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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보안여관

장소의 기억을 보존한 곳,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생된 문인들의 예술혼

현 현대미술 갤러리 <통의동 보안여관[우]>과 브리지로 연결되어 신축된 4층 건물 ‘보안 1942’와 ‘서점’ [좌]

 

장소의 기억을 보존한 곳

보갑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생된

문인들의 예술혼

- 건축가 미상, 민현식 Min Hyun Sik

 

세상에 없던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것이 많은 건축가들의 꿈일 수 있겠지만, 이미 존재하지만 의미 없어진 공간에 새생명을 불어넣는 것 또한 공간 디자이너로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경복궁 옆 서촌에는 갤러리이자 복합문화공간인 <통의동 보안여관>이 있다.

 

갤러리 <통의동 보안여관> 2층 객실이었던 창에서 보이는 경복궁 영추문

시대의 변화 속에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유휴시설에 생명을 불어넣어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생시킨 프로젝트인 <통의동 보안여관>이 청와대 가는길 경복궁 서편 영추문 맞은편에 현대미술 갤러리가 되어 구식의 붉은 벽돌 건물과 그 옆 반듯한 모습의 건물 한 동으로 나란히 서있다.

1936년 시인 서정주와 한 방에 기거하던 함형수를 비롯한 12명의 동인은 각자 10원씩을 내어 순수 서정성을 바탕으로 모더니즘을 비판하던 문예동인지인 ‘시인부락’ 제1집 200부를 발행하였다. 이 시인부락의 기획과 편집을 맡았던 서정주 시인이 묵고 있던 곳이 바로 ‘통의동 3번지 보안[保安] 여관’이었다.

이상, 이중섭, 구본웅 등의 문인과 화가들이 모여 일탈과 예술 혼을 키웠던 장소이자, 인근 청와대와 옛 공보처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철거된 경복궁 안 조선총독부와 또 그 총독부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던 시기 학예사들이 숙박계를 남긴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인근에 숙박시설은 이곳이 유일했으니 청와대 경비병들의 면회 가족이나 연인들의 기억 또한 이곳에 함께 쌓여 있을 것이다.

2004년 폐업한 보안여관을 주변 주택 두 채와 함께 부산을 근거지로 한 일맥문화재단의 최성우 대표가 2007년에 매입하고 신축을 계획한다. 보안여관 천장을 수리하던 중 2층 천장에서 ‘상량식 소화 17년 [1942년]’이란 목판을 발견한다. 이 목판의 발견으로 70년이 넘는 건물의 역사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에 근대 생활사를 보여주는 이 건물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신축이나 보수로 원형을 훼손하기보다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있던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옆 부지에는 민현식 건축가의 설계로 4층 건물을 신축하고 <보안 1942>로 명명하여 보안여관 현대 버전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2018.6.10-7.8 유쾌한 뭉툭 展

1936년 이전 일본인이 문을 열었고 2004년 폐업한 보안여관은, 2010년 원형을 보존한 상태의 갤러리로 재생되어 현대 예술작가들의 작품전과 예술 관련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가 취재차 방문했을 때는 김정헌, 주재환의

민중미술 ‘유쾌한 뭉툭 전’의 전시 흔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다음 전시의 준비작업이 한창이었다. 통의동 보안여관의 장소가 갖는 특수성으로 인해 작가의 특성과 맞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전 전시 ‘유쾌한 뭉툭’의 주재환은 안내서에서 “세계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한 줌의 소수에게는 진보로, 압도적인 다수에게는 야만으로 다가올 공산이 크다.”라는 영국의 고고학자 클라이브 폰팅의 저서 ‘진보와 야만’을 인용하고 있었다.

갤러리 <보안여관>으로의 탄생에는 복잡한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숙박시설이었던 <보안여관>이 박제화된 유물로 남지 않고 살아있는 문화의 일부로 활용되기 위한 노력은 적산가옥이라는 보안 여관의 현실이 일재 잔재라는 인식과 문화재로서의 보존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수많은 설계 변경과 건축허가를 두고 실랑이가 있었다고 한다. 갤러

리가 된 <보안여관>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보안1942>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2층 규모의 갤러리 <보안여관>의 진입은 경복궁 옆 영추문 맞은편 대로변에서 바로 이루어진다. 입구에 들어서면 숙박등록을 했을 작은 창문과 바로 옆 거울이 붙어 있고 안쪽 직선으로 길게 난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작은 방들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두 사람이 눕기에도 비좁아 보이는 고만고만한 크기의 방문에는 1, 2, 3 … 번호만 붙어있고 작은 불투명 유리창으로 빛이 들어온다. 나무 골조가 띠를 이루고 벽에는 색바랜 벽지가 그리고 벽체가 여기저기 뜯겨져 나갔다. 전선을 연결하여 불을 밝히던 흰색 사기 애자가 천장에 시간을 연결하고 향수를 돋게 하며 노출되어 있다.

 

비교적 개방감을 드러낸 2층 전시 공간

 

낡고 허물어지기도 해 골조가 드러난 방들에는 주제환의 민중미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낡은 목재 문짝과 옛 전

구의 스위치 그리고 노출된 전선 등이 작품의 진보적인 화풍과 하나가 되어 있다.

