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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싸움, 그칠날은 없을 것인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칼럼

당파싸움, 그칠날은 없을 것인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고산서원 원장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 河山有遷變 朋淫破無日 一夫作射工 衆喙遞傳驛 詖邪旣得志 正直安所宅 ​ 산천은 변해 바뀔지라도 당파 짓는 나쁜 버릇 깨부술 날이 없구려 한 사람이 모함하면 뭇 입들이 차례로 전파하네 간사한 사람들이 세력 잡았으니 정직한 사람 어느 곳에 둥지 틀랴 (····) -「고의(古意)」 1800년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당쟁의 불길이 솟아오른 세상을 간파한 다산은 질곡으로 빠져들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면서, 당파싸움에 희생을 면하지 못할 불행한 미래에 불안을 떨굴 수 없던 마음을 시로 읊었습니다. 조선시대의 당쟁은 참으로 뿌리가 깊고 세월도 너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선조(宣祖) 8년은 1575년, 금년으로 445년 전의 일입니다. 다산은 300년의 길고 긴긴 뿌리이자 세월이라고 했습니다. ​ 서쪽에 살던 심의겸(沈義謙)이라는 분과 동쪽에 살던 김효원(金孝元)이라는 분이 견해를 달리하며 일어난 붕 당싸움, 심의겸을 편들던 사람들을 서인이라 부르고 김효원을 편들던 사람을 동인이라 부르면서 동서분당의 서막이 열렸습니다. ​ 권력투쟁과 학문이론까지 파당으로 나뉘며 죽기 아니면 살기의 싸움으로 극한적 대립이 계속됩니다. 숙종시 대에 이르면 살육 작전이 감행되도록 이합집산의 파당 싸움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 다산의 기록에 숙종시대의 공론(公論)은 사라지고 편론(偏論)이 판을 치던 사례 하나가 있습니다. ​ “숙종 만년의 어느 날 유신(儒臣)들을 불러서 맛있는 술을 하사하고 그들의 취한 모습을 살폈다. 술이 곤드레만 드레 취했을 때, 학사 홍중정(洪重鼎)이 큰소리로 ‘전하! 왜 오시복(吳始復)을 유배에서 풀어주지 않습니까? 의당 바로 방면하십시오’라고 말했는데, 오시복은 남인이었고 홍중정도 남인이었다. 그러자 학사 오도일(吳道一)이 큰소리로 ‘전하! 그의 말을 믿지 마시오. 모두 편파적인 주장입니다.’라고 했으니 그는 서인이었다.” ​ 라는 내용입니다. ​ 그러한 대화가 있던 바로 뒤 숙종임금의 말이 기가 막힙니다. ​ “이렇게 취했는데도 편론(偏論:편파적인 당론)은 잊지 않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醉至於此 不忘偏論 可奈何矣)” ​ 라는 탄식입니다. 다산의『혼돈록(餛飩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 신하들의 본심을 알아보려던 숙종의 의도는 정확했습니다. 취중진담이라 하듯, 아무리 취해도 그들은 본심을 숨기지 못했고, 찌들도록 마음속에 박힌 당습(黨習)은 버리지 못하고 실토하고 말았다는 내용이니, 당파의 대립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가를 알게 해주는 일화입니다. ​ 식물 국회에서 진저리나던 국민들, 국회가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라는 뜻으로 거대 여당을 만들어 주었건만, 요즘의 국회 돌아가는 모양을 살펴보면, 한 치의 차이 없이 지난번 국회처럼 당파적 논리만 판을 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어떻게 해야 난국에 처한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고 질병과 경제로 온갖 불안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것인가요? ​ 벌써부터 다음 정권을 잡는 문제, 국민에게 파당의 논리를 유리하게 알리는 문제에 집착하면서 붕당싸움만 계속하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可奈何矣]가요. 당쟁의 격화 속에서 당파싸움에 시달리던 숙종의 안타까운 심정이 오늘에 더욱 간절하게 여겨짐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남북문제, 코로나19 문제, 경제문제, 실업자 문제 등 산적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잠시만이라도 당쟁을 멈추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색잡기酒色雜技와 무사안일 - 3편-율기律己

다산 정약용의 눈높이로 본 한국 지방자치의 현장고백서

정영오 행정학 박사 청렴연수원 청렴교육강사 前)함평군 기획감사실장 주색잡기[酒色雜技]와 무사안일 ​ 다산 선생은 평생을 책과 함께한 책벌레 샌님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주색잡기酒色雜技와는 거리가 먼 모범적인 생활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요즘 같으면 선출직이나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 나갈 것을 미리 예견했던 사람처럼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던 것 같다. ​ 정치·행정 지도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도 다산 선생께서 말씀하셨던 ‘목민관은 술을 근절하고 여색을 멀리해야지 놀이의 굴레에 빠져 즐기면, 이는 거칠고 일탈하는 짓이다’ 1)라는 경구를 일상에서 실천하였으면 좋겠다. ​ 정약용 선생이 황해도 곡산부사로 있을 때 쓴 행담 기록인『상산록象山錄』(상산은 곡산谷山의 별칭)에는 “술을 좋아하는 것은 모두 객기客氣(객쩍게 부리는 혈기)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맑은 취미로 생각하는데, 술 마시는 버릇이 오래가면 게걸스러운 미치광이가 되어 끊으려 해도 끊지 못하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라며 술을 경계하라고 지적하고 있다. ​ 또한『다산필담茶山筆談』(다산의 저술로 보이나 발견되지 않음)에서는 “해마다 12월과 6월에 시행하는 관원들의 도목정都目政(근무성적평정서)을 보면 ‘마땅히 주도를 경계하라’, ‘어찌 이다지도 술을 좋아하는가’,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없다’”는 등의 기록이 있어 관리를 등용함에 있어 술버릇이 인사 자료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다산 선생은 “백성의 수령이 된 자는 결코 천한 기생과 가까이 친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2) “ ​ 기생을 한번 가까이하게 되면 정사 한 가지나 명령 하나도 의심과 헐뜯음을 받아 아무리 공정하고 바르게 할지라도 모두가 여색의 청탁에서 나왔다고 의심받게 된다. 이 어찌 딱하지 않은가. 대개 물정에 어둡고 소박하며 바깥출입이 없던 선비가 기생과 처음 친하게 되면, 여색에 빠져서 현혹됨이 더욱 심하여 이부자리 속에서 소곤거리는 말을 금석같이 믿게 된다. ​ 기생은 사람마다 정을 주어서 인간성이 없어지고, 따로 정부情夫가 있어 누설하지 않는 말이 없다. 밤중에 소곤거리는 말이 아침이면 온 성내에 퍼지고, 저녁이면 온 고을에 자자하게 되는 것이다. 평생 단정했던 선비가 하루아침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만다. 어찌 애석하지 않은가. 무릇 기생이란 요염한 물건이니 응당 눈짓도 주고받지 말 일이다” ​ 라고 강조하고 있다. ​ 다산 선생은 아울러 “노래와 풍악은 백성의 원망을 재촉하는 풀무이다” 3)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이 즐겁더라도 읍내 사람들과 온 고을 만민의 마음이 다 즐거울 수 없다. 그중에 한사람이라도 춥고 배고파서 고달프거나 세상 살아갈 즐거움이 없는 자가 있으니, 풍악 소리를 들으면 이맛살을 찌푸리고 눈을 부릅뜨며 길바닥에다 욕을 퍼붓고 하늘을 저주할 자가 있을 것이다”라며 향락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을 지적하고 있다. ​ 또한 “수령이 부모 생신을 맞아 풍악을 베푸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은 이를 효도라고 생각하겠지만 백성들은 이를 저주한다. 만약 백성들이 자기 부모를 저주하도록 한다면 이는 불효인 것이다. 오히려 수령이 부모님 생신날에 고을의 모든 노인을 위로하는 잔치를 겸해서 한다면 백성들이 저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성추문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 태풍이 2018년 초 대한민국에 상륙하여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를 흔들어 놓았다. 정치·법조·행정·교육·문화·연예계 등을 막론하고 커다란 쓰나미를 일으켰다. 잦아드나 싶던 ‘미투’운동이 2019년 정초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성폭행 자백으로 재폭발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선출직 고위공직자들의 성추행 범죄들은 국민들을 혼란 상태로 빠져들게 한다. ​ 요즘은 덜하지만 필자가 젊었을 때 공직사회에는 객기[客氣]에 찬 술버릇이 만연했다. 폭탄주, 충성주, 다모토리주, 성화봉송주, 꽃부리주 등등 희한한 음주 관습이 만들어져 공직사회에 횡횡했던 적이 있었다. 술을 잘 다루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는 근거 없는 말들이 공직사회에 퍼져 있었다. 과한 음주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 2018년 말경 음주운전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 음주운전에 대하여 처벌을 강화하는 소위 ‘윤창호법’이 제정되었고, 2019년에는 단속과 처벌 기준이 강화되기에 이른다. 음주운전은 처벌을 강화하여야 맞다. ​ 음주로 인하여 책임 능력이 결여되거나 미약한 상태에서 운전함으로써 사고를 유발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의 음주운전은 경계해야 할 대상 1호가 아닐 수 없으며 한 번 실수로 평생의 신세를 망친다는 것을 명시해야 한다. 음주량의 많고 적음을 떠나 술을 입에 댔다면 핸들을 잡아서는 안 될 것이다. ​ 오늘날은 부패의 개념이 크게 확대 해석되고 있다. 전통적인 부패의 개념은 뇌물수수, 배임·횡령, 예산낭비 등 주로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부패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강화되고 국민의 기대 수준이 높아 가고 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공정, 불투명, 공익 침해, 이해 충돌, 온정·연고주의, 복지부동, 무책임성 등까지도 부패의 범주에 포함하여 확대 해석하는 추세이다. ​ 따라서 다산 선생께서 말씀하셨던 ‘목민관은 술을 근절하고 여색을 멀리해야지 놀이의 굴레에 빠져 즐기면, 이는 거칠고 일탈하는 짓이다’라는 경구는 오늘날 부패의 개념을 윤리적·도덕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관점을 강조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1)『牧民心書(목민심서)』제2부 律己編(율기편) 제1조 飭躬(칙궁, 바른 몸가짐) 중에는 “斷酒絶色(단주절색), 罔敢游豫(망감유예), 以荒以逸(이황이일)”이라는 글이 있다. 이른바 금주, 금색, 금황일의 三禁論(삼금론)이다. 2) “爲民牧者(위민목자), 決不可狎昵娼妓(결불가압닐창기)”라는 글이다. 3) “聲樂者(성악자), 民怨之鼓鞴也(민원지고비야)”라고 쓰고 있다.

