알려진 명왕성의 행성 지위마저 왜소행성(Dwarf Planet)으로 강등시키게 된다. 2003UB313의 임시번호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온 에리스 자신도 결국 왜소행성의 번호를 부여받는다. ​ 136199. 이제 이것이 그녀의 정식 이름이다. 사진 [스테들러호] 비닐시트 위에 페인트, 연필, 테이프 - 2016 사진[ 스테들러호] 세부 세 번에 걸친 개인전에서 소개된 작품들은, 내가 스테들러Staedtler호를 타고 왜소행성 136199 에리스Eris에 도착해 그곳을 탐사하고 돌아와 그곳을 회상하기까지의 여정을 표현했다. ​ 스테들러는 독일의 문구회사 이름이다. 나는 미술가로서 기본인 연필 드로잉으로 돌아가 나의 르네상스를 만들어 보자하는 맘을 먹게 되었다. 마트에 들러 할인행사를 하는 스테들러 연필을 보고. 노랑 연필을 여러 박스 구입한 후, 드로잉은 잊은 채 “왜 연필은 노란색을 칠할까”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 중국 황실에서 노란색은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상이었다. 과거 노란색은 연필에 있어서도 최고의 위치를 의미했다. 그러나 현재 그 자리를 스테들러는 파란색에 부여했다. 사진 노랑의 승리, 나무위에 페인트, 연필. (세부) ​ 연필에 노란색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유럽의 Koh-I-Noor 회사이다. 당시 연필은 어두운색이거나 전혀 색채를 칠하지 않았었다. 당시 최고의 흑연은 중국에서 수입됐는데, 코이노어사는 고급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해 연필에 노란색을 입히기 시작했고, 다른 연필 회사들도 그 방식을 따랐다. ​ 연필회사들은 미카도(Mikado), 미라도(Mirado), 몽골(Mongol)과 같은 동양적인 이름을 제품 이름으로 사용해 노란색으로 고급 이미지를 표현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고급스러운 중국 황실을 연상하게 하는 밝은 노란색을 연필에 입히기 시작했다. ​ 그러나 지금 연필의 노란색은 가장 일반적이고 저렴한 상징색이 되었다. 독일의 문구회사 스테들러는 최고급 연필에 Mars Lumograph 라는 브랜드로 파란색을 입히고 있다. 그리고 10분의 1 가격에 판매하는 yellow pencil-134를, 가장 저렴하게 나무를 공급받을 수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바로 생산하여 전통의 노란색을 입힌다. ​ 사진 [미디어아트연구-종이위에 연필-2] 종이, 연필, -2019 사진 [미디어아트연구-종이위에 연필-1] 종이, 연필, -2019 나는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이름을 알려왔다. ​ 1993년에 본격적으로 컴퓨터 그래픽을 배웠고 TV CF에 특수효과를 넣는 직장을 다니다가 1997년 디지털 비디오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 2000년대 초기는 컴퓨터그래픽이 붐을 이루던 시기였다. 그 시절을 만나 나는 쉽게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다. ​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과거의 화려함이 그리운 모양이다. ​ 노랑 연필과 왜소행성 에리스. ​ 이 두 개의 소재는 중년을 지나는 노장 미디어 아티스트의 마음을 끌었던 것 같다. ​ 연필이야말로 미술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미디어이고, 이렇게 미디어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 – 컴퓨터를 도구로 작업하는 것은 미디어 아티스트 아니어도 누구나 가능한 것이고... –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 그렇다면 최근 세 개의 전시는 결국 연필이라는 미디어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인가? ​ 연필이라는 미디어를 바라보고 느낀 중년의 남자 이야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한계륜

Charlie Yang 찰리양

프랑스요리사가 렌즈에 담은 뉴질랜드의 은하수!

