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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세상은 썩어버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칼럼

형님, 세상은 썩어버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 박 석 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고산서원 원장 ​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 Kate Macate 편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훌륭한 소통 수단이었다. 대면할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 형님과 아우, 스승과 제자, 친구와 친구 사이에 편지를 통한 의사전달은 모든 것을 편리하게 해결해 줄 수 있었다. 편지가 더욱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부자·형제·사제·붕우 사이에 편지를 통해 학문을 논하고 사상논쟁을 벌여 위대한 학문이론과 철학이 탄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의 왕복 서찰을 통한 학문적 업적,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과 다산(茶山)정약용(丁若鏞) 형제 사이의 편지를 통한 학문논쟁, 다산과 문산(文山) 이재의(李載毅)의 4단 7정 논쟁을 예로 들 수 있다. ​ 손암과 다산은 네 살 터울의 동포 형제였다. 동급의 학문 수준, 뜨거운 개혁 의지, 나라를 통째로 변혁해버리고자 했던 두 형제, 그들은 불행한 처지에 구애받지 않고 고경(古經)을 토론하고, 현실정치의 해결책을 강구하면서 넓고 깊게 학술적 토론을 계속했던 지기사이였다. 세상은 변해 형은 절해의 고도 흑산도에서 갇힌 몸으로 귀양 살고 아우는 남쪽 끝 바닷가 강진에서 귀양 사는 몸으로, 편지를 통해서만 서로의 뜻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 “혈혈 천지간에 다만 우리 손암 선생만이 나의 지기(知己)가 되어주셨다. 이제 그분마저 가셔버렸구나!…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는 지기가 없다면 이에 죽은 목숨보다 못한 것이다.…”(寄二兒, 1816. 6.17)라는 편지는 며칠 전에 귀양지 흑산도에서 기다리던 아우 다산을 학수고대하다가 끝내 만나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형님의 부음을 듣고 고향의 두 아들에게 보낸 다산의 편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 불행한 시기, 만나고 싶어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두 형제의 귀양살이. 그들은 그런 참담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들의 안위에 대한 말 한마디 없이, 나라와 세상을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요순시대 구현을 위한 토론만을 계속했었다. ​ 요순시대가 요순시대인 이유는 당시의 법과 제도를 통해 공직자들의 근무 평가를 철저하게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적제(考績制)’라는 공직자의 근무 평가제도가 물샐틈없이 실행되었기에 세상이 맑아지고 깨끗해져서 요순시대가 이룩되었다고 했다. ​ 그러면서 『서경』의 익직(益稷) 편을 인용하여 고적제가 어떻게 시행되고 있었던가를 예로 들었고, 강력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조처해야만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부패와 타락에 분노한 다산은 외쳤다. “형님, 세상은 썩어버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天下腐已久矣)”라고 탄식하고는 우리 형제에게 국가 개혁에 대한 이론과 철학이 있지만, 우리 둘은 귀양 사는 역적 죄인으로 입을 열어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할 수 없는 처지이니 어찌해야 하겠느냐고 탄식한다. ​ 두 아들에게 보낸 다산의 편지는 학술적인 토론도 있지만,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생활철학이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잘나가는 벼슬아치 아들로, 나주 정씨 명문 집안의 후예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던 10대의 두 아들은, ‘신유옥사(辛酉獄事)’라는 화란을 당해 아버지가 먼먼 바닷가로 역적 죄인이 되어 귀양살이를 떠나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 다산은 귀양지에 이르자, 자신의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보다는 실의에 빠져 삶을 비관하고 있을 아들들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잊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에 온정신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산은 두 아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다. 조력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 모두와 가계(家誡) 모두를 번역해 놓았다. ​ 1973년 1년 가까이 보안법 위반으로 역적 죄인이 되어 독방에서 징역을 살며, 그런 글을 읽으며 너무나 큰 위안을 받았다. 그 뒤 나는 그 글들을 혼자만 읽기에는 너무 아쉬워, 젊은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번역해서 출간하였다. ​ 첫 번역서는 1979년에 출간되었으니 이제 40년이 넘었다. 중간에 개역도 하고 또 글을 추가하기도 해서 몇십만 부의 책이 독자를 찾아갔다. 다산은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귀양 살며 공식적으로는 18 제자를 길러냈다. 수준 높은 학자도 나왔다. 제자에게도 다산은 많은 편지를 보냈다. 성리학에 매몰된 고루한 유학자로서의 편지가 아니라 실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실성이 강한 편지를 보냈던 그것이 특징적이다. 독서를 권장하고 근검(勤儉)한 생활, 과수원과 남새밭을 가꾸는 일, 쌀과 보리 이외의 특용작물을 가꾸어 생계를 해결하라는 실용적인 내용이 많다. ​ 과거제도의 문제점에 그렇게 격노하면서도, 과거에 응시하여 출세하는 방법 이외에 다른 길이 없는 이상, 그 못된 과거 공부를 해서라도 세상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현실 중시의 교훈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현실·실용·실사구시의 실학자 모습을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다산의 지혜를 알아낼 수 있다. 사도가 땅에 떨어지고 교권이 흔들려버린 오늘, 다산의 편지는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안겨 주리라 믿는다. ​ 안부를 묻고 답하며, 막힌 소식을 전달하던 편지, 편지의 효용은 확대되어 학문을 토론하고 고통을 감내하며 아픔도 치유하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바뀌어 갔다. 특히 유배 살던 다산의 편지는 편지의 효능 모두를 포괄하는 위대한 서간문학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 ​