한국형 방역과 새로운 표준

김항섭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칼럼

한국형 방역과 새로운 표준 ​ 김항섭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사)우리신학연구소이사장 천주교개혁연대 대표 ​ 저서 및 논문 『생태학의 도전과그리스도교』일과 놀이, 2000 『신자유주의시대라틴아메리카 시민사회의 대응과 문화변동』오름, 2005(공저) 『세계화, 종교변동 그리고 가톨릭교회: 페루의 사례』이베로아메리카, 2009 『탈식민담론과 한국그리스도교 신학』종교문화연구, 2014 『브라질 가톨릭운동과 해방신학의 기원』신학사상, 2019 출처 - 다산연구소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도, 몇 달 동안 지속된 칩거도, 상황이 마무리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버텼는데, 비록 상황이 진정되더라도 이전 생활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코로나 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삶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한다. ​ 이전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표준이 있었고, 그 표준에 맞추는 것이 국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는데, 이제 우리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 글로벌 스탠더드와 제국 ​ 전 세계에 보편적인 척도로 자리하던 글로벌 스탠더드는 사실 미국이나 서구의 특수한 이해를 반영한 것이고, 특수성이 보편성을 참칭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전 세계에 강요되었고, 수많은 나라들이 그 보편성을 의심하기는커녕 흉내내고 따라잡는데 골몰했다. ​ 그 표준은 경제 정책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에, 우리 삶의 곳곳에 내면화되었다. 독립국인데도 외국 군대가 버젓이 주둔하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강요 또는 내면화가 훨씬 더 심각했다. 그러나 감염병의 재앙 앞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는 하릴없이 폐기 수순을 밟는다. 시장도 작동하지 않았다. G2도 코로나 앞에서 무기력하고 무책임했다. ​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고 자처하던 유럽도 지역봉쇄를 비롯한 각종 강제 조치로 허둥댔다. 이런 식으로 서구의 특수한 이해를 보편적인 것으로 포장하여, 판을 짜고 기준을 만들어 나머지 나라들에 강요되었던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 새로운 표준과 탈중심, 탈식민 ​ 기존의 모든 잣대들이 무력해진 상황에서, 한국의 방역은 새로운 표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방역도 성공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돋보인 것은 그 대응 방식이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지역 봉쇄, 활동 금지 또는 제한 등 강압적인 조치들이 주를 이뤄졌지만,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들의 동의나 협력을 구하는 민주적인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한국형 방역은 G2, 일본, 유럽 국가들의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대응과 대조를 이루면서, 국제사회에 하나의 표준으로 부각된다. ​ 이제 분명한 것은 더 이상 미국이나 서구 또는 일본의 기준에 매일 필요없이, 우리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G0의 시대이다. 이제 중심은 없다. 대국 중심에서 벗어나, 우리 안의 식민성을 아픔으로 도려내야 한다. 물론 서구든 다른 대국이든 그 긍정적이고 앞선 측면은 기꺼이 받아들이되, 그들의 특수성을 보편화하고 더 나아가 신화화하는 어리석음은 이제 우리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대체해도 좋을 듯 싶다. 한글 창제 이후 중화사상, 일제의 탄압, 그리고 해방 이후 또 다른 사대주의, 그리고 오늘날 이러한 사대주의를 내면화한 대중매체나 대중문화로 인해 괄시당하고 왜곡당하는 우리의 말과 글에서부터 시작해도 좋다. 쉴 새 없이 서구 학문과 이론만을 퍼 나르는 학자들, 이른바 ‘학문의 보따리상’도 이제 우리의 삶에 발을 내렸으면 좋겠다. 국사학이나 국문학 교수를 뽑는 데 영어로 강의를 시키거나, 스페인어 교수를 뽑는데 영어로 인터뷰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 그리고 새로운 표준을 이야기할 때, 우리의 특수한 경험 또는 기준을 보편적인 것인양 내세워서도 안 된다. 우리의 기준에서는 제국을 빼자. 70년대 근대화, 새마을운동의 깃발 아래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나 신념들, 그리고 공동체 문화를 무자비하게 소외시키고 폐기했던 어리석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명, 근대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미명 아래 무시되고 방치되었던, 적어도 조선 후기 실학에서 동학을 거쳐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우리의 학문과 사상을 자부심으로 끌어안을 때이다. “오스카는 로컬이잖아.”라고 말한 봉준호 감독의 담담함을 닮을 때이다. ​

공인公人의 언행 - 2편 율기律己

다산 정약용의 눈높이로 본 한국 지방자치의 현장고백서

정영오 ​ 행정학 박사 청렴연수원 청렴교육강사 前)함평군 기획감사실장 공인公人의 언행 ​ 지도자들의 언행이 어떤 파급력을 갖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바르지 못한 말로 시끄러움을 유발하는 일들을 수없이 경험하기 때문이다. 다산은 “목민관은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조급히 화를 내지 말라”고 가르친다.1) 스스로 감정관리(mind control)를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선생은 “백성들은 목민관의 언행을 세세히 살피고 의심쩍게 탐색하여 온 고을에 퍼뜨린다. 군자는 집 안에서도 말을 삼가야 하거늘, 벼슬살이할 때는 더 강조할 필요가 있겠는가. ​ 비록 시중드는 아이나 종이 어리고 어리석다 해도 여러 해를 관청에 있으면 백번 단련된 쇠와 같고, 기민하고 영리하여 엿보고 살피는 것이 귀신과 같다. 관아의 문을 나서면 세세한 것까지 누설하고 소문을 낸다. 이는 내가 귀양살이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목민관이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하기 마련이다. 필자는 공직 생활 동안 수많은 상관을 접하면서 바르지 못한 말로 시끄러움을 유발한 일들을 수없이 경험하였다. 발 없는 말이 천 리(千里)를 가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언행은 주민들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 특히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거나 깊은 생각 없이 뱉은 말은 회귀 본능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화가 되어 돌아온다. 자신의 실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퍼뜨린 사람이나 전달한 사람만 찾는 데 열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남을 탓하기 이전에 자신의 언행을 되짚어 봐야할 것이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다산의 무다언(毋多言)의 경구를 되새김해 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 다산은 ​"벼슬살이에 임하는 자는 조급히 성내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수령은 형벌의 권한을 쥐고 있으므로 무릇 그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한다. 그의 조급한 노여움에 따라 급히 형벌을 시행하게 되면 온당치 못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다산은 조급히 성내는 병통이 있는 자는 평소에 ‘노즉수(怒則囚)’ 석 자를 가슴에 새겨 두라고 말한다. ‘성이 나거든 그것을 가슴에 가두어 두라’는 의미이다. 그렇게 하면 문득 성이 날 때도 스스로 깊이 깨우쳐 억제할 수 있고, 하룻밤 혹은 사흘을 두고 생각하면 기꺼이 이치에 따라서 온당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다산이 지적한 조급하게 성내지 말라는 무폭노(毋暴怒)의 의미는 직장인이나 사회인 모두에게 교훈일 것이다. 필자가 근무할 때 다혈질에 냄비 근성인 상사 한 분이 있었다. 잘못 걸리면 벼락 총소리가 난다. ​ 그분의 책상 위에는 ‘일소일소一笑一少, 일노일노一怒一老’라는 큼직한 글이 쓰여 있었다. ‘한 번 웃으면 더 젊어지고, 한 번 성내면 더 늙는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성질을 잘 알기 때문에 책상 위에 붙여 놓았을 것이다. ​ 성났을 때의 언어는 체면을 차리지 못하게 되니, 성이 가라앉은 연후에 생각해 보면 자신의 비루하고 좁은 속을 온통 드러내보인 꼴이라고 후회하기도 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풀어지는 것도 으레 빠르다.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않고 소낙비는 종일 내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성격은 불같았지만 그렇다고 경솔하거나 즉흥적이지 않은 진중하고 훌륭한 지도자였다. ​ 다산은 수령이 아전과 하인을 대할 때에는 ​ "마땅히 장중하고 엄숙하며, 화평하고, 대쪽같이 바르고, 과묵해야 한다”고 하였다.2) “아전과 하인을 경솔하게 대하여 체모를 손상해서는 안 되며, 뽐내고 잘난 체해서도 안 된다. 장중하고 화평하면 될 것이니, 오직 묵묵히 말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묘법이다." ​ 라고 덧붙인다. 예나 지금이나 공무원은 공무를 집행함에 있어서 ‘평정심平靜心’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성격에 치우친 곳은 없는지를 찾아 바로잡아야 한다. 유약함은 강하게 고치고, 게으름은 부지런하도록 고치고, 지나치게 굳센 것은 관대하도록 고치고, 지나치게 흐트러진 것은 위엄 있게 고쳐야 한다. ​ 다산의 이러한 가르침을 모든 공직자가 칙궁(飭躬:몸소 경계해야 할 바른 몸가짐)으로 삼아 솔선 실천함으로써 시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았으면 좋겠다. 1) 『牧民心書(목민심서)』제2부 律己(율기, 자기관리)편 제1조 飭躬(칙궁, 바른 몸가짐)에 “毋多言(무다언), 毋暴怒(무폭노)”라는 글이다. ​ 2) 원문을 보면 “宜莊和簡默(의장화간묵)”이라 쓰고 있다.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 6편 도시디자인의 현대적 전망