프랑스요리사가 렌즈에 담은 뉴질랜드의 은하수! Charlie Yang 챨리양 ​ 작품집 The Beauty of Gannets (Gannets 의 미) 2016 Land of the Long White Cloud New Zealand(길고 흰 구름의 뉴질랜드) 2018 2ndeditionofTheBeautyofGannets(Gannets의 미) 2018 The New Zealand Night Sky & Milky Way 2019 사진 Charlie Yang 뉴질랜드 은하수 특별한 사진전이 9월 21일 왕십리역 허브갤러리와 10월1일부터 30일까지 소테츠호텔즈 더 스프라지르 갤러리에서 열린다. ​ 사진가 챨리양 그는 프랑스 요리사다. 오랫동안 유명 호텔에서 쉐프로 일하다 7년 전 돌연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 그는 요리를 하며 이민 생활의 외로움을 신비롭고 아름다운 사진으로 승화시켰다. ​ ※ 내용을 여과없이 전달하기 위하여 문장표현과 어휘 선택을 다듬지 않았습니다. ​ 사진 Charlie Yang 뉴질랜드 은하수 이번 전시는 아지트문화갤러리의 기획으로 매년 ‘함께잇다’ 신진작가발굴 릴레이사진전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초대전이다. ​ 뉴질랜드의 풍경과 물개 그리고 새들과 은하수를 담아 몇 권의 작품집도 발간했다. 그랬던 그가 7년 반 만에 전시를 하며 그리던 고향을 찾는다. ​ 뉴질랜드에서 사진을 찍고 서울에서 전시를 준비하는 부부의 동행 또한 아름답다. 그들은 전시와 함께 아내가 남편에게 “나는 당신을 빛이라 부릅니다” 에세이집, 남편이 아내에게 “별이 빛나는 뉴질랜드의 은하수”를 선물로 9월 10일 출간했다. ​ 그들의 동행 길을 따라나서며 시 하나를 바친다! 사진 Charlie Yang 뉴질랜드 은하수 “아름다운 동행” 매일 카메라를 매고 나서는 남편의 길을 동행한다. 부부는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밤새 사진 작업을 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은 밤 하늘에 녹아져 내려 하늘이 되고 별이 되고 어둠이 되고 빛이 되고 그 아름다움으로 아내는 남편을 향해 남편은 아내를 향해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된다. - 양한모 요리하는 사진작가 Charlie Yang "요리하며 사진을 찍는 챨리양" ​ 은하수를 만나는 그날 밤, 또 다른 세상으로 날아와 나는 그 다른 세상을 살아갑니다. 태고의 신비 그대로, 원형의 자연은 때묻지 않은 그대로, 있어야 할 그대로의 환경과 사람이 조화롭게 숨을 쉬는 낙원의 섬 뉴질랜드 그 마지막 낙원에 와서 나는 또다른 세상을 봅니다. ​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하늘길 뉴질랜드 밤하늘을 가르는 세상을 바라보다 눈을 감고 내게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 광막한 하늘, 멀고 먼 하늘에 핀 은하수는 들꽃처럼 소복하고 밤에 피어난 은하수는 저마다 다른 세상의 사연으로 말을 건넵니다. ​ 하늘을 가득 채운 별이 빛나는 은하수 인생입니다. ​ 사진 Charlie Yang 뉴질랜드 은하수 사진 Charlie Yang 뉴질랜드 은하수 사진 Charlie Yang 뉴질랜드 은하수 나의 별은 어느 것일까요? 나의 별이 건네는 말은 누가 들을까요? ​ 다른 세상으로 온 나는 이제 또 다른 세상을 꿈꿉니다. 꿈을 꾸며 새로운 날개를 펴다 생각해봅니다. 내 삶 속, 이렇게 고요하고 평화롭던 기억이 있는지 어둡고 컴컴했던 내 삶 속, 이렇게 영롱하게 빛나던 순간이 있었는지. ​ 길고 하얀 구름의 땅 뉴질랜드, 그 깊은 평화, 더 깊은 어둠 위로 은하수를 펼칩니다. 밤하늘을 가득 덮은 수많은 별들, 가득한 별들은 보이지 않더라도 빛을 냅니다. ​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여전히 찬란한 빛을 품고 있는 그 별들처럼 지금 이 순간 나는 더없이 빛나는 은하수입니다. 하늘을 가득 채운 별이 빛나는 은하수 인생입니다. 사진 Charlie Yang 뉴질랜드 은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