보좌진의 농단 - 7편 율기律己

다산 정약용의 눈높이로 본 한국 지방자치의 현장 고백서

정영오 행정학 박사 청렴연수원 청렴교육강사 前)함평군 기획감사실장 보좌진의 농단 ​ 『목민심서』에 “관아에는 마땅히 책객冊客을 두어서는 아니 되고, 오직 서기 한 사람을 두어, 내아의 일까지 살피도록 해야 한다” *는 글이 있다. ​ 책객은 수령이 개인적으로 데리고 다니는 사람으로, 요즘 같으면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이 취임할 때 함께 들어가는 비서진이나 보좌진과 비슷한 사람이라 볼 수 있겠다. ​ 다산은 이를 설명하면서 “책객은 아전과 관노들이 속이고 숨기는 짓을 못하도록 적발하는 일을 맡게 되는데, 오히려 아전들과 한통속이 되어 수령을 속이고 이권에 개입하게 된다. 아전들은 책객에게 토산물을 뇌물로 바치고, 책객은 아전들이 함부로 쓰는 것을 덮어 주고 그 이익을 나누어 먹는다. ​ 수령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간 뒤에도 아전들이 모여 이런 일들을 이야기하고 손뼉을 치면서 비웃을 것이다. 결국 수령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책객은 간사한 자가 되어, 수령과 책객 모두 추악한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이것을 모르면 안 된다”라고 경고하면서 책객은 폐단이 많으므로 이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 ‘주인-대리인(Principal-Agent)’이라는 이론이 있다. ​ 우리는 어떤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처리한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와 잘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의 대부분은 이와 같은 거래 혹은 계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계약 당사자 사이에 수많은 주인-대리인 관계가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 국민과 대통령 또는 국회의원,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장 혹은 지방의회 의원, 국민 혹은 주민과 공무원 등등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이와 같은 관계가 성립된다.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대리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현대에 와서는 입법, 사법, 행정, 지방자치단체 등 모든 공공기관을 대리인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 주인主人-대리인代理人 관계는 필연코 문제가 발생한다. 두 당사자가 서로 상이한 이익을 탐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상황이 대리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주인이 손해를 보게 되는데 이를 대리손실(agent loss)이라 한다. ​ 이러한 손실이 발생하는 원인을 찾아 손실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주인-대리인 이론의 핵심이다. 지방자치와 관련하여 이러한 대리손실이 발생하는 원인과 이러한 손실을 줄이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 牧民心書(목민심서)』 律己編(율기편) 제4조 屛客(병객)에 나오는 글로 “凡官府不宜有冊客(범관부불의유책객), 唯書記一人(유서기일인), 兼察內事(겸찰내사)”라 쓰고 있다. ​ ​ 첫째, 정보 소유의 문제이다. 주인과 대리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존재할 경우 정보를 많이 가진 쪽에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정보를 이용해 보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정보는 주인보다 전문가인 대리인 쪽이 많이 가지며 주인도 모르는 정보를 대리인이 감출 수 있다는 것이다. ​ 지방자치의 경우 일반 주민보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지방의원 혹은 이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이 더 많은 고급 정보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유용한 정보는 일부러 공개를 미루거나 사후에 소극적으로 공개하고 심지어는 정보를 왜곡하거나 조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리인이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여 주인을 현혹시킬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 둘째, 주인이 바라는 것과 대리인이 선호하는 것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주인은 대리인이 주인의 목적이나 선호를 충실히 반영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대리인은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게 된다. 지방자치의 경우 주민의 통제나 감시가 느슨한 틈새를 이용하여 대리인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기에 영합하여 방만한 사업을 벌일 수도 있다. ​ 이에 필요한 재원을 메우기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여 어려운 지방재정에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선거에 의하여 취임하는 대리인이 차기 선거를 의식하여 벌이는 행동들은 눈여겨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 셋째, 기준에 미달하는 대리인을 선택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한다. 주인은 대리인을 선택할 때 대리인이 위임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하여 ‘선택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지방자치 현장에서 볼 때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 출마한 후보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정보 등으로 인하여 ‘역선택 현상’이 발생하게 되며, 이로 인하여 선출된 대리인들은 전체의 이익보다는 사익이나 추종자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 넷째,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들 수 있다. 대리인은 업무를 수행할 때 수탁자로서 필요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그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이 대리인의 행동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관찰하거나 감시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용하여 기회주의적 속성을 드러내고 도덕적으로 흐트러진다는 것이다. ​ 지방자치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대리인들의 비리와 부패는 도덕적 해이道德的 解弛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매년 실시하는 공공기관에 대한 청렴도 측정, 공직자 행동강령 실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은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극단의 통제 장치인 것이다. ​ ⓒJoakim Honkasalo 우리는 주인을 무시한 대리인의 수많은 횡포를 접하며 살고 있다. 따라서 대리인을 선택함에 있어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주인을 주인으로 대접하는 대리인을 선택해야 한다. 특히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인, 행정인 등 공공기관 대리인들은 주인을 위한 정보는 적극적으로 공개하여 공유하고, 부패와 비리에 가담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소속 공무원이 아닌 사람을 단체장의 보좌관이나 비서진으로 임용하고 있다. 이들 보좌진이 자치단체의 업무와 관련하여 사고를 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현대판 책객의 폐단이 아닐 수 없다. ​ 이들이 몸통인지 깃털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사, 인사, 보조금 등의 이권에 개입하거나 부정청탁과 부패에 연루되는 사건들을 보면서 책객을 두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한 『목민심서』의 경구는 선견지명이 있는 지적이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공식적인 조직 시스템을 무너트리는 적폐이다. ​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결국 지방자치단체장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보좌진은 간사한 자가 되어, 지방자치단체장과 보좌진 모두 추악한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이지 전부가 아니다. ​ 지방자치단체장은 전체 주민의 대표이지 지지자들만의 두령이 아니다. 행정의 혜택은 주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 본질적인 선결 과제는 돈이 들지 않는 선거로의 제도 개혁과 함께 공정하고 투명한 행정으로의 개혁이다.