조용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칼럼

[COLUMN]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6편 - 도시디자인의 현대적 전망 ​ 조 용 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 前)광주광역시도시공사 사장 前)한국주거학회장 前)한국도시설계학회 부회장 前)중앙도시계획위원 ​ ​ ​ ​도시디자인의 현대적 전망 축소 지향형 도시 실현으로써 도시디자인 ​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성장·변화한다. 처음에는 도시가 형성되는 도시화 단계를 갖는다. 이 단계에서는 도시적 모듬살이가 형성되고, 행정, 업무, 상업 등 활동이 집약적으로 일어나는 도심이 생겨난다. ​ 인구가 더 늘어나면, 도시는 외곽지역으로 확장한다. 이 과정에서 도심성이 배제되고 확장성이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인구감소가 심화되면, 무거주지역의 출현과 함께 재집중화 단계에 이른다. ​ 이 과정에서 도심기능의 회복 문제가 일어나는데, 우리 도시들의 대부분은 이 단계에 와있다. 특히 인구감소는 생산가능 인구 감소와 함께 재정 약화로 이어지면서 도로나 공원 등 도시기반시설을 비롯한 도시공간의 유지 관리가 힘겨워진다. 또 확산형 도시를 지지하던 자동차가 내뿜는 탄소 배출량 감소 문제도 있다. ​ 거기에 1인 가족이 보편화되면서 나타나는 절연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동체 도시의 요구도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도시구조를 축소지향형으로 재편과 함께 이의 거점으로써 도심 기능 강화가 필요하다. OECD가 2000년 일본 도시정책에 대해 “인구감소를 고려하지 않고, 도시확장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간의 도시 성장 매니지먼트로부터 컴팩트한 기능을 갖는 도시 만들기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권고도 이와 맥을 함께 한다. 이것이 앞으로 도시디자인의 역할이다. 이미지 뉴욕 가번트지구 어반 가든 타운 매니지먼트 프로젝트(출처, 도시재생 현장에 답이 있다, P194 이운용) 도심 공간구조 재편의 공공정책으로써 도시디자인 ​ 도시는 도심과 기성 시가지, 그리고 이를 담벽처럼 둘러싸고있는 신시가지로 형성되어 있다. 이같은 확산형 도시구조를 축소지향형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도심기능이 강화되는 도심공간 구조 재편이 필요하다. ​ 그러나 도심은 이미 형성된 공간구조와 소유자. 문화가 있기 때문에 백지상태의 외곽지역에서 행해진 도시디자인과는 다른 역할을 한다. ​ 미국 등에서 현대 도시디자인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심화된 도시황폐가 출발점이었다. 특히 도시활동의 구심점 상실과 도심 슬럼화와 공동화에 대한 대응에서 시작되었는데, 뉴욕시립대 교수였던 조나단 바넷이 주도한 뉴욕의 보르드웨어 재생은 이를 잘 보여 준다. 도심재편을 위해서는 먼저 특질적 자원의 재평가와 함께, 공공정책으로써 도심 비전 제시가 있어야 한다. ​ 아울러 분명한 목표설정과 계획수립, 개발이나 형태 규제나 인센티브 방안제시도 있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건축과 토목, 교통, 조경 등 도시구성 요소의 융합적 결합은 물론, 공간과 시간의 결합도 있어야 한다. 특히 보행자 중심의 공공공간 개선은 물론, 상업 등의 민간활동을 유도하고 제어하는 수법도 있어야 한다. ​ 도심 공간 재편에서 민간영역을 소홀히 하고, 공공성만을 강조하면 실현성을 갖기가 어렵다. 따라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각양 각색의 협의적 도시디자인을 통한 공공성과 시장성이 균형을 갖도록 하는 관점도 있어야 한다. 도시디자인이 물리적 영역에서 비물리적 영역까지로의 확대를 의미한다. 그래야 축소지향형의 도시가 된다. ​ 와세다 대학의 고또우 하루히꼬 교수가 도시가 합리주의에 기반한 ‘행정적 공공성’을 가치로 하는 도(都)와 시장주의에 기반한‘시장적 공공성’을 가치로 하는 시(市)의 밸런스는 물론, 실용주의에 기반한 ‘시민적 공공성’ 가치가 추가되는 사람(人)까지 도시인(都市人)의 3가지 밸런스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도시인” 을 만드는 것이 도시디자인 역할이다. 이미지 요코하마의 도시디자인 (근대 산업을 지지하던 철로 흔적 보존과 아까 랭가 재생) 기성 시가지 재생의 매니지먼트로써 도시디자인 ​ 도시는 개인의 부 창출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활동이 일어나는 장이다. 사회적 활동을 지지하는 가로공간이나 상점가는 물론 주택지가 쇠퇴하면, 경제적 사회적 활동이 열악해지고,지역 안전은 위협받고, 지역문제에 대한 자율적 처리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결국 공간과 시간, 인간이라는 자산의 재편성과 함께 다양한 사회 활동이 일어나는 장소를 만들어 도시공간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특히 사람이 쾌적하게 삶, 문화를 영위할 수 있도록 쾌적한 공공성 확보하는 것이다. 차도를 줄여서 인도를 만들고, 연등형 건축물에 공공성을 부여하는 등 건축과 도시공간이 연동하는 것도 그러하다. 그래야 도시공간이 사람의 공간이 되고, 활력적 도시공간이 될 수 있다. ​ 기성 시가지를 지지하는 단독주택지는 주택들을 묶는 골목길 활력이 중요하다. 골목길은 보행의 시작점으로써, 이웃사촌 관계를 만들고, 긴 세월동안 이어져온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삶, 문화가 모자이크처럼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이웃관계를 이어주는 사회적 접촉공간이자 도시 정체성이다. 골목길이 살아야 사람, 토지, 마을의 관계성도 회복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평등성이 보호받고 활력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시 디자인 역할이다. ​ 콜롬비아 보고타 시장인 엘리커 페놀로사는 인간을 존중하는 도시만이 시민들에게 존중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인만큼 부유한 생활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시민들이 존엄성을 보호받고 풍요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더 행복한 도시를 디자인 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이 도시디자인 역할이다. 이미지 축소하는 도쿄 (출처-도쿄 2050, 축소하는 도쿄를 위한 도시디자인 전략, 오노 히데요시 도쿄대 교수) ​ 공동체 도시의 실현으로써 도시디자인 도시특질존속과 공동성 확보로써 도시디자인 ​ 도심과 이를 지지하는 기성 시가지에는 도시특질인 도시정체성과 생활 친밀형의 문화가 있다. 도시특질이란 다른 도시와 차별화 할 수 있는 특별한 기질이나 성질로써, 도시정체성을 만드는 도시잠재력이자, 도시자원으로써 경제적 번영에 공헌한다. ​ 1998년 유럽공동체는 21세기 도시지향 목표로 정한 10개 중의 하나가 도시특질의 존속이었다.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낡은 건물을 부수고, 번쩍거리는 대형 건물을 짓는 방식의 도시개발은 오히려 도시를 죽게 한다. 이것은 도시재건이 아니라 도시를 약탈하는 행위이다.”라고 한 것도 도시특질 보존의 중요성 강조다. 대부분의 도심은 도시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도시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적 자산 등이 만든 도시특질이 있고, 기성시가지에는 동네가 만드는 생활 친밀형의 특질이 있다. 이들 특질을 창조적으로 보존하여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 도시디자인 역할이다. 특히 역사적 환경이나 문화예술, 지형이나 자연, 도시적 문맥 등을 바탕으로 시간과 공간을 결합을 통하여 누적적 다양성의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서로 공감하고, 공동체 일원이라는 생각은 물론, 도시에 대한 자부심도 갖게 된다. 건축 도시공간 연구소 염철호 박사는 공공성을 생활공간적 공공성, 사회적 공공성, 문화적 공공성으로 규정했다. 생활공간에서 시작된 공공성은 사회적 공공성으로 확대되고, 궁극적으로는 문화로 발전되고 교류되고 진전될 수 있다고 했다. 공공성은 공공공간을 매체로 하여 공동성을 만든다. 그래서 공공공간은 중요하다. ​ 그러나 도시는 지가가 비싸기 때문에 민간과 협력하여 소규모 공공공간의 창출이나 개선, 가로경관 개선, 다양한 공개공지확보(연속벽면후퇴, 길모퉁이 광장, 통과형 공개공지, 둘러쌓인 광장)는 물론, 개개 건축과 인접하는 공공공간의 일체적설계(보도교각, 계단과 건축물의 일체적 설계, 고가도로와 건축물의 일체적 설계, 철도와 건축물의 일체적설계, 수변공간과 건축물의 일체적설계 등)도 있어야 한다. 그라운드와 건물의 퍼사드가 만나는 표층, 공공스페이스와 민간 스페이스의 결합도 매우 중요하다. 이처럼 지역이 갖고 있는 특질 존속과 공공공간의 결합을 통하여 사람의 도시가 하는 것이 도시디자인 역할이다. ​ 공공공간 재생으로써 도시디자인 ​ 도시에는 이미 만들어진 거리나 광장 등의 공공공간 중에는 이용되지 못하고 활성화되지 못한 경우가 매 우 많다. 행정의 공공성이 시민의 공공성이 되지 못한 결과이다. 따라서 저이용의 공공공간이 활력있는 시민의 공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 야마구치 대학 송준환 교수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에리어 매니지먼트(타운 매니지먼트)를 통하여 지역민이 주도로 공공공간을 활용하여 지역활성화를 유도하고, 각종 수익사업을 실시하여 그 수익금으로 미화활동, 방범, 방재활동은 물론 지역과제 해결을 위한 각종제반비용으로 재투자하는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다. ​ 삿포로시의 아카프라 광장(2016년 완공)의 경우 도청사 건물 앞도로 공간의 차량 통행을 막고, 광장화하여,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는데, 조례 등을 근거로 지역의 타운 매니지먼트 조직이 광장의 운영 및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 이 조직은 각종 이벤트 주최자들에게 광장 공간을 제공하고 광장 면적에 따른 이용료를 받아서, 질 높은 광장 관리와 함께 지역의 공적 활동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 이미지 1-5 도시디자인이 만든 요코하마의 MM21스카이라인, 요코하마의 상징적 모습이다. ​ 이외에도 지하상가 내 광장 및 가로 공간 등을 활용한 이벤트 사업 및 광고 사업 등을 실시하고 있는데, 주말에는 여기저기에서 음악회 등 각종 볼거리가 제공되면서 지역전체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도시재생 현장에 답이 있다 p192) ​ 이제 분리와 개별성의 도시계획이 만든 물리적 공간을 통합이나 융합의 도시디자인을 통한 사회적 공간으로 바꾸는 일을 해야 한다. 특히 공공공간을 비즈니스 모델로 활용을 통하여 사람의 장소가 되도록 하는 일을 해야 한다. ​ 도시디자인, 사람의 도시를 만드는 매체이다 ​ 앞으로 도시디자인은 인구감소와 함께 보편화되고있는 소자녀 초고령 사회에 대응은 물론, 환경부하를 경감하는 축소지향의 공동체 도시를 만드는 것에 역할이 부여된다. ​ 특히 도시공간의 재디자인을 통하여 빈부의 격차해소는 물론, 이웃과 평등한 삶이 가능한 쾌적하고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 된다. ​ 이는 확산형 도시에서 재생형 도시로, 에너지 소비도시에서 저탄소 도시로, 평등도시에서 정체성 도시로 변화를 통하여 실현한다. 아울러 그간 땅을 관리하던 도시계획 중심에서 벗어나서 건축군을 관리하는 도시디자인 중심으로 변화를 의미한다. ​ 이미지 2050년 에너지 시스템(출처-도쿄 2050, 축소하는 도쿄를 위한 도시디자인 전략, 오노 히데요시 도쿄대 교수) 앞으로 도시는 사람(Human), 역사(History), 문화(Culture), 자연(Nature), 기술(Technology)을 바탕으로 창조적 (Creative)이고, 즐거운(Enjoyable) 도시가 되어야 한다. ​ 이를 위해서 도시디자인은 협의적 관계를 통하여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에 보다 더 큰 역할이 부여된다. ​ 그래야 인간관계가 강화되는 사람의 도시가 된다. 앞으로 도시디자인에 그런 역할을 기대한다. *그동안 본지에 기고해 주신 조용준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인