이거 뭐지, 퀘퀘한 냄새도 나는 것 같다. 안쪽에는 바닥에 사각으로 뚫린 구멍을 화장실로 사용하던 공간 그대로가 유지되고 있다. 2층 복도 안쪽 끝에 난 창을 통해 서촌의 한옥 전경이 정겹다.

목재계단을 통해 연결된 2층 갤러리 공간에는 벽을 철거해 방의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 목재골조만을 남겨 복도와 맞은편 방까지 공간을 개방한 구성의 공간이 있다. 2층 복도 끝에 난 창을 통해서는 경복궁 영추문의 미려함이 그대로 들어온다.

<보안여관>이 갤러리 공간으로 사용되는 단순한 프로그램이라면 민현식 원로 건축가 설계의 <보안 1942>의 프로그램은 카페, 책방, 전시장, 게스트하우스로 구성되어 1930년대 보안여관의 현대버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전통사상에서 기인한 비움의 구축이라는 대표적 건축 이념으로 건축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민현식건축가는 <보안 1942> 건축물을 <보안여관>에 비해 3미터를 뒤로 앉히고 지하 2층부터 외부 썬큰sunken 을 이용한비움의 공간을 통해 자연의 요소를 지하까지 끌어들이는 공간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4면의 적재적소에 창을 두어 서쪽의 서촌 마을 한옥의 정취와 동쪽의 경복궁 그리고 북쪽의 외부마당을 향한 개구부를 통해 북악산과 청와대까지를 전망하게 하여 현대적인 공간에서 우리의 전통을 느낄 수있는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한 권 서점'에서 보이는 경복궁 담장

 

영추문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안1942>

 

 

/ 한국 식문화공간 '일상다반사'

 

<보안 1942> 1층 ‘일상다반사’는 한국적인 차와 다과를 즐길 수 있는 최근 서촌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 식문화 공간이다.

2층 ‘B BRIDGE’에는 <보안여관> 전시장과 구름다리가 연결되어 있고, 보안 책방 ‘한 권 서점’에는 식물과 정원, 도시와 삶, 건축 등의 그곳과 이곳, 음악과 미술, 그리고 영화와 디자인 관련 소리와 이미지, 일기와 독백, 대화와 비평 등의 인물과 시선을 카테고리로 한 책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수요일 저녁 7시 독서모임이 진행된다. 수요일에는 원로 건축가 민현식 선생님, 일러스트레이터 이우만과의 대화가 기획되어 진행되고 있었다.

밤에는 주점으로 변신하는 책 읽는 공간

 

3층과 4층에는 ‘보안 스테이’가 위치하고 스테이의 내부는 협업 작가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집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안 스테이에서는 경복궁 경회루와 영추문 누각, 북악산과 청와대를 전망할 수 있다.

지하 1층 <보안 1942>는 <보안여관> 전시관으로 사용된다. 지하 2층 ‘보안 북스’에는 책과 화원이 묘한 분위기로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자유롭게 책 읽는 공간이면서 밤에는 주점으로 변신하는 공간인데 사전 정보 없이 들어간 방문객에게는 어리둥절한 곳이 될 수 있는 곳이다. 방문한다면 자유로움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정면의 경복궁은 법궁으로 불리는 데, 법궁이란 궁궐 중 으뜸이 되는 곳으로 왕이 임하는 제1궁궐을 뜻한다. 법궁이 아닌 궁을 ‘이궁’이라고 하며, 법궁의 중심되는 전각을 ‘법전’이라 한다. 경복궁의 법전은 우리에게 익숙한 근정전으로 600여 년 전 조선왕조 1395년 태조 4년에 지어졌다.

당시 내노라하는 권문세가들이 살았다는 경복궁 동쪽 북촌에 비해 서촌은 의관이나 역관 등의 전문직 중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경복궁 동쪽에 위치했지만 북촌으로 불리게 된 것은 청계천을 기준으로 북쪽에 위치한 까닭이라고 한다.

지하 2층에 자연요소를 보여주는 '썬큰 가든'

 

서촌에는 세종대왕 생가 등이 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옛골목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경복궁 서쪽 영추문 앞 서촌 마을에 자신만의 장소의 기억 을 고스란히 한 몸에 간직한 채 궁궐이 아닌 여관이라는 이름으로 버티고서 문화콘텐츠로 자리한 현대미술 갤러리 <보안여관>과 <보안 1942>를 살펴보았다. 근대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함께한 공간이었다.

경복궁의 중세와 전근대, 보안여관의 식민지와 근대, 청와대의 민주화와 현대가 공존하고 있는 공간인 청와대 앞 분수 광장에서 경복궁 쪽으로 걸어가는 길은 집회와 시위로 군데 군데 소란스럽다. 청와대를 지나서 경복궁 담장이 보이기 시작하고 경복궁 서문 영추문이 저만치 보일 때쯤 그 바로 건너편에 적색벽돌 건물인 <보안여관>이 보인다.

목욕탕 표시가 그대로 그려진 빨간색 간판을 달고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는 갤러리 <보안여관>은 누군가에게는 과하게 보일 수 있겠으나, 또 누군가에게는 이곳에서 생성되는 숱한 이야기로 인해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예술과 디자인이 사람을 이해하고 인생을 보듬을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온전히 해 낼 때 많은 사람들은 유쾌한 예술적 자극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소통하며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보안여관>이 온전히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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