임명직 공직자의 무거운 책임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칼럼

임명직 공직자의 무거운 책임​ ​ 박 석 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고산서원 원장 ​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사진 Jeesung Kim - Sungkyunkwan University ​ 『목민심서』는 알기 쉽게 말하면 공직자들이 공무를 수행하면서 지키고 행해야 할 지침서이자 바이블입니다. 중국과 조선의 옛날 공직자들이 행했던 모범적인 사례를 열거하여 그렇게 공직생활을 해달라는 요구이기도 하지만,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내용은, 다산 자신이 공직자로서 생활할 때의 사례들을 열거하여 그런 방법으로 공무수행을 해달라는 대목들입니다. 이로써『목민심서』는 이론서가 아닌 ‘행동지침서’임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산은 일생에 단 한 차례 목민관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이야기가『목민심서』 부임 6조(赴任六條) 중, ‘사조(辭朝)’ 조항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 “내가 곡산도호부사가 되어 (1797년 7월) 하직하는 날, 희정당 (熙政堂)에 들어가 임금을 뵈었다. 임금께서, ‘옛날의 법률에 목민관이 탐욕스러워 불법을 저지르거나 나약하여 직임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전관(銓官: 인사대상자를 골라서 추천해 주는 벼슬)에게 벌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비(中批: 임금의 특명으로 발령함)로써 임명된 사람은 더더욱 삼가고 두려워해야 하느니, 전관에게 죄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 내가 중비로 사람을 등용했다가여러 번 후회하고서도 또 경계하지 않고 이름을 달리 써넣어 낙점(落點)했으니,(이때 이조(吏曹)에 세 번이나 다른 사람을 천거했으나, 임금께서 스스로 내 이름을 써넣으셨다.) 이는 중비와 다름이 없다. 가서 임무를 잘 수행하여 나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도록 하라.’하셨다. 나는 황공하여 진땀이 등에 배었는데, 지금에 이르도록 감히 그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라는 긴 이야기를 했습니다. ​ 본디 문관은 이조에서, 무관은 병조에서 전관들이 사람을 추천받아 골라서 적임자 3인을 임금께 추천하면 임금이 낙점하여 벼슬에 임명합니다. 하지만 다산은 반대자가 많아, 전관의 추천이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이 특지(特旨)로 다산의 이름을 써넣어 낙점하여 목민관으로 임명케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 “임금께 하직 인사를 올린 뒤 대궐 문밖에 이르거든, 곧 몸을 돌이켜 대궐을 향해 마음을 세워 스스로 맹세한다. 마음속으로, ‘임금께서 천 사람, 만 사람의 백성들을 오로지 소신(小臣)에게 맡겨 사랑하며 다스리도록 하셨으니, 소신이 감히 그 뜻을 공경히 받들지 아니한다면 죽어도 여죄(餘罪)가 있으리라.’라고 다짐하며, 다시 몸을 돌려 말을 타야 한다.” 정조의 특별한 배려로 목민관 직을 얻어 떠나던 다산의 다짐과 태도가 새삼스럽게 생각되는 때입니다. ​ 어떻게 해서 높은 벼슬인 장관직에 임명되었고, 어떻게 해서 고위 공직자의 직위에 오를 수 있었던가요. 대통령의 뜻을 공경스럽게 받들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철저하게 공무를 수행해야 할 고관대작들, 이런저런 일로 말썽을 일으켜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말실수로, 잘못된 생각이나 처신 때문에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요. 장관이나 고관의 임명은 옛날로는 중비에 해당합니다. ​ 임명권자의 뜻을 공경스럽게 받들며 온갖 정성을 다 바쳐, 조심스럽고 삼가고 두려운 마음으로 직무에 임해야 합니다. 세상을 요란하게 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으니, 다산의 당부가 간절하게 생각됩니다. ​ 귀한 벼슬에 선택받은 분들께 묻습니다. 국민이 짜증나고 답답하게 여기는 일이 없는 날은 언제 올까요.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지도자는 집안 단속을 잘 해야 - 6편 율기律己

다산 정약용의 눈높이로 본 한국 지방자치의 현장 고백서

정영오 행정학 박사 청렴연수원 청렴교육강사 前)함평군 기획감사실장 지도자는 집안 단속을 잘 해야 ​ 목민심서에는 “몸을 닦은 후에 집안을 간수하고, 집안을 간추린 후에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천하의 통일된 이치이다. 고을을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집안을 다스려야 한다”고 쓰고 있다. ​ 다산은 이를 설명하면서 “한 고을을 다스리는 것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 집안을 다스리지 못하고 어떻게 한 고을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 지방자치가 발전하면서 민선 자치단체장의 권한이 과거에 비해 커졌고, 지방분권이 확대되면서 자치단체장의 권력은 점점 커져 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에 비례하여 이른바 규방의 간섭 또한 만만치 않다. ​ 관사든 사택이든 규중에는 친인척이 드나들고, 선거에서 지지했던 측근들이 출입하고, 요직 간부의 부인들이 모여 이른바 온갖 친목을 다진다. 때로는 봉사활동을 명분으로 떼 지어 다니면서 세勢를 과시하기도 한다. 이를 지켜본 주민들은 ‘우리 군은 사모님이 군수여’라고 비웃기도 한다. 1)『 牧民心書(목민심서)』 律己編(율기편) 제3조 齊家(제가)의 첫 문장은 “修身而後齊家(수신이후제가), 齊家而後治國(제가이후치국), 天下之通義也(천하지통의야), 欲治其邑者(욕치기읍자), 先齊其家(선제기가)”라 쓰고 있다. ​ 다산은 말한다. “남편을 공경하지 않는 아내가 없고,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아들이 없거늘 어찌 아내와 자식이 수령인 남편과 아비를 속이겠는가. 그러나 아내와 자식이 사소한 정에 끌리고, 재물에 유혹되어 쓸모없는 사람을 재목으로 천거하고, 송사나 옥사에 간여하고, 청탁이 행해지니 간사한 무리들의 계교와 이간질이 문제로다. 나는 이런 경우를 허다하게 보았다. 아내와 자식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니 이들의 말을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면 큰 실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하면서 ​ “청탁이 행해지지 않고 뇌물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곧 집안을 바로잡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 정약용 선생은 1762년 진주목사晋州牧使를 역임했던 정재원丁載遠(1730~1792)과 해남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친의 임지인 전라도 화순, 경상도 예천 및 진주 등지로 따라다니며 부친으로부터 경사經史를 배우면서 과거시험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16세가 되던 1776년에는 이익의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15세 되던 해에 홍화보洪和輔의 딸 풍산豊山 홍씨와 결혼한다. 선생의 아내 홍 씨는 내조의 달인이었다. 선생이 1784년(정조 8)에 지은 이 시를 보면 홍 씨의 인품과 청렴함을 알 수 있다. ​ 다산이 22세 때 성균관 입학 자격시험 격인 경의진사과經義進士科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성균관에서 공부하다 모처럼 집에 왔는데 아내가 여종을 회초리로 때리고 있었다. ​ 집에 먹을 것이 없어 여종이 이웃집 밭에서 호박을 훔친 일로 아내가 여종을 야단치는 것을 목격하고 지은 시이다. 그만큼 아내 홍씨는 품성이 맑았음을 알 수 있다. 2) 목민심서(牧民心書)』 律己編(율기편) 제3조 齊家(제가) “干謁不行 (간알부행), 苞苴不入(포저불입), 斯可謂正家矣(사가위정가의)”라고 쓰고 있다. ​ 시 제목이「남과탄南瓜嘆(호박을 한탄함)」이다. 남쪽의 오이(과瓜)를 한탄한다는 뜻이다. 남쪽의 오이(남과南瓜)는 호박을 말한다. 시를 감상해 보자. ​ 苦雨一旬經路滅(고우일순경로멸) 궂은비 열흘 내려 여기저기 길 끊기고 ​ 城中僻巷烟火絶(성중벽항연화절) 성안에도 시골에도 밥 짓는 연기 사라져 ​ 我從太學歸視家(아종태학귀시가) 태학에서 돌아와 집을 살펴보니 ​ 入聞譁然有饒舌(입문화연유요설) 문안에 들어서자 시끄럽고 야단법석 ​ 聞說罌空已數日(문설앵공이수일) 들어 보니 며칠 전에 이미 끼닛거리 떨어져서 ​ 南瓜鬻取充哺歠(남과죽취충포철) 호박으로 묽은 죽 쑤어 허기진 배 채웠는데 ​ 早瓜摘盡當奈何(조과적진당내하) 어린 호박도 다 없어졌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 晩花未落子未結(만화미락자미결) 늦게 핀 꽃 지지 않아 아직 열매되지 않았고 ​ 隣圃瓜肥大如缸(인포과비대여항) 옆집 밭의 항아리만큼 커다란 호박 보고 ​ 小婢潛窺行鼠竊(소비잠규행서절) 계집종이 남몰래 숨어 쥐처럼 훔쳐 와서 ​ 歸來效忠反逢怒(귀래효충반봉노) 충성을 다 바쳤으나 도리어 야단맞는구나 ​ 孰敎汝竊箠罵切(숙교여절추매절) 누가 네게 훔치라고 가르쳤냐며 회초리 꾸중 호되네 ​ 嗚呼無罪且莫嗔(오호무죄차막진) 아 슬프다 죄 없는 아이 이제 그만 화 풀고 ​ 我喫此瓜休再說(아끽차과휴재설) 이 호박 나 먹을 테니 더 이상 말을 말고 ​ 爲我磊落告圃翁(위아뇌락고포옹) 내가 밭 주인에게 떳떳이 사실대로 고하리다 ​ 於陵小廉吾不屑(어능소렴오불설) 오릉 중자 작은 청렴 내 달갑지 않소 ​ 會有會風吹羽翮(회유회풍취우핵) 나도 장차 때 만나면 벼슬에 오르겠지 ​ 不然去鑿生金血(불연거착생금혈) 그게 되지 않으면 금광 찾아 떠나야지 ​ 破書萬卷妻何飽(파서만권처하포) 만 권 서적 독파했다고 아내 어찌 배부르랴 ​ 有田二頃婢乃潔(유전이경비내결) 밭 두 뙈기만 있었어도 계집종은 깨끗했을 텐데 ​ 호박을 한탄함(南瓜嘆, 남과탄)/지은이 정약용 ​ 다산은 홍 씨와의 사이에 6남 3녀를 낳았는데 2남 1녀만 살아남았다. 나머지는 마마로 잃었다. 큰아들은 학연學淵(1783~1859)이고, 둘째 아들은 학유學游(1786~1855)이다. 다산은 유배 시절 아들들에게 편지를 자주 보냈다. 다산의 두 아들에 대한 가르침은 폐족廢族으로써 마음가짐과 학문하는 방법 등 삶과 학문 전반에 걸쳐 있었다. 어떤 곤경과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근면하고 검소하게 부지런히 살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강조하였던 것이다. ​ 대한민국의 현실을 볼 때 권력자들의 측근과 관련된 수많은 사건들이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지 않은가. 돌이켜 보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서부터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인 시장·군수·구청장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아내·형·동생·아들을 비롯한 측근들의 부정과 비리들을 수없이 보아 왔다. ​ 심지어 측근들의 국정 농단으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상황에까지 이르지 않았던가. 이와 같은 부패는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반드시 척결해야 할 적폐가 아닐 수 없다. ​