포스트 코로나, 세가지 쟁점

우리에게 포스트 코로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전 통일평화연구원장 ​ 저서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국제연대』, 공저, 한울, 2018 『평화를 위한 끝없는 도전』공저, 북로그컴퍼니, 2018 『소련형 대학의 형성과 해체』공저, 진인진, 2018 『냉전의 섬 금문도의 재탄생』, 공저, 진인진, 2016 외 다수 출처 - 다산연구소 코로나 19의 세계적인 대유행이 시작된 지 석 달째로 접어들면서, 우리 사회는 이제 범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고 생활방역으로 조금씩 전환하고 있다. 비록 관중 입장은 허용되지 않지만 프로 야구가 무관중 경기로 개막되었고,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이를 중계하고 있다. ​ 고3 수험생들부터 학교 수업을 정상화할 것을 결정하였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이 시급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의 도입을 약속했다. ​ 과연 우리에게 포스트 코로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 ​ 방심하다가는 큰 낭패 ​ 세계적인 대유행의 상황을 분석해보면, 중국에서 코로나 19가 유행하던 시기에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생각했던 선진국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이탈리아와 스페인보다 늦게 대유행을 겪고 있는 영국이 최대 피해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근대의 문명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복지국가 모델의 실패를 거론하기도 한다. ​ 아시아에서도 방역 모범국으로 간주되다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싱가폴은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싱가폴에서는 시민권을 가진 자국민 방역은 성공했으나 기숙사에서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리가 소홀했기 때문에 낭패를 보고 있다. ​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아시아 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의 상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은 자신들에게 충분한 의료역량이 없음을 인정하고 일찍부터 높은 수준의 통제를 실시한 덕분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지난 주말 서울의 교통 사정은 코로나 사태가 있기 전의 ‘불금’처럼 몹시 혼잡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달만에 이태원 클럽이 새로운 집단감염의 현장이 되었고, 소수자 혐오를 동반한 고질적 인권침해가 논란이 되었다. ​ 범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지 한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켜진 경고등이다. 외국의 언론들은 방역 모범국인 한국이 경제 재개와 바이러스 차단 사이에서 그리고 인권과의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논평했다. ​ 재난 책임 ​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이 자연재해인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국제적인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이것을 자연재해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지만, 세계 최대 피해국인 미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의 원천을 중국으로 지목하고 나아가 세계적인 대유행의 책임을 지속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영국도 이에 동조하고 있고, 세계보건기구가 중국에 경도되었다는 비판에는 독일도 동조하고 나섰다. ​ 중국은 오히려 많은 나라들에 대한 지원 공세를 취하고 있어서 세계적인 협력보다는 국제적인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농후하다. 이런 중국 책임론의 끝은 어디일까? 코로나의 역설은 치료 약 개발을 위한 전쟁뿐 아니라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을 제고시키고 있다. 우리는 미·중간 헤게모니 경쟁에서 의연해야 할 뿐 아니라 가장 취약한 고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국지적 분쟁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 새로운 표준 ​ 코로나 바이러스 피해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세계는 이제 코로나 이전(BC)와 코로나 이후(AC)로 나뉠 것이라는 예측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코로나 확산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서 그런 비유가 상당히 과장된 것이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과거로 회귀하는 경향이 확연해지고 있다. ​ 하루라도 빨리 정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주의적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는 데 비해, 코로나 시대를 맞아 새롭게 부상하는 뉴 노멀(New Normal)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세계관으로는 반복되는 대규모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 뉴 노멀이 과연 생태주의일지 새로운 공동체주의일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의 세계가 기존의 정상과 새로운 정상 간의 사회철학적 투쟁의 장이 될 것은 틀림없다. 우리는 이런 쟁점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고 있는가? 세계는 한국이 가는 길을 주시하고 있다. ​

취임부터 간소하게 - 1편 부임 赴任

다산 정약용의 눈높이로 본 한국 지방자치의 현장고백서

정영오 ​ 행정학 박사 청렴연수원 청렴교육강사 前)함평군 기획감사실장 취임부터 간소하게 ​ 21세기 지방자치단체장의 취임식장은 과거 취임식장과는 백팔십도 달라져야 한다. 축하 화분도 딱 두 개면 충분하다. 의회에서 의원 일동이 보낸 것과 공무원노동조합에서 직원 일동이 보낸 것이다. 취임식 장소는 민의의 전당이라고 하는 시의회의 의사당이 좋다. 주민의 대표 기관인 의회에서 취임선서를 하는 것은 시민 모두에게 선서한 내용을 지키겠다는 약속과 다짐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 취임선서는 중앙정부에서 제시한 일률적인 내용보다 지역 실정과 지방자치단체장 자신의 소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선서, 나는 헌법에서 표방한 지방분권 국가인 대한민국의 지방정부 책임자로서 주민의 복리증진 및 지역사회의 발전과 국가시책의 구현을 위하여 ○○시장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년 7월 1일 ○○시장 ○○○.” ​ 다산이 시장으로 취임한다면 취임사의 내용은 과거 자신이『목민심서』에서 늘 강조했던 것처럼, 시민에게 이익이 되고 시민을 편안하게 하는 위민爲民, 시민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애민愛民, 부패하고 적폐가 쌓여 흐트러진 지방을 바꾸어 보자는 혁신革新, 공직자들이 지향해야 할 기본적인 임무인 공렴公廉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다. ​ 『목민심서』는 “신임 사또는 부임 행장부터 검소해야 함”을 강조한다. 즉, “의복과 말의 안장도 있는 그대로 써야지 새로 마련해서는 안 된다” 1)는 것이다. ​ 다산은 이를 설명하면서 ​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아껴 쓰는 데 있고, 아껴 쓰는 근본은 검소함에 있다. 검소해야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해야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함이야말로 목민함에 있어 제일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 어리석은 자는 산뜻한 옷에 좋은 갓을 쓰고 멋진 말을 타는 것으로 위풍을 떨치려고 한다. 노련한 아전들은 신임 수령의 행장을 보고 판단한다. ​ 만약 사치스럽고 화려하면 비웃으며 ‘알 만하다’ 하고, 검소하고 단출하면 ‘두렵다’라고 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수령은 남들이 부러워한다고 착각하지만, 부러워하기는커녕 도리어 미워한다. 재산을 축내면서 명예를 손상시키고 미움까지 받게 되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라고 강조한다. 1)『牧民心書(목민심서)』 제1부 赴任(부임)편 제2조 治裝(치장)의 “治裝(치장), 其衣服鞍馬(기의복안마), 竝因其舊(병인기구), 不可新也(불가신야)”라는 글이다. ​ 선거로 취임하는 오늘날 자치단체장들의 경우는 어떤가. 당선 때부터 거창하다. 선거사무소에는 당선 축하 화환과 화분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공식적으로 업무를 시작하는 취임식은 가관이 아니다. 멋진 새 양복과 한복을 차려입은 지방자치단체장 내외는 단연 번들거린다. 지역에서 가장 큰 예술회관이나 체육관에는 수천 명의 주민이 초청되어 초만원을 이룬다. 취임식장 초입은 물론 행사장 안을 빙 둘러 빈틈없이 들어선 화환과 화분은 놀라움에 앞서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지방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출마 선언과 출판기념회에 동원되는 선량한 주민들이 부담하는 책값 명목의 경비는 아마 수천만 원에 서 수억 원에 이를 것이다. 이 모두가 체면을 이기지 못한 주민들의 고혈膏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선생은 임금이 하사하지 않았는데 고급 수레를 마음대로 타는 고을의 수령을 꾸짖는다. 당시 쌍마교雙馬轎(말 두필이 매는 가마)와 유옥교有屋轎(지붕이 있는 가마)는 임금이 허락하지 않으면 탈 수 없었다. “요즈음 하찮은 고을의 수령도 유옥교를 타고 나라의 법을 함부로 어기면서 제멋대로 부귀와 영화를 뽐낸다. 나라의 기강과 법제가 이에 이르렀다”고 검소하지 못한 목민관들을 꾸짖는다. ​ 선거로 취임하는 선출직 목민관들은 어떠한가. 지방자치단체장이 사용하는 소위 1호차는 지방자치단체의 ‘관용차량관리규칙’에 의하여 운영된다. 시장·군수·구청장과 의회의장에게는 대형 승용차를 전용으로 배정한다. 대형 승용차는 배기량 2,000cc 이상의 차량이라고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차량의 내구연수에 있어서도 7년을 경과하고 주행거리 12만 km를 초과한 경우에 새로 구입할 수 있도록 헐겁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떤 자치단체도 2,000cc 자동차를 타는 자치단체장은 없을 것이다. 내구연한을 불문하고 옆 자치단체의 군수는 3,000cc ○○자동차를 타는데 우리 시장은 더 크고 좋은 차를 타야지 하면서 앞다투어 더 큰 차 타기 경쟁을 한다. ​ 다산은 신영新迎(수령을 새로 맞이하는 것)의 예절 가운데, 아사衙舍(관아의 중심 건물로 수령이 거처하는 집)를 수리하는 폐단이 있다고 지적한다. “아사를 수리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백성을 부려야 함으로 부임한 뒤에 판단할 일이다”라고 재정의 절용을 솔선하고 낭비의 폐단을 개선할 것을 지적한다. ​ 요즘 자치단체장들은 관사를 없애고 사택을 많이 이용하는 추세이나 아직도 관사를 이용하는 지역이 상당하다. 현 자치단체장이 연임하는 경우에는 임기 동안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자치단체장이 새로 취임하는 곳에서는 관사를 수리하고 꾸미느라 야단법석이다. ​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새로운 목민관을 맞이하는 예절이라고는 하지만, 불필요한 시설 공사는 물론이고 아직 쓸 만한 가전제품과 가구 등을 온통 교체하여 재정을 낭비하는 경우도 많다. ​ 지방자치단체의 ‘공유재산 관리 조례’에 의하면 ‘관사의 운영비는 사용자가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자치단체는 그 원칙을 벗어나 건물 수선비, 화재 보험료, 냉난방비, 가전제품 및 장식물 구입비, 전기 요금, 전화 요금, 수도 요금 등 모든 운영비를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부담하고 있다. ​ 이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장의 행장들은『목민심서』에서 강조한 “관직을 제수 받은 초기부터 재정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2)는 다산의 가르침이 무색할 정도이다. 2)『牧民心書(목민심서)』 제1부 赴任(부임)편 제1조 除拜(제배)에서 “除拜之初(제배지초), 財不可濫施也(재불가남시야)”라 쓰고 있다. ​ ​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 5편 도시디자인의 역할과 수법론