코로나 파도와 사회의 지구력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칼럼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전 통일평화연구원장 ​ 저서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국제연대』, (공저) 한울, 2018 『평화를 위한 끝없는 도전』(공저), 북로그컴퍼니, 2018 『소련형 대학의 형성과 해체』(공저), 진인진, 2018 『냉전의 섬 금문도의 재탄생』, (공저), 진인진, 2018 외 다수 ​ 7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게 된 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속살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 코로나 제1차 파도와 이에 후속한 소강 국면, 그리고 제2차 파도는 정체불명의 위험에 대응하는 한국 사회의 순발력과 지구력을 차례로 시험하고 있다. 신규 확진자가 하루에 100명 이상 발생하는 기간을 코로나의 파도라고 정의한다면, 제1차 파도는 2월 22일부터 짧게는 3월 14일까지 약 20일간, 길게는 4월 2일까지 약 40일간 지속되었다. 이 제1차 파도는 우리 사회를 빠르게 방역 중심주의로 재편하였다. ​ 국민들은 코로나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정부도 적절하게 대응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순발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최초의 국면을 지배했던 원리는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이었고, 대구와 신천지교회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 이후 약 4개월간의 소강 국면이 지속하였다. ‘생활속 거리 두기’라는 생소한 개념이 전면에 등장했고, 코로나 취약 집단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제1차 파도에 의해 충격을 받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초유의 재난지원금 제도가 도입되었다. ​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일찍 코로나 유행을 경험하였고, 또 빨리 진정되었기 때문에, 한국은 방역 모범국으로 인정되었고, 일부에서는 K 방역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 마스크는 공공외교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상황에 대한 희망적 낙관적 전망이 ‘포스트 코로나’ 논의를 가능하게 했다. ​ 방역 중심주의에 대한 도전과 일탈 ​ 그러나 광복절 휴가와 함께 제2차 파도가 밀려왔다. 위기 상황에서 자학은 금물이지만, 봄이 온 줄 알고 겨울잠에서 깨어 밖으로 뛰쳐나왔는 데 주변에 찬 기운이 쟁쟁하게 남아있다는 그것을 느끼고 ‘아차’ 하는 개구리 신세라고나 할까. ​ 포스트 코로나가 아니라 당장 코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엄중한 현실 앞에서 정부나 국민 모두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와 방역 당국은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고육지책으로 2.5단계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8월 16일부터 시작된 제2차 파도에 직면하여 우리는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했다. ​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정부의 방역 중심주의를 공공연하게 비판하고 무시했으며, 여기에 공공의료 확대 정책에 대한 의료계 내부의 반발이 겹쳐지면서 피로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방역에 대한 순발력보다 경제적 어려움과 일상적 지루함을 견뎌낼 수 있는 지구력과 인내심이 더 중요해졌다. ​ 방역당국은 신체적 방역을 넘어 심리적 방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것은 곧 방역 거버넌스의 지속가능성에 방역 중심주의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사회 집단들을 어떻게 포용하고 이들과 공존할 것인가에 관한 사회철학적 고민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역 중심적 거버넌스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에 있는 집단들을 방역 질서에 묶어 둘 수 있는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보상체계, 그리고 사회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 재정적 우려 때문에 정치권은 제2차 재난지원금의 원칙을 선별적 지원으로 하기로 합의하였지만, 전 국민 지원제도와의 논쟁이 남아있고 코로나 방역 현장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경제적 유인책도 필요한 것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 장기 코로나 시대 ​ 제2차 파도가 정점을 지나기는 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 파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2차 파 도가 끝나더라도 코로나 시대는 지속할 것이며, 올해 늦가을 또는 초겨울에 제3차 파도가 밀려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 세계 곳곳에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완성되려면 적어도 내년을 기다려야 한다 고 한다. 장기 코로나 시대인 것이다. ​ 우리가 코로나와 함께 살게 되고, 나아가 지금 예상하지 못하는 또 다른 위험이 늘 우리를 괴롭힌다면, 많은 사회학자가 관심을 가져왔던 사회의 질에 관한 논의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위기에 그때그때 대처할 수 있는 사회의 탄력적 전환능력이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 한국인들은 코로나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기보다는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성공적 방역 여부는 코로나에 대한 민감성뿐 아니라 사회체제의 지구력에 달려있다. ​ 그것은 경제적 불황과 사회적 스트레스에 오래 견딜 수 있는 능력인데, 그것은 사회구조와 제도 그리고 문화 등 여러 분야를 관통하고 있다. 그것은 공동체 의식과 사회의 구성원들 상호 간의 격려와 배려를 핵심적 덕목으로 하고 있다. ​ 나의 삶이 항상 다른 사람들과 연대 속에서 지속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 - 5편 율기 律己

다산 정약용의 눈높이로 본 한국 지방자치의 현장고백서

정영오 행정학 박사 청렴연수원 청렴교육강사 前)함평군 기획감사실장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 ​ 다산은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누구나 비밀스럽게 하겠지만, 한밤중에 하는 행위도 아침이면 이미 드러 난다”고 강조하였다. ​ 선생은 위 글에서 “아전들이 수령을 유혹하기를 ‘이 일은 비밀로 하기에 아무도 모릅니다. 소문을 퍼뜨리면 오히려 저에게 해로울 뿐이니 제가 감히 퍼뜨리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한다. ​ 수령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뇌물을 받게 되지만, 아전은 문을 나서자마자 마구 떠벌려 자기의 경쟁자를 누르고자 하니, 소문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진다. ​ 수령은 깊이 들어앉아 있기 때문에 고립되어 그 소문을 듣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설명한다. ​ 목민관이 바르지 못하면 그 고을의 속 사정을 훤히 잘 아는 아전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경우가 많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아전들은 뇌물을 매개로 이권에 개입하여 주무르려 했던 것이다. 아전들 간에 수령에 대한 충성 경쟁도 문제이다. 수령은 눈이 어둡고 귀가 밝지 못했다. 아전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은 속이거나 제대로 된 정보를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백성들은 관원을 ‘낮도둑’이라 하고, 고을의 관아를 ‘낮도둑을 모아 기르는 못자리’라고 했다. 이기李墍의 『송와잡설松窩雜說』에 나오는 이야기다. “조선 초기 함경도는 야인의 땅에 접해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의 크고 작은 수령은 모두 무관으로 뽑아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 게다가 조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수령들은 거릴 것이 없었다. 형벌이 가혹했고, 세금을 마구 뜯어냈다. 백성들은 관원을 ‘주적晝賊(낮도둑)’이라고 했고, 관청을 ‘취회주적장앙聚會晝賊長秧(낮도둑을 모아 기르는 못자리)’라고 불렀다. 비록 지나친 말이지만, 이 말을 듣는 목민관들은 응당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 지방자치 시대에 있어서 지방 권력의 부패는 선거의 폐단이 원인이라고 본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금품과 향응의 살포가 큰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유권자의 규모가 작은 선거일수록 금품에 의한 부정선거가 될 소지가 높다. 유권자 수가 적으면 유권자들의 지지 성향을 일일이 분석할 수 있다. 그 분석 결과에 따라 당선 가능한 예상 득표수를 계산하여 자신의 지지가 확실한 유권자를 대상으로 이른바 매표[買票]하여 당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 1)『 牧民心書(목민심서)』 제2부 律己編(율기편) 제2조 淸心(청심, 깨끗한 마음)에서 “貨賂之行(화뢰지행), 誰不秘密(수불비밀), 中夜所行(중야소행), 朝已昌矣 (조이창의)”라 쓰고 있다. 2) 이기李墍, 조선 명종 때 부제학과 이조판서를 지냈다. 3) “四知(사지), 天知神知我知子知(천지신지아지자지)”라는 글이다. 출처 대한민국 국회(공공누리 저작물) 이처럼 불법 금품 선거운동은 엄청나게 많은 선거자금이 소요될 것이다. 특히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이러한 금품 살포로 당선될 경우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지역의 주민과 공무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 간혹 이러한 폐단들이 적발되어 언론 매체를 장식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각종 공사와 용역 부정, 직원의 사무관 승진인사와 채용을 미끼로 한 비리, 각종 보조금 특혜 지원 등이 그것이다. 주민들은 이러한 부패는 불법 선거운동에 들어간 경비를 충당하고 다음 선거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행위라고 인식한다. ​ 선거로 취임하는 자치단체장들의 이러한 부패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금품과 향응에 의한 선거운동을 철저히 배격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유권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확대하여 상시 선거운동을 대폭 허용하여야 한다. ​ 현재 공직선거법은 사전 선거운동을 엄격히 금지하기 때문에 입지자들은 선거 기간 외에는 전혀 활동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은 입후보하고자 하는 입지자들의 능력과 자질을 파악할 수 없다. ​ 이러한 검증 없이 정해진 짧은 선거 기간 중에 잠시 출연하여 자신을 알리고,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불안하니까 금품과 향응 제공이라는 편법을 써서라도 당선되고 보자는 식으로 덤비게 되는 것이다. ​ 만약 선거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부정과 부패를저지르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낮도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그 자치단체는 낮도둑을 모아 기르는 못자리이자 도둑놈 소굴이라고 폄하한들 할 말이 없을 것이다. ​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아무리 비밀스런 거래라도 이미 ‘하늘과 땅이 알고, 나와 네가 안다’는 경구는 예나 지금이나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 최소한 금품 선거와 부패는 없애야 하지 않겠는가 ​

공직자의 기본적인 의무는 청렴 - 4편 율기律己

다산 정약용의 눈높이로 본 한국 지방자치의 현장 고백서!