조용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칼럼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5편-개별성 도시로써 근대도시 ​ 조 용 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 前)광주광역시도시공사 사장 前)한국주거학회장 前)한국도시설계학회 부회장 前)중앙도시계획위원 도시디자인의 역활과 대상 도시디자인의 다양한 역할론 ​ 도쿄대학은 1963년 펜실베니아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 이어 3번째로, 3개 강좌로 이뤄진 도시공학과를 개설했다. 이 중 제2강좌가 도시설계 강좌(이후 도시디자인 강좌로 변경)다. 이 강좌는 건축학과 교수이자 세계적 건축가인 겐조 단게가 책임을 맡았고, 그의 정년 후에는 후임교수들이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 이는 일본대학의 독특한 체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도시디자인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일본이 세계 도시디자인의 한 축을 담당했던 나라라는 점을 감안하면, 긴 세월동안 이어져온 강좌는 도시 디자인 역사에서도 눈여겨 볼 만하다. ​ 겐조 단게는 도시 분석의 실마리로 시작한 도시계획은 도시규제 수단으로써 조닝기술을 개발해 계획의 수량화를 꾀하면서 토지이용의 큰 개요를 만들었지만, 수단을 목적으로 잘못보는 위험성과 함께 ‘도시다움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하는 문제에서는 벗어나있다고 지적하며, 도시디자인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 그는 도시디자인의 역할을 건축과 도시를 성장·변화하는 유기체로 인식하고, 이들이 융화적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양자 관계의 긴밀한 연결을 통해 건축이 도시적 확장을 하고, 도시도 공간적 개념을 풍부하게 하면서 새로운 공간질서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 이미지 항구를 가까이 느끼게 하는 축으로써 일본대로, 요코하마는 역사를 살리는 길 만들기, 사람친화적 길 만들기, 활기창물의 무대라는 주제로 차도를 줄이고 인도를 확장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출처-전요코하마 도시디자인 실장 구니요시 나오유끼) 이는 도시디자인이 도시계획과 건축 디자인의 분리 아래 각각의 계획 이론을 높이면서 나타난 도시적 과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 함을 분명히 한 것이다. 두 번째로 강좌를 맡은 건축가 오타니 유키오 교수 역시, 도시 디자인 역할을 “근대도시계획이 개발한 추상화, 수량화의 의미와 방법을 받아 계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건축 디자인의 형상화 이론과 방법을 보다 광범위한 전개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 세 번째로 강좌를 맡은 와다나베 사토오 교수는 “도시계획은 건축, 토목구조물, 조경, 공예와 같은 구체적 기술과 예술 수단을 통하여 실현되는데, 이 과정에서 형태(공간, 형태, 구성, 경우에 따라서는 의장)의 권리를 조정하고 종합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흐름이지만 전임 교수들이 건축과 도시의 관계를 구조주의 관점에 두었다면, 와다나베 교수는 “도시계획 실현으로써 도시정비사업, 역사와 전통의 물리적 측면에서 보존과 계승, 도시디자인의 수법으로써 도시공간의 형태 평가” 등 생활 밀착형 공간디자인에 더 많은 관점을 두었다. ​ 이 과정에서 경관문제도 한 축으로 등장했는데, 당시 같은 강좌의 야마다 가쿠 교수는 경관문제를 “통제와 무위, 풍토에 순응과 도전 사이의 문제”라고 언급하면서 “무위방임과 형성노력, 단일목표와 다수목표, 유럽지상주의와 민족주의, 신경관 지향형과 현존 또는 과거 경관 지향, 총체주의와 분석주의 사이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무렵 필자는 이 연구실에서 1년간 있었는데, 역사환경의 보존과 계승, 생활 친밀형의 공공 공간에 관점을 둔 연구가 많았다. 이미지 구, 요코하마 선거 제2호독, 일본에서 가장 먼저 도시디자인을 시행한 요코하마는 아카렌가 창고, 구 요코하마 쇼킨 은행 등을 보존, 활용에 힘썼다. 도시 디자인의 대상과 범위론 ​ 도시디자인은 도시를 통합적으로 보는 것을 기본관점으로 하는데, 그 대상은 도시 전체에서부터 부분까지 다양하다. ​ 일본에서 도시설계 연구소를 운영하던 구라타 나오미치는 도시디자인의 대상과 범위를 대규모 건축으로서 도시디자인, 건축집합체로서 도시디자인, 가로경관으로서 도시디자인. 공공공간 정비로서 도시디자인, 도시비전으로서 도시디자인, 도시구조로서 도시디자인, 도시정책으로서 도시디자인, 도시비평으로서 도시디자인으로 규정했다. ​ 1992년 요코하마에서 개최된 세계 도시디자인 포럼은 “도시정책 골격과 관련을 갖는다. 도시디자인 질서를 디자인한다. 도심을 사람이 거주하는 다양한 장소로 디자인한다. 역사적 문맥을 더듬어서 도시 개성을 발굴한다. 도시문화를 디자인한다. 생태계와 공존을 모색한다. 촉매로서 프로세스 디자인을 수립한다. 비공식 플랜에 의한 합의형성과 유도를 도모한다. 공식리듬을 전략화한다”라고 선언했다. 이는 도시디자인이 물리적 형상만이 아닌 도시정책, 역사, 문화, 생태, 수법도 포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오늘날 세계적 도시디자인 도시로 평가 받고 있는 요코하마는 “보행활동을 보호하고,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환경을 확보한다.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자산을 소중히 한다.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장소와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증대한다. 형태적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지역의 지형이나 식생 등의 지역적 특성을 소중히 한다. 오픈스페이스나 녹지를 풍부하게 조성한다. 바다나 하천의 수변공간을 소중히 한다”라고 생활 친밀형 도시공간 디자인의 실현을 구체화했다. 오늘날 요코하마가 ‘사람의 도시’로 불리는 데는 바로 이같은 지속적인 도시디자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요코하마를 걸어보면 렌 긴도로즈 말처럼 도시디자인이 도시공간과 관련된 서로 다른 수많은 조각(대상)을 모아서 하나의 장소를 만들어가는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는 공공 디자인도 포함된다. 공공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외국 도시공간 디자인에서는 들어본 기억이 없지만, 우리 행정에서는 상당히 정착된 용어다. 넓은 의미로는 공공에서 관여하는 건축물이나 토목 등을 비롯해 가로시설물, 교통 안내판, 가로등, 바닥 포장, 간판 등을 포함하기도 하고, 좁은 의미로는 가로 시설물, 교통 안내판 등으로 한정하는 것 같다.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공공 디자인이 도시공간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도시 디자인이다. 그렇지 않으면 과도한 디자인이 될 수도 있고, 도시를 혼란스럽게도 할 수 있다. 요코하마가 도시공간 등에 시설물의 종류와 양이 많아지면서 토탈 디자인을 모색한 것도 그 때문이다. ​ 도시디자인의 관점과 수법론 도시디자인의 관점 ​ 도시공간은 과거의 축적이고 우리들은 거기에서 생활하지만, 생활양식의 변화, 경제 수준의 향상, 기술의 발달로 항상 새로운 도시공간으로의 변화를 바라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유도·제어할 것인가가 중요한데, 도시디자인은 여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 도시디자인 실현에는 도시정책, 공공과 민간의 역할과 개발규정, 제도운영, 자금조달 등과의 연계는 물론, 합의형성이 필요하다. 또 상황이 변화되면 도시디자인의 관점과 대상, 수법도 바뀌어야 하고, 도시디자인 실현에도 긴 시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다른 분야 디자인과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요코하마가 협의형 도시디자인을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필자가 초청 받았던 2014년 ‘요코하마 도시만들기-도시디자인 20인의 증언’에서 요코하마 시립대학교 스즈키 노부하라 교수는 요코하마의 40년간 도시디자인을 “암묵지로써 도시디자인, 토지이용 컨트롤과 도시디자인, 도시정책의 이벤트로써 역할이었다”고 규정했다. 도시디자인의 정의는 시대상황에 따라서 변화된다는 의미이다. 이미지 구 니혼교우가 바샤마지 빌딩, 요코하마 비샤미찌 거리에 있는 이 건물은 '요코하마 다움'을 만드는 역사적 경관 보존을 목적으로 한 1호 인증 건물이다. 네번째로 도쿄대학 도시디자인 강좌를 맡은 니시므로 유키오 교수는 “도시디자인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이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실체로 귀결되는 공간 조직을 목표로 해서 최종 성과물을 이미지화하면서 그것이 초래하는 형이상적 의미나 계산을 넣는 것이 필요하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도시의 부분 디자인이기 때문에 다른 부분과 상대적 관계에서 기능한다. ​ 도시디자인은 예술가의 사념 속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도시디자인을 실현시키는 과정에는 도시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이 있다. 도시디자인은 도시생활자가 이용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도시 생활자의 지지를 받지 못한 디자인은 그것이 설령 어떤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높이 평가될 수는 없다. 도시디자인은 짧은 기간에 완성될 수 없는 디자인이다” 라고 강조했다. ​ 이미지 개항의 길 일부, 1911년 개설되어서 1985년까지 기차가 다니던 임해부 철도를 중심으로 한 1.2킬로미터 보행로는 건물과 연동하여 개설되었다. ​ 일본에서 도시디자인은 늘 긴 기간을 상정한다. 그래서 실현성을 갖는다. 우리 도시들처럼 지자체장의 임기 동안에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실질적 실현은 어렵다. ​ 그가 도시디자인을 점적인 스폿트 도면을 통하여 디자인하는 스폿트 디자인, 복수의 사업자나 권리자가 복잡하게 얽힌 프로젝트 디자인, 결과물 중심의 아웃 풋트 디자인, 시민참여를 통한 과정 중심의 디자인인 프로세스 디자인은 물론, 컨트롤 디자인으로 구분한 것도 바로 실현 기간과 대상의 관련성에 기인한다. ​ 도시디자인의 수법론 ​ ⓐ 하드적 도시 디자인과 소프트적 도시 디자인 도시디자인은 스스로 최종적인 물적 디자인을 하는 하드 도시디자인과 다른 사람의 디자인 행위를 간접적으로 컨트롤하는 소프트 도시디자인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전자를 환경디자인, 후자를 매니지먼트 디자인이라고도 한다. 환경디자인은 광장, 녹지와 공원, 수변 등과 같이 소유자가 같고, 설계자가 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 매니지먼트 디자인은 택지개발지구, 가로공간, 가로건축군, 상점가 등 소유자와 설계자가 각기 다를 경우에 가이드 라인이나 메뉴얼 등을 통해서 개별건축 디자인을 컨트롤하는 것으로써, 대표적인 공법상 제도가 지구단위계획이다. ​ ⓑ 도시디자인과 총괄건축가 (M.A) 건축과 도시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만약 각자가 자유롭게 건축하도록 할 경우, 도시는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에 이를 통일적으로 해석하는 디자인 가이드라인이나 메뉴얼이 필요하다. 그러나 디자인은 아주 섬세하고,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어 언어적 표현에는 한계가 있다. ​ 따라서 도시디자인 률을 해석하고, 컨트롤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이들을 마스터 아키텍트(M.A·총괄 건축가), 또는 프로듀서, 코디네이터 등으로 부른다. 일본에서 M.A 제도의 선두적 공헌을 했던 건축가이자 교토대학의 우치이 교수는 프로듀서를 마스터 아키텍트(M.A)로, 개별부지 건축가를 블록 건축가(B.A)로 규정했다. ​ 필자가 교토대학에 잠시 있을 때 그는 도시개발에서 M.A 중요성을 사례들을 통하여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쭈꾸바 대학의 이전 계획을 총괄했던 도히 교수는 MA와 BA의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 건축가이자 도쿄대학 건축학과 교수인 구마 겐고는 필자가 번역한 책 ‘건축-마찌나미 경관 창조’에서 “프로듀서에게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충분한 교양과 식견이 있어야 하고,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현대적 다양한 조건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그는 또 “도시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해 속에서 도시 또는 가로경관의 고유성을 재정의하는 것이 프로듀서에게 기대되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프로듀서는 단순한 조정자가 아니라 건축가 개발업자, 주민 등을 납득시키는 설득력이 있고, 도시 고유성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 실체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과 분쟁을 조정하고, 사회적 경제적 문제도 해결하는 능력이 있는 탁월한 이론가인 동시 실무가다. ​ 그는 건축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탁월한 이론과 비전, 실행력, 합의 형성 능력을 모두 갖춰야 하는데, 현재와 같이 복잡한 상황에서는 한 사람의 프로듀서가 양쪽의 자질을 겸비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지금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M.A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자기중심적 사고를 이입시키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 행정은 뒷받침을 잘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는 게 필요하다. ​ 총괄 건축가의 책무는 건전한 개체가 모인 사회가 곧 건전한 전체 사회가 된다는 논리의 실현이다. 이를 위해서는 총괄 건축가의 명확한 비전은 물론, 행정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람을 위한 도시디자인이 된다.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 4편 개별성 도시로써 근대도시