정영오 행정학 박사 청렴연수원 청렴교육강사 前)함평군 기획감사실장 공직자의 기본적인 의무는 청렴 ​ “청렴이란 목민관이 지켜야 할 근본적인 의무이다. 모든 선의 원천이자 모든 덕의 뿌리이다. 청렴하지 않고는 목민관의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는 다산이 늘 강조했던 사항이다. ​ 선생이 황해도 곡산부사로 있을 때 쓴 행담 기록인『상산록象山錄』에서 “청렴에는 세 등급이 있다”고 하고 있다. “최상의 등급은 봉급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먹고 남은 것이 있어도 가져가지 않으며, 벼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말 한필로 조촐하게 가는 자이니, 이는 아주 옛날의 청렴한 관리이다”라고 한다. ​ “그 다음 등급은 봉급 외에도 명분이 바른 것은 먹고 바르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며, 먹고 남은 것은 집으로 보내는 자이니, 이는 중고시대의 청렴한 관리이다.” 그러면서 당시 관리들의 청렴 등급이 최하위인 세태에 대해서 한탄 한다. “최하의 등급은 이미 관례가 된 것은 비록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먹으며, 그러한 관례가 없더라도 죄가 되지 않고, 향임의 자리를 팔지 않거나, 재감災減(재해를 입은 전답의 세금을 감면해 주는 것)을 훔치지 않으며, 송사와 옥사를 팔지 않으며, 세금을 과다하게 부과하여 착복하지 않는 것은 먹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른바 오늘날의 청렴한 관리이다”고 비통해하고 있다. ​ 다산 선생은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옛날 같으면 최하에 속하는 관리는 반드시 끓는 물에 삶아 죽이는 형벌에 처했을 것이라고 한탄하면서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 우리나라도 현대적 의미의 공무원제도가 수립된 1949년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청렴을 공무원의 의무로 정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현행 국가공무원법 제61조와 지방공무원법 제53조에서도 청렴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 즉 “공무원은 직무와 관련하여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례謝禮·증여贈與 또는 향응饗應을 주거나 받을 수 없다. 공무원은 직무상의 관계가 있든 없든 그 소속 상관에게 증여하거나 소속 공무원으로부터 증여를 받아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 牧民心書(목민심서)』 제2부 律己編(율기편) 제2조 淸心(청심, 깨끗한 마음)에 나오는 글이다. 茶山은 위 글 첫머리에서 “廉者(염자), 牧之本務(목지본무), 萬善之源(만선지원), 諸德之根(제덕지근), 不廉而能牧者(불염이능목자), 未之有也(미지유야)”라고 강조하고 있다. ​ 출처 대한민국 국회(공공누리 저작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청렴문화 정착과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수많은 제도들이 운영되고 있다.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을 비롯하여, 2016년 9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각 공공기관마다 제정·운영하고 있는 ‘공직자 행동 강령’, ‘공익신고자 보호법’, 2020년 1월부터 시행된 ‘공공재정부정청구 금지 및 부정이익 환수 등에 관한 법률’, 공공기관에 대한 ‘청렴도 측정 공표’, ‘부패영향평가’ 등의 제도가 그것이다. ​ 청렴이 우리 사회에 완전하게 뿌리내릴 수만 있다면 제도의 수가 문제이겠는가. 국회심의 중 청탁금지법에서는 제외되었던 ‘이해충돌방지법’도 21대 국회에 들어 정부가 다시 발의하였으니 곧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 다산 선생은 “염자廉者(청렴한 자)는 청렴함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知者(지식이 많고 사리에 밝은 자)는 청렴함을 이롭게 여긴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보통 재물을 크게 욕심내지만, 재물보다 더 큰 것을 욕심내는 경우에는 재물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재물을 욕심내다가 관직을 박탈당하고 귀양 가서 등용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혜가 높고 사려가 깊은 사람은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을 바라게 됨으로 청렴하게 되는 것이니, 생각이 여기에 미친 염자나 지자라면 청렴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대통령이 국무위원 등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검증 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행정부를 견제하는 제도인 국회 인사청문회와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거직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 과정을 살펴보면 다산의 지적이 가슴에 와 닿는다. ​ 주로 쟁점이 되는 사항을 보면 부동산 투기나 학군 배정을 위한 위장전입, 부동산 다운 계약, 논문 표절, 본인 또는 아들의 병역 특혜, 부인이나 자녀 취업 특혜, 세금 탈루 등 대부분이 청렴성 및 도덕성과 관련된 사항들임을 알 수 있다. 지혜가 짧고 사려가 얕은 사람은 눈앞의 욕심만 생각하고 멀리 있는 이익은 보지 못하는 격이 아닐 수 없다.

다산의 두 아들 (학연, 학유) 이야기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칼럼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중등학교 학생이 제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학교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어보았다면서, 글이 어려워 알아볼 수 없는 내용이 많았지만, 다산이 두 아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가 많았고, 책을 많이 읽으라하며,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읽으라는 글이 있었다면서, 그런 편지를 받아 읽으면서 자란 두 아들은 뒤에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는가를 알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들들의 답장은 전해지지 않아, 일방적인 아버지의 편지만 열거된 책이어서, 그런 궁금증을 지님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런 편지에 답장을 줄 겨를을 얻지 못해, 그냥 오랜 세월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2004년 마침내『다산정약용평전』쓰기를 마쳤는데, 다산의 후예들이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떤 인품의 인물이었는가를 기록하는 부분에서, 간단한 답을 했습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자신의 집안이 폐족이 되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언제까지 우리 가문이 폐족으로 남아 있어야 하냐면서, 폐족이 폐족에서 벗어나는 길이 딱 하나 있으니, 그것은 폐족이라도 무한정하게 독서를 하다보면 반드시 폐족에서 벗어날 길이 있노라고 확신한다며, 두 아들에게 그렇게도 간절하게 독서를 권장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어길 수 없던 효자 두 아들은 참으로 많은 독서를 했습니다. 다산 집안이 국가로부터 폐족에서 벗어났다는 명확한 징표로, 다산의 큰아들 학연(學淵)에게 벼슬이 내려졌습니다. 정학연이 아버지의 제자이자 자신의 친구인 강진의 황상(黃裳)에게 보낸 편지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1852년 8월 4일자의 편지이니 다산이 세상을 떠난 16년 뒤의 일입니다. 나는 나라의 은혜를 입어 6월에 감역(監役:종9품 벼슬)에 제수되었소. 음직으로 벼슬을 받아 집안이 마치 고목에 봄이 든것만 같구려. 안방에서도 감축하고 원근에서 모두 축하해주니 옛날의 구슬퍼하는 감회를 더욱 누르기가 어렵네. 『( 다산정약용평전』)이라는 내용에서 그때의 사정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비록 하급의 벼슬이지만 학자에게 내리는 감역이라는 벼슬은 직급이야 낮지만 귀하게 취급받는 벼슬입니다. 글을 하는 선비라면 가장 명예로운 호칭이 학문과 덕행, 절의가 뛰어나 조정으로부터 부름을 받는 징사(徵士)가 된 것이니까요. 뒷날에 정학연은 벼슬이 올라 사옹원주부(主簿:종6품)의 위계에도 올랐습니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분원(分院)의 초등학교 교정에는「주부정학연선정 비(主簿丁學淵善政碑)」라는 비들이 서있는 것을 보면 고향 집에서 가까운 분원의 주부 벼슬을 역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정학유는 세상에 전해지는 「농가월령가」라는 유명한 글의 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나 박식하고 글솜씨가 뛰났는지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시를 잘 짓고 글 잘하는 선비로 대접 받았던 사실은 여러 곳에서 증명됩니다. 추사 김정희와 정학유는 동갑내기 친구로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자신보다 1년 먼저 세상을 떠난 정학유의 부음을 알리는 추사의 편지가 전합니다. 서로 함께 친했던 강진의 황상에게 보낸 추사의 편지에, “운포(정학유)가 중병으로 설 전부터 위독하다더니, 마침내 이달(2월) 초하룻날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말았네, 이런 막된 세상에 이러한 사람을 어디서 다시 보겠는가?” (如此末俗 如此人 何處更見耶) (『완당전집』중「여황생상與黃生裳」)이라는 글입니다. 추사 같은 높은 안목으로 까다롭게 인물과 글을 평하던 분이 그런 평가를 내렸다면 정학유의 인품은 넉넉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당대의 문사 해거재 홍현주(정조의 부마)는 “두 형제 모두 박학한 선비인데다 시에도 뛰어났다. (博學·工詩)”라고 표현했으니, 위의 내용들은『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저에게 질문한 학생의 편지에 답장으로 충분하리라 믿어집니다.

당파싸움, 그칠날은 없을 것인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칼럼

당파싸움, 그칠날은 없을 것인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고산서원 원장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 河山有遷變 朋淫破無日 一夫作射工 衆喙遞傳驛 詖邪旣得志 正直安所宅 ​ 산천은 변해 바뀔지라도 당파 짓는 나쁜 버릇 깨부술 날이 없구려 한 사람이 모함하면 뭇 입들이 차례로 전파하네 간사한 사람들이 세력 잡았으니 정직한 사람 어느 곳에 둥지 틀랴 (····) -「고의(古意)」 1800년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당쟁의 불길이 솟아오른 세상을 간파한 다산은 질곡으로 빠져들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면서, 당파싸움에 희생을 면하지 못할 불행한 미래에 불안을 떨굴 수 없던 마음을 시로 읊었습니다. 조선시대의 당쟁은 참으로 뿌리가 깊고 세월도 너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선조(宣祖) 8년은 1575년, 금년으로 445년 전의 일입니다. 다산은 300년의 길고 긴긴 뿌리이자 세월이라고 했습니다. ​ 서쪽에 살던 심의겸(沈義謙)이라는 분과 동쪽에 살던 김효원(金孝元)이라는 분이 견해를 달리하며 일어난 붕 당싸움, 심의겸을 편들던 사람들을 서인이라 부르고 김효원을 편들던 사람을 동인이라 부르면서 동서분당의 서막이 열렸습니다. ​ 권력투쟁과 학문이론까지 파당으로 나뉘며 죽기 아니면 살기의 싸움으로 극한적 대립이 계속됩니다. 숙종시 대에 이르면 살육 작전이 감행되도록 이합집산의 파당 싸움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 다산의 기록에 숙종시대의 공론(公論)은 사라지고 편론(偏論)이 판을 치던 사례 하나가 있습니다. ​ “숙종 만년의 어느 날 유신(儒臣)들을 불러서 맛있는 술을 하사하고 그들의 취한 모습을 살폈다. 술이 곤드레만 드레 취했을 때, 학사 홍중정(洪重鼎)이 큰소리로 ‘전하! 왜 오시복(吳始復)을 유배에서 풀어주지 않습니까? 의당 바로 방면하십시오’라고 말했는데, 오시복은 남인이었고 홍중정도 남인이었다. 그러자 학사 오도일(吳道一)이 큰소리로 ‘전하! 그의 말을 믿지 마시오. 모두 편파적인 주장입니다.’라고 했으니 그는 서인이었다.” ​ 라는 내용입니다. ​ 그러한 대화가 있던 바로 뒤 숙종임금의 말이 기가 막힙니다. ​ “이렇게 취했는데도 편론(偏論:편파적인 당론)은 잊지 않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醉至於此 不忘偏論 可奈何矣)” ​ 라는 탄식입니다. 다산의『혼돈록(餛飩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 신하들의 본심을 알아보려던 숙종의 의도는 정확했습니다. 취중진담이라 하듯, 아무리 취해도 그들은 본심을 숨기지 못했고, 찌들도록 마음속에 박힌 당습(黨習)은 버리지 못하고 실토하고 말았다는 내용이니, 당파의 대립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가를 알게 해주는 일화입니다. ​ 식물 국회에서 진저리나던 국민들, 국회가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라는 뜻으로 거대 여당을 만들어 주었건만, 요즘의 국회 돌아가는 모양을 살펴보면, 한 치의 차이 없이 지난번 국회처럼 당파적 논리만 판을 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어떻게 해야 난국에 처한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고 질병과 경제로 온갖 불안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것인가요? ​ 벌써부터 다음 정권을 잡는 문제, 국민에게 파당의 논리를 유리하게 알리는 문제에 집착하면서 붕당싸움만 계속하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可奈何矣]가요. 당쟁의 격화 속에서 당파싸움에 시달리던 숙종의 안타까운 심정이 오늘에 더욱 간절하게 여겨짐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남북문제, 코로나19 문제, 경제문제, 실업자 문제 등 산적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잠시만이라도 당쟁을 멈추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색잡기酒色雜技와 무사안일 - 3편-율기律己