조용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칼럼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4편-개별성 도시로써 근대도시 ​ 조 용 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 前)광주광역시도시공사 사장 前)한국주거학회장 前)한국도시설계학회 부회장 前)중앙도시계획위원 이미지 에버니저 하워드의 내일: 사회개혁으로 가는 평화적 여정에 수록된 사회적 도시의 다이어그램, 1898년 처음 출간 되었으나 그 이후 내일의 전원도시로 변경 (출처-역사로 본 도시모습 양윤재역, P194) 산업혁명 이후 도시인구의 급증과 공장 등의 출현으로 현대도시구상 등을 비롯하여 건축가들의 도시 도전이 시작되었다. ​ 한때, 분업화가 만든 개별성을 가진 신도시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이는 지역주의가 만들어낸 도시 형태와 도시문화는 고유성이 사라졌다는 비판도 있었다. ​ 이후 일체성 도시로써 도시디자인 반향은 건축가들의 다양한 도시디자인론이 일었으며 도시에 내재하는 철학적 시야에서 도시공간과 도시디자인은 변화되어왔다! 근대 도시 사조의 출현 건축가들의 도시 도전 ​ 산업혁명은 도시인구의 급증과 공장 등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런던의 경우 19세기 초에 96만 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1841년에 195만 명, 1887년에는 420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유럽에서는 19세기 중반경에, 미국에서는 19세기 후반에, 일본에서는 19세기 말에 일어났다. ​ 이는 도시환경의 악화와 교통난은 물론, 생산력 저하로도 이어지면서 이의 규제법은 물론, 새로운 도시사조 출현을 가져왔다. 영국에서는 1848년에 공중위생법이, 1851년에 노동자 계급 숙사법이 제정되었고, 1894년에는 런던을 비롯하여 여러 도시들에서 도로 폭, 벽면선, 건축 주변의 공터, 건물 높이 등의 규제가 행해졌다. ​ 미국에서는 1860년에 불량주택이 전염병의 원인이라고 여기고, 보건위생 측면에서 아파트 주거법이 제정되었다. ​ 1853년 영국 기업가인 솔트 경은 교회, 병원, 주택 등 공공시설을 갖춘 노동자를 위한 직물공장의 도시 “솔테이어”를, 1881년 미국 침대차 제조회사 폴맨도 공장에 부속된 뉴타운을 건설했다. ​ 영국의 “R. 오웬”이나 프랑스의 “F.C 프리에”등도 공장을 가진 이상적인 커뮤니티를 제시했다. 1902년에는 에버니저 하워드의 새로운 도시계획 원리를 담은 내일의 전원도시(내일: 참다운 개혁에 이르는 평화로운 길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 이 구상은 대도시로부터 떨어진 곳에 도시와 농촌의 매력을 겸비하고 공장이 있는 3만여 명이 살고있는 도시였는데, 이에 기초하여 1903년 레찌 웨스에 전원도시 건설을 위한 전원 도시회사가 설립되었고, 1919년에 웰윈에 건설을 위한 전원도시회사가 설립되었다. ​ 레찌 웨스는 필자도 가본 적이 있는데, 넓은 전원과 주택의 결합이 인상적이었다. 1917년 건축가 토니가르에의 공업도시 계획안, 1922년 르꼬르뷔지에의 인구 300만 명의 현대도시구상 등을 비롯하여 건축가들의 도시도전이 시작되었다. ​ 분업화가 만든 개별성의 신도시들 1928년에 르꼬르뷔지에 등이 근대건축가 국제회의(CIAM)를 결성하고, 1933년 아테네 회의에서 도시는 ‘태양, 녹음, 공간’을 가져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도시를 용도별, 용적별로 분리하고, 이 사이를 자동차가 연결하는 분리와 개별성의 새로운 도시 사조였다. ​ 특히 토지 이용계획과 건축, 토목, 조경 등을 자동차의 생산라인처럼 분리하고, 이들 각기에게 자유를 주고, 도시는 이를 집합하기만 한 분업적 도시개발 방식은 도시 환경개선은 물론, 산업사회 요구를 충실하고, 신속하게 뒷받침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 여기에는 건축이 양식, 역사성, 지역성 등을 버리고, 철과 유리와 콘크리트로 구성된 라멘구조의 박스형 건축의 공헌도 있다. 이 사조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의 고층 건물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저 입지하고, 이 사이에 자동차를 위한 넓은 도로와 공원이 있는 르꼬르뷔지에의 300만명 도시를 위한 투시도’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 사조는 여러 나라의 건축 관련법에 많이 반영되기도 했다. 사진 최초의 전원도시 리찌웨이(Letchworth), 에버니저 하워드의 전원 도시 사상을 반영하여 1903년에 제1전원도시회사가 설립되어, 154,476제곱킬로미터에 32,000명의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분업적 도시 사조가 택지개발 촉진법과 결합하면서 5년이면 한 개씩의 신도시(택지개발지구)가 도시외곽지역에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거리개념을 시간개념으로 바꾼 자동차 공헌도 있다. ​ 도시외곽지역의 개발은 자동차가 있어서 가능했고, 자동차의 도시지배로 이어졌다. 이는 짧은 기간에 주택 부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일정이상 생활 수준 향상과 편리함도 주었다. 또 직업의 세분화와 함께 많은 직장도 만들어 주었다. 근대도시 사조의 비판들 근대도시 사조는 1960년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많은 건축가 학자들의 비판에 직면했다. 지나친 산업적 기능적 추구로 인해서 전통 커뮤니티 해체와 범죄 발생은 물론, 지역주의가 만들었던 도시 형태와 도시문화의 고유성이 사라졌다는 비판도 있었다. 가로 연속성 단절로 인해서 근린사회의 일체성이 파괴됐다는 비판도 있었다. ​ 자가용 의존으로 에너지 소비 증가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범죄증가와 도시와의 대면성 약화를 가져왔다는 비판도 있었다. 시가지면적의 확장으로 인해 도심지역의 공동화를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 법에서 정한 용량과 용적의 배분 지침을 바탕으로 토지이용계획을 수립하고, 수립지침을 근거로 용도별로 기능별로 면적을 배분 배치하는 것은 임의적 수치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위생도시를 만드는 것과 같다는 비판도 있었다. ​ 도시혼란은 근대도시계획과 건축이 받아들인 분업화와 무분별한 자유의 반대급부로 생성된 파생물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도시이미지는 그 도시에 대한 평가인데도, 이를 소홀히 하였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1972년 미노루 야마사키가 설계한 미국 세인트 루이스에 있는 33동의 플로이트 이고우 주거단지가 폭파되었다. ​ 이 주거단지는 미국건축협회상을 수상한 주거단지로써 당시 미국의 경제 수준을 반영 하듯이 잘 계획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입주한 사람들은 흡사 기숙사 같아서 예전처럼 마음 편하고, 자유로운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떠나가면서 범죄 등이 발생하게 되어 폭파했다. 