다산 정약용의 눈높이로 본 한국 지방자치의 현장고백서

정영오 행정학 박사 청렴연수원 청렴교육강사 前)함평군 기획감사실장 주색잡기[酒色雜技]와 무사안일 ​ 다산 선생은 평생을 책과 함께한 책벌레 샌님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주색잡기酒色雜技와는 거리가 먼 모범적인 생활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요즘 같으면 선출직이나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 나갈 것을 미리 예견했던 사람처럼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던 것 같다. ​ 정치·행정 지도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도 다산 선생께서 말씀하셨던 ‘목민관은 술을 근절하고 여색을 멀리해야지 놀이의 굴레에 빠져 즐기면, 이는 거칠고 일탈하는 짓이다’ 1)라는 경구를 일상에서 실천하였으면 좋겠다. ​ 정약용 선생이 황해도 곡산부사로 있을 때 쓴 행담 기록인『상산록象山錄』(상산은 곡산谷山의 별칭)에는 “술을 좋아하는 것은 모두 객기客氣(객쩍게 부리는 혈기)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맑은 취미로 생각하는데, 술 마시는 버릇이 오래가면 게걸스러운 미치광이가 되어 끊으려 해도 끊지 못하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라며 술을 경계하라고 지적하고 있다. ​ 또한『다산필담茶山筆談』(다산의 저술로 보이나 발견되지 않음)에서는 “해마다 12월과 6월에 시행하는 관원들의 도목정都目政(근무성적평정서)을 보면 ‘마땅히 주도를 경계하라’, ‘어찌 이다지도 술을 좋아하는가’,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없다’”는 등의 기록이 있어 관리를 등용함에 있어 술버릇이 인사 자료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다산 선생은 “백성의 수령이 된 자는 결코 천한 기생과 가까이 친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2) “ ​ 기생을 한번 가까이하게 되면 정사 한 가지나 명령 하나도 의심과 헐뜯음을 받아 아무리 공정하고 바르게 할지라도 모두가 여색의 청탁에서 나왔다고 의심받게 된다. 이 어찌 딱하지 않은가. 대개 물정에 어둡고 소박하며 바깥출입이 없던 선비가 기생과 처음 친하게 되면, 여색에 빠져서 현혹됨이 더욱 심하여 이부자리 속에서 소곤거리는 말을 금석같이 믿게 된다. ​ 기생은 사람마다 정을 주어서 인간성이 없어지고, 따로 정부情夫가 있어 누설하지 않는 말이 없다. 밤중에 소곤거리는 말이 아침이면 온 성내에 퍼지고, 저녁이면 온 고을에 자자하게 되는 것이다. 평생 단정했던 선비가 하루아침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만다. 어찌 애석하지 않은가. 무릇 기생이란 요염한 물건이니 응당 눈짓도 주고받지 말 일이다” ​ 라고 강조하고 있다. ​ 다산 선생은 아울러 “노래와 풍악은 백성의 원망을 재촉하는 풀무이다” 3)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이 즐겁더라도 읍내 사람들과 온 고을 만민의 마음이 다 즐거울 수 없다. 그중에 한사람이라도 춥고 배고파서 고달프거나 세상 살아갈 즐거움이 없는 자가 있으니, 풍악 소리를 들으면 이맛살을 찌푸리고 눈을 부릅뜨며 길바닥에다 욕을 퍼붓고 하늘을 저주할 자가 있을 것이다”라며 향락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을 지적하고 있다. ​ 또한 “수령이 부모 생신을 맞아 풍악을 베푸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은 이를 효도라고 생각하겠지만 백성들은 이를 저주한다. 만약 백성들이 자기 부모를 저주하도록 한다면 이는 불효인 것이다. 오히려 수령이 부모님 생신날에 고을의 모든 노인을 위로하는 잔치를 겸해서 한다면 백성들이 저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성추문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 태풍이 2018년 초 대한민국에 상륙하여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를 흔들어 놓았다. 정치·법조·행정·교육·문화·연예계 등을 막론하고 커다란 쓰나미를 일으켰다. 잦아드나 싶던 ‘미투’운동이 2019년 정초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성폭행 자백으로 재폭발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선출직 고위공직자들의 성추행 범죄들은 국민들을 혼란 상태로 빠져들게 한다. ​ 요즘은 덜하지만 필자가 젊었을 때 공직사회에는 객기[客氣]에 찬 술버릇이 만연했다. 폭탄주, 충성주, 다모토리주, 성화봉송주, 꽃부리주 등등 희한한 음주 관습이 만들어져 공직사회에 횡횡했던 적이 있었다. 술을 잘 다루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는 근거 없는 말들이 공직사회에 퍼져 있었다. 과한 음주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 2018년 말경 음주운전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 음주운전에 대하여 처벌을 강화하는 소위 ‘윤창호법’이 제정되었고, 2019년에는 단속과 처벌 기준이 강화되기에 이른다. 음주운전은 처벌을 강화하여야 맞다. ​ 음주로 인하여 책임 능력이 결여되거나 미약한 상태에서 운전함으로써 사고를 유발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의 음주운전은 경계해야 할 대상 1호가 아닐 수 없으며 한 번 실수로 평생의 신세를 망친다는 것을 명시해야 한다. 음주량의 많고 적음을 떠나 술을 입에 댔다면 핸들을 잡아서는 안 될 것이다. ​ 오늘날은 부패의 개념이 크게 확대 해석되고 있다. 전통적인 부패의 개념은 뇌물수수, 배임·횡령, 예산낭비 등 주로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부패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강화되고 국민의 기대 수준이 높아 가고 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공정, 불투명, 공익 침해, 이해 충돌, 온정·연고주의, 복지부동, 무책임성 등까지도 부패의 범주에 포함하여 확대 해석하는 추세이다. ​ 따라서 다산 선생께서 말씀하셨던 ‘목민관은 술을 근절하고 여색을 멀리해야지 놀이의 굴레에 빠져 즐기면, 이는 거칠고 일탈하는 짓이다’라는 경구는 오늘날 부패의 개념을 윤리적·도덕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관점을 강조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1)『牧民心書(목민심서)』제2부 律己編(율기편) 제1조 飭躬(칙궁, 바른 몸가짐) 중에는 “斷酒絶色(단주절색), 罔敢游豫(망감유예), 以荒以逸(이황이일)”이라는 글이 있다. 이른바 금주, 금색, 금황일의 三禁論(삼금론)이다. 2) “爲民牧者(위민목자), 決不可狎昵娼妓(결불가압닐창기)”라는 글이다. 3) “聲樂者(성악자), 民怨之鼓鞴也(민원지고비야)”라고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