건축가 찰스 젱스는 모더니즘의 임종이라고 했다. 이미지 건축가 구로가와 깃쇼의1961년 Helix City (출처-黑川紀章 都市テザインの 思想と 手法 P17) "도시학자 제인 제콥스는 모더니즘적 도시는 더 이상 사람들을 즐겁게 하거나 아름답게 하지도 않는다면서 집단적 건축규제를 통한 도시개발과 도시 관리 수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 비판은 도시디자인출현의 당위성이기도 했다." ​ 일체성 도시로서 도시디자인 다양한 도시디자인론 ​ 역사적으로 볼 때 한 사조 끝나고, 새로운 사조가 시작될 때에는 기존 사조에 대한 비판과 함께, 새로운 사조의 논리가 제시되곤 해왔는데, 도시도 그러했다. 새로운 도시 사조의 가장 강력한 분출은 미국과 일본에서 일어났다. ​ 1957년 펜실바니아 대학를 시작으로 하버드 대학(1960년) 도쿄대학(1962년)에 도시디자인 학과가 신설되어 졌다. 산업도시를 지지하던 C.I.A.M의 10회를 준비하던 유럽의 젊은 건축가들이 결성한 팀10은 연맹, 정체성, 클러스터, 모빌리티 등의 새로운 개념을 주장했다. ​ 일본의 메타볼리즘그룹(1960년)도 도시를 신진대사로 정의하면서 여러 도시상을 제시하였고, 영국의 아키그램도 새로운 도시를 제안했다. 미국 시카코에서는 컬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발견 400년을 기념하여 열린 박람회를 계기로 도시미 운동이 일어났다. ​ 시카파 건축가 다니엘 번함이 주도한 이 박람회에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이탈리아, 프랑스 등 각종 건축양식을 망라한 화이트 시티가 등장했다. 1960년에는 케빈 린치가 거대도시의 이미지를 해석하는 도시 이미지를 발표했고,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패턴 랭귀지에 의한 디자인 방법도 제시되었다. 흑인이나 저소득층의 이익이 반영된 에드보카시 이론도 생겨났고, 현실이 갖고 있는 다양성이 반영된 에드호(Ad hoc)시즘도 등장했다. ​ 건축과 도시의 관계를 단순히 건축물의 산술적 집합 관계로 보는 시각에서 탈피하여 부분과 전체의 관계 이론으로 해석한 노베르크 술츠의 부분과 전체 이론, 도시경관의 구성사례를 하나의 이론체계로 발전시킨 고든 켈렌의 연속시각이론, 근대 도시조성 원리인 단순한 나무구조와는 달리 도시를 구성하는 각 단위들이 부분요소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동시에 또 다른 부분의 집합요소로서 작용한다는 크리스토퍼 알랙산더의 세미 레티스구조도 등장했다. ​ 이들의 공통점은 건축과 도시의 관계를 다시 분석하고, 건축을 도시구성의 중요한 요소로 하자는 것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19세기에 형성된 구시가지 재개발에서 기존환경을 살리면서 정비하는 안이 선택되었다. 이러한 수법은 베를린의 구도심 크로이츠 베르크의 정비에도 적용되었다. ​ 1967년 필라델피아 도시계획 실행위원장인 에드먼드 베이컨은 필자가 번역한 책 ‘Design of Cities’에서 중세도시를 모형으로 물리적공간 구성의 기본자세를 분석하여 역사의 흐름에는 유사함이 존재한다면서 도시디자인모형을 제시했다. 1974년에는 뉴욕의 도시디자인 실무를 담당했던 뉴욕시립대학 건축학과 조너단 바넷 교수가 “건축을 디자인하지 않고도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Urban Design As Public Policy를 출간하여 도시디자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 그는 영화산업발달로 침체된 뉴욕시의 브로드웨이 재생에서 세계적 모델이 된 건축규제와 인센티브를 도입하여 도시 활성화를 도모하였고, 공적 계획규제로서 도시디자인을 제시했다. 필자는 2009년에 국내 어떤 기업에서 기업도시 설계자로서 한국에 왔던 그를 만난적이 있었는데, 이상성이 매우 높은 계획이 인상적이었다. 이미지 메타볼리즘의 도시론 출처-黑川紀章 都市テザインの 思想と 手法 P11 일본 건축가들의 구체적 공헌 새로운 욕구분출의 한 축인 일본의 도시디자인 태동은 C.I.A.M에 참가한 마에카와 구니오, 단게 겐조의 영향도 있었고, 도쿄 올림픽(1964년)과 오사카 만국 박람회(1970년)의 2개 이벤트 장소 계획을 경험하면서 건축설계와는 다른 건축의 중요성의 깨달음도 있었다. ​ 1960년 건축가 기요노리 기쿠다게, 깃쇼 구로가와, 후미히코 마키 등은 상공회의소의 후원 아래 교토에서 개최한 세계디자인 대회를 준비 하면서 ‘건축적 요소의 성장, 변화, 융통성, 상호변화의 가능성, 집단적 형태 등을 주제로 변화 혹은 변환’을 의미하는 독립된 사상인 메타볼리즘 (Metabolism) 그룹을 조직하여 건축과 도시를 결합하는 여러 도시 상을 제시했다. 특히 도시에의 시간성 도입, 과정적 발전의 필요성, 도시디자인 발전 단계의 역사적 정리 등 기능주의 개념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구조 개념의 도입, 심볼 배치, 도시경관 형성을 위한 건축군의 조형 개념을 도입했다. 20세기 건축계는 1920~1960년대까지의 기능주의와 1960년대부터 구조주의라는 두 개 이론이 존재했는데, 단게 겐조는 ‘기능, 구조, 그리고 상징’이라는 글을 통하여 이 두 개의 거대한 사조를 명확히 구별했고, ‘도쿄만 계획 1960’을 발표했다. 이 계획안은 팽창 가능한 선형구조로서, 더 작은 구조단위로 분할될 수 있는 구조주의라는 새로운 도시계획개념을 반영하고 있었다. ​ 오타니 유끼오의 ‘코우지마치 계획 1960’, 오다카 마사히토와 마끼 후미꼬의 ‘신주쿠 재개발계획 1960’, 구로가와 기쇼의 ‘헤릭스 시티 1961’, 기꾸다께 기요노리의 ‘탑상도시 1959’와 ‘해상도시 1963’ 등은 구체적 제시였다. 또 단게 겐조의 건축·도시에 대하여(신건축, 1960), 구로가와 기쇼의 도시디자인 방법론과 메타볼리즘 방법론(국제건축, 1960, 1963), 오끼 타네오의 건축 디자인에서 도시디자인으로 접근(건축, 1961), 오타니 유끼오의 Urbanics 시론(건축, 1961),오타니 유끼오와 기꾸다께 기요노라의 도시디자인과 건축사이(국제건축, 1965)도 있었다. 특히 도쿄대학에 모인 단게 겐조 등의 건축가, 학자 등의 연구체 활동 결과인 일본의 도시공간(1961년), 현대 도시디자인(1963년), 일본의 광장(1971년)이 건축잡지인 건축문화에 특집형식으로 발표되었다. ​ 이중 일본 도시를 패턴, 엘리먼트, 시스템의 3가지로 분석하고, 디자인 수법을 카다로그 형식으로 분류한 ‘일본의 도시공간’ 은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여기에서는 역사 환경과 광장의 중요성도 강조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도 이소자끼 아라타 ‘건축의 해체’, 요시노부 아시 하라의 ‘외부공간의 구성 건축에서 도시로’ 외부공간의미학, 속·외부공간의 미학, 후미꼬 마키의 ‘도시에 내재하는 철학’ 등 많은 건축과 도시공간에 관련된 책이 봇물처럼 출간되어, 도시디자인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했다.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 3편 중세의 도시디자인

조용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칼럼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3편-중세의 도시디자인 ​ 조 용 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 前)광주광역시도시공사 사장 前)한국주거학회장 前)한국도시설계학회 부회장 前)중앙도시계획위원 사진 루브르 궁전 앞 광장 피라밋지하공간 오스만 시장의 파리 개조 ​ 파리 발전은 세느강에 있는 시테섬에서 시작됐다. 고대 파리는 북쪽의 로마에서 뻗어온 도로(리 드보리)가 시테섬을 지나 강 건너편 남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시테섬은 도심 역할과 함께 남북방향의 대가로(大街路) 발전을 견인했는데, 당시 동서 방향의 대로는 루브르궁까지 밖에 미치지 못했다. 사진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궁전의 힘 ​ 오늘날 파리 발전의 중심점은 루브르궁으로 이 역사는 중세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정방형의 평면을 갖고 있던 루브르궁은 루이 14세 때 약 4배로 확장됐다. 이때 중요시한 것은 동쪽의 파사드 디자인이었다. 파사드는 단순히 루브르궁전의 동쪽을 대표하는 것 이외에도 서쪽으로 추이루리를 지나는 도시 축 의미도 있었다. ​ 18세기가 되면서 루브르궁전 서쪽의 바로 앞에 튈레리 정원과 콩코드 광장이 입지해 도시 축의 시작점이 됐다. 루브르궁전을 중심으로 동쪽 축(대가로) 주변에는 루이13세 광장(보쥬광장) 시청사 바스티유광장이 서쪽 축 주변에는 반돔 광장 빅토와르 광장(루브르 북쪽) 등이 입지했다. ​ 도시발전이 남북방향에서 루브르궁을 거점으로 동서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루브르궁전의 힘은 서쪽 축에 있는 에드와르 개선문을 거쳐서 라데팡스의 그랜드 알슈(신 개선문)에까지 미쳤다. 일찍이 건축의 밀어내는 힘이 도시 개조에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 오스만 시장의 공헌 ​ 파리의 본격적 개조는 귀양지인 런던에서 런던식 도시디자인에 강한 영향을 받은 나폴레옹 3세가 정권을 잡은 후 오스만에게 파리시장을 맡기면서 시작됐다. 오스만은 루브르궁전을 중심으로 동쪽은 니시옹 광장까지 서쪽은 에드와르 광장(개선문)까지를 연결하는 큰 도시 축을 만들어 시각적 조망을 확보했다. ​ 그는 폭이 매우 넓고 일직선인 대가로를 만드는 사업 외에도 ​ 대가로변 건물의 통일된 파사드 형성 시테섬에 관공서 재판소 병원 등 공공시설의 입지 서쪽 브로뉴 숲과 동쪽 반센트 숲 정비 북쪽 뷰트 쇼몽공원과 남쪽 몬스리 공원 확보 조명 수도 하수도 등 도시기반 시설 설치 등을 이뤘다. ​ 이 과정에서 대가로 변에 인접해 있던 3/7 정도의 건물이 파괴됐다. 필자도 지하 하수도를 견학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 이러한 규모의 지하 하수도를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본 건축가 구마겐고는 오스만의 파리 개조에서 강조돼야 할 점은 피규어(건물)가 위치하는 장소의 교묘함이라고 했다. ​ 볼버드(boulevard)라 불리는 대가로의 네트워크를 파리에 순환시키고 피규어가 되어야 할 건물(예를 들면 구 오페라 하우스)을 대가로의 결절점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결절점은 당연히 시각상의 초점이 됐고 피규어는 가로를 걷는 사람들에게 점차 강한 시각적 인상을 부여했다고 했다. ​ 오스만이 피규어와 그라운드(땅, 지형)라는 구조와 도로의 퍼스펙트에 의해서 형성되는 도시의 시각적 구조를 링크시켰다는 것이다. 오스만 시장의 최대 업적 중 하나는 쾌적한 보행자 공간 조성이다. ​ 오스만 시대를 연구하던 발터 벤야민은 파리를 거니는 사람들을 ‘보행자’라고 불렀다. 걷는 장소에 대해서도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것 만으로도 그 장소는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 미테랑 대통령의 공헌 ​ 프랑스 혁명 200년을 기념해 미테랑 대통령은 1989년 오르세미술관, 라빌 레트 과학 공원센터, 그랜드 알슈 등 9개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입안해 실행했다. 9개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큰 화제를 불러온 것이 라데팡스의 그랜드 알슈 국제현상 공모였다. 현상 공모 결과 2개 안을 선정, 미테랑 대통령에게 위임해 그랜드 알슈가 선택됐다. ​ 이처럼 파리는 루브르궁전이 밀어내는 강력한 힘을 통해 콩코드 광장- 에드와르 개선문 - 라데팡스가 성립되었는데, 그랜드 알슈의 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일직선 대가로와 함께 에드와르 개선문과 루브르궁전이 한눈에 보인다. ​ 필라델피아의 도시 골격을 만든 에드먼트 베이컨은 이를 ‘확장성장’이라고 말하면서 라데팡스 개발은 상업적 개발의 맹공을 받고 있는 역사 도시에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 구마겐고는 19세기 파리의 도시 프로듀서가 오스만과 나폴레옹 3세였다면, 20세기 프로듀서는 미테랑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 로마 개조나 파리 개조는 도시디자인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의 비전과 실행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 지역적 그라운드와 피규어의 일체적 도시디자인 ​ 중세도시 가운데는 도시 디자인적 공헌 사례가 많은데 기본은 지역적 그라운드와 건축의 일체적 관계의 실현이었다. ​ 지역적 그라운드란 작은 지형은 물론 마을 가로공간 등의 인공적 질서를 의미한다. 시골 지역 휴양도시인 바드를 도시 디자인했던 건축가 존 내쉬의 공헌이 반영된 런던 중심지 리젠트 거리가 대표적인 예다. 리젠트 공원과 세인트 제임스 공원 사이를 연결한 이 거리는 거리와 건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도시디자인, 굴곡진 가로와 조화를 이루는 건물의 배치와 형태, 그리고 시각이 변화되는 굴곡점에 있는 작은 랜드마크적 건물 형태 등은 그의 의도가 반영된 곳이다. ​ 에드먼드 베이컨은 이에 대해 비교적 완만하게 구부러진 이 거리는 광범위한 디자인구조와 세부적인 건물이 분리되지 않고 일체화되었으며, 건물들 스스로가 근원적인 디자인 개념을 전진시키고 유효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서 리젠트가의 굴곡을 허용하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 건축가 크리스토 렌이 테임즈강과 작은 규모의 여왕 주택 사이에 왕립해군 대학을 디자인하면서 여왕 주택이 테임즈강의 시각적 기운을 그대로 느끼게 한 것도 마찬가지다. 또 2개의 광장을 교묘하게 연결한 토티의 광장, 베니스의 산마르코 광장, 피렌치의 시노리아 광장도 그러하다. ​ 그 밖에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직선으로 보이는 포토맥강 변의 링컨기념관과 백악관에서 직선으로 보이는 포토맥강 변의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의 시각적 전개와 함께 두 가지 시선이 교차되는 지점에 설치된 166미터의 워싱턴 기념탑은 베니스와 플로렌스가 연상되는 잘 의도된 도시디자인이다. 이미지 파리의 도시디자인구조 도시적 그라운드와 피규어의 위계적 배치 ​ 중세도시에서의 도시디자인 공헌은 가로나 광장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의 도시적 그라운드에서도 볼 수 있다. ​ 프라하는 볼타강 건너편 높은 지역에 슈테른 베르크 궁전과 몇 개의 성당이 입지해 있고 낮은 지역인 구시가지에는 바츨라프 광장 공화국 광장과 성당들이 자리해 거점 기능을 하고 있다. ​ 부다페스트 역시 도나우강 건너편 언덕에 부다 왕궁이, 강변 낮은 지역에는 성 이슈투반 성당과 에리제 베트 광장, 바찌거리 등이 입지해있다. 비엔나는 도시 중심에 왕궁이 있고, 주변에는 주요 거리와 광장과 공공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이처럼 궁전(영주)이나 성당 등은 모든 지역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나 도시 중앙 등 도시적 그라운드에 입지했고, 그 앞에는 공적 활동이 일어나는 광장과 주요 가로(街路)가 이어져 있었다. ​ 궁전은 위엄을 보일 수 있는 규모와 높이를 갖고 있었고, 성당은 하늘을 향한 뾰족탑 형태로 입지했다. 일반 시민들의 주택은 계급을 표현하는 복장과 같이 동일한 높이와 형태, 색채 등을 하였다. ​ 건축과 도시공간은 일체적이고 시각적인 효과를 만드는 도시공간과 직선 가로 광장은 아름다운 도시의 레이아웃으로 평가받았다. ​ 에드먼드 베이컨의 말처럼 중세도시는 건축 형태는 도시 디자인 구조 속에서 나와야지 다스려서는 안되며, 형태는 창의적 흐름을 방해하거나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중세도시의 비판 ​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일어났던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산업적·기능적 합리성을 위한 분업화가 도시에 적용되면서 도시는 효율성을 절대가치로 하는 기능적 기계적 역할을 요구했다. ​ 특히 1933년 아테네에서 개최된 C.I.A.M 제4차 회의에서 도시의 무질서한 팽창과 환경 악화를 제어하고, 양질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역사 도시와는 다른 기능적 도시관이 필요하다는 선언 이후에 건축과 도시가 일체적으로 결합하는 도시상과 양식적 전개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도시사조는 급격히 붕괴되고 산업적·기능적 합리성을 목표로한 기능주의 사조가 신속하게 세계의 도시들을 지배했다. ​ 당시 도시는 농촌인구의 대량 유입과 함께 공장의 연기나 배수, 주택의 오수가 환경을 크게 악화시켰다. 열악한 환경에 의한 전염병으로 많은 사망자가 생겨나면서 기능주의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 전통 건축이나 지역성, 도시 패턴은 근대의 산업적·기능적 합리성을 저해하기 때문에 새로운 건축이나 도시 사조로 대체해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양식주의 도시는 산업적·기능적 합리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비판을 받았다. ​ 이런 상황 속에서 영국의 에베네저 하워드의 전원 도시계획과 르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이론이 발표되면서 근대 도시 사조는 세계 각국의 뉴타운에 모범답안처럼 장착돼갔다. ​ 특히 빛나는 도시이론은 건축법과 도시계획법에 많이 스며들었다. 이는 건축과 도시공간이 결합하는 일체성 도시의 붕괴와 함께 건축과 도시공간이 분리된 개별성